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연
나는 ‘지혜 병원’이라고 쓰인 간판을 바라보았다. 보면서 ‘지혜’는 귀여운 딸내미 이름일까? 아니면 아내에게 감추고 싶은 옛 여자의 이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때론 ’ㅊ ㅋ ㅊ ㅋ‘ 하고 지나가는 열차의 소리를 들으며 ‘격음화 현상‘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첫 출근이이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그날, 공연히 창밖을 바라보며 허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 사내가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까맣게 기른 콧수염과 박박 밀은 머리 때문에 도무지 정체를 대중해보기가 힘든 사내였다. 아니 군데군데 벗겨진 머리의 버짐 때문에, 마치 물이 마른 개울에서 수초와 부대끼며 살다가 비늘이 군데군데 벗겨진 물고기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상갑 씨였다. 상갑 씨는 사무실을 한 바퀴 휘둘러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디서 얌전하게 생긴 샌님 한 분이 외 있었네, 그래. 어디보자, 눈알이 새파란 게 한 몇 년 밥 도적질 잘하면 한 소식 하겠는 걸. 하하하하....”
갑자기 울려 퍼진 상갑 씨의 큰 웃음소리 때문에 바둑삼매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지방의 유지들 같았는데, 나에겐 아직 초면인 사람들이었다.
“야, 상갑이 이놈의 자식! 오랜만에 나타났으면 어른들한테 인사부터 할 줄 알아야지 게서 뭣 하는 짓이야? 가만히 있는 젊은 친구나 놀리고선....그리고 너 해 다니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어디서 승복이나 훔쳐 입고 가짜 스님 행세하고 다녔던 거 아냐?”
머리가 희끗한 게, 예순 줄은 좋이 됨직한 노신사가 나무라자 상갑 씨는 오히려 나무라는 노신사 쪽을 향해 다가갔다.
“아이고, 김 사장님 아니십니까? 한, 서너 달 만에 속세에 나오니, 눈이 어두워져서 김 사장님 계신 것도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이런 화상 하구선.... 뭐, 속세를 떠나 있었다고? 그래, 그동안은 승복이나 훔쳐 입고 누굴 등 쳐 먹었어?“
“아이고, 김 사장님. 왜 이러 십니까요? 제가 남의 등을 치다니요. 전 드라마를 보더라도 그 드라마의 광고는 기꺼이 봐주는 사람입니다요. 광고가 먼저 있기 때문에 드라마도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요? 저는 광고가 아무리 성가시드라도 절대 채널 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요. 그런 양심의 제가 어찌 남의 등을 치시겠습니까요. 안 그렇습니까요?”
“이런 화상 하고선. 그럼 대가리를 박박 깎고 콧수염까지 기르고서 뭘 하며 지냈던 거야?”
“히히. 제가 이래봬도 말이지요. 그동안 토굴에 틀어박혀 고시 준비를 했던 몸이 올습니다요.”
“뭐, 네 놈이 고시 준비를 했다고?”
“그런데 산중이라 부식이 부실해서 영양실조에 걸릴 판이라 도리 없이 산을 내려왔지요. 히히히,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예술 공부도 좀 하긴 했는데, 어디 말나온 김에 김 사장님께서 먼저 한 번 보시지요.”
상갑 씨가 어께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렸다. 그 속에서 사진 몇 장을 끄집어내서 김 시인의 눈앞으로 들이 밀었다.
“선생님 사진 중에 예술성 짙은 것들로만 쫙 뽑아 왔습니다요.”
김 사장은 마지못해 벗어 두었던 안경을 다시 꼈다.
“쯧쯧쯧. 예술 작품 어쩌고 하더니, 이건 저번에 찍어 놓았던 사진을 확대한 것뿐이구먼.”
“아이고, 선생님. 왜 이러 십니까요. 김 사장님 같이 예술의 조예가 깊으신 분께서 촌로처럼 마구잡이로 이러시면 어쩝니까요? 지금 거실에 걸려 있는 낡은 사진들은 다 떼어 내시고 이 사진으로 떡하니 봐 꿔 달아 보십시오. 사진 속에서 우러나는 선생님의 인품에 모두들 존경해 할 겁니다요.”
상갑 씨가 김 사장이 있는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씨익’ 하고 웃었다. 김 사장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아니, 더 이상 버터 봐야 소용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지갑을 끄집어내었다.
“이 화상. 몇 달 보이지 않 길래 이젠 좀 조용해지나 했더니....”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상갑 씨의 수작이 조금 경박한 듯 했지만 그것보단 재미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다.
김 사장으로부터 몇 장의 지폐를 받아든 상갑 씨가 이번에는 옆에 앉은 신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아이고, 이제 보니 박 선생님도 마침 여기 계셨네요. 박 선생님 작품도 같이 준비해 왔는데 어지간하시면 한 번 보시지요. 폼 나는 것들로만 쫙 뽑아 왔습니다요.”
상갑 씨는 또 다시 바랑 속에서 사진 몇 장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박 선생의 얼굴 앞으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화상이 나한테까지 왜이래! 김 사장한테 몇 푼 받았으면 그걸로 됐지. 저리 치워!“
“에이, 우리 지역에서 제일 인정 많기로 소문난 분께서 왜 이러 십니까요? 혹시, 이런 사실을 선생님의 제자들이 아시고 수악하다고 놀리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박 선생은 처음부터 버터 볼 엄두가 나지 않는지, 사진도 보지 않고 지갑부터 끄집어내었다.
“이 화상 수법에 하도 당해서 다시는 안 당한다 했는데..... 곡식알은 거꾸로 떨어져도 반드시 위를 향해 크는 법이라는데, 이 화상은 어느 모양으로 심어 졌기에 이러는지 몰라.”
박 선생으로부터 몇 장의 지폐를 더 받은 상갑 씨는 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옆에 있는 뚱뚱한 오십대 초반의 중년신사를 먹잇감인 양 음흉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이, 김 교수! 아니, 돈 교수, 오랜 만이야. 그동안 얼굴에 게 기름이 번지르르한 걸 보니 돈푼께나 벌은 모양 같은데, 돈 다 벌어 뭐 할 거야? 죽어서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그 돈으로 내 카메라나 한 대 바꿔주지? 이제 실력도 완숙의 경지에 올랐겠다, 자네가 요즘 대세인 디지털 카메라 한 대만 장만해주면 폼 나는 것들로만 쫙 뽑을 수 있겠는데 말이야.”
상갑 씨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김 교수가 용수철에 튕기듯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상갑 씨의 수작이 자신에게까지 이르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 자아슥이 남의 사무실마다 찾아다니면서 뭐하는 짓이야! 안 그래도 화투장이 안 풀려서 열불이 터져 죽겠는데, 네 넘까지 와서 깝죽거려!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일이지 어디서 기어 나와 캐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리고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나 보고 뭐 돈 교수라고?“
상갑 씨는 김 교수의 갑작스런 행동에 저어기 당황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돈 씨를 돈 씨라 부른 건데, 그게 뭐 어째서?”
“김 씨가 네 넘 주우둥이 속에선 어째 돈 씨가 되어 나와? 응?”
“이밥 얻어먹고 금 씨를 김 씨로 바꾼 건, 그럼 뭐야?”
나는 상갑 씨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상갑 씨가 김 씨를 돈 씨라고 부르는 것은, 황금 금 씨를 쇠 김으로 바꾸어 부른 것을 두고 그러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 옛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 되었을 때, 나라를 장악한 이 씨들은 임금을 상징하는 금 씨 성을 쓰는 사람들을 곱게 보아주지 않았다. 그에 겁을 먹은 금 씨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신들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금 씨를 김 씨로 바꾸어 불렀다. 그래서 이 씨들은 그 대가로 자신들이 먹는 쌀밥 즉, 이밥을 주었는데, 상갑 씨는 지금 그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였다. 줏대 없이 성을 팔아 이밥을 얻어먹었다는 것을 빗대어 돈 씨라고 비아냥거리는 거였다.
“이자아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말하는 본세가....”
김 교수가 대번 상갑 씨의 멱살을 두 손으로 낚아채었다.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상갑 씨를 사정없이 구석으로 밀어 제쳤다. 그제야 상갑 씨는 장난이 아님을 알아차렸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돈 교수! 왜이래? 이 앞발 좀 놓고 말로 해. 말로 하자구.”
“너, 이 자아식! 네 발로 나갈 거야 아니면 내가 끌어낼까 응?”
“돈 교수! 알았어. 내발로 나갈 테니까, 자네 앞발이나 좀 풀어 줘“
그러나 김 교수는 상갑 씨를 개 끌듯이 끌며 문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씨름 선수처럼 다리를 거두어서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너, 이 자아슥! 다시 한 번 더 이곳에 나타났다간 그땐, 다리몽둥이 부러지는 줄 알아? 알겠어?”
잠시 후, 계단을 타고 일층으로 함부로 뛰어 내려가는 상갑 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 교수에게 당하면서도 그의 오동통한 손을 빗대어 앞발이라고 하고, 김 씨를 돈 씨로 부르며 가는 상갑 씨의 표정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불쑥 생겨났다. 아니, 그 보단 왜 상갑 씨라는 사내는 그런 식의 무례한 작별 인사를 당하고 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연민 때문에 그를 자꾸만 뒤 돌아 보게 끔 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어쨌든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서 내려다 본 극장 앞 사거리에는 상갑 씨가 시인들에게 받은 지폐들을 하나하나 세어 보고 있었다. 다시 척척 잘 접어 승복 앞주머니에 찔러 넣은 다음, 이층 사무실을 향해 손으로 엿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야, 이넘의 새키들아! 잘난 네넘들끼리 잘 쳐어 먹고 잘 살아라!”
그르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상갑 씨는 언제 그랬나는 듯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이, 샌님 다음에 또 보자고.”
