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의 혼성 그룹 시크릿 가든(Secert Garden). 노르웨이의 작곡가 롤프 러브랜드(Rolf Lovland)와
아일랜드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피오뉼라 셰리(Fionnuala Sherry)를 주축으로 1995년 결성된
그룹이다. 피오뉼라는 아일랜드 Killdeer에 있는 Naes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음악을 즐기고 자주 연주했고 이런 분위기가 그녀로 하여금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열정을 갖도록 만들었다. 결국 음악 공부를 위해서 더블린으로 이사한 그녀는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대학과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RTE 콘서트 오케스트라의 단7으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계속 연주했지만 그녀의 음악적 관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음악의 다른 모든 장르에 관심을
갖고, 시나드 오코너(Sinead O’Connor), 반 모리슨(Van Morrisson), 크리스 드 버그(Chris De Burgh)
, 보노(Bono) 등 팝 뮤지션들과도 함께 음반 작업을 했으며, 할리우드의 영화 'The River Rins Wild',
'The Mask'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기도 했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며 키보디스트이기도
한 롤프 러브랜드(Rolf Lovland)는 노르웨이 북부 Kristiansand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악보에 음표를 그려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은 9살 때의 일. 그는 Kristiansand의 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Norwegian Institute Of Music에서 학위를 받음으로써
음악가로서의 기반을 충실히 닦았다.
시크릿 가든의 결성 이전에 이미 롤프는 노르웨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바 있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1985년에는 'La Der Swinge'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에서 우승했으며 노르웨이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는 네 차례나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조직적인 하모니와 멜로디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을 무렵 바이올리니스트 표뉴알라를 만나게 됐고
시크릿 가든이 결성됐다. 그리고 1995년 그들의 첫번째 앨범 [Song From A Secret Garden]이 발매됐다
시크릿 가든은 1995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노래가 아닌 연주곡 'Nocturne'으로 우승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연주곡이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로
인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역사가 새로워졌다. 사람들을 경악케 했던 그들의 연주곡들은 이후
성공을 거듭했다. 'Nocturne'이 수록된 데뷔앨범 [Song From A Secret Garden]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 유럽, 캐나다, 미국, 호주, 멕시코, 아시아 각국 등 60개국에 퍼져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 미국 빌보드 뉴에이지 차트에서 101주 동안 머물르는 기록을 낳았다.
첫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프로모션 겸 공연으로 투어를 하고 있을 무렵, Fionnuala는 사고로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어깨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롤프의 창작활동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도 다시 연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치료에 매진했다.
1996년 롤프는 새로운 앨범을 위한 자신의 자작곡들을 모두 준비했고, 표뉴알라도 재기를 꿈꾸며
전력했다. 그리고 1997년 롤프의 창의적인 곡들을 수록한 두번째 앨범 [White Stones]이 발매됐다.
여전히 표뉴알라의 팔은 고통으로 떨렸지만, 새로운 곡들에 실린 그녀의 연주는 전보다 더 기교가
넘치고 도전적이었으며 부상에 대한 구차한 변명따윈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용기를 얻어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해나갔다. 이렇게 준비된 2집 [White Stones]
역시 전작 [Song From A Secret Garden]처럼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80주 이상 랭크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5십만장이 팔려나가면서 그들의 음악은 점점 발전했다. 2000년을 1년 앞두고
발매된 3집 [Dawn Of A New Century]와 최근 발매된 그들의 베스트 앨범 [Dreamcatcher]까지
그들은 5년여 밖에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음악의 절대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 롤프 레블랜드 (Rolf Lovland) 올해 42세인 롤프 러블랜드는 노르웨이 남부 출신으로 작곡가, 피아니스트 겸 키보드 연주자입니다.
