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3대 나한기도도량 가운데 한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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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도덕산 도덕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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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새벽안개.낙조 등이 뛰어난 곳 우연히 들렸어도 다시 찾아가는 사찰
경북 칠곡 송림사 맞은편 도덕산 중턱, 풍수지리상 제비가 집지어 사는 터인 연소혈(燕巢穴)에 자리 잡은 도덕암은 조용함.아늑함.편안함 등을 모두 갖춘, 숨겨진 보물 같은 사찰이다. 동명면 삼거리에서 송림사 방향으로 차를 달리다, 송림사를 막 지나 우측에 보면 ‘도덕암’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 따라 아름다운 숲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도덕암에 닿는다. 나뭇잎이 터널을 이룬 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청량한 공기는 또 어떤가. 이곳이 바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신선이 사는 곳이지 인간이 사는 장소가 아님)’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우거진 숲을 지나 도덕암 심우당에 앉으면 시야가 탁 트인다.
그러나 임란 이후 도덕암은 다시 중창됐고, 인조 10년(1632) 훈장(訓藏)선사가 나한전을 건립했다. ‘종교적으로 최고 경지에 도달한 분’.‘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수행자’를 가리키는 나한은 영험 있는 성자(聖者)를 가리킨다. 나한전이 완성되자 참배객들은 더욱 증가했다. 나한전에서 기도한 사람들의 소원이 지위고하를 떠나 성취되자, 도덕암은 영천 은해사 거조암.운문사 사리암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3대 나한기도도량의 한 곳으로 부상했다. 나한전 건립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향화(香火)를 올리는 사람들은 늘어갔다. 신도들의 기도가 원활하게 소통되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 기성(箕城)대사가 효종 4년(1653) 중수하고, 몽계(夢溪)대사가 철종 5년(1854)에 다시 가람의 면모를 일신했다. 이름도 지금의 도덕암으로 바뀌었다.
‘도덕’의 참 의미와 함께 도덕암이 참배객들에 주는 것이 있다. 도덕암 ‘삼광(三光)’이 그것이다. 첫 번째가 도덕암 주변을 첩첩이 둘러싼 숲과 산의 풍광. ‘청산첩첩미타굴(靑山疊疊彌陀窟)’은 바로 도덕암의 숲과 주변 풍광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무가 자욱해 땅이 보이지 않는다. 수종도 다양하고 높낮이도 각각이라,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두 번째가 ‘새벽안개(黎霧)’.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욱한 안개를 보노라면 도덕암이 마치 신선들이 사는 선계(仙界)인양 느껴진다. 촉촉이 콧등을 적시는 안개냄새를 맡으며 산속의 오솔길을 걸으면 절로 소원이 성취될 것 같은 느낌이다. 도덕암에서 반드시 체험해야 될 것이 ‘낙조(落照)’. 떨어지는 서글픔을 보여주는 낙조가 아니라, 마지막 빛마저 중생들에게 회향하고 사라지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아름다움이 도덕암 낙조에는 들어있다. 그래서 낙조가 삼광에 포함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덕암을 빛내는 것은 ‘나한전’과 ‘나한기도영험’이다. 사찰의 존재 이유가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에, 나한기도와 영험은 당연히 도덕암을 대표하고, 삼광(三光)은 나한을 보좌하는 부수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한과 삼광에 참배객의 신심(信心)이 보태지면 금상첨화임을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니 낙조를 받은 도덕암은 여여하게 빛나고 있었다. 쪾도덕암의 ‘2대 명물’ 1000년 모과나무.광종 속병 치료한 어정수
인터뷰 - 도덕암 주지 법광스님 “여기 오는 모든 이에게 희망주는 사찰 만들 터”
도덕암 주지 법광(法光.사진)스님은 “도덕암은 은해사 거조암.운문사 사리암 등과 더불어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3대 나한기도도량의 한 곳으로, 나한기도도량이라는 명성에 걸 맞는 사격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지로 부임한 뒤 스님이 힘을 쏟은 곳은 도량정비와 신도회 체계화였다. 먼저 극락보전을 중수했고, 누구나 들어와 차를 즐길 수 있는 심우실을 마련했다. 기도영험이 뛰어난 나한전, 칠성.산신을 모신 자응전(慈應殿), 산령각(산신각), 적묵당, 염화실 등도 앞으로 차차 새롭게 정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님은 도덕암 소유의 문화재 보호에도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도덕암을 중창한 몽계선사 진영(眞影), 나한전에 봉안된 16나한상은 곧 경북 유형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 몽계화상 진영은 “노승 얼굴 세부묘사와 정신세계를 잘 표현한, 당대를 대표하는 수작”이고 “화기(畵記)가 남아 있어 다른 진영의 제작연대를 판단하는 기준작이 되는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나한전에 봉안된 16나한상 역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상(像)들이다. 물론 스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가정안녕기원법회.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전 가족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는 가족법회는 한번 참석한 가족은 모두 오는, 지역을 대표하는 법회로 자리 잡았다. 전 가족이 반드시 동참해야만 하는 이유를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만 오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들, 딸, 손자, 며느리가 같이 와야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편안해야 가정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야 가족구성원들이 하는 일이 잘 됩니다.” 신도들에게 힘들어도 항상 미소 지으라고 강조하는 법광스님은 “매일 거울을 보라”고 가르친다. 미소 보다 더한 부처님 가르침 전파는 없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 웃은 얼굴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라는 뜻을 가진 ‘화안애어(和顔愛語)’는 그래서 스님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다. 사찰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면서도, 신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면서도, 사중(寺中)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스님은 항상 미소 짓는다. 그리고 솔선수범한다. 신도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도덕암에는 항상 모든 이를 반겨주는 부처님과 나한님이 계십니다. 질병과 스트레스는 벗어두고, 참배객들이 희망을 찾아 세간으로 가게끔 만드는 그런 사찰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법광스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마음속의 온갖 병이 저절로 사라진 것 같았다. 도덕암 로담 혜거 국사가 칠성전에 중생 발복을 기원하고 광종이 왕사를 찾아 삼일기도 회향하니 어정수는 속앓이 병 약이 되고 칠성님은 제비로 화현하여 중생에게 수명장수 복을 베푸시네. 그 상서로움이 새벽 운해는 동방 유리광세계요 석양 노을은 미타정토 극락세계라 모과나무 그 산 지키기를 일천년 성인이 머무는 곳 도덕암이라네.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산20-5 전화 : (054)976-8380 팩스 : (054)976-8381 [불교신문 2141호/ 6월28일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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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5 오전 10:25:33 등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