나는 상갑 씨가 돌아간 후,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자들이 펄떡 펄떡 뛰어 오르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다. 마치 자음과 모음들이 편을 나누어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판에서 손길을 거두고 시계를 보았다. 오후 두 시를 가리킨 벽시계 밑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장을 보았다.
단장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김 사장을 향해 대뜸 물었다.
“근데 상갑이 그 넘 왜 그러죠? 오다가 요 앞 길가에서 마주쳤는데, 인사도 않고 씩씩거리며 그냥 가네요? 혹시 여기서 무슨 일 있었어요?”
“특별히 무슨 일이랄 거 까진 아니고.... 상갑이 그 넘이 김 교수한테 디지털 카메라 하나 사달라고 수작 부리다가 조금 당했어.”
김 사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요?”
“여기 있는 김 교수 말이야. 이제 보니 앞발 아니, 손아귀 힘이 여간 아니더라고.... 상갑이 그넘도 김 교수한테 멱살잡이 한 번 당하니까 옴짝 달싹 못하더라고.”
“음, 그런 일이 있었었군요. 그래서 그 넘이 단단히 삐친 거였군요.”
단장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김 교수의 옹졸한 행동마저 긍정 할 수 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단장은 그런 떨떠름한 시선으로 김 교수를 힐끗 바라 본 후, 윗도리를 벗어 걸었다.
“어이, 김 단장!”
“말씀하세요. 김 사장님.”
“근데, 저기 있는 젊은 친구는 누구야? 여기 있을 사람이라면 우리들한테도 소개를 좀 시켜줘야지.”
김 사장이 턱짓으로 까닥 나를 가리켰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 거, 상갑이 그 놈의 자식 생각하다가 깜박 했습니다. 진명아 어서 인사드려라.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이곳에서 내어 놓으라 하는 유지님들이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만 조금 숙여 보였다.
“제 사촌 동생인데 당분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사이 김 교수와 박 선생의 점심내기 화투도 끝난 모양이었다. 둘은 뭐라 뭐라 하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느낌으로 보아 박 선생이 이긴 것 같았다.
“공동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게 여간 영리해 보이지 않는데, 뭐하는 친구지?“
단장은 마치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을 했다.
“이 친구 이래 뵈도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연극 감독입니다. 작년에 문제작으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란 작품도 이 친구가 연출한 겁니다. 근데 제 넘의 자식도 예술가 아니랄까봐서 융통성 하나 없이 꽉 막힌 똥고집이 문제지만.... 글쎄 제작자가 여배우 배꼽까지만 좀 벗기랬다고 때려치웠다지 뭡니까.”
“젊은 사람이 그만한 고집은 있어야지. 예술 하는 사람이 줏대 없이 시속(時俗)만 따라 다니면 어디 쓰나.”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번 참에 이 친구를 통해 우리 지방 문화를 조금 업그레이드 시켜 볼 요량으로 제가 불러 내렸습니다. 이번 춘계공연 때, 올릴 작품을 책임 질 겁니다.”
그 말에 김 사장이 나의 아래위를 다시 한 번 더 훑어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눈가에 총기가 서려 있어 일을 당차게 아주 잘 처리 할 것 같은데... 언제 술자리 한번 마련해봐. 우리도 서울서 돌아가는 얘기를 좀 들어놔야지.”
해가 지고 유지들이 다 돌아간 후, 단장과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저녁대신 소주를 마셨다. 음복술도 여자가 따라주어야 맛이 있다며 자꾸만 술잔을 채워주는 삽상한 주모 때문에 평소의 나는 주량보다 배는 더 마셨다.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그렇게 취하지가 않았다. 얼굴 위로 뜨거운 기운만 조금 솟아오를 뿐 정신은 오히려 명징해 지는 것 같았다.
“형님. 아까 사무실에 왔었던 그 사람은 누구죠?”
나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 그 친구. 이름은 천 상갑이고, 사진작가지.”
“사진작가요?”
“몰라. 자칭 사진작가라면서 광대 같은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놈이야.‘
“이 고장 사람은 아니죠? 그 사람 말투에 가끔씩 섞이는 억양으로 보아 이곳 토박이는 아닌 것 같던 대요?”
“그래, 이 곳 토박이는 아냐. 한 십여 년 전부터 슬그머니 이곳에 나타났을 걸. 돈푼께나 있는 유지들이 잘 다니는 사무실이나, 다방 같은 델 돌아다니면서 구걸 아닌 구걸을 하기도 하고, 또 목에 걸린 사진기 너도 봤지? 그 걸로 돈 푼께나 있는 유지들은 무작정 찍어 놓고 기신기신 몇 푼씩 뜯어내어 먹고 사는 놈이야.”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곳 유지들이 겉으로는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시달리는 걸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던 대요?”
“그런 면도 있지. 사실 동생 말대로 상갑이가 이곳 유지들에게 꼭 피해만 주는 건 아냐. 이율배반이랄까? 아이러니랄까? 이곳의 문인들은 상갑이에게 얼마만큼의 시달림을 받아야 제대로 행세하는 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어찌 보면 상갑이가 이곳 유지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비공인 감별사인지도 몰라.”
그기까지 말한 단장이 갑자기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그 안경알을 닦으며 금간 유리창 너머 먼 데를 바라보았다.
“사실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간이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그때, 광주지방 난리 때, 특수부대요원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한 후부터 정신이 저렇게 망가져 버렸다나봐.”
순간, 온몸이 감전 된 듯 찌르르해 왔다. 상갑 씨란 사람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줄은 이미 알았지만, 5. 18에 관계 되었다고는 미처 짐작 하지 못했다. 나는 80년 광주의 5.18 때문에 정신이 망가져 버렸다는 말에 금세 취기가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죄책감 때문에 그렇겠지. 공수부대 요원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것은, 타의든, 명령이든, 그것은 분명한 죄악이고...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가 저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자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단장의 말을 들으면서 그때 광주의 잔인한 전쟁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또 한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삼촌이었다. 외삼촌도 광주의 전쟁에 의해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이었다.
나는 단장과 해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외삼촌을 생각하다 상갑 씨를 생각하다 했다. 그런데 상갑 씨를 생각할 땐, 왠지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닮아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나 누구를 닮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며칠 뒤, 대본을 다시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상갑 씨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 누군가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대본 속에서 등장하는 망나니1이었다.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둘의 전력이 마치 ‘도플갱어’처럼 빼닮아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2
대본 속의 망나니를 닮았기 때문에 상갑 씨를 배우로 발탁 한 건 아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엔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상갑 씨와의 세 번째 만남이 없었다면, 그를 망나니로 발탁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 있은 뒤로는 자꾸 자석에 끌리 듯 마음이 그에게로 휘어져갔다. 연극에 문외한인 그를 망나니로 발탁한다는 것은 분명히 이성적인 논리가 아니었음에도 그러고 싶었다.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마음은 거부하면서도 남자를 몸을 받아들이고, 희열하는 사십대 여인의 ‘업‘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상갑 씨를 세 번째 만났던 그날도 그리 바쁠 게 없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언젠가 외삼촌이 부쳐준 차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외삼촌이 산야를 직접 돌아다니며 직접 채취했다는 차 맛은 조금 이상했다. 조금 씁쓰름한 맛이랄까. 아니, 무슨 야생초들을 함부로 짓이겨 놓은 듯이 씁쓰름하긴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뭐랄까. 그 맛은 마치 장인들이 만든 명품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같은 것이 씁쓰름함과 함께 섞여 있는 그런 맛이었다. 어째든 언어로는 쉽게 표현 될 수 없는 그런 격조 있는 맛을 한 모금 음미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불쑥 단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쁜 일들은 거의 다 매조지 해 논 상태라 그리 부산스러울 것도 없는데, 당장은 들어오자마자 수선을 떨었다. 알고 봤더니 김 교수네 큰집 질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인데 깜빡했다는 거였다. 나도 이쪽 형편을 살필 겸 같이 따라나서는 게 좋겠다고 했다. 늦었다며 하도 서두르라고 채근을 하는 바람에 나는 미처 축의금 봉투도 챙기지 못한 채 단장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우리가 예식장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영광스러운 이 결혼식의 주례를 해주실 분은, 해박한 지식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름 없는 이웃들의 삶을 놓치지 않는 따스한 가슴을 간직하신 시인이십니다......”
흰머리가 성성한 주례가 입석하고, 뒤이어 신랑신부가 입장하자, 아까부터 객석 통로에서 사진을 찍어대던 한 사내가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차림새가 이상해서 그렇지 가만히 보니 상갑 씨였다.
상갑 씨는 단상 앞에선 신랑신부의 다리아래 붙어 서서 위를 향해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쭈그려 않아서 그들을 찍었다. 그렇게 몇 장을 찍더니, 다시 자세를 교정하여 반 쯤 드러누워 찍었다. 또 그렇게 몇 방을 찍던 상갑 씨가 이번에는 완전히 드러누웠다. 다리와 허리를 바닥에 붙이고 모로 누운 자새로 플래시를 펑펑 눌러댔다. 가랑이가 착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상갑 씨의 자세는 마치, 여배우가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서 요염한 몸매를 과시하듯 보였다. ‘킥' 하는 웃음이 절로 나오려는 찰라였다.
“저 넘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저 넘 자신에게는 일종의 의무 같은 거야.”
“예?”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 단장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만약 저 넘이 저런 식으로 한 번씩 못난 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의 구걸 성 이미지는 곧 상실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우리들에게 몇 푼 씩 우려먹을 수 있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지.”
단장은 비밀을 캐낸 사람처럼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런 게 다 ‘쇼’란 말 이예요?
“근데 왜 하필이면 김 교수의 결혼식장을 찾아와서 그러는지 알아?”
“왜죠?”
“그건 자네도 알다시피 평소 고집이 세고 인정머리 하나 없는 김 사장의 콧대를 꺾어 보기 위함에서야. 저렇게 일부러 홀태바지를 입고 연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 김 교수가 아무리 섦 삶은 말 대가리처럼 뻣뻣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면 그도 별 수 없이 더 이상 자신을 무시 하지 못한 다는 뜻이지.”