그는 아홉 살 때 이미 밴드를 조직하고 작곡을 하는 등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성장한 후
러블랜드는 노르웨이의 크리스찬샌드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노르웨이 오슬로 음악원에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노르웨이 출신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레코딩 작업을
하면서 작곡가, 편곡자, 프로듀서로 활동했습니다. 러블랜드는 지식인의 풍모를 짙게 풍기는 뮤지션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2회 수상한 것을 비롯, 노르웨이 그래미상,
국립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하는 '올해의 최고 음악상'을 2회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TV 방송국의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 피오뉼라 쉐리 (Fionnuala Sherry) 바이올린 올해 34세인 아일랜드 태생의 이 매력적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는 더블린 음대와 트리니티
대학에서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 RTE 콘서트 오케스트라에서 10년째 바이올리니스트
로 활동하면서 밴 모리슨, 시너드 오코너, 보노, 클래너드, 크리스 드 버그 등 내로라 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의 영화음악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아일랜드의 TV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자신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시크릿 가든'
멤버로 활약하는 외에도 작곡과 프로듀싱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앙드레 가뇽 (Andre Gagnon)
특유의 순수하고 서정성 가득한 피아노 연주로 한국에 많은 팬들을 거느린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은 탄탄한 클래식적 기본기를 바탕으로 신비롭고 향기로운 그만의
음악 세계를 만든다. 그의 앨범은 1990년대 이후에 국내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곡을
좋아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며 'Les Jours Tranquilles(조용한 날들)',
'Un Piano Sur La Mer(바다 위의 피아노)', 'Souveniors Lointains(머나먼 추억)'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42년 캐나다 퀘벡주의 쌩 빼꼼에서 태어난 앙드레 가뇽은 4살 때 피아노 수업을 시작,
Con Servatoire De Musique De Montreal에서 화성, 작곡과 같은 음악 이론에 대한 정규 클래식
음악 교육 과정을 마쳤다. 클래식 연주자였던 그는 20대에 이르면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었는데,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이나 1980년대 초 뉴에이지 음악을 미리 예견해 피아노 솔리스트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1967년 [Pour Les Amants]로 데뷔한 그는 1974년 [Saga]를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Neiges]를 발표, 캐나다 전역에서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 앨범은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30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고 캐나다의 주노 시상식에서(Juno Awards)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 앨범의 수록곡 중 싱글 앨범으로 제작된 'Wow'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24주간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활동 범위를 넓혀 영화음악, 뮤지컬, 오페라, 방송 프로그램 제작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77년에 21회 올림픽 다큐멘터리 음악의 작곡, 편곡을
담당했으며, 이듬해에는 영화 'Running'의 사운드트랙을 작곡, 편곡했다. 그는 음악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뛰어들어 각기 다른 음악들을 만들어 왔으며 점차 캐나다 뿐 아니라 국외로도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1979년 캐나다 정부는 'Office Of The Order Of Canada'
칭호를 내렸으며 그는 캐나다 국민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또 [Le Saint-Laurent](1977)가
그 해 처음 설립된 펠릭스 상(A Quebec Music Industry Award)에서 최고 연주 앨범상을
수상하면서 연주인으로서도 탄탄한 실력을 인정 받았다.
1983년 그는 자신의 13번째 앨범 [Impressions]을 발표, 전 세계적으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화제를 낳았다. 이 앨범에서 그는 인상주의 회화에서의 영감과 느낌을 9곡의 피아노
발라드곡으로 묘사했으며 이를 통해 '가뇽 스타일'을 확립하기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는
그 동안 그의 음악에 대단한 반응을 보인 일본에 까지 진출, 수 차례 투어 공연을 가졌다. 그가
1989년과 1991년에 일본의 에픽 소니 레이블에서 발매한 [Presque Bleu(푸른 빛깔 풍경)]와
[Les Jours Tranquilles(조용한 날들)]는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나 데이빗
란츠(David Lanz)와 같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들과 차별성이 있었으며, 그만의 서정성을 충분히
선보임으로써 일본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92년 그는 크리스마스 앨범 [Noel]을 발표, 2년 후에는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토미
라일리와 함께 연주한 [Romantique]를 발표했다. 또 같은 해에 영화음악 모음집
[Twolight Time(황혼)]이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솔로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물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스타 자리에 올랐다.
1997년 일본의 하꼬네 야외 미술관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한국의 소니 레이블로부터 앨범을
발매할 것을 제의 받았고 [Monologue]가 드디어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 다음 해 [Le Pianiste]가
한국에 발매됐으며, 프라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체코에서 녹음한 크리스마스 앨범 [Noel],
[Presque Bleu], [Reves D'Autumne]가 연이어 선보이면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이후 그의
솔로 피아노 음반 [Solitude], [Saisons] 등이 발매, 그는 국내 팬들을 갸뇽 스타일의 연주음악
세계로 물들였으며 몇 차례 내한 공연을 통해 최고의 인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는 뉴에이지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고 있는 거물 아티스트다.
