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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혼
- 저자 : 정재형 -
1. 이 소설의 제목
소설 ‘고구려의 혼’은 IMF 이후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는 우리의 현실에
우리역사 중 가장 번성했던 고구려를 돌아보며 지난날의 기상을 거울삼아 국운상승의 바램을 담아보았음.
2. 집필하게 된 동기
- 일본의 역사 왜곡에 이은, 중국의 고구려역사의 왜곡에 너무 놀라워
우리국민의 민족정기와 애국심에 조금이나마 자극을 주고 싶어서 쓰게 되었음.
3. 개요
가) 등장인물
- 정재형 : 32세의 노총각으로 김제시청 벽골제관리사업소에 시설물 관리자로 근무하며
명랑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줌.
고구려 신물의 존재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끝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함.
진춘앵과 사랑에 빠지나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 아파함.
- 강민혁 : 김제시청 벽골제관리사업소에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는 36세의 결혼한 남자로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식이 풍부하고
다가오는 문제와 난관을 잘 해결하며 정이 많고 정재형과 김진영을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함.
- 김진영 : 약간은 단순 무식한 성격이나 정의롭고 용감하고 뭐든지 앞장서며
30세이고 결혼했다. 3살짜리 딸이 있고 가끔 번뜩이는 지혜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줌.
- 진춘앵 : 26세의 아리따운 중국여인으로 오빠인 진양안과 함께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으나
정재형의 사랑의 공세에 마음이 흔들려 결국 정재형을 사랑하게 되고
갈등 속에 헤매다가 정재형의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은 죽음을 택한 비운의 여인임.
- 진양안 : 32세 중국 사람으로 진춘앵과 함께, 중국정부와 고고학계의 거장인 아버지의 지시로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신물을 중국으로 빼돌리기 위해 우리나라로 파견됨.
지식인이긴 하지만 자신의 조국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잔인함도 있음.
신물을 거의 손에 넣었으나 동생 진춘앵의 방해로 실패함.
나) 줄거리
주인공은 취미로 하는 스쿠버 동호회 모임에서 잡아온 해산물을 직장동료와 나눠 먹는 게 즐거움임
스킨스쿠버를 갔다가 조류에 휩쓸려 바다 속 동굴로 들어가고 동굴 벽에서 이상한 그림을 발견함
학예연구사 형과 수중동굴에 가서 그림을 보니 고구려시조의 신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내용이었음.
위도의 망월봉(望月峰, 255m) 바위에 닭(鷄)과 용(龍)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계룡산 어느 곳을 가리키는 것을 알게 됨.
계룡산 은선폭포에서 주인공은 고고학을 공부하는 한 여인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짐.
그녀의 오빠의 도움을 받아 자세한 자료를 얻게 됨. 다섯 명이 탐사를 시작함.
1. 小熊尾(소웅미)... 작을소, 곰웅, 꼬리미
2. 脫金垈(탈금대)... 벗을탈, 쇠금, 터대
3. 傾斜路(경사로)... 기울경, 비낄사, 길로
4. 水晶王(수정왕)... 물수, 밝을정, 임금왕
5. 竹林石(죽림석)... 대죽, 수풀림, 돌석
6. 心眼示(심안시)... 마음심, 눈안, 보일시
여섯 개의 관문을 힘들게 통과하여 신물을 손에 넣었으나
그녀 일행의 배신으로 신물을 빼앗기고 목숨을 위협받음
그녀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후 다시 그들을 찾아가 신물을 되찾는데
그들의 정체는 중국정부의 지시를 받고 고구려 시조의 신물을 훔치러온 인물들이었음.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한동안 괴로워함.
고주몽의 신물은 "고구려의혼" 이라는 이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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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년>
동부여의 금와왕 때의 어느 날
사냥을 하던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라는 강가에 이르러 울고 있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를 만났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런 호젓한 강가에서 홀로 울고 있는가?"
금와왕의 물음에 여자는 다소곳이 대답하였다.
"저는 웅신산 아래 압록강 가에 살며 물을 다스리는 신이신 하백님의 맏딸이옵니다."
"그런데 어찌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느냐?"
"아버님께 버림을 받고 이곳까지 홀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대 이름은?"
"유화라 하옵니다."
"부모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우발수에서 눈물짓고 있는가?"
