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아버지의 러브 스토리
환희는 집에 돌아 왔지만 아직 제대를 했다는 것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환골탈태.
딴 사람처럼 변하지 못한 것은 아직 제대한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 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 점심도 거르고 변신을 위하여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 질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집안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이 멈춘 시계바늘이었다.
방으로 들어왔지만 막상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하지만 무얼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눈과 고개만 돌렸을 뿐이었다.
몸 따로 눈 따로 맘 따로 였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렸지? 맞아 송이야 송이.’
그때야 책상으로 눈이 갔다. 여러 달들과 별들의 나무 조각품이 작은 박스에 담겨 있다.
조각품들을 뒤집어 보며 찾는 것은 ‘이니셜 별’이었다.
세상에 딱 두 개뿐인 이니셜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을 모른다.
“어디 갔지?”
환희는 이니셜이 새겨진 별을 찾고 있었지만 정작 마음으로 찾는 것은 이니셜별을
소유한 송이였다.
“찾았다 HS 우리의 이니셜별이다.”
울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송이 생각들이 밀려오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선을 돌려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동쪽 커다란 창으로 짙게 낀 구름을 보자 아버지가 쓸데없이 했던 걱정과 감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비가 많이 오면 계곡 물이 넘쳐 우리 집을 덮치지 않을까?’
‘아버지는 참 재주도 좋다 이렇게 큰 창문을 만들어 주시다니.’
환희 나이 너 댓살 즈음이었다.
보현산 천문대가 들어오면서 건물과 가드레일로 박아둔 돌이 물길을 바꾸었는지
가끔 토사가 흘러 내려 산에 황토 손톱자국을 냈다.
이후로도 벌건 손톱자국을 따라서 박힌 돌이 굴러 오기도 했다.
집에 오기 전에 모두 멈추었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후에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일뿐이었다.
산골 소년에게 아버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가족사와 이러저러 여려 가지 이야기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주었다.
아버지의 천일야화 덕분에 기억력 훈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환희는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반복재생을 하는 회상이 버릇처럼 생겼다.
산골이라 외로운 탓이었다. 회상은 환희를 늘 기쁘게 했다.
슬픈 일이 별로 없이 기쁨이 가득했기 때문에 입 꼬리는 날마다 승천하는 아이로 커갔다.
이름에 걸맞게 환희.
동창을 뚫고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자 얼굴 한 가득에 기억 속에도 없는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아들바보로 살아오신 아버지의‘은하마을’ 이야기가 재생되었다.
환희는 광주에서 이 산골에 시집오신 할머니와 서너 살까지 함께 살았다는 기억도 전혀 없다.
그때 할머니 엄마 아버지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약초나 산나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살았다는
기억도 없다.
아버지가 군 입대를 했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할머니는 군 제대를 하고
돌아온 아들을 반가이 맞이하며 말했다는 이야기도 어렸을 때부터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까지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다.
“아들. 인자 함께 살 수 있어서 참 좋다이~”
나는 중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대학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현실을 도피하려고 일찍 지원 입대를 했다.
제대 후에 홀로된 어머니를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 암담했다.
산골엔 대안이 없었다. 부모님처럼 약초나 산나물을 뜯고 남의 사과 농사를 돕고 살기엔 젊음이
너무 아까워 결단을 내렸다.
“엄마. 아직은 엄마혼자 버틸만하시니까 3년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서울 가서 자리 잡으면 서울로 모셔 갈게요.”
“뭐시라~”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울고 계셨다.
이제 아들하고 같이 살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현실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나한테 실망을 했는지 혼잣말을 했다.
“군대...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는디.....”
나는 듣지 못한 척 눈치만 보다가 가방에 옷을 주섬주섬 담아 제대할 때 저축해둔 통장을 들고
서울상경을 했다.
“어머니 3년 만이요~ 명절에는 찾아올게요.”
서울 상경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배고픔과 잠자리를 해결 하려고 군 취사병을 했다는 것을 내세워 중국집 종업원으로 들어갔다.
가진 것은 파주 공병부대를 제대한 용기와 ‘취사병’한 달이 전부였다.
진짜 요리사가 후임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밀려나 보직이‘전투 근무지원’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군 시설 병참선 건설과 피해 복구 지원. 급수 전력 환경보전 유지보수를 하느라고
구릿빛 튼튼한 몸이 만들어졌다.