이미 국내에 몇장의 앨범이 소개되어 전혀 낯설지 않은 뮤지션인 데다가 그래미 시상식에
다섯차례나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웬만한 뮤지션이라면 단 한차례의 노미네이트로도 상당한 음악적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에 비춘다면, 수잔 시아니의 경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올라있다.
지금까지 모두 12장의 앨범을 발표해 다섯차례나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면 정규 앨범으로는
거의 매번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셈이다. 이번에 발표된 앨범 [Turning]는 뉴에이지적인 편안함과
실내악적인 품격과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시아니가 현재 푹 빠져있다는
동양의 정서와 뉴에이지의 안정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조 히사이시 (Joe Hisaishi)
우리 나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의 음악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TV 드라마, 다큐멘터리, CF, 일본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초월하여 실용음악의
리더로서 방대한 작업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작곡, 편곡, 지휘, 피아노 연주, 프로듀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다. 1950년에 태어난 그는 4살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웠고, 1969년 국립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 음대 재학시절 중 이미 창작 오페라를 자신의 지휘로 무대에 올리면서
뛰어난 음악성을 보이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폭 넓은 음악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82년 주식회사
'원더 시티'를 설립하면서 솔로 앨범 [Information]을 발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84년 오늘날 조 히사이시와는 특별한 관계가 되어버린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게 되면서
음악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음악감독 겸
프로듀스를 맡아 앨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게 되고 그후 레코딩 스튜디오를 설립,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이후 이야자키 하야오와 조 히사이시는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이웃의 토토로', '붉은 돼지', '원령 공주' 등 제패니메이션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작업했다. 85년 그는 '바람계곡 나우시카'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수상했고차게 앤 아스카
(Chage & Aska) 등 일본 인기 가수의 앨범 편곡, 솔로 앨범 제작 등을 하면서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엔야 (Enya)
Enya(Eithne Ni Bhraonain; Bhraonain의 딸이라는 뜻)는 아일랜드 북서쪽 끝에 있는
귀도(Gweedore)에서 9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일랜드 토박인이지만 서양과 동양의 이미지를
함께 지니고 있는 Enya는 어린시절부터 교회성가대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Enya의 음악적 재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지방에서 유명한 싱어이자 색소폰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독학으로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의 음악광이었다. 따라서 Enya의 감수성은
그런 풍성한 음악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Enya는 이미 10대에 그녀의 가족들과 결성한
패밀리 그룹 "클리나드"의 일원 으로 키보드를 연주 하기도 했으며 대학에서 고전음악과 피아노를
공부한 후에는 8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이 무렵 Enya는 직업 프로듀서 니키 라이언과
그의 부인이자 시인인 로마 라이언을 알게된다. Enya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한 부부의 도움으로
Enya는 영화 "개구리 왕자"의 사운드 트랙과 BBC TV의 시리즈물인 "Celts"의 음악을 담당해 대중적인
인기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견도 있지만 공식 솔로 데뷔앨범은 "Watermark"(1988)이고
그후 3년이 지난 1991년 그녀는 두번째 앨범 "Shepherd Moons"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으로
Enya는 뉴에이지 계에서 Enya의 위치를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세이코 수미 (Seiko Sumi)
정작 자신은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여류 피아니스트
세이코 수미(Seiko sumi)는 독일 국립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에 입학, 저명한 E.악센힐트 여사로부터
사사받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독일 연주가 자격 국가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후 독일,
벨기에를 중심으로 솔로와 실내악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펼쳤다. 유럽 각국에 그녀의
레코딩 앨범을 발매하여 영국 '그라모폰紙', 미국 'DRS 저널紙', 프랑스, 벨기에 각종 음악잡지에서
격찬을 받았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수준 높은 연주를 보여주는 세이코 수미는 확실한 실력과
뛰어난 재담을 지닌 보기 드문 존재로 현재 일본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광민
1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한때 스튜디오 뮤지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였으며,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등 의식있는 가수들의 연주 활동에도 많은 참여를 하였다. 그러던 중 음악적인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삶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1986년 1월 도미를 결심하고, 고교시절 이미 피아노 협주곡집을
작곡한 실력과 끈질긴 음악에의 집념으로 명문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보스톤의 뉴 잉글랜드
음악원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배우며 음악의 철학에 깊이 빠진다.
N.E.C 재학시절 데뷔앨범 Letter From The Earth를 발표한 그는 세계 시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고급 수준의 연주곡이라는 찬사 속 , , 등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가수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곡으로 그의 순수한 음악적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효과를 최대한 살린 연주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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