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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주 남강다리 앞 헌책방
고속버스터미널 앞 <소문난서점>에 들른 뒤에 택시를 타고 남강다리 옆 "귀빈예식장" 앞으로 갑니다(기본요금 조금 더 내면 되는 거리입니다). 예식장에는 볼 일이 없었지만, 그 예식장 옆에 있는 헌책방에는 볼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주에 헌책방이 다섯 군데쯤 있다고 하는데, 촉석루가 바라다 보이는 남강다리 옆(귀빈예식장 옆)에 <동훈서점>이 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남강과 촉석루가 참 잘 보입니다. 찾아간 이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으나 이튿날은 날이 말끔히 개어 남강 구경을 나와 봤어요. 맑은 물과 파란 하늘과 하늘거리는 대숲. 참 잘 어우러지며 좋았습니다. 더구나 그처럼 남강과 촉석루를 구경한 뒤 슬슬 걸어서 남강다리 옆 헌책방까지 찾아가 본다면 더 좋겠다 싶더군요. <2> 선물할 책 구경
책방을 남강과 촉석루와 대숲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좋은 자리에 얻으셔서 그런지, 가끔씩 책방 문을 닫거나, 일을 마친 뒤 대숲을 거니신답니다. 그렇게 대숲을 거닐면 자연스럽게 시가 나오기 마련인데, 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시로 잘 담아 보고파서 방송통신대 국문학 과정을 들으신답니다. 참 운치 있고 재미있게 사시는구나 싶습니다. 헌책방과 대숲이라니! 늘 서울 도심지에 있는 헌책방만 보고 느끼던 저로서는 남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강가에 있는 헌책방, 또는 바닷가에 있는 헌책방, 또는 산골에 있는 헌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책과 자연이 살포시 어울리는 모습이 그지없이 좋아 보입니다. 책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자연을 느끼고, 가슴을 확 틔울 수 있는 강물과 하늘을 보면서 책을 즐긴다면 (책 한 권을 읽어도) 좀더 뿌듯하게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헌책방도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목에 자리를 잡아야 좋다고 하는데, 진주 <동훈서점>처럼 살가운 자연을 옆에 끼는 헌책방도 참 좋아 보입니다. 아무튼. 헌책방에 왔으니 책 구경을 좀 해야겠습니다. 제가 볼 책도 볼 책이지만, 진주에 모처럼 온 김에 진주 사는 친척들에게 드릴 책 선물을 잔뜩 해 보자고 마음먹고 여러 가지를 고릅니다. 먼저 아내 쪽 작은어머님 읽으실 <영혼의 집>(이사벨 아옌데/박영조, 박윤정 옮김, 창현문화, 1993)과 <빠빠라기>(에리히 쇼이어만/두행숙 옮김, 두풍, 1981)와 <하늘곁 동네의 소년>(이.씨.마르틴/장선영 옮김, 중앙일보사, 1980)을 고릅니다. "이사벨 아옌데". 그이 큰아버지는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 아옌데 대통령은 미국 군사힘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 쿠데타로 뒤집어지고, 민주화로 자주화를 걷던 칠레는 그만 무너져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영혼의 집>은 칠레 민중의 사랑과 눈물을 담은 책입니다. <하늘곁 동네의 소년>은 문고판으로 나온 "라틴아메리카 소설모음"이에요. <빠빠라기>는 여러 가지 판본이 있습니다. 보통은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판을 많이 읽고, 그 번역이 정식 계약을 해서 낸 판이라 하지만, 제가 읽어 보기로는 두행숙씨가 1981년에 옮긴 번역이 훨씬 나았어요. 요즘 새롭게 복간한 <빠빠라기>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읽을 책이라면 깔끔하게 잘된 번역으로 된 판을 읽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고릅니다.
<울면서 하는 숙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린이 스스로 올바르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이오덕 선생 삶과 생각이 담긴 이야기책입니다. <3> 낡은 책에서 만난 반가운 말 그럭저럭 책을 고른 뒤 책값을 셈합니다. <동훈서점> 아주머니는 나중에 짬나면 꼭 남강 대숲을 구경해 보라고, 참 좋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고 책방을 한 번 더 둘러보다가 <조류사육전서>(권길만, 한국문화사, 1972)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조금 오래된 책이다 싶어 한번 들춰봅니다. ┌ 보통사랑새 ├ 고급사랑새 ├ 보통사랑새의 감별 ├ 길들임사랑새 사육법 ├ 사랑새 말가르치는 요령 └ ...... 그런데 웬걸. <조류사육전서>에서 반가운 말을 만납니다. 바로 "사랑새"란 말입니다. "사랑새"란 무엇이냐면, "잉꼬(inko, 鸚哥)"라는 새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요즘 국어사전에는 "사랑앵무"라는 이름으로도 올라가는 새입니다. "사랑새"란 새이름은 "사다새"와 함께 거의 잃어버릴 뻔한 토박이 이름입니다. "사다새"는 또 어떤 새냐 하면, 우리가 흔히 "펠리컨(pelican)"이라고 아는 새를 가리키는 토박이 이름이에요. 1200년대를 살았던 이규보 선생이 지은 시 가운데 "사다새"를 읊은 대목이 있습니다. 언젠가 북녘 자료를 뒤지다가 만났는데, "사다새"란 이름이 나오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이의 인장은 어마어마하고 어떤이의 관은 높기도 하더라만 사다새는 주둥이 적시기를 저어하고 봉은 구멍속에 나래를 숨겼구나 .. - "느낀바 있어서", <리규보작품집>(문예출판사, 1990)> 84쪽
워낙 오랫동안 써온 "펠리컨-잉꼬"란 이름이기에 "사다새-사랑새"란 이름이 낯설 수도 있지만, "잉꼬부부"란 말보다는 "사랑새부부"가 훨씬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동안은 잊혀진 이름이라 할 수 있어도 차츰차츰 되살리면 좋을 우리 말 흔적을, 참으로 뜻밖에도 진주 남강다리 옆 헌책방에서 만나서 참 반가웠습니다. <4> 지역 헌책방이 살 길 지역 헌책방은 서울 헌책방보다 살림이 팍팍합니다. 책을 사 읽는 사람이 서울보다 적은 것은 참 큰 어려움입니다. 책을 사 읽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새책방"과 "헌책방" 모두 힘듭니다("새책을 사는 사람이 많아야, 그 책을 내놓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 책을 내놓아야 "헌책방"에 들어오니까요). 책을 살 때 인터넷 책방에서 산다면, 어떤 책이든 살 수야 있으나, 두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리고 들춰보면서 고르다가 사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사는 모든 책이, 책이름이나 지은이 이름이나 펴낸 곳과 차례만 보고서 쓸모가 있거나 읽을 만한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지역에서 헌책방을 즐겨찾는 발길도 있어야겠고, 헌책방 임자도 애써야겠지만, 이런 괜찮은 헌책방이 곳곳에 있을 때, 지역 자치단체에서 몇 가지 문화 정책이나 기획을 내놓는다면 진주시민뿐 아니라, 진주시를 찾아올 숱한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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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1 오후 3: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