유화는 지난 일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딸 세 자매 유화, 훤화, 위화가 여름날 더위를 잊으려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가 이곳에 내려왔다.
"어머! 이를 어쩌면 좋아! 얘들아 빨리 옷을 입어라."
언니인 유화는 동생들을 재촉하며 서둘러 옷을 입었다. 늠름한 해모수가 유화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는 땅을 다스리려고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이오.
앞으로 이 땅은 나의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받아 임금이 될 것이오.
유화 당신의 모습은 꽃처럼 아름답구려. 우리 결혼합시다."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계셔서 허락을 받자면 시일이 걸리옵니다."
"그럼 어머님께 승낙을 받으면 될 것 아니오?"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는 어머니를 졸라 혼인을 맺었다.
그러나 유화와 결혼한 해모수는 하늘나라에 잠깐 다녀오기로 약속하고 떠난 뒤 소식이 없었다.
집에 돌아온 하백은 크게 노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유화가 혼인을 맺은 것도 그렇고
신랑 해모수가 하늘로 올라가 소식이 없다니 집안 망신이구나."
"이제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더 이상 이 집에 둘 수 없다. 썩 가거라!"
마침내 유화는 집에서 쫓겨나 떠돌이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유화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금와왕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화를 데리고 대궐로 돌아가 작은 창이 있는 방을 내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창으로 방속에 눈부신 햇빛이 들어와 유화의 몸을 비추었다.
유화가 몸을 피해도 햇빛은 자꾸만 따라다니며 그녀의 몸을 비추는 것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햇빛을 받더니 아기를 낳고 보니 큰 알이었다.
"어머! 내가 알을 낳다니!" 유화부인은 깜짝 놀랐다.
"유화부인이 알을 낳았대요." "참으로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이런 소문은 금와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뭐라고? 사람이 어찌 알을 낳는단 말이냐? 불길한 일이로다. 당장 돼지우리에 갖다 버려라!"
신하들은 그 알을 돼지우리에 던졌다. 그러나 돼지들은 알을 먹으려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였다.
"돼지가 피한다면 길거리에 내다 버려라."
금와왕은 또 명령했지만 똑같은 일이 거듭되었다.
"뭐? 말, 소, 개들도 알을 피해간다고? 그렇다면 들판에 내다 버려라."
신하들은 이번엔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게 여기며 알을 들판에 내다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들이 날아와 따뜻한 깃털로 감싸 주었다. 신하들은 금와왕에게 본 대로 아뢰었다.
"그게 정말이냐?" "예, 사실이옵니다."
"저희들이 알을 깨뜨려 보겠나이다."
신하들은 몽둥이로 알을 때렸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봐라! 그 알을 어미에게 되돌려 주어라."
금와왕의 명령에 따라 알은 유화부인에게로 돌아갔다.
유화부인은 알을 되돌려 받고 며칠 안 되어 그 알은 저절로 깨졌는데
그 속에서 늠름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알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다른 아기들 같으면 걸음마도 못 할 나이에 활을 당겨 파리를 잡았다.
"이 아이는 예사 인물이 아니구나. 주몽이라고 불러야겠다."
동부여에서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주몽의 나이 10세가 넘었다. 주몽은 하느님의 손자요,
물의 신의 외손자며 또한 해모수의 아들답게 재주가 뛰어나고 힘도 장사였다.
백발백중의 명수 주몽의 활 솜씨는 누구도 당할 수가 없었다.
금와왕에게는 대소 태자를 비롯한 일곱 왕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주몽의 재주를 시샘하였다.
"아바마마, 주몽은 위험한 인물이옵니다. 없애 버리지 않으면 장차 나라를 빼앗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금와왕은 대소 태자의 말에 따르지 않고 주몽을 말먹이 꾼으로 남아 있게 하였다.
그리고 태자에게는 주몽에게 활 솜씨를 배우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소 태자는 다른 왕자들과 기회를 보아 주몽을 없애기로 의논하였다.
한편 주몽은 앞으로 위험이 닥칠 것을 느끼고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인도 아들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알아채고
수정으로 만든 자라와 물고기모양의 집안의 신물을 전해주며 주몽에게 말했다.
"이 나라 왕궁의 사람들은 앞으로 너를 해치려고 하는구나.