어쨌든.
하객들은 상갑 씨의 행동에 한 두 사람씩 킥킥 거리며 서로 따라 웃었다. 그러다 그 웃음소리가 여러 명의 웃음소리에 섞이고 자신의 웃음소리가 특별날 게 없는 것이 되자 마음 놓고 웃기 시작했다. 마침내 온 식장은 떠나갈듯 한 웃음바다로 변해갔다. 김 교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광경에 난감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 대었다.
“흠, 흐흠. 저 넘, 끌어 내!”
김 교수의 말에 신랑 친구들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낮은 포복 자세로 누워 있는 상갑 씨를 일으켜서 들쳐 업었다. 그러나 상갑 씨는 그들에게 들쳐 업혀 가면서도 엉하는 어린애처럼 등을 뒤로 제쳤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하객들을 향해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그런 상갑 씨를 지켜보던 하객들은 또다시 박장대소하고, 식장은 다시 한 번 더 난장판이 되었다.
상갑 씨의 괴상한 행동 때문에 식이 흐지부지 되자, 예식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애저녁에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허, 거참, 그 넘은 어쩌자고 신성한 그런 자리에 나타나선 행사를 망치는 거야?”
김 사장이 매우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우리들이 너무 물러서 그 넘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라고”
박 선생이 말을 받아주자 김 사장이 다시 말했다.
“하여튼 그 친구도 참, 재미로 봐 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김 시인과 박 시인 외에도 합석한 많은 문인들이 상갑 씨를 나무랐다. 그러나 말들은 다들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오히려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는 모습들 이었다.
“어, 저 친구가 여긴 어떻게 알고 나타났지?”
누군가가 내 뱉은 말꼬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상갑 씨가 식당 문을 밀어 제치며 막 들어오고 있었다. 상갑 씨는 식당을 한 바퀴 휘둘러보더니, 재빠르게 방으로 올라와 주례를 맡았던 노시인의 맞은 편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리고 그만이 할 수 있는 넉살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이고, 선생님. 언제나 몽매에도 그리던 선생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요. 제가 얼마나 선생님의 시를 좋아 하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겁니다요. 선생님은 진실로 시의 스승이십니다요. 저는 말이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선생님의 시를 외라면 몽땅 다 욀 수 있습니다요.”
하며 상갑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신파조로 시를 큰소리로 낭송 했다. 그런데 상갑 씨가 노시인의 시라며 낭송한 것은 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소양강 처녀’ 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이었다. 그에 노시인은 심기가 불편한 듯 몇 번 헛기침을 해 댔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김 교수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눈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그런 다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야! 상갑이 이넘의 자식! 네놈이 사람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어디서 하던 짓거릴 하는 거야! 그래, 네넘이 여기 또 무슨 국물이나 없는지 기웃거리는 모양인데, 옜다 이넘아, 여기 있다. 다 처어묵어라!”
머리끝까지 화가 난 김 교수가 지폐를 꺼내어 상갑 씨의 얼굴 위에 내어 던졌다. 지폐는 상갑 씨의 얼굴에 부딪혀 찬바람 맞은 늦가을 낙엽처럼 후두둑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야, 이넘아! 이 돈을 손으로 줍지 말고 네 주우둥이로 물어 올려봐! 그럼 네넘에게 다 줄 테니까! 네넘은 사람이 아니라 캐새끼나 똑 같은 넘이니까 먹이를 챙기려면 손이 아니라 주우둥이로 챙겨야지. 안 그래?”
지켜보고 있던 노시인의 미간이 점점 찌그러졌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우리나라의 지성들을 가르친다는 대학 교수가.... 나, 원, 참, 이 사람 많이 취했구먼. 무슨 이런 봉변이 다 있나. 여보게들 나 이만 먼저 가네.”
노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르는 문인 몇 명도 따라 일어났다. 노시인 일행이 나가고 나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김 교수는 마구잡이로 소리 질러 댔다.
“야, 이 자아식아! 빨리 주우둥이로 돈을 물어 올려보란 말이야! 이 게 바로 네 넘이 제일 좋아하는 돈 아니냔 말이야! 어서 물어 올려봐 이넘아! 네 넘 따위에게도 체면이란 게 있어?”
김 교수의 모진 다그침에 상갑 씨의 넉살은 이미 살아진지 오래고, 얼굴은 납덩이처럼 차갑게 굳어져 갔다. 상갑 씨의 시선은 자신이 따라 논 술잔에 꼼짝없이 붓 박혀 있었다.
“이, 캐같은 새키!”
김 교수가 맥주 컵을 집어 상갑 씨를 향해 날렸다. 맥주 컵은 상갑 씨의 이마와 면상 쪽을 강타한 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동시에 상갑 씨도 얼굴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이 기생충 같은 자식이 감히.... 이런 자식은 불구덩이에 확 처넣어 버려야해!”
맥주병을 날리고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지 김 교수는 쓰러진 상갑 씨를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꽤 오래 동안 일방적으로 그랬다. 모두들 지금쯤은 상갑 씨가 초주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기운이 생겼는지 상갑 씨가 김 교수를 밀어 제치고 벌떡 일어났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불씨라도 떨어지면 금방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그래, 말 잘했어. 어디, 네 넘이 날 불구덩이에 처넣어 봐!”
상갑 씨가 갑자기 한창 고기가 타고 있는 불판위에 자신의 손을 갖다 눌렀다. ‘치이익‘ 하며 살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워 올랐다. 상갑 씨는 군데군데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손을 김 교수 앞으로 들이 밀었다.
“그래, 이 자아식아! 어디 이 걸, 네넘이 처어먹어 봐! 잘난 네넘이 이 개고기를 처어 먹어보란 말이야!”
갑작스런 반전이었다. 김 교수는 방금 전의 시퍼런 서슬은 간데없고,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자아식아! 어서 이 개고기를 처어먹어 보란 말이야!”
얼마나 더 소리를 질렀을까. 상갑 씨의 모습이 꼭 분노의 핏기가 다 빠져서 흐물흐물해진 고기 덩이 같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치던 상갑 씨가 그만 제풀에 픽 쓰러져 내렸다. 쓰러진 모습이 꼭 불타다 남은 자리같이 쓸쓸하게 보였다.
“젊은 사람이 장승처럼 멍하니 서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그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애꿎은 나를 향해 나무랐다. 나는 할 수 없어서 상갑 씨를 등에 업었다. 상갑 씨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마침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 상갑 씨를 눕혀놓고 의사들이 조치를 취하는 동안 밖의 복도로 나왔다. 의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행이도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간호사가 소독 솜을 문지를 때마다 꿈틀 하는 상갑 씨의 어깨가 왠지 손과 이마에 생긴 상처보다 마음의 생채기가 더 욱신거린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휴게실로 나오자마자 커피 자판기 앞으로 다가가서 동전을 넣었다. 그런데 아뿔싸! 커피 자판기에는 ‘고장. 동전 넣지 마셔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동안 경황이 없었던 나는 미처 자판기에 붙은 쪽지를 보지 못하고 동전부터 넣은 거였다. 이럴 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는데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왕 동전을 넣은 김에 버튼을 눌러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혹시나 했던 게 역시 나가 되었다. 자판기가 ‘치리릭 치리릭’ 하는 기계음을 내더니 덜컥하고 잔을 내려 커피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공짜로 집어 삼킨 것도 미안 했는지 그 동안 모아졌던 동전들을 ‘추르르’ 하고 한주먹이나 토해 내었다.
나는 ‘고장 동전 넣지 마셔요’란 쪽지를 떼어내고 창가로 다가갔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창가에는 까맣게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호오‘ 하고 유리위에 입김을 내어 뿜었다. 뽀얀 입김이 손바닥만 하게 서리면서 어둠이 차단되었다. 그 위에 손가락으로 ‘고장’이라는 글자를 섰다. 그러자 ‘고장’이라는 글자가 뽀얀 입김을 가르고 시커먼 벌레처럼 꿈틀 하고 살아났다. 그리고 그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던 두 번째 만남이 ‘고장’ 이라는 단어와 함께 또렷하게 떠올랐다.
3
“머리를 박박 깎거나, 콧수염을 기른 놈들은 십중팔구 다 ‘고장’난 놈들이지.”
상갑 씨가 자신을 ‘고장’ 난 사람이라고 말한 그날도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그날, 상갑 씨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지, 객지 밥 먹다가 석 삼년 만에 제집을 찾아 드는 한량처럼 발걸음이 거드럭거렸다.
“어서 오세요. 천 선생님.”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아직 점심 전이면 나랑 같이 나가지.“
나는 들어오자마자 점심부터 먹자는 상갑 씨를 빤히 보았다. 커서 명태가 되지 못할 노가리로 아직 초면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점심을 얻어먹으려 그런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작금의 정치인들처럼 본말을 왜곡시키고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허수아비 논법’을 써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아직 그러기엔 이른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헛걸음을 하셨네요. 휴일이라서 문인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으셨는데, 수금을 못해서 어떡하죠?”
“오늘은 수금하러 나온 게 아냐. 독수공방 하고 있을 샌님이 생각나서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왔다고.”
“이거, 어떡하죠. 전 아침을 느지막하게 먹어서 별로 생각이 없는데요. 그리고 아직은 천 선생께 점심공양 대접 할 여력도 없고요.”
“샌님이 보기보다 좀생이시네 그래. 그러지 말구 나랑 점심 공양이나 함께 하러 가자고. 어제는 천연기념물들한테 수금을 많이 해서 지금은 부자나 진배없다고. 자 보라고.“
상갑 씨가 주머니에서 꽤 많은 지폐 뭉치를 꺼내어서 흔들며 보여주었다.
“그 게 웬 돈 이예요?”
나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천연기념물들한테 갔다고 했잖아.”
