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들려요
오금윤
식탁 등이 켜 진 것은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온 뒤였다. 출입하는 방문 밑으로 불빛이 흘러 들어왔다. 커피폿에 물 끓는 소리도 들렸다. 커피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거실의 중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비틀고 불빛을 따라 나간다. 아무도 없다. 시계를 읽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뻐꾸기시계는 새벽 4시 10분이었다. 10분 전에 귀는 깨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네 번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세 번의 소리든 네 번의 소리든 뻐꾸기 소리는 이미 삼년 전부터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지금 나는 요추가 약간 불편했다. 더 불편한 것은 요의를 느껴 새벽마다 화장실에 갔다 와서 다시 자리에 눕는다는 것이다. 따끈한 우유에 커피 한 스푼과 설탕 한 스푼 넣어서 마시고 푹 잔다. 일어나는 시각이 빨라졌다. 전에는 새벽 6시에 눈을 떴는데 습관이 변한 것은 가을 날씨가 추워지면서 부터 생겼다.
뻐꾸기시계 아들은 잠자리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만들어서 4호 라인과 붙어 있는 방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커다란 머그잔에 믹스 커피 아니면 인스탄트 커피 1ts, 삭카린 서너 개를 넣고 휘 저었을 것이다. 식탁의 LED 등은 뻐꾸기시계 아들이 켰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거실 벽에 ‘4:10’ 숫자도 그대로다. 전기 스위치를 누르자 화려하게 빛나던 식탁 등이 암흑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들어와 눕는다. 아직 방안이나 밖은 어둡다. 왜 들리지 않았을까? 네 번의 소리.
40년 전 결혼 전에 뻐꾸기시계 아들 집에 갔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방 안은 단조로웠다. 남쪽에 배치된 유리창이 환한 방 안을 만들어 주었다. 쇼파 두 개 사이에 탁자가 있었고 창문 위쪽으로 박스용 에어컨이 금방이라도 작동할 듯이 벽에 붙어 있었다. 출입문 옆으로 설합장 세 줄이 붙어 있는 화장대가 있었다. 왁스로 빛을 낸 듯 반짝였다. 남성용 로션과 파란색의 외제 스킨도 나란히 놓여있었다. 여성용인 듯 기초 5종 셋트, 몇 개의 립스틱, 스틱 화운데이션, 가루분, 머리빗이 담겨진 통이 보였다. 언뜻 봐도 나이든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대였다. 초침까지 정확할 것 같은 벽시계가 여섯 번의 종을 쳤다. 시계는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동쪽 방향은 거실로 통하는 문과 벽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북쪽 벽은 자개가 붙은 화초장과 자게로 장식 된 짙은 밤색 옷장 겸 이불장이 벽에 맞춘 듯이 서 있었다. 집안의 어르신이 귀가 한 모양이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초인종의 날카로운 소리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양복이 잘 맞은 점잖은 색상의 넥타이를 한 어르신이 들어왔다. 첫 인상은 60대의 나이 쯤 돼 보였고 깔끔한 타입이었다. 곧 바로 쇼파에 앉았다. 방안의 가족들은 다시 앉거나 방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180정도의 키였고 적당한 머리숱에 검지도 희지도 않은 가느다란 회색 빛 머리카락은 방금 빗질한 듯 단정했고 매끈한 턱은 날카롭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이미지였다. 움푹 들어간 눈꺼풀과 눈동자는 총기로 빛나 지식인처럼 느껴졌다. 군살은 전혀 없고 앉아 있는 자세는 바르고 곧았다. 방금 벗어 놓은 구두가 궁금하였다. 잘 닦아서 반짝거리고 뒤축도 반듯하게 달았을 것이다. 완벽한 노신사의 외모였다. 서서히 땀이 흐른다. 몇 초의 공백이 흐르는 동안 탐색이 가능했다. 양말 신은 발가락의 모양이 느껴졌다. 구두를 벗은 낯선 발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발가락은 살이 없어 더 길어 보였고 검은 색 양말은 깔끔했다. 콩으로 손질하고 니스로 두꺼워진 노란색 방바닥에 검정색의 발이 놓여 있었다.
드디어 맞대면 어르신은 무얼 물어볼까 침이 마른다. 나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목소리의 톤을 조절 할 줄 안다.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었다. 수줍고 매력적이면서 헤프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도 하였다. 결혼은 아직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상황은 선보는 자리로 진행되는 눈치다. 지금 현재는 답변만 가능한 어려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었다. 어르신은 의례적인 것을 물었고 순조롭게 흘러갔다. 오빠 이름자도 물었고 대답과 동시에 한자음도 물었다. 나에게 있어서 오빠는 그저 성이 같은 피붙이 일 뿐 이었다.‘승록이 오빠’ 라고 수도 없이 불렀지만 한자음을 음미 한 적은 없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를 승까지 말하고 록 자는 돌림이라고 말했다. 틀려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대로 통과였다. 저녁상이 준비되어 방문이 열리고 거대한 밥상과 외상이 들어온다. 대화는 중단 되었다.
