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으로 세상 살아가기’에 대한 나의 생각
서형수
이 글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불편함을 분야별로 나누어 놓은 글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 살아가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의 역사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각각의 글을 읽으며 생각지도 못한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청각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의 사용중 표시로 그저 노크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편하구나 했던 생각, 버스정류장에 있는 버스번호별 노선도도 그저 좀 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구나 하며 지나쳤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 겪었던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편의 시설에 대해 예전보다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살펴보니 그 대부분이 눈으로 보이는 장애에 대한 개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애의 정도가 덜해보이는 청각장애인이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무언의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수화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터 그저 막연히 재밌겠다 라는 생각으로 배워보고 싶었었다. 비장애인인 나에게는 수화는 선택의 문제였던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종종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농인들을 볼 수 있다. 그 때 느낀 점은 소리가 없어도 시끄러울 수 있구나 였다. 그들의 수화를 보면서 소리가 없어서 뭔가 소리가 느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편함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엄청난 노력 끝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이 그들에겐 고통을 주는 일이라는 것.
솔직히 나 또한 장애인이라하면 눈으로 보이는 장애인을 먼저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난 장애로 인해 쉽게 인지하고 그들에 대해 먼저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농인을 대한 되면 어떨까.....
오래전 한 번 농인이 길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며 조심스레 다가와 수첩을 내밀던 그분의 모습에 난 의아해하며 그분의 얼굴과 수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농인이라 하여 특별히 경계를 한 건 아니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내 모습에 그분이 오히려 더 당황하진 않았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해 특별히 차별은 두진 않지만 나 역시 조금은 그들에 대해 비장애인보다는 더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글을 읽으며 지금까지 장애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장애인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언저리에서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내가 해야만 할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조금씩 조금씩 주위의 복지시설이나 장애인 시설등에 예전보다는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아는 만큼 내가 보고 싶은 만큼 사람들은 딱 그 만큼만 보고 듣는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그렇지 않을까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장애인을 친구나 가족으로 둔 비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장애인 본인이 인식하는 정도등은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글 중에 중도실청으로 인해 힘든 본인을 이해 못하는 가족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그 글에서 느껴지는 글쓴이의 고통은 글쓴이의 가족이 아닌 같은 청각장애인들이 더 깊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가족조차도 장애인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같은 장애인이지만 각 장애에 따라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남편과 신체장애인 아내의 이야기에서 모든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라는 것.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물론 이것은 장애인에 대해서 뿐 아니라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역지사지’는 소원하다.
이번 실습을 통해 이 ‘역지사지’를 언제나,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