너와 같은 재주로 어디 간들 큰 뜻을 못 이루겠느냐.
그리고 이것은 우리 집안의 신물이다. 물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하늘로 치켜들어라.
어서 이 곳을 벗어나 닥쳐올 화를 피하도록 하여라."
주몽에게는 그를 존경하며 따르는 오이, 마리, 협부라는 세 청년이 있었다.
주몽은 그들과 의논하였다.
"위험이 닥쳐오고 있어. 어서 이 곳을 떠나야겠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남쪽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워 뜻을 펼치자."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
"그럼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주몽은 곧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명마 한 필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은 본래 금와왕의 것이었지만 금와왕이 주몽에게 마구간을 돌보는 일을 맡겼을 때
주몽은 어머니인 유화 부인의 지시에 따라 말의 혀에 바늘을 꽂아 두었다.
계획대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말을 금와왕 으로부터 물려받게 된 주몽은
이 말을 정성스럽게 키워서 천하의 명마로 만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주몽은 큰 뜻을 품고 일행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들 뒤에는 대소 태자의 군사들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주몽이 엄수라는 강가에 이르러 어머니가 준 신물을 꺼내 하늘에 치켜들고 강을 향하여 말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일신의 곤란함을 피하고자 하는 길인데, 뒤쫓는 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해야 하는가?"
이 때, 물고기와 자라가 물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주몽 일행은 물고기들과 자라들의 등을 밟고 강을 건넜다.
대소 태자의 군사들이 같은 방법으로 강을 건너려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흩어져 그들은 물에 빠지고 말았다.
주몽은 졸본주에 이르렀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천이다. 이 곳을 도읍으로 정하자."
주몽은 일단 비류수 근처에 머무르며 나라를 일으켰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정하노라."
주몽은 나라 이름과 함께 그의 성씨를 "고"라 하였다.
이 때 주몽의 나이는 12세(삼국사기에는 22세), 기원전 37년 이었다.
마침내 고주몽은 고구려의 시조가 된 것이었다.
새나라 고구려의 젊은 왕 고주몽의 이름은 떠오르는 해처럼 사방으로 빛을 비추기 시작하였다.
고주몽은 뒷날 "동명성왕"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3년 5월 25일 일요일>
여기는 전라북도 변산반도 격포 채석강 부근..
따사로운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부시다. 멀리서 어선 몇 척이 바다를 가르며 근처 포구로 들어간다.
만선의 기쁨을 전달하고자하는 그들의 우렁찬 뱃고동 소리는 언제나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득한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갈매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낮게 날고 있다.
난 먼 바다를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바다의 향기가 너무 좋다.
이곳에 자주 오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 따라 새삼 뺨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참으로 좋다.
그 신선한 바다의 향기를 온 가슴으로 호흡하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그때..
"여러분 주목 하세요.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은 해삼 멍게 조개 등 패류만 잡는 날 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벌금 10만원 이예요.
그리고 항상 하는 주의사항이지만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마세요. 꼭 2인 1조로 다니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
항상 듣는 이야기라서 별 관심 없이 듣고 있다가, 옆에 있는 진영이의 배를 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어쭈구리? 한번 해보자고요?”
진영이도 한번 해보자는 듯이 권투 자세를 잡는다.
“좋아 ! 덤벼보겠다 이거지?”
진영이와 난 가볍게 주먹을 날리며 장난을 쳤다.
그런데 주의사항을 전달하던 팀장이 나를 부른다.
"음..... 거기.. 정재형씨~ 오늘 짝꿍은 누구죠?"
난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김진영 입니다. (알면서 새삼스레 물어보기는...참내)"
진영이 와는 짝꿍이 된지 6개월 정도가 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우린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식성이 같다는 것... .
"그래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물속에서는 개인행동 금물입니다.
혼자 다니다 위험에 처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어요. 꼭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시계를 맞춰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간 오전 11시 15분....
정확히 1시간 후인 12시 15분에 이곳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라며... 출발~~~ "
내 이름은 정재형, 전북 김제 태생이며 올해 32세 된 노총각이다.
내 유일한 취미는 동호회 모임에서 한달에 한번 일요일 다이빙스쿠버를 하는 것이다.
통상 스쿠버는 스킨 스쿠버(Skin Scuba) 와 다이빙 스쿠버(Diving Scuba)로 구분한다.