나는 상갑 씨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리고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써야 하는 세상이란 걸,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이름도 생소한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한 사람들 말이야.”
나는 그제야 상갑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천 선생께서 그들을 찾아가면 그녀들이 천 선생한테 용체 써시라고 돈을 막 주시나요?”
“그건 아니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조금 잔머리를 굴려서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서 기분 좋도록 해줘야지.
“어떻게요?”
“그러니까 그들은 기껏해야 무슨 문예 강좌나 아마추어 백일장에 입상해서 문인이란 호칭을 갖게 된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하여 듣고 싶어 하고, 그것을 인정받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다 이거지. 행자님 머리 정도면 더 이상 뒷말은 안 해도 알아듣겠지? 조금 간지럽더라도 살짝 노가리를 풀어서 그들의 허한 가슴을 채워 주고 대가로 몇 푼 받아내는 거야. 배우고 싶으면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 따라다녀. 보기보단 수입이 꽤 짭짤다구”
나는 가소로워 ‘쿡’ 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웃음을 밖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치켜 주어 보기로 하였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 기발한 생각은 아마 천 선생 아니시면 불가능 할 거예요.”
“얼빵한 놈이 당수 팔 단이란 말도 있잖아. 행자님도 나 만만히 보지 마. 나 노가리 2급기능사 자격증도 있어. 그리고 난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의 빈틈과 급소를 보는 눈썰미도 있고....”
“어찌, 제가 천 선생을 만만히 보겠어요. 전 벌써부터 천 선생이 고수이신 걸 알고 있었어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던데, 그럼 샌님도 고수신가? 그 말은 고수끼리 같이 점심공양 하러 가겠다는 말씀인가?”
“그러죠. 오늘 점심공양은 천 선생한테 얻어먹어 보도록 하죠.”
나는 상갑 씨를 따라 시장 쪽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일명 먹자골목이 나왔다. 그런데 상갑 씨는 식당들이 나란히 줄지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대도 자꾸만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천 선생님. 자꾸 어디까지 가실 거예요? 근처 아무대서나 간단히 한 그릇 먹고 말지요.”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이제 다 와 간다고. 요 앞 골목에 가면 보신탕을 아주 잘하는 집이 있어. 행자님도 먹어보면 알겠지만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고. 어서 가자고.“
상갑 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한참이나 더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간 후에야 어느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
“바로 저 집이야. 보기에는 허술해도 음식 맛 하나는 기가 막혀. 주인 여자를 닮아서 음식이 맛있는지도 몰라. 나 한 때, 이집 주인 여자랑 큰 발명도 할 번한 사이였어.”
“발명이라뇨?”
“아이 낳는 것도 발명이잖아. 세상에 남자 여자가 정자 난자를 섞어서 아이 만드는 발명보다 더 큰 발명이 어디 있겠어.”
나는 ‘픽’ 하는 웃음이 나왔다. 평소 상갑 씨가 객쩍은 소리를 잘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 때, 이집 주인 여자랑 그렇고 그런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표현 할 줄은 몰랐다.
“그럼 천 선생님한테 무지 잘해 주시겠네요?”
“아냐. 오히려 정 반대야. 제발 좀 오지 말래.”
“왜요?
“거 왜, 영감 장에는 못가도 할망구 버르장머리는 고치라는 말 있잖아.”
나는 이번에도 상갑 씨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눈을 뜨악하게 뜨고 바라보기만 했다.
“난 그 여잘 마누라다 생각하며 사업 자금 좀 챙겨 썼거든. 근데 그 여자가 돈을 어디에 썼느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그래서 속담처럼 버릇만 좀 고친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게 그만 잘 못 되서 큰 낭패를 본 거야. 알고 봤더니 난 그 여자에게 있어서 그저 채무자일 뿐이었어.”
“그 돈으로 무슨 사업을 하셨는데요?”
“거기까진 물어 보지 마. 좀 더 겪어보면 내가 말 안 해도 샌님이 저절로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샌님. 여자완 헤어져도 그저 덤덤하던데. 여자가 만든 음식 맛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거 있지. 얼굴 잘생긴 여자는 소박을 맞아도 음식 솜씨 좋은 여잔 소박 안 맞는다는 그 말은 사실 인가봐. 여태까지 격언이나 속담들은 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만은 인정해야겠어. 대체 이게 무슨 조환지 원, 아무튼 어서 들어 가지구.”
“그런 사이시면 좀 껄끄러울 텐데요? 들어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이젠 괜찮아. 내가 오지 말라고 한다고 어디 안 갈 사람인가? 난 과거는 생각 안 해. 그녀와 난 한 때 모닥불을 같이 쪼였던 사이였을 뿐이야.”
식당 안은 상갑 씨의 말대로 음식 맛이 기가 막혀서인지, 점심때가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아주 많았다. 상갑 씨는 겨우 자리가 빠진 구석진 테이블을 찾아 나를 앉히고 몸에 좋다는 보신탕 고기를 시켰다. 고기가 나오자 상갑 씨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기를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입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를 집어넣었다.
“이 봐, 샌님. 이게 이래 뵈도 남자 몸에는 아주 좋은 거라구. 이 거 한 달만 달아서 먹으면 할머니도 여자로 보인다는 말이 있어. 그렇게 앉아 있지만 말구 어서 먹어보라고.”
상갑 씨는 계속해서 입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나는 그런 상갑 씨의 모습을 저어기 바라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가증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가시 돋은 말이 나도 모르는 새 불쑥 입에서 튀어 나았다.
“이봐요 천 선생. 아무리 낯이 두꺼워도 그렇지 부끄러운 줄 좀 아세요. 나잇살이나 먹은 양반이 만나는 사람마다 기신기신 푼돈을 뜯어내기 않나, 그게 대체 무슨 짓이냔 말예요!”
그러나 상갑 씨는 나의 말에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무시하고 입 속에 담긴 고기를 씹어 삼키는 데에 만 집중 했다. 나는 상갑 씨의 그런 모습에서 한층 더 가증스러움이 느껴졌다.
“천 선생에겐 이런 일들이 도무지 부끄럽지가 않다는 말에요?”
그제야 억지로 입속의 고기를 삼킨 상갑 씨가 정색을 했다.
“뭐라고?, 부끄럽지 않느냐고? 내가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 이것 봐! 세상엔 나보다 훨씬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인간들도 많다고. 나는 내 나름대로 노동을 해서 벌어먹는 거야. 내 노동이 뭐냐고? 내 노동으로 말하자면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놈 못남 놈들에게 난 더 못난 꼴을 보여주면서 그 놈들이 제 멋에 사는 데 광을 내주는 게 내 노동이야. 그래, 내가 그 대가로 그놈들에게 몇 푼씩 얻어 내는 게 그렇게도 부끄러운 짓이야?”
상갑 씨는 단숨에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나는 둔탁한 둔기로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 맟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상갑이란 사람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 새끼란 말인가. 원숭이 새끼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거꾸로 구경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나도 상갑 씨를 따라서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샌님은 내가 왜 이렇게 주접을 떨고 다니는지 모르지?
서먹서먹한 시간이 얼마만큼이나 지났을까.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시던 상갑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분이 어느 정도는 풀린 듯 보였다.
“샌님은 나처럼 머리를 박박 밀거나 콧수염을 길러 본적 있어?”
“머리를 밀거나 콧수염을 길러 봤느냐고요?”
“민머릴 하거나 콧수염 기른 놈들은 다 ‘고장’ 난 놈들이야. 말 못할 비밀들에 의해 축으로 몰린 놈들이지. 민머리나 콧수염이 그놈들에겐 비밀을 감추게 하는 일종의 ‘루어’다 이 말이야”
“루어’라고요?“
“가짜 미끼 말이야. 그놈들이 머리를 깎거나, 떡하고 콧수염을 붙이고 있으면, 인간들은 다 그들의 숨겨진 비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드러난 민머리나 콧수염에만 관심을 가잔다는 얘기야. 그놈들은 그런 인간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거란 말이야. 자신의 ‘고장’을 숨기고 있다는 거지.”
상갑 씨가 사족을 달아주자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듣고 보니 상갑 씨의 논리가 꼭 궤변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럼 천 선생이 민머릴 하고 콧수염을 길러서 다니며 하는 괴상한 행동들도 다 무언가 말 못 할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러시는 ‘루어’ 같은 거란 말에요? 고장을 감추기 위해서요?”
상갑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가는 걸로 보아 내가 그만 멋모르고 급소를 찌른 것 같았다. 괜한 말을 했나 하는 미안한 맘이 들었다. 전자에 막무가내로 가시 돋은 말도 한 게 있고 해서 위로라도 몇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서없이 몇 마디 했는데, 해놓고 보니, 이건 도대체 위로가 아니라 아부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민머리나 콧수염의 차원에서 한참 못 미치는 완전히 형편없는 궤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비밀을 감추는 건 세인들이 그들의 차원으로 올라오지 않고, 세인들이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상투적인 세인들의 눈에는 그들이 오히려 고장 난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고요. 사실 우리 시대에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다 어딘가 한 부분은 고장 난 사람들이잖아요. 콧수염을 기른 아인수타인만 해도....”
나의 비약된 비유 때문인지 심각했던 상갑 씨가 ‘쿡' 하고 웃었다. 그 웃음까지가 그날 상갑 씨와 만났던 기억의 전부였다.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고 지워지고 있는 <고장> 이라는 글자들 위에 다시 입김을 내어 뿜었다. <고장> 이라는 글자가 뽀얀 입김에 다시 지워졌다. 그 위에 이번에는 <망나니1=천 상갑> 이라고 썼다.
나는 <망나니=천 상갑> 이란 글자들을 한참이나 더 바라보다 다시 응급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상갑 씨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아픔들은 고스란히 손과 이마에 휘감겨진 하얀 붕대 속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있었다. 잠시 간호사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데 상갑 씨가 눈을 떴다.
“좀 괜찮아요?”