방문이 열리고 불이 환히 켜졌다. 잠옷 차림의 뻐꾸기시계 아들 들어왔다. 턱 선을 가린 하얀 수염은 예술인 같다. 시아버지의 매끈한 턱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수염이 매력적이다. 피부는 윤기가 흐르고 탱탱하다. 이마의 가로주름과 팔자주름도 없다. 5시 안 됐느냐고 인사 대신 물었다. 아니 6시 돼 가는데. 그럼 뻐꾸기 소리가 왜 안 들렸을까 혼자 말을 했다. 뻐꾸기시계 아들은 약이 다 됐나봐. 어 뻐꾸기시계 아들은 답변까지 충실하게 해준다. 다사소에 가야겠어. 뻐꾸기시계 아들은 다사소에 가는 걸 좋아한다. 가끔씩 잠깐 나가면 쇼핑 비닐을 들고 온다. 다사소 전화번호와 로고가 쓰여 있는 쇼핑 비닐 안에는 다양한 제품들이 들어 있었다. 방수된 소방복도 사왔고 건전지, 커다란 자동차, 빗자루, 꽃삽, 산도깨비 방향제, 욕실용 시계, 화분 받침, 물고기 통, 슬리퍼 등등 수도 없이 사온다. 나는 일어나면서 허리 스트레칭을 하였다. 건전지 사러 갔다가 또 뭘 사올까. 담배도 사오겠지. 한 갑에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는데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다. 술은 체질이 맞지 않아서 끊을 일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3년 전 남편이 벽시계를 떼면서 수리를 하러 가자고 했다. 새 건전지를 바꿨는데 작동이 안됐다. 고장이 난 것이었다. 그동안 벽에 걸린 벽시계가 고장이 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거실 TV 옆에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버티고 있었고, 화장실도 욕실용 시계가 있었다. 집안 곳곳에 시계는 너무 많이 있고 시간도 틀린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밖에 시계는 모두 무시하였다. 이제 오래된 벽시계는 그냥 버릴 때 된 물건인데 버리는 자체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외출을 서두르면서 말했다.
“우리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좋아 하시면서 아버지가 사 오셨잖아” 그때 사오신건가? 나는 그 자체가 생각도 안날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래 동안 남편의 말이 남았다. 시아버지의 병원생활도 생각났다. 시아버지는 전립선에 이상이 오면서 원하지 않았던 요양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노후를 그렇게 병원에서 보냈다고 돌아가시고 난 후에 아들은 매우 안타까워했다. 집에서 모시지 못한 것 한이 남는다고 했다. 요양병원에서 시아버지는 부탁의 말은 없었다. 평소에도 우리들에게 걱정하시는 말은 없었다. 약간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갔던 날 산소통이 있는 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현수(손자)에미! 현수 에비!”를 큰소리로 몇 번이고 외치면서 우리들을 바라(흐믓)보았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 볼 정도는 된다는 자랑스러운 목소리였다. 그게 마지막 가시는 날이었다. 그 날 저녁도 못 드신다고 밀어 놓은 다 식어 차가워 진 죽을 며느리가 주는 대로 받아 드시고 요플레도 다 드시면서 “천천히 천천히”라고 또렷하게 말하신 걸 마지막으로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녀 간 다음 날 돌아가셨다. 너무나 허무했지만 함께 한 소중한 시간 마지막인 날, 마지막 가는 걸 알았을 것이다. 가시는 끝까지 웃으시면서 누구하나 곁에 두지 않고 홀로 떠나셨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유품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할 것이다. 아들의 가슴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뻐꾸기시계가 되었다. 수리 점 주인에게 우리 집의 家寶(가보) 라고 알렸다. 천천히 잘 고쳐달라고 맡기고 일주일 만에 벽에 걸 수 있었다. 그때부터 뻐꾸기시계가 살아서 말을 했다.
“뻐꾹, 뻐꾹” 두 시는 목소리가 되었다. ‘천천히 천천히.’라고 들렸다. 두 번 말하는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아버지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매 시각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열두 번 울리면 ‘아직도 안자니?’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섯 번 울리면서‘이제 아침이다. 일어나야지’하고.....들린다. “여보, 다사소 빨리 갔다 와요.”새벽 잠이 깼다.
201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