9월 10일
9월 둘째 목요일 저녁 7시, 남구청소년창작센터에서
시조시인 정경화 시인을 시집 『시간연못』으로 만나고자 합니다.
메르스로 세상이 한동안 모두를 힘들게 했는데
폭염도 무사히 넘긴 대구에서 가을 맞아 우리 가락에 함께 젖어보고자 합니다.
조동화 시인은 정경화 시인의 시집 『시간연못』을 읽고
동일시의 기법, 자기성찰의 미학, 물활론적 사유, 육친에 대한 시편들 등
네 가지의 큰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경화 시인은 오랜 학습으로 천착된 격조 높은 시조를 쓸 뿐 아니라
동아일보와 농민신문의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오랜만에 가지는 시낭송회에 많은 사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일시 : 2015년 9월 10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 남구청소년 창작센터 (대구 남구 중앙대로 45길 53)/053-664-3100
-회비 : 없음.
-제공 : 시하늘 가을호, 시낭송용 작은 시집
-정경화 시인의 시세계 해설 및 질의 : 민병도 시인
-음악 : 추후 안내
-연락처 : 가우 010-3818-9604/ 찬솔 010-9358-5594
보리향 010-2422-6796 / 김양미 010-2824-8346
*정경화 시인 약력
-1961 대구 출생
-2000 월간문학 신인상 「갈등」
-2001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원촌리 겨울」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모과」
-2007 이영도시조문학상신인상 수상, 「장작」
-2009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수상, 「겨울나무」
-시조집 『풀잎』, 『시간연못』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결시조동인, 《시조21》 편집장
-이호우, 이영도문학기념회 사무국장
-민병도 갤러리 관장
*낭송시조
담금질
-정경화
내 안에 내가 많아
가시 같은 내가 많아
뜨거운 그대 노래
뜨거워서 식을까봐
차라리
칼보다 푸른
찬물 속에 가둔다.
바람 별궁-연
-정경화
끝없이 흔들려도 꺾이지는 마라시면
실낱같은 기둥을 뽑아 바람의 별궁 지어
동그란 길들을 지닌 품 너른 잎 되겠습니다
온 세상 더러워도 홀로라도 맑으라시면
뻘물에 달빛 풀어 발자국을 헹궈내며
하이얀 향기 머금은 꽃 한 송이 되겠습니다
눈물마저 다 말라도 마르지 마라시면
초록빛 광채를 숨겨 안으로 문을 잠근,
백년은 죽어 숨 쉬는 한 톨 씨가 되겠습니다
겨울나무
-정경화
찬바람 불더라도 떨지 않길 바랬다
실 한 올 걸치지 않고 소나기를 맞을 때는
웬만한 폭설쯤이야 견뎌낼 줄 알았다
뿌리도 흔들린다는 걸 저 가지가 어찌 알까
숨겨둔 물기마저 깡말라 갈증이 나면
새벽녘 서리 한 줌도 혀끝에서 아리는데
하늘 뜻 거역해도 제 길 안의 한 몸인 것
아직도 이해 못할 수화 같은 긴 편지를
돌아올 봄을 위하여 잔설 끝에 묻는다
낭길°
-정경화
섬은 아주 조용히, 길 하나를 낳았네
육지서 따라온 시간 잠시 멈춰 두라며
새우란 금빛 향기가 계집처럼 반기네
섬은 아주 가파른, 길 하나를 닦았네
손금보다 짜디짜도 투정 말고 걸으라며
파도살 목쉰 호령이 귓밥을 깨우네
섬은 아주 먼, 길 하나를 열었네
아무나 밟지 않아 뒷모습이 더욱 푸른
통치마 추슬러 놓고 고름 슬몃 풀어두네
°청산도 절벽에 난 길
가을나무-그림자․3
-정경화
떠나야 할 이유가 점점 더 많아졌다
한 잎 또 한 잎 도드라진 물집들,
습관성 딸꾹질에도 허둥대고 있었다
견뎌야 할 이유도 그만큼씩 늘어났다
불거진 가지마다 맺혀지는 옹이들,
온 몸을 활활 태워도 뜨거운 줄 몰랐다
오래된 변명 끝에 되살아난 금빛 소명,
절정으로 붉던 시간 달빛 아래 재워두고
완강한 산을 마주해 정좌하고 싶었다
무,무,무-우포에서
-정경화
늦은 봄 우포에 가서 청동거울 보았네
닦아도 이끼 앉은 시간의 고요 끝에
속마음 드러날까 봐 돌아누운 산 그림자