내가 묻자 상갑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느 때처럼 말했다.
“응. 이제 괜찮아. 잠시 깜박 잠이 들었나봐. 샌님 어서 가지.”
상갑 씨가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지를 하지 않는 간호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퇴원하시고 통근 치료하셔도 괜찮으실 거예요.”
다행이었다.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상갑 씨를 부축해서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혼자 묵고 있는 여관에 혼자 두기보단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상갑 씨를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아파트로 돌아와 이불을 펴서 자리에 눕히자, 약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자부름에 지친 탓인지, 상갑 씨는 피곤한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의 잠은 꼭 하얀 수의를 입은 천사처럼 잠시 죽어 봤으면 하는 듯이 보였다.
4
퇴근을 하려고 극장을 나서는데 단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안하던 짓인데 이상했다. 역시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단장은 자꾸만 이상한 말들을 했다. 평소에는 내가 하는 일에 별 간섭이 없었던 단장이 배역에 대해 참견까지 하는 거였다.
“아까 조연출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망나니1 역을 천 상갑이가 맡았다고 하든데, 설마 그 천 상갑이가 우리 천 상갑인 아니겠지?
“맞습니다. 단장형님. 우리 상갑 씹니다”
나는 선선하게 대답해 주었다. 언젠가는 그런 물음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자 단장은 ‘뭐 요런 녀석이 있어’ 하는 가소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배역을 정하는 건 감독의 고유 권한임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겠는데, 상갑이 그 자는 연극 연자도 모르는 사람이잖아? 그건 감독 동생도 잘 알잖아? 그런 자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괜히 그 자 때문에 이번 연극을 망치는 건 아냐? 설마 고만 고만한 작자들을 쟤다 끌어 모아 깍두기 담그자는 건 아니겠지?”
단장은 내가 혹시 치기에 빠져서 그러는 건 아닌지 저어기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안심 하세요. 단장형님. 상갑 씨야 말로 어떤 연기자들보다도 더 잘 해낼 겁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번 연극은 그 사람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망나니1 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나는 세세히 설명을 하기 싫어 자신감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단장은 그런 나를 넋 나간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리 애써서 말해도 단장과 같은 부류는, 특히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자신의 명예에 치장하려는 부류인 단장 같은 사람은 쉽게 납득 하지 못한다는 걸. 때문에 나는 우선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해 설명보단 목소리에 힘을 실어 단호하게 말했던 거였다.
“상갑이가 감독 동생한테 배우 시켜 달라고 기신기신 따라 다니며 부탁이라도 하던가?”
“아직요.”
사실 그것도 문제였다. 나는 망나니1 역을 상갑 씨로 정해 놓기는 했지만, 아직 상갑 씨의 승낙을 받아 낸 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단장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번에는 마치 높은 곳에서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여 답답하다는 듯이, 오히려 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낼 곧 부탁을 해 올 겁니다. 상갑 씨가 부탁해 올 수밖에 없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사실 내가 취한 조치란, 출근을 하면서 자고 있는 상갑 씨의 머리맡에 대본을 둔 것이 다였다. 잠이 깨면 별로 할 일이 없는 상갑 씨는 심심해서라도 그것을 분명 읽어 볼 것 같았다. 그러면 대본 속의 망나니가 자신과 똑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상갑 씨는 분명 나에게 배우를 시켜달라고 부탁을 해올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황당한 논리였고, 밑도 끝도 없어 보였지만 왠지 꼭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임시방편으로 목소리의 톤을 한 옥타브 높여보았는데, 단장은 당연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차는 나의 아파트 앞에 다다랐다.
“형님, 예술에는 감이란 것이 있어요. 그게 때론 논리보다 더 정확 하고요. 안심하세요. 제가 함부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나는 단장을 겨우 달래서 보내고 서둘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역시나, 내가 짐작했던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갑 씨는 내가 머리맡에 두었던 대본을 읽고 있었다. 대본에 푹 빠져서 내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내가 ‘험험’ 하고 잔기침으로 인기척을 몇 번 해대자, 그제야 대본에서 눈길을 거두고 시선을 돌렸다.
“뭘 하고 계셨어요? 사람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짐짓 나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암 것도 아냐. 그냥 심심해서 머리맡에 대본이 있기에 읽어보고 있던 중이었어. 이 대본이 이번 공연 때 쓸 작품이야?”
“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품이던데....”
나는 상갑 씨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범인을 심문하는 경찰관 같이. 그러자 상갑 씨가 황급히 손 사례를 치며 말문을 열었다.
“샌님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 아냐. 정말 내 생각에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거야.”
“그렇게도 의미 있게 생각 하신다면 천 선생도 같이 참여해 보시지 그러세요.”
나는 상갑 씨가 정말 입질을 하고 있는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져 보았다. 그런데 그 말이 상갑 씨에겐 화살이 되어 정곡에 꽂혔는지 모처럼 눈가에서 선선한 총기가 살아났다. 보아하니 입질을 한지는 이미 오래 전이고 지금은 미끼를 덥석 물어 빼도 박도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게 분명해 보였다.
“샌님이 방금 한 말 정말이야? 내가 원한다면 배우라도 시켜 줄 참이야?”
“제가 언제 천 선생한테 허튼소리 하는 거 봤어요? 어디 맘에 드는 배역이라도 있던가요?”
상갑 씨가 대본을 내밀며 접어놓은 부분을 펼쳐 보였다. 예상대로 맨 마지막 장이었다.
“행자님 여기 좀 봐! 마지막 파트에 등장하는 이 망나니1을 좀 봐!”
“망나니1 역이 맘에 드세요?”
“모르겠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맘에 들어.”
“그럼 해 보세요.”
“연극은 아직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천 선생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하실 거예요. 이제까지 천 선생이 살아오면서 한 행동들도 다 연극이나 마찬 가지였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긴 하지만 이건 그래도 진짜 연극인데....”
“진짜 연극 가짜 연극이 어디 있어요. 연극은 다 연극이지요.”
“사실 내가 연극에는 문외한 이긴 해도 지금껏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아 와서 그런지 자꾸만 이 망나니1 역만큼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 허락만 해준다면 정말 해보고 싶어.”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냈다. 먼저 상갑 씨에게 불을 붙여주고 나도 한 대 피워 물었다.
“이 말을 믿어 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전 천 선생을 첨 본 순간부터 이 망나니1 역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었다. 나는 상갑 씨가 5.18로 인해 정신이 망가져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병원에 데려간 후, 꼭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래야만 공권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젊음을 송두리째 버려야만 했던 상갑 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았다. 넘어져 빈 허공을 붙잡고 일어서려는 상갑 씨에게 넘어진 자리에서 손을 짚고 일어서야한다는 법을 말하고 싶었다.
“그럼요. 혹자들은 이 배역이 등장 횟수가 그리 많지 않아 비중이 미미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매우 개성 있고 기이한 역이라서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을 놓고 볼 땐 비중이 아주 큰 역이에요.”
“그런 것 같았어.”
“그러니까 누가 보더라도 망나니1 역에는 천 선생보다 더 나은 적임자는 없다는 말들이 나오도록 열심히 해보실거죠?.”
“그래야지”
“허허허, 그러고 보니 죄인의 목을 뎅강 자르는 무시무시한 망나니1 역엔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또, 전력을 보더라도 천 선생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 봐도 돼?”
상갑 씨가 비장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물어 보세요”
“망나니는 왜 망나니가 되었지? 어쩌다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릿광대로 만들어 자학을 하는 거지? 거기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야?”
상갑 씨의 눈에서 씨앗처럼 까만 게 언뜻 보였다. 상갑 씨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망나니1의 단면만 보고도 그의 전력이 자신과 빼닮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이었다. 그가 지금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망나니1도 애초부터 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도 한때, 조병갑의 수하에서 포졸 노릇을 하던 자였다. 상갑 씨가 군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도 직속상관인 집사의 명령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까지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도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하는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부터 집사가 백성을 괴롭히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면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명령을 하는 집사에게 잘못되었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엔 그 용기 때문에 하극상 이라는 죄명을 뒤 집어 쓰고 포졸자리 까지도 내놓아야 했던 자였다. 그런 일을 당하고 마음이 힘들어지자 차라리 모든 걸 다 잊어버리려고 광인처럼 살았던 거였다. 그러다가 그때 마침 동학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주저 없이 농민군에 가담하였다. 조 병갑의 수하들을 잡자 그는 그들을 처형하는 망나니가 스스로 된 자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건 단장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번 작품은 동학 농민군들이 봉기하여 고부군수 조 병갑의 수하들을 붙잡아 치죄하고 처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진짜 주제는 5.18 광주 민주화 투쟁에 관한 거였다. 이번 작품은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건 트릭에 불과하고 사실은 5.18의 알레고리였다. 이 대본을 쓴 작가도 지난 날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목도했던 사람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목도한 만행들을 글로서 아니, 연극으로 천인공로 하자고 했었다. 특히 그는 시민군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진압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도 같은 피해자라고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형장에서 열연하는 망나니 중에서 망나니1을 주요 망나니로 등장 시켰던 거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검열 때문에 그런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사실상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다른 좋은 방편이 없을까, 하고 여러모로 고민하다가 동학농민 봉기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대는 다르지만, 여러모로 연관성이 많아다는 것을 깨닫고 동학 혁명을 앞세워 5.18을 고발 하고자 하였던 거였다. 그런 연유 때문에 내가 더욱 상갑 씨를 망나니1역에 넣으려고 하는 거였다.
“상갑 씨가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에요.”
“역시 그랬었군.”
상갑 씨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천정을 향해 연기를 내어 뿜었다. 연거푸 연기를 내어 뿜는 그의 목젖이 파르르 떨었다.
“자의든, 타의든, 명령이든, 어떻든,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같은 나라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죄악이지! 그 죄악을 깨닫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지. 안 그러면 매일 밤 들리는 아비규환의 환청 소리에 질려서 질식해 버리고 말거야.”