스킨 스쿠버란 별도의 장비를 착용치 않고 단지 수경과 숨 대롱이(Snorkel)만 착용한 채
다이버 자신의 호흡능력에 따라 수면 또는 저 수심에서 다이빙을 하는 것이며,
다이빙 스쿠버는 공기통, 잠수복 및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육상에서와는 달리 입으로 호흡하면서 잠수한다.
통상 SCUBA라고 말하면 후자의 다이빙 스쿠버를 의미한다.
나에게 누가 스쿠버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바다 속에 들어서면 엄마 품속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대라고 계속 우기신다면..... 음.. 해산물을 무지 무지 좋아한다는 거... 하하하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황사 때문에 바다 속의 시야가 좋지 않았다.
오늘은 모처럼 맑은 바다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 속은 나에게 매번 다른 느낌을 준다.
바다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보여준다.
마치 일곱 색깔 무지개 같이 매번 다르고 화려한 다양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라고 계속 우길 것 이니까. 하하하
바다는 그렇게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들어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여러분은 바다를 모른다.
특히 꿈결 같은 바다 속의 아름다움은 정말 모른다. tv 화면으로 보는 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랑의 달콤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의 가슴 떨림을 절대 알 수가 없듯이
바다 속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바다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아름다움이란 사람의 마음을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며 생각을 깊게 해준다.
준비 운동을 마친 나는 진영이 와 서로의 장비를 확인해주고 설레는 가슴을 안고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점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시야가 맑아지고 물고기, 패류 등이 보인다.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잘 외어지지 않는 해저 동. 식물들..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가 생각난다. "머리는 좋으나 쓸 줄을 모름... 헤헤..
오늘도 대부분의 회원들은 수중카메라를 가지고와 촬영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나와 진영이는 항상 그렇듯이 작살을 가지고 물고기 꽁무니를 쫓기 바쁘다.
두 눈이 충혈 되고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이다...하하하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되는 날이다.
10만원의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와 낯짝(?)이 있기에...
우리 동호회의 규칙 중 한 가지는 스쿠버를 나갈 때 한번은 패류만 잡고
다음엔 물고기만 잡고 하는 내부 규칙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패류만 잡는 날 인 것이다.
잡는다는 표현을 하다보니 꼭 스쿠버의 목적이 해산물 포획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운동과 취미생활을 함과 동시에 바닷속 오물도 수거하고
바다 속 패류와 물고기의 개체수를 조사 기록, 촬영하여 바다 목장의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는
해양수산부에 보다 정확한 자료를 보내주는 일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에헴!
바다 속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난 개인적으로 이리저리 물결치듯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좋아한다.
눈앞에서 연출되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하다.
물론 형형색색을 뽐내는 산호초의 숲속에 누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멍~ 하니 보다가 진영이에게 핀잔을 받기도 한다.
마침 제법 큰 감성돔 한마리가 지나간다.
난 얼른 작살을 쏘려했다. 잉? 작살이 손에 없다. 참! 바다에 들어올 때 두고 왔지?
오늘은 물고기 잡지 않는 날인 것을 깜빡 잊었다. 45센티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아깝다.
그놈도 이 사실을 알고 놀리는 듯 우리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유유히 헤엄쳐 지나간다.
진영이와 난 서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ㅎㅎㅎ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고 물 밖으로 나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잠시 휴식을 한 후
이번엔 청소를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 오늘은 해저 쓰레기의 양이 적었다.
연안의 바다는 우리가 가끔 이렇게 청소를 하는 탓에 예전에 비해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바다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 사명감을 갖고 해안바다 청소를 계속 하기로 합시다.
우리의 놀이터를 우리가 청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철수하기로 하고 한 달 후에 다시 봅시다."
격포를 출발하여 부안을 지나 김제로 들어가기 직전에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잠시 들렸다.
나는 전라북도 김제시청 벽골제관리사업소에 근무한다.
- 벽골제[碧骨堤] -
벽골제비 및 제방 - 사적 제111호.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부량면(扶梁面) 포교리(浦橋里)와 월승리(月昇里)에 걸쳐 있는
저수지의 중수비(重修碑) 및 그 제방. 이 저수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것으로 벽골제라 불린다.