다행이 정식으로 배운 요리 솜씨는 아니었지만 믿고 맡기는 주인의 믿음에 성실한 종업원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1년 가까이 지냈다. 하지만 손에 쥔 작은 월급으로는 늘 만족하지 못했다.
중국집을 차리거나 어머니를 모셔 오는 일은 너무 암담했다.
“무얼 해야 돈을 많이 벌지.....”
배달을 나갔다. 미장원 리모델링을 하는 곳이었다.
리모델링 업체 사장은 기술을 배우면 돈 벌이가 매우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다.
일주일동안 하는 일을 보고 만나서 들어보니 귀가 솔깃해서 중국집을 그만두고 보조를 했다.
보조 6개월이 흘렀다.
그들과 어울려 한 숙소에서 지내며 일을 배우고 나니 일당도 훨씬 나았다.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한참씩 쉬어야 했다.
그런 날들은 공병부대를 핑계 삼아 튼튼한 몸으로 공사판에서 막노동판에 뛰어 들었다.
“돈 돈 돈돈...”
오직 돈 생각뿐인 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한 덕분에 몸은 더욱 힘깨나 쓰는 사람처럼
불어나고 근육질 탄탄한 어깨도 떡 벌어졌다. 늦은 성장으로 군대 이후에도 크는 몸이었다.
"내 인생이 바뀐 것은 도로 건설현장에서 만난 함바식당 여사장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늘 장황했다.
“별꽃이라고 이름 붙은 ‘푸드 트럭’에서 30명의 식사를 제공하는165센티키에
다소 투박하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건장한 여자였다.”
아버지는 환희에게 별꽃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두 눈이 별꽃처럼 초롱초롱하고
더욱 디테일하게 해주었다.
산마을 긴긴밤 별꽃 천일야화가 보현산 아래 청정지역 은하마을에 밤별로 반짝반짝 수를 놓았다.
“아저씨요~ 총각이요?”
“와 묻소.”
“걍 묻지도 못해요?”
“그럼 아지매는 처녀요 아지매요?”
“아지매? 이런 미친.”
“아 그럼 처녀라 이거지?”
“뭐라고요 내가 언제 처녀라 했소.”
공사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툭 뱉고 던지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거칠어졌다.
거친 말은 서로 불편한 심기를 건드렸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가 속마음을 조금 알고는 오해가 풀렸다.
이후로 죽이 척척 맞는 듯 아닌 듯 가까워지고 한 달이 흘렀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 같다며 놀리는 재미로 공사판 식사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또 석 달 동안 지내면서 한남은 30도 안된 처녀가 혼자 억척스럽게 공사판에서
함바식당을 한다는 것에 의문이 생겼지만 그것만은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동료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남씨 알어?”
“뭘요?”
“별꽃 푸드 사장 스또리~”
“그런 스또리는 전혀 모르는데요?”
“아 그게 말이야 비밀인데 자네만 알게.”
동료는 그녀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다.
“사장 남편이 공사판에서 죽었어.”
“예? 왜요?”
“야채 상자를 옮기다가 후진하는 불도저에 깔려서 즉사했다네.”
“예? 아이구...”
“그래서 남편의 영혼이 공사판에 묻혔다며 공사판을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지?”
“예~ 그렇네요. 불도저만 보면 두렵고 무섭고 생각 날 텐데 떠나지 쯧!”
“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어.”
“뭔데요?”
“이 함바식당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는데 여기서 남편이 죽고 아이도 부모도
없는 젊은 여자라고 불쌍해서 현장소장이 함바식당을 하고 싶은 때까지 하라고 했다는 거야.”
“아 그렇구나....불쌍하고 슬프다 날마다 저 불도저를 본다는 것도.”
한남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며칠 후 비가 왔다.
돈벌이가 될까하여 경비를 하며 컨테이너 막사에서 지내는 한남은 커피라도 마실까하고
식당 대형 천막막사로 갔다. 멀리서부터 맛있는 돼지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갑자기 커피에서 김치찌개에 밥이 땡겼다. 때도 마침 점심시간이라 푸드 사장이 있을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사장님 커피한잔 주세요.”
“어? 어디 안가셨어요? 한분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예~ 갈 곳도 없고 잠자기도 그렇고 해서.......”
“그래요? 그럼 커피 말고 비도 오고 쓸쓸한데 나하고 돼지 찌개에 밥 말아 먹고 막걸리도 한잔해요.”
“예?”
“놀라긴~남녀가 같이 술을 먹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그 그건 아니지만.....”
“말을 더듬기는.....남자가.”