나는 순간, 그가 왜 이제껏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행동해야만 했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마따나 군인들에게 짓밟힌 시민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해를 한 상갑 씨와 같은 사람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상갑 씨가 가짜 미끼를 단 루어 낚시꾼처럼, 수염과 민머리로 광인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또 지난겨울처럼 그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그때도 정신 병원에 있었어요.”
상갑 씨가 정신 병력의 소유자란 걸 안 건, 배역을 정하려고 상갑 씨의 전력을 조사하다였다. 상갑 씨를 늘 곁에서 지켜보았다는 지인이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겨울에도 상갑 씨는 그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상갑 씨는 자신이 묶고 있던 여관에서 불현듯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듯 보였다고 했다. 지금 나는 뭔가? 난 왜 이렇게 남들의 등이나 치며 기생충같이 사는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연탄불처럼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하는 따위의. 어쨌든 상갑 씨는 그런 생각을 한 후에는 자꾸만 이상한 짓을 했다고 했다. 이를테면 밖에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과자를 사서까지 달래주었고, 또 때 묻은 아이가 있으면 그것이 마치 그로 인해 그렇게 된 것 인양 얼른 안고 들어와 목욕을 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늙은 노인을 만나도 그랬다. 걸을 수 있다고 극구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인들을 무조건 업어서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며칠 지나면 그는 먹는 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하는 게 농부들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 굶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그런 짓이 몇 주 쯤 더 지나면 이번에는 달력에다 숫자를 계산 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달력의 숫자들을 가로 세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 기에다 자신도 겨우 알까 말까 하는 인수분해까지 해 대었다고 했다. 놀고먹는 그가 아는 채라도 해야만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상갑 씨의 그런 짓은 처음엔 자신의 방에서부터 시작해서 빈 방을 돌고 돌았는데, 결국에는 그 여관 전체 방의 모던 달력에다 그래 놓았다고 했다. 그리곤 여관주인의 눈에 뛰고, 또 경찰에 알려지고, 그래서 그는 다시 작년에 갔던 그 정신 요양원으로 연례행사처럼 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갑 씨가 이곳에서 보이지 않을 때나, 상갑 씨가 남들에게 토굴에서 고시 공부를 했었다는 말을 할 때에는 다 지병이 도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셈이었다.
“가해망상증이라고 했어요.”
요양원의 의사들이 상갑 씨에게 진단 내린 병명이었다고 했다. 상갑 씨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하고 양심의 가책을 너무 심하게 느꼈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병을 고치는 방법은 단 하나, 병자가 뻔뻔해 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마치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침이 되어 속이 쓰릴 때, 해장술을 다시 마셔서 속을 편하도록 하는 것처럼. 요상한 처방이지만 그것이 의사들이 내린 최선 없는 차선의 해결책 이었다고 했다.
“이런 처방이 남들에겐 우스운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보기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처방이었어요.”
그러나 상갑 씨는 그런 처방을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처음해보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고, 또 생각과 실천의 차이가 다 그렇듯이. 그런데 습관이란 참 무서운 거더라고 했다. 상갑이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또 자꾸 자꾸 그러더니 어느 날 부턴가는 상갑 자신도 모르는 새 어느덧 몸에 배 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남에게 사기를 처도 부끄러움이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고 했다. 상갑 씨에게 당하는 당사자들 입장에 선 낭패일지 모르겠지만 상갑 씨로서는 그것만이 과거의 고통으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상갑 씨가 뻔뻔해 지려고 하는 이유가 꼭 지병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보다는 혈혈단신에 몸까지 망가지고, 거기다 정신병이라는 병력까지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그래서 아무대서도 일을 할 수 없는 그로서는, 그것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지인은 말미에서 이번에 만큼은 상갑 씨가 연극을 통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와 맞부딪혀서, 다시는 정신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자신의 바람도 덧붙였다.
왜 그런 걸까. 나는 씨앗이 숨겨진 상갑 씨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다 문득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인데, 제목도 출연배우도 생각나지 않지만 줄거리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6.25 때였다. 몇 명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공산군의 땜을 폭파하러 떠났다. 다이너마이트를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가족과 애인의 사진을 든 젊은이들, 그들은 죽으러 가는 거였다. 적의 댐과 자신들의 운명을 같이 파괴하러.... 장교가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조국의 부모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이다. 조국을 생각하면 우리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장교를 빼고 나머지 젊은이 들은 꼭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댐 속에 들어가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 시켰다. 그리고 쓰러졌다. 그때 난 그들의 장엄한 죽음을 애도하며 어서 댐이 무너지고 물줄기가 솟구쳐 내려 댐 아래에 있는 공산군들의 비밀스런 공장들이 숙대 밭이 되어 휩쓸리는 광경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다시 반전을 가했다. 잠시 후, 그들 젊은이들은 댐 속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기절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던 장교가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자식들! 이 거대한 댐이 다이너마이트 몇 개로 금방 폭파될 줄 알았던 거야? 단지 우리는 구멍을 낸 것뿐이야. 그러나 이제 우리가 구멍을 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구멍을 낸 자리에는 물이 스며들 것이고, 그리하여 스며든 물줄기가 점점 커지면 결국 댐은 무너지고 마는 거야. 자, 어서 일어나. 우리의 임무는 이것으로 끝났어. 어서 여기를 빠져 나가자고.’ 라고.”
5
정식으로 배우가 된 상갑 씨의 열정은 대단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상갑 씨가 연극에 심취할 줄은 몰랐다. 그는 분장 없이도 망나니1로 동화되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가 하면, 심지어는 대장간을 찾아가 직접 만들어 온 참수도를 한밤중에 갈아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생에 처음으로 배우가 된 흥분 때문에 그리고 망나니1이 시대는 다르지만,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을 굳혔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그가 이빨을 뽑으려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 전이었다. 갑자기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을 가려고 분장실을 지나는데, 분장실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상갑 씨였다. 상갑 씨가 거울 앞에 앉아서 망나니의 분장을 스스로 해보고 있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일으켜 세워 보기도 하고, 또 염색약을 색깔별로 발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보아도 당체 마음에 들지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 전에도 상갑 씨가 종종 그런 짓을 했기 때문에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다. 내가 한 짐작은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었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땐 분장실은 말이 아니었다.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상갑 씨는 입속에 집게를 쑤셔 넣은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상갑 씨! 왜 그러세요! 이러시면 안 되어요!”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가 상갑 씨의 손을 부여잡았다. 다행히도 내가 빠르게 발견하는 바람에 이빨을 뽑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상갑 씨의 손을 잡아채서 집게를 빼앗으며, 왜 상갑 씨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야만 했는지 유추해 보았다. 상갑 씨가 배역을 받고부터 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기 때문에 나는 지켜본 듯이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상갑 씨는 거울을 보면서 어떡하면 완벽한 망나니1로 동화 될 수 있을까, 하며 이리 저리 분장을 해본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텔레비전 사극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망나니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망나니의 앞니 몇 개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자신도 그 망나니처럼 앞니 몇 개가 없다면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생각이 그기까지 미치자 성질 급한 상갑 씨는 지체 없이 공사용 집게를 가져와 윗니 두 개와 아랫니 두 개를 뽑아 버리려고 한 것 같았다.
“상갑 씨! 어서 일어나요. 왜 그러세요?”
나는 상갑 씨를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입속에서 선혈이 낭자한 상갑 씨는 이미 완전히 딴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름 같은 자신의 과거를 입속의 선혈과 함께 확 뱉어 냈기 때문인 것일까? 상갑 씨는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18세기의 망나니로 돌아가 있었다.
“지금은 18세기인데, 길가에 굴러다니는 쇳덩이들은 다 무엇이고, 또 높다랗게 솟아 있는 저 마천루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날 내가 상갑 씨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려고 밖으로 나왔을 때, 상갑 씨는 자신이 이제껏 보아왔던 극장 앞의 전경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길가의 차들과 빌딩들이 생소한 듯 절규를 했다.
물론 상갑 씨의 기이한 행동은 단순히 이를 뽑아내려고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를 뽑으려고 했던 것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다 아물어가는 이마의 상처를 집어 뜯어내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어보았지만 간지러움 때문에 긁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얼버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갑 씨의 이마의 흉터는 더 깊어졌고 인상도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전부터 깍지 않고 내버려 둔 수염과 머리도 점점 더 자라나서 그대로 둔다면 분장 없이도 무시무시한 망나니의 형상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상갑 씨의 열정이 단순히 외모에만 치우친 건 아니었다. 상갑 씨는 대본을 보면서 내면의 연기에도 심혈의 기울여 나갔다. 대사 연습을 하다가 전 장면과 조화롭지 못하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대본의 대사를 직접 고치기까지 했다.
그런 열정 때문에 상갑의 연기력은 어느 누구보다 탁월한 편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주연급들의 연기력이었다. 그들은 연기 아카데미나, 혹은 대학동아리 같은 대서 배운 대로, 웃을 땐 표정을 이렇게 하고, 울 때에는 표정을 저렇게 한다, 는 식으로만 했다. 그들의 선생이나 선배들이 정해준 규격에 맞추어 재단된 연기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었다. 비약된 비유일진 몰라도, 그것은 마치 우리의 칠팔 십 년대 때,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았을 때, 너도 나도 차 뒤 유리 밑에 화장지 한통씩 올려놓은 꼴과 같았다. 화장지라는 물건이 똥구멍을 닦는데 쓰이는 물건이든 말든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따라서 차에다 치장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머릿속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깨버려야 한다고 수시로 주위를 주었지만, 이미 습관이 된 그들은 버릇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하여 판에 박힌 공연에 들어간다면, 이번 공연은 별 사고 없이 그저 그럭저럭 마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사회를 향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애저녁에 글러보였다. 그들에게는 한마디로 ‘푼크툼’, 그러니까, 예리하고 민감한 ‘찌름’의 효과가 날카롭지가 못했다. 그리고 가감법에도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주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표정속의 무엇을 살려야 하고 무엇을 소거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야기의 모든 대사는 전면적이어야 하는 거고, 첫 대사가 다음 대사를 부르는 자연스런 흐름 속에 맡겨야 하는데, 그들은 조급하게 머리를 굴려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만으로 논리를 맞추려고 하였다. 안테나를 세우고 특별한 전파가 수신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신성한 방법을 쓰지 않고 쓸데없는 노력으로 전파를 뭉개어 버리려고 하였다.