김제벽골제는 제천의림지 밀양수산제와 함께 고대 3대 저수지로 꼽힌다.
김제시에서는 그곳에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립, 지금은 잊혀져 가는 농경문화의 자료들을 전시하여
지역 주민의 휴식은 물론 아이들의 교육장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냉. 난방 및 시설물관리담당자로 근무 하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일직 하는 근무자만 있다.
바다에서 잡은 해삼 멍게 꽃게 소라 등. 먹거리를 스치로폼 박스에 얼음과 함께 넣어
기계실 한쪽에 자~ 알 두고 나왔다.
집에 가며 내일 오전에 직원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무실 직원 모두들 싱싱한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특히 학예연구사인 강민혁 형님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하하하
<2003년 5월 26일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을 하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민혁이 형님이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쫓아와서 닦달 이다.
"재형아~ 어제 스쿠버 다녀왔어? 이번엔 뭐야? 뭐 가져 왔어? "
"알았어요. 11시를 기다려 주세요. 해산물 개봉박두~~~ 하하하"
직원회의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단지 내 모든 시설물을 점검한다.
단지 내 모든 기계설비의 정상적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수도 및 위생배관,
그리고 단지 내 수목과 시설물(물레방아. 무자위. 조형물... 등)을 점점 한다.
최종적으로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유물을 확인하고 나니 11시가 되었다.
기계실 수돗가에서 해산물을 손질했다.
해삼 멍게 소라 게 주꾸미.. 등등...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포식을 했다.
비록 한달에 한번이지만 이 날 만큼은 나도 가장 뿌듯한 날이기도 했다.
남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작은 수고로움이 너무도 기분 좋은 날이다.
<2003년 6월 22일 일요일>
승합차 2대가 변산반도의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는 꾸불꾸불한 도로를 달리다가 잠시 후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도로로 나왔다.
한 달 만에 바다를 보니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넓은 저 바다만큼이나 넓어지는 것 같다.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데 승용차 한대가 우리를 추월하며 지나간다.
젊은 연인 두 쌍이 타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행복한 표정이다.
"휴~ 나는 언제나 애인과 함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해보나..."
그때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진영이가 어제 무리(?)했는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진영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결혼도 했고 3살 먹은 딸내미도 있다.
"녀석.. 어린놈이 까져가지고...하하하"
딸 이름이 ‘혜미’인데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자기 딸이 아니라 천사라나 뭐래나... 참내
바다를 바라보니 어제 퇴근하면서 민혁이 형님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내일은 고기 잡는 날이지? 물고기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와 술은 내가 준비할 테니.. "
민혁이 형은 스쿠버 하는 날을 나보다도 더 잘 아신다...ㅎㅎㅎ
그러고 보니 지난번 격포에 왔다 간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오늘은 잡은 고기를 가지고 민혁이 형 집으로 가야겠다...모처럼 술 한 잔 해야지..
여기는 격포 근교 바다 속..
오늘도 역시 바다 속은 나의 심장 박동수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바다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기저기 어패류 주문을 많이 받은 탓에 오늘은 어부가 되어야할 판국이었다.
나는 나보다 작살을 잘 쏘는 진영이를 재촉하여 물고기 뒤를 쫓는 일에 열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기 망이 무게를 더해갔고 우리의 입가엔 만족한 미소가 번져갔다.
난 틈틈이 해삼, 멍게, 소라 등을 고기 망에 담았다.
그런 나를 보는 진영이의 눈이 점점 커져갔지만 난 애써 모른 체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늘은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민혁이 형 형수가 해삼을 너무도 좋아하기에...쩝
순간.. 멀리서 이상한 물체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뭐지? 혹시 식인상어?"
상어 모습을 떠올리니 겁이 덜컥 났다. 얼른 진영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는 손을 꼬~옥 잡고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다가오는 물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앗..상어다... "
그렇다 귀여운 아기상어였다.
근데 우리를 더 놀라게 한건 아기상어가 그물을 몸에 칭칭 감고 다니는 것이었다.
누가 함부로 버린 그물에 몸이 감긴 모습이었다.
그 바람에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먹이를 먹지 못해서인지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가슴이 찡~ 하였다. 우린 눈을 마주쳤고 우리의 마음을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렇다. 아기상어의 그물을 벗겨주기로 했다.