둘은 추적추적 추적하는 빗소리에 등이 떠밀려 밥과 술의 대화가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그녀의 신세타령 일까?
“후우~결혼1년....남편이 사고로 죽고...아이도 없이 졸지에 혼자가 되었어요.”
“예?”
이미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로부터 직접 듣는 거라 놀랐다.
한숨과 신세한탄을 하는 그녀를 위로할 말이 없었다.
술잔만 만지작거리자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여자가 이런 험한 공사판에서 불도저와 계속 산다는 그 자체가 인생 모험이지요.”
“그렇죠 불도저랑 아 아니요 그럼 전에는 뭐를 했는데요?”
한남은 불도저라는 말에 놀라 말을 바꾸었다.
“한남씨 저 힘깨나 쓰게 생겼죠? 그래서 4년 전부터 함바식당 알바를 했어요.”
“아하...”
모르는 척 맞장구를 쳤다.
“그때 함바사장은 총각이고, 같이 일을 하다 보니까 사람이 좋아 보여서....결혼을 했는데
사고로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녀는 참다가 두어 잔 먹은 술에 취했는지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한남은 건장한 여자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그녀를 다독여 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름도 몰라
그녀의 트럭 이름만 불러 볼 뿐이었다.
“저...별꽃 사장님~ 별꽃 씨......”
건장한 여자의 어깨가 어쩐지 작아 보이고 측은했다.
그래서 아무 말이라도 위로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손은 그녀의 어깨로 갈까 말까 몇 번이나 오가다 멈추었다.
“별꽃씨 울고 싶을 땐 울어요. 맘껏.”
그 말을 던지자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용기를 낼 필요도 없이 손이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한남은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별꽃사장은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눈물을 그친 별꽃이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씩씩하게 물었다.
“근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요?”
“예? 이름을 모르는데요?”
“아까 별꽃 씨라고 불렀잖아요~”
“예? 그게 이름이었어요?”
“그러니까 별꽃 푸드죠 나 참 이렇게 쎈스도 없어. 한남씨 성은 뭐에요?”
“성이요.”
“그래요. 이름은 사람들이 불러서 아는데 성이 뭐냐고요~”
“아니 성씨라고요.”
“아~ 성씨요~말 그대로 썽성한 남자네요 저보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하하하...”
한남을 슬픔과 웃음이 순식간에 교차하는 그녀가 매우 신기했다.
그래서 이 공사판에서 살아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별꽃 푸드 사장님 성은 뭐에요?”
“예. 저를 낳았을 때 할머니가 내 큰 눈이 별꽃 같다고 별꽃이라고 지으라고 했다 네요.”
“아하 참 예뻐요.”
“아니요. 그런데 부모님과 저는 내 이름을 무척 싫어했어요.”
“어? 예쁜데 왜요?”
“아버지 성이.....왕 씨거든요~”
“에? 그럼 왕 별 꽃? 하하하...좀 거시기 하네요. 하하하하....”
“웃기죠 왕별은?”
“왕 별꽃 씨, 그럼 제가 웃기는 이름대신 아주 좋은 이름으로 다시 지어 드릴까요?”
“에? 한번 지어 보세요. 뭐라고 부를지 궁금하다.”
“에.....성 앞에 ‘여’ 자를 넣어서 부르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여왕별꽃? 와우~ 쏘굿. 하하하....내가 갑자기 여왕이 된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썽성한 성한남씨 하하하....”
비와 밥 돼지찌개와 막걸리. 그리고 터놓은 마음이 두 사람을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것이 첫사랑이라고 하시며 쑥스러운 듯 일어나 다 마셔버린
물 주전자를 들먹거렸다.
“물이 없네?”
“아빠 떠다 드릴게요.”
“으으응 그래? 고맙다.”
한남은 공사현장 컨테이너에서 피곤에 지쳐 막 잠이 들었다.
몇 차례나 노크 소리가 들렸지만 듣지 못했다.
노크 소리는 곧 발길질처럼 크게 들렸다.
****** 성한남과 여왕별꽃의 러브 스토리는 화요일에 다음편으로 이어 집니다^^*****
첫댓글 주인공은 누구?나?
초반에 등장 인물들 1.2.3.4.... 성한남 여왕별꽃.
주인공은 성환희.
나? ????
점 점 빠저드네요.ㅎ ㅎ
다음편 기데합니다.^^
성한남과 여왕별꽃의 사랑. 그리고 낳은 아들 성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