나는 이번공연에서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소 서툴더라도 실험정신 만큼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들이 하고 있는 연습을 중단시키고 모두 한자리로 불러 모았다.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지 알아듣겠어요. 연기는 흉내가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우선 배우 자신부터 극중 인물로 완전히 동화되어야만 관객들도 몰입하게 되고, 비로소 공감하게 되는 거라고 말했잖아요.”
나는 답답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을 때, 그보다 잘못된 것은 없는데, 어떡하면 이들이 그 잘못을 알고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심히 고민하여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마술을 부리는 외삼촌을 생각해 냈다. 어쩌면 외삼촌의 마술과 연극의 메커니즘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이 마술에 이르는 과정을 얘기해주면 배우들이 작중 인물로 동화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번 생각의 가속도가 붙자 거침이 없었다. 나는 외삼촌이 마술에 이르는 과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진짜 마술은 말이에요. 눈속임이나 손재주로 기교를 부려 관객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아는 한 마술사는 아무런 소품이나 도구 하나 없이 정신력만으로 자신의 빈 손위에서 살아있는 닭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건 사실 이예요. 그분은 자신이 마술을 부릴 것이 닭이면, 먼저 닭 우리 속에 들어가 닭들과 같이 숙식을 하며 닭들의 습성부터 터득을 해요. 닭들의 생태나, 버릇, 그리고 깃털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기억을 해나가요. 눈을 감고도 닭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닭들의 울음이나, 몸짓에서 그들이 무슨 메시지를 보내는지 알 때 까지요. 그분은 그런 후에야 마술을 부리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 마술을 부리지 않아요. 또 그렇지 않으면 마술 자체를 할 수도 없고요. 그분이 이처럼 닭들과 오랜 교감을 한 후, 한 곳에 시선의 초점을 고정하고, 화가가 정밀화를 그리듯 일찍이 기억해 놓은 닭들의 모습과 습성을 하나하나 떠올려나가요. 마치 섬세한 퍼즐을 짜 맞추듯이 기억들을요, 그러면 시나브로 정말로 자신에게도 살아 있는 닭이 보이고, 그 텔레파시가 남들에게까지 전달되어 타인에게도 닭들이 보이게 되는 거예요. 이 같은 그분의 행위야 말로 진짜 마술이고 동화이기도해요.”
설명이 부족 했는지, 아니면 두서가 없었는지, 또 아니면 얘기가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단원들은 아무도 나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여러분 제가 방금 말했던 얘기는 정말 사실 이예요.”
나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여 말했다. 방금 내가 말했던 외삼촌의 마술 얘기는 정말 사실이었다. 나는 외삼촌이 소품이나 도구 하나 없이 빈 손위에 닭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그것이 언제였는지, 확실한 연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서도 그 먼 곳을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아마 대학생 때이지 싶었다.
어쨌든 여름 방학을 맞은 나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외삼촌을 찾아 갔었다. 그때, 외삼촌은 정기가 좋다는 그 산에서 망가진 몸과 정신을 요양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외삼촌은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 도인이 되려고 마술을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집에서 계실 때보다 몸과 마음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주셨던 것들을 외삼촌에게 전해주고, 산길의 고단함 때문에 나는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깨어났을 때였다. 그때 저만치서, 그러니까 십여 보쯤 앞의 넓적한 너비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외삼촌의 모습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너도 한번 구경 해 볼래?”
외삼촌이 말했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외삼촌이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외삼촌은 얼마만큼의 명상에 빠진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하듯이 뻗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외삼촌이 허공으로 내민 두 손의 손바닥에는 거짓말처럼 닭 두 마리가 살아났다. 닭들은 펄럭 펄럭 날개 짓까지 하였다.
“이런 게 바로 진짜 마술 이란 거다. 이건 속임수가 아니란다.”
놀라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나를 향해 외삼촌이 말했다. 아니 마술사가 되어버린 외삼촌이 진짜 마술에 대하여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아까 단원들에게도 말했듯이 외삼촌의 마술은 먼저 닭들과 완전한 동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남들까지도 동화시킬 수 있었던 거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단원들에게 내가 한말은 사실이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그래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단원들은 나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는 듯 뜨악한 눈빛으로 바라 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왜 엄연히 사실인 말을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으려는 건 무엇 때문일까? 모든 걸 과학과 논리가 지배한 세상이 되어버려서 그런 걸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혹시 외삼촌이 진짜 마술사가 아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보기도 했다.
사실 외삼촌은 마술을 부릴 줄을 알았지만 상업적으로 보여주는 마술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계면조를 연주하는 아쟁처럼 목소리가 슬퍼보였던 외삼촌은, 오래 전 남쪽나라 광주의 전쟁 때 독재자와 맨몸으로 맞서 싸우다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불행한 사람이었다. 팔십 년대의 어느 날, 그 독재자의 수하들이 교묘하게 처 놓은 덫에 걸려 무려 십여 년을 한 평 남짓한 감옥에서 갇혀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외삼촌에게 있어서 마술이란, 산사의 스님들이 정신을 통일하기 위해 정진하는 참선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모하게 왜 그런 일을 했었니?”
외삼촌이 출감 하던 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자, 웃음 반 울음 반의 얼굴을 한 외삼촌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세상을 휘감고 흐르는 강물이 되지 못하고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며 바짓가랑이나 적시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곤 뒤에 나의 발자국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걷기만 했었지요.”
이런 말을 하니까, 또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이 있다. 외삼촌이 처음 출감 하고 며칠이 되지 않는 그날이.
그날, 엄마는 일을 나가셔야 하므로 방학을 맞아 별 할 일 없는 내가 외삼촌을 맡았다. 집에는 나와 외삼촌 단 둘 뿐이었다. 그날은 아침 늦도록 외삼촌의 방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그동안 피곤하셨으니까 쉬시는 줄 알았다. 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을 우선 보자기로 덮어 놓고 잠시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마침 친구와 숙제를 하다가 좀 문제가있어서 늦는다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외삼촌은 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불현듯 불길한 한 예감이 들었다. 친구와 숙제는 다음날 하기로 하고 곧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내가 덮어 놓은 밥상도 그대로 있는데, 외삼촌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디를 가신 걸까? 내가 머리를 한껏 굴려서 오만가지 추리를 다 하고 있는데, 그때 외삼촌 방에서 쾅쾅쾅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방문을 열자 외삼촌은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외삼촌 왜 이렇게 문을 두드리세요. 나오시지 않구요?”
그제야 외삼촌이 저어기 당황해 하시면서 씁쓸한 웃음을 흘리셨다. 나중에 내가 커서 안 일이지만 장기수들이 출옥을 하면 곧장 그런 일들이 있다고 했다. 외삼촌은 십 년 동안이나 갇혀 있다 보니까 스스로 안에서 방문을 열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신 거였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시고 외삼촌은 방안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셨던 거였다. 내가 들어오는 기척이 들리는 것 같으니까, 혹시 혹시나 하며 문을 두드리셨던 거였다.
외삼촌의 독방 생활이 만든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외삼촌은 TV를 켜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으셨고, 심지어는 누구의 허락 없이는 화장실조차도 가지 못하셨다. 언제나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나 밥 먹어도 되겠니?’ ‘세수해도 되겠니?’ 이런 니기럴, 세상에....나는 인간의 몸뚱이를 가두는 게 사실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감옥에 잡혀 가기 전에 외삼촌은 운동 선수였었고, 감옥에서도 많은 명상을 하셨다지만, 십여 년이란 세월 앞에는 그런 것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외삼촌은 몹시 약해져 있으셨다. 길을 걷다가도 외삼촌은 깜짝 깜짝 놀라셨다. 감옥에서 혼자 대 여섯 걸음을 걷고는 뒤돌아서서 또 대 여섯 발자국 걷고 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랬던 거였다. 처음엔 화들짝 놀라면서 걸음을 멈추시기에 나는 외삼촌이 어디 몸이 편찮으셔서 그러신가했다. 외삼촌은 조금 쉬었다 가자고 하셨다. 모처럼 시내 구경을 시켜 드리려고 모시고 나온 거였는데 ....그것도 알고 보니까 그 감옥 안의 버릇 때문이었다. 십 년 동안 바라보았던 감옥의 벽이 눈앞으로 확 달려드는 것 같은 환영을 보시는 거였다. 외삼촌은 감옥을 나오긴 했지만 이미 몸속에 들어와 버린 그 벽을 허물지 못하시는 거였다. 외삼촌이 그 벽을 허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쯤 외삼촌은 스스로 산으로 들어 가셨다.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 될 때, 내가 먼저 세상을 한 번 쯤 내동댕이 쳐보는 거야.”
뜻 모를 얘기를 남기고 외삼촌은 떠나 가셨고, 나는 그때부터 외삼촌과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을 만나면, 비타민c 라고 했을 때처럼 입안에 슬픈 침이 가득 고여 오는 버릇이 생겨났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직도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단원들의 눈빛을 보며, 그들을 말로서 설득 시키기에는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외삼촌의 마술과 제법 차원이 맞닿아 있는 상갑 씨를 불러 그의 연기를 선보이게 했다. 단원들의 앞으로 나와서 하는 상갑 씨의 연기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일품이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달랐다. 보통 경력이 많은 유명 배우들도 극중 인물로 완전히 동화되려면 보통 한두 달은 걸리는데, 상갑 씨는 단 며칠 만에, 내가 보아 왔던 그 어느 배우들보다도 완벽하게 동화 된 연기를 펼쳐 보였다.