오던 길은 버려야지 갈 길 또한 새에게 주리
뼈 속까지 젖어서도 목이 마른 가시연꽃
눈부신 화엄 속으로 무,무,무 걸어 나오고
기다림을 가둔다고 어찌 다 감옥이랴
수초들이 새기다 만 푸른 꿈의 잔해 위에
차라리 저를 묶어서 절망마저 환한 나라
봄, 추령재
-정경화
기다림도 결이 살아 파릇파릇 움이 트면
경주 지나 감포로 가는 추령재를 넘는다
저 먼저 잠든 바다가 알몸으로 일어서는
어차피 지는 목숨 바위섬에 피겠다던
일출의 순간처럼 뜨거운 왕의 노래가
수묵빛 그늘이 깊은 산자락을 적시고
바람에 감겨왔나 알 수 없는 부끄러움,
혈서를 쓰는 대신 붓을 무는 참꽃 사이로
한 소절 만파식적이 가던 길을 붙든다
작도(作圖)․2-발레리나의 발
-정경화
신발을 벗겨 보면 낯선 네가 보인다
그래, 길의 더듬이는 언제나 휘어 있어
무대에 오르기까지 너는 늘 장님이었지
천 켤레 토슈즈로도 못다 읽은 춤의 경전,
통증 없는 아침은 끈을 더욱 조여야지
그 마치 새털 같았던 비루의 마침표여
누군들 비단길을 걷고 싶지 않으랴
갈채를 살라 먹은 어둠의 빗장 너머
구겨진 자존심처럼 일어서는 너의 발
어머니의 민들레
-정경화
눈이 채 녹기 전에 들로 나선 어머니
저 먼저 앓아 누운 아들의 봄을 위해
녹슬어 무딘 과도로 언 가슴 또 파헤친다
다듬고 말려놓으면 한 움큼도 안 되지만
관절이 뒤틀리도록 욕심을 보태보면
아픔은 땅에 묻히고 기도만이 남은 허공
민들레 홀씨처럼 제풀에도 날리는 몸
굵은 놈 한 뿌리에 당신 명줄 굵어지듯
빈 속을 물로 채워도 날듯이 뛰는 어머니
숲
-정경화
1.
그대 환히 밝히고픈 나는 햇살입니다
진초록 물결마다 은빛 찌를 던져봐도
온전히 밝힐 수 없는 나는 아침 햇살입니다
그대 안에 머물고픈 나는 바람입니다
풀잎에 기대 잠든 고요를 쫓아내도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린 남풍입니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어제의 나를 잊고서
깨끗한 그물을 치고 우듬지를 흔듭니다
깊어도 너무 깊은 그대, 스치고만 있습니다
2.
그대 안을 날고 싶은 나는 작은 새입니다
둥지는 틀 수 없어 날갯짓이 무겁지만
온종일 울어도 좋을 눈이 큰 파랑새입니다
그대 안에 피고 싶은 나는 작은 풀꽃입니다
얼비친 그늘 사이 종종종 깨금발 치며
날마다 홀로 설레는 홍자빛 족두리풀입니다
어제도 또 그제도 내일의 나는 잊고서
허공에 길을 닦고 작은 꽃등 밝힙니다
넓어도 너무 넓은 그대, 바라고만 있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성민이 결혼식에 부쳐
-정경화
더 높은 산을 향해 당당히 오르기 위해
어여쁜 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하늘의 찬란한 빛을 모두 모아 주소서!
더 낮은 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기 위해
건강한 한 사내를 남편으로 맞이합니다.
지상의 아름다운 노래 모두 불러 주소서!
무시로 흔들리는 사랑은 잎새 같은 것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휘날려도
언제나 꿈이 늘푸른 소나무가 되게 하소서!
너무 가까이 있어 귀찮게도 하지 말며
너무 멀리 있어 외롭게도 하지 말며
언제나 나란히 가는 평행의 기찻길처럼
삶의 반은 환한 날, 나머지는 어둠인데
환할 땐 어두울 것을 조금씩 대비하고
까말 땐 맑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둘만의 배를 저어 더 깊은 바다로 나가
때때로 이웃을 위해 등대를 밝혀주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섬이 되게 하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내 아들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귀하고 귀한 자리에
이 세상 모든 축복이 가득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