사실 아무리 포악한 동물일지라도 어릴 때의 모습은 귀엽고 예쁘지 않은가...
그런데 바보 같은 아기상어는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듯 자꾸 도망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기상어를 따라가다가 이상조류에 휩쓸려 상어와 함께 한참을 떠내려갔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곳 지형에 익숙한 지라 어디로 가는지 위치를 유심히 관찰했다.
잠시 후 수중동굴에 들어가서야 아기상어를 붙잡았고 겨우 그물을 벗겨줄 수 있었다.
아기상어를 보내주고 동굴을 나오는데 동굴 벽에서 이상한 그림을 발견했다.
“응? 뭐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변산반도의 해안지도 같았는데 지금과는 조금 틀린 것 같았다.
그런데 동굴 벽에 이끼와 말미잘 등 많은 생물들이 달라붙어있어 잘 안보이기에 벽을 문질러보니
그림 밑에 "朱蒙 於是魚鼈成橋" 라고 적혀있었다.
"주몽 어시어별성교?.....주몽?.. 고주몽?.. 혹시 고구려 동명성왕?"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은 난 더욱 궁금해졌다.
이런 곳에다 누가 이런 그림을 새겼을까 의아스러워 더 둘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진영이의 재촉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동굴을 나왔고 우리의 실종에 놀라 수색중인 일행과 합류했다.
조장은 우리에게 한마디 핀잔을 잊지 않았다.
"정재형 김진영 경고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6개월간 스쿠버 금지입니다"
진영이와 난 당연히 그리고 공손히 입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여기는 김제시내 택지지구>
진영이와 같이 민혁이 형 집 앞에 도착했다.
"띵동~ "
"누구세요?"
"형수님 안녕하세요. 정재형 입니다." 민혁이 형은 반색을 하며 우리를 맞아줬다.
민혁이 형의 집은 개인주택인데 앞마당이 제법 넓었고 한쪽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로도 있으며
그 옆에는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도 있었다.
전혀 관리가 않되 있긴 하지만 조그마하게 연못도 있고 어설프게나마 분수도 있었다.
(그 연못의 분수는 지난여름 내가 만들어 줬었다...ㅎㅎ)
민혁이 형이 안내한 마당 나무 테이블에는
상추 깻잎 마늘 초장 등 여러 재료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신문이 덮어져 있었다.
진영이와 난 일단 수돗가에서 소라와 주꾸미 등을 손질해서 냄비에 넣고 불에 올리고
우럭 도미 놀래미 등 생선회를 떠서 테이블로 가져갔다. 역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민혁이 형이다.
"야~ 죽인다. 역시 자연산이 최고야.. 당신도 먹어봐~~~ "
형수도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진영이와 난 형의 호들갑에 피식 웃었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아갔고 형수는 생선뼈와 내장으로 끓인 매운탕을 가져왔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찌게를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얼큰한 게 국물 맛이 끝내준다.
"캬~ 역시 매운탕 솜씨는 아무도 형수를 못 따라갈 거야.. 그치 진영아?"
"네 형님.. 역시 매운탕은 형수님 이예요. 최고예요."
"아이.. 왜 그래요. 부끄럽게...호호호"
민혁이 형도 한마디 거든다.
"아니야! 당신 솜씨는 알아줘야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술이 얼큰하고 배가 부르자 동굴 벽에서 본 그림이 생각났다.
"형님! 혹시.. 주몽 어시어별성교(朱蒙 於是魚鼈成橋)라는 말 아세요?"
"주몽.. 어시어별..성교?"
형님의 말을 끊으며 옆에 있던 형수가 깜짝 놀라며 민망해한다.
"성교?"
"잉? ... 우린 웃음보가 터졌다...하하하하"
민혁이 형이 하는 이야기는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주몽 어시어별성교(朱蒙 於是魚鼈成橋)란...
삼국사기(朱蒙 乃與鳥伊 摩離 陜父 等三人爲友, 行至淹 水一名 盖斯水, 在今鴨綠.