상갑 씨는 연기를 하는 동안만큼은 정말 현실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그런 것이 어떨 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상갑 씨는 또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쏟아 내는가 하면 극 전체의 흐름을 자신들의 중심으로 오도록 바꿔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게 이상했다. 상갑 씨는 분명 극을 곡해 시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손톱만큼도 왜곡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작품의 완성도까지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해주는 거였다.
어쨌든 나에게 있어서는, 물론 상갑 씨의 자의식과잉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껍데기만 흉내 내려는 다른 배우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돌올한 상갑 씨로 말미암아 나름대로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갑 씨의 농익은 연기를 지켜보면서 이번 연극의 승패는 방계 역을 맡은 상갑 씨에게 걸어 보기로 다시 한 번 더 마음먹었다.
6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대 만원이었다. 어제 리허설이 있었을 때, 상갑 씨의 연기를 본 기자들이 그의 열연에 감동하여 신문의 일면에 ‘처형장에서 열연하는 기이한 사나이’ 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때문이었다. 복도에도 발 디딜 틈도 없이 관객들로 꽉 들어 차 있었다. 맨 앞줄의 객석에는 언제 오셨는지 외삼촌의 모습도 보였다.
연극은 어느덧 4막도 서서히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도 그런 대로 별 실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괄목할 만한 감동 또한 주지 못했다. 심장을 겨냥하는 팔매질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신문을 보고 찾아 온 그들은 앞의 내용이나 배우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상갑 씨의 연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상갑 씨가 어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막간 때를 이용하여 분장실에 잠시 들렀다. 그런데 18세기의 망나니로 완전히 동화 된 상갑 씨 옆에는 또 한 사람의 망나니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외삼촌이었다. 객석 앞자리에 앉아 있던 외삼촌이 언제 이곳으로 왔을까. 그것도 망나니 분장까지 하고서. 나는 외삼촌을 말려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나는 외삼촌을 말리려다가 멈칫했다. 말리기엔 외삼촌의 모습이 너무도 근엄했다. 거기다 연극과 메커니즘이 같은 마술을 할 줄 알아서 그런지 외삼촌도 상갑 씨처럼 완전히 망나니로 동화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외삼촌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는 그러지 않았다. 어쩐지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대로 두면 외려 더 잘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외삼촌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이번 연극의 완성도는 더 높아 질 것만 같은 기대가 드는 것이었다.
머리 손질을 하던 외삼촌이 나를 힐끗 봐라보며 말했다.
“지금으로선 수많은 시간이 지났고, 지난시간에 비례한 만큼 또 많은 장르의 작가들이 나름대로 그 사건에 관해 다양하게 조명하고 병리적인 문제들을 제기 했는데, 이제 와서 식상한 얘기를 꺼내어 무었을 어쩌려고?”
나는 외삼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그렇지가 않죠. 외삼촌도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까지 그 일에 대해 누구 한사람 죄를 시인 하고 용서를 빌은 적이 있었나요? 없었잖아요? 그리고 그때의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직도 고통 속에 잠겨 있는데, 정작 그 나쁜 일을 벌인 인간들은 죄책감 하나 없이 지금도 떵떵 거리며 사는 게 옳은 것이냐 말예요? 이건 법적으로 저촉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는 몇 차원이 더 높은 거죠. 일테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냐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냐에 관한 문제죠.”
“모든 생물의 진화는 이기적인 것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건데. 인간이야 말로 더욱더 그렇고”
“누가 그따위 썩어빠진 소릴 했죠?”
외삼촌의 말에 비위가 상한 듯 갑자기 상갑 씨가 나섰다.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어느 저명한 생물학자가 그러던데요.”
“그럼 당신은 그런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꼭 틀렸다고도....”
“학자든 성자든 상식을 넘어서는 말은 거짓이죠. 그런 돼 먹지 않은 소리는 다 보따리에 싸서 시궁창에 넣어 버려야 해요! 망각은 병이죠. 그보다 무서운 병은 없어요. 혹자들은 과학이 요즘처럼 발달한 세상에서 의사들도 진단을 내릴 수 없는 망각에 대해 그건 병이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이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은 없다고 생각해요.”
“치매나 건망증 같은 거 말인가요?“
상갑 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건망증’ 그래요. 그건 치매보다 건망증이 망각에 더 가깝죠. 치매는 기억을 완전히 잊은 상태지만 건망증은 그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뒤틀고 있는 것이므로...”
“어째서요?”
“어떤 집단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부당함을 느꼈다고 생각 할 때, 그 집단은 머리에 머리띠를 동여매고 발광하듯 외치잖아요? 텔레비전에서 매일 보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처음에는 그 집단에 동조하여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을 듯이 목청을 높이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 시간 사이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의 사건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작금에 일어 난 사건에 대해서만 또 관심을 가지잖아요? 이전의 사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말이에요. 한마디로 우린 너무 쉽게 망각한다는 거지요. 난 이런 이유로 인해 망각을 병이라고 보는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무식한 놈이 권력이나 돈 가진 거’라고들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망각이라고 생각해요. 세상 사람들의 망각으로 말미암아 그때 광주를 짓밟은 사람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요? 만약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계속해서 까맣게 망각하고 몇몇 위정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계속해서 수수방관 한다면 사람들은 또다시 과거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상갑 씨의 장황한 얘기를 듣고 난 외삼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지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미소에서 외삼촌이 상갑 씨와 나를 떠보기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시계를 보니 마지막 4막 4장의 막이 열리기 바로 전이었다.
“상갑 씨! 외삼촌 준비 되셨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주는 상갑 씨와 외삼촌을 보며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왔다. 내가 무대 앞으로 나오자마자 막이 걷히고 있었다.
망나니로 분장한 상갑 씨와 외삼촌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아직 대사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18세기의 망나니로 완전히 동화된 두 사람에게 관객들을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상갑 씨가 죄수들을 보며 내뱉는 웃음소리는 음산했다. 객석 천장에 부딪혀 다시 공명음으로 돌아오는 웃음소리는 마치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목숨을 가지려고 온 저승사자의 목소리를 연상 시키게 했다.
“넌, 언제나 인간은 이기적이여야 더 잘산다고 생각 하는 부류였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한 나라의 백성이 한 나라의 백성을 죽이는 게 얼마나 큰 죄악인 줄 알아?”죄인은 용서 못해!. 더러운 짐승 같은 새끼들!“
상갑 씨가 죄인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외삼촌도 상갑 씨 뒤를 따라서 돌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죄인 줄 알면서 죄를 짓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라고....너희들 몇 명이 잇속을 챙기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아 온 줄 알아? 그래 그래서 지금껏 남을 죽이고 호강하며 산 인생이 즐거웠어? 으흐흐흐”
외삼촌이 말하자 상갑 씨도 말했다. 같이 연습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둘의 앙상블은 절묘했다.
“내가 그렇게도 말렸잖아! 그렇게 말렸는데도 넌 너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너의 영달만을 챙기려고 백성들을 함부로 가두고 함부로 죽였어. 이젠 네 놈 차례야! 어이, 집사 넌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죽음은 누구든 항상 두려운 건데?”
상갑 씨와 외삼촌은 독안에 든 술을 한 바가지씩 마셨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악마구니가 되어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은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입속에 담긴 술을 칼날위에 푸 하고 뿌렸다. 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갑 씨와 외삼촌이 들고 있는 칼을 보았다. 아. 어찌해야 하는가! 지금 상갑 씨와 외삼촌이 들고 있는 칼은 연극용 소품이 아니라 상갑 씨가 언젠가 대장간에 직접 가서 만든 진짜 날이 선 참수도였다. 상갑 씨가 외삼촌에게도 참수도 한 자루를 나눠준 모양이었다.
나는 어서 가서 말려야 했다. 그러나 가위에 눌린 나의 발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보아도 한발 자국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진적에 상갑 씨가 꾸미는 음모를 알아채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고 해도 한 번 거대한 힘의 중력에 이끌린 나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목소리마저 잠겨 소리칠 수도 없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꼼짝없이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으흐흐흐흐.............죄인은 용서 못해 상감마마 일지라도!”
상갑 씨와 외삼촌은 이제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쏟아 놓았다.
“난 이순간이 오길 바라며 말 한마디 못하고 삼십 여 년을 기다려 왔어!”
다시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그들은 칼날에 술을 내뿜은 후,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앞줄에 있는 죄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죄인들의 목을 향해 시퍼런 칼날을 내리쳤다. 순간 선홍색의 피가 뿌리듯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피는 객석 가장자리의 관객들은 물론이고 극장의 온 사방으로 튀었다. 관객들은 갑자기 일어 난 현실 앞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극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아! 아! 하는 단말마적인 비명 소리가 난무 하고 있었다.
나는 ‘안 돼!’ 하고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 때문인지 그제야 비로소 가위가 풀려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무대 위를 향해 내 달렸다. 내가 마침내 무대 위로 성큼 한 발자국을 떼어놓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머리맡에 있는 자리끼를 벌컥 벌컥 들이 마신 후, 사방을 둘러보았다. 상갑 씨는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맡겨놓은 참수도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내가 악몽을 꾸고 늦잠을 잔 탓에 공연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조감독에 의해 공연이 진행 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오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마려워 졌다.
나는 아무것도, 윗도리마저 챙겨 입지 못한 채, 거리로 나왔다. 옷을 걸칠 겨를이 없었다. 어쩌면 꿈같은 사건이 현실로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서 상갑 씨를 말려야 했다.
나는 극장을 향해 죽어라 뛰어가며 소리 질렀다.
“상갑 씨!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 연극일 뿐이란 말예요!”
나의 붉은피톨은 머릿속 혈관을 마구잡이로 쿵쿵 거리며 헤집고 다녔다. 극장을 향해 뛰어가는 나의 바짓가랑이에선 오줌이 줄 줄줄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