欲渡無梁,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我是天帝子, 何伯 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 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와
삼국유사(瘦者給蒙 王之諸子與諸臣將謀害之 蒙母知之 告曰 國人將害汝 以汝才略 何往不可
宜速圖之 於時蒙與烏伊等三人爲友 行至淹水 今未詳 告水曰 我是天帝子 河伯孫
今日逃遁 追者垂及 奈何 於是魚鼈成橋 得渡而橋解 追騎不得渡 至卒本州.)에 나오는 글인데..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이 적에게 쫒기다 강을 만났는데 집안에 전해내려 오던 신물의 힘으로
자라와 물고기를 불러내 다리를 만들게 하여 그 자라와 물고기의 등을 밟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고구려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재형이가 그런걸 아는 거 보니 다시 봐야겠네?"
"그런 게 아니고요.. 아까 스쿠버를 하다가 수중동굴의 벽에서 봤는데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래? 사실 그 신물이 역사에서 그때 잠깐만 보이고 사라져서 학계에서는 모두들 궁금해 하는 일인데..
그런 내용이 그곳에 써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학계에서 그 후손 중 누가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잠자코 듣고 있던 진영이도 눈을 반짝이며 끼어든다.
"형님! 우리 셋이 그 동굴에 다시 한번 가볼까요?"
"응.. 내가 그 신물에 대해 좀더 알아볼 테니.. 며칠 기다려봐 바.."
"네.. 형님이 그 방면에 전문가이시니 한번 알아봐주세요.."
“그거 보물이죠? 혹시 우리가 찾으면 tv에 출연할 수 있는 건가요?” 진영이가 목소리 톤을 높이며 묻는다.
“그럼.. 당연하지...하하하”
“그럼 내가 찾아야지. 민혁이 형 잘 좀 알아봐줘요. 내 평생소원이 뭔 줄 알죠?”
진영이의 평생소원은 방송 출연이란다.
초등학교 때 모 방송국에서 어린이 노래자랑을 했는데 거기에 출연하려고 며칠을 연습했지만
교내에서 치루는 예심에서 아깝게 탈락하는 바람에 방송출연에 한이 맺혔단다... 하하하
"그래.. 내가 아주 자~ 알 알아볼게... 하지만 고대 전설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말자. "
<2003년 6월 29일 일요일>
이곳은 전북대학교...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도서관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무슨 줄이냐고? 이런... 당연히 공부를 하고자 온 학생들이지...
그런데 가만 보니 학생들 틈에 아는 얼굴이 유모차를 갖고 줄을 서있다. 그는 다름 아닌 강민혁.
도서관의 문이 열리자마자 민혁이는 도서관 자료실로 달리듯 걷는다.
잠시 후 ..
이미 유모차에 책이 여러 권 담겨있고, 계속해서 책을 고르고 있다.
민혁이 고른 책들은 한결같이 삼국시대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삼국사기가 편찬된 이후 어느 날인가 갑자기 죄다 사라져 버렸다는..
그래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내용을 다시 기록한 유기, 구삼국사, 국사, 신집, 고기 등의 역사서들이었다.
잠시 후 열람실 한쪽에서 아주 자리를 잡고 자료를 검토한다.
화장실 갈 때와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유모차에 있던 책이 점점 줄어들고 민혁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오후 5시..
드디어 민혁은 만족스런 얼굴로 A4 용지에 복사한 자료를 유모차를 실고 도서관을 나선다.
<2003년 6월 30일 월요일>
여기는 벽골제...
민혁이 형과 단지 내 시설물을 함께 점검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형의 목소리도 격앙되었고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신물은 고주몽에서 연개소문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다시 종적이 묘연해졌는데
사실은 신물을 소지한 자가 왕이 된다는 전설이 있는바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은 이에 불안을 느껴
자신이 직접 전쟁포로를 진두지휘하여 신물을 땅속깊이 감추고 그곳의 위치를 아무도 발설하지 못하게
그 작업에 참여한 인부를 어느 곳으로 강제로 데려가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민혁이 형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 붙였다.
"그런데 어찌 바다 속에 그런 글이 있는지 모르겠어.. 이번 일요일에 같이 가볼까?"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우리는 무자위 앞에 와 있었고 난 무자위를 힘껏 돌리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궁금하네요.. 형님 이번 일요일 꼭 갑시다."
퇴근 무렵 나는 진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진영아! 이번 일요일 민혁이 형님이랑 셋이서 그 수중동굴에 가기로 했어. 같이 갈수 있지?."
"이번 일요일 요? 각시랑 김제 스파랜드 온천에 가기로 했는데?"
"온천?"
"네.."
" 야! 변산에 있는 해수 온천도 좋아.. 이번엔 그리로 가고 스파랜드는 다음에 가라..
민혁이 형 형수도 데려 오라고 할 테니.. 제수씨 데리고 와 그럼 되지?"
"그래야 되겠네요.. 거기에 내가 빠지면 안 되죠. 알았어요."
"참! 진영아 근데.. 승합차 한대 구해봐라.. 형님 것 스쿠버 장비도.. 알았지?"
"스쿠버 동호회 조장에게 부탁하면 되겠네요... 내가 구해 볼게요. 그럼 그날 봐요."
<7월 6일 일요일>
12시경 승합차 한대가 변산반도 격포 부근에 멈추어 섰고 상기된 표정으로 다섯 명이 내린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무엇인가를 부산하게 준비한다.
"재형아! 니들이 먼저 바다에 들어가 먹을 것 좀 구해와라! 배고파 죽겠다."
"진영아! 우리가 먼저 물속에 들어갔다 오자.. 준비해!"
민혁이 형 부부와 진영이 부인은 주방용품을 펼치고 나와 진영이는 스쿠버 장비를 준비했다.
둘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 여러 해산물을 잡아왔고 손질 후 요리를 한다.
눈 깜짝할 사이 제법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아니다 이정도면 제법이 아니라 진수성찬이다.
용왕님도 접해보지 못할 정도의 정말 푸짐한 해산물 잔치였다.
적당히 배가 차자 우리는 슬슬 준비를 했다. 몸도 풀고 소화도 시킬 겸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진영이와 난 장난 끼가 동해 예전의 국민체조를 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진영이가 민혁이 형에게 간단한 행동수칙을 알려준다.
민혁이 형도 몇 년 전에 두어 번 해본 적이 있어서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 셋은 여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심청이처럼 논개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다.
"조심해 다녀오세요."
진영이 와 난 그날의 아기상어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바다 속을 헤엄쳐갔다.
드디어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우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긴장을 하며 조심스레 동굴로 걸음을 옮기는데
수중동굴에서 뭐가 반짝하기에 보니 그때 그 아기 상어가 헤엄쳐 나온다.
상처도 많이 아물고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니 그사이 건강이 많이 좋진 것 같다.
난 너무 반가워 손을 흔들어주려는데
바로 그때였다.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 발이 얼어붙었고 한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
아기상어 뒤로 큰 상어 두 마리가 헤엄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스럽고 놀랐지만 순간 해양경찰청에서 교육받은 내용이 떠올랐다.
- 작업 시 긴 띠를 준비하였다가 상어를 만나면 풀어서 상어보다 몸이 크게 위장함 -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침착하게 한쪽 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상어는 멈칫하더니 곧바로 우리 코앞을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정말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상어가 안보일 때까지 우리는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휴~~~"
상어가 다시 올까 두려운 마음에 우린 얼른 그림이 있던 곳으로 갔다.
진영이는 주변을 망보고, 내가 이끼 같은 해조류를 바위에서 떼어내자,
조금씩 나타나는 그림과 글씨를 유심히 관찰하는 민혁이 형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민혁이 형이 몸을 돌린다. 확인이 다 끝난 모양이다.
우린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몰속을 빠져나왔다. 모두들 궁금한 표정으로 민혁이 형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그런데 민혁이 형의 저런 심각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뭔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는 변산 해수 사우나...>
난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말했다.
"형님!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거예요?"
"응.. 그림의 내용은 서해안 어느 섬을 나타내는 것 같고,
글씨는 위고암개금 주몽어시어별성교(蝟高巖開金 朱蒙於是魚鼈成橋)라고 써있는데,
뒷문장의 주몽어시어별성교(朱蒙於是魚鼈成橋)는 알겠는데,
앞문장의 위고암개금(蝟高巖開金)은 모르겠어.. 좀더 생각을 좀 해야 되겠어."
진영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머리가 아프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문 공부 좀 할걸..."
"나에게만 미루지 말고 우리 모두 위고암개금(蝟高巖開金)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퀴즈 같아!"
"그래요. 진영아~ 우리 같이 연구 해보자...알았지?"
"알았어요..."
우린 탕 속에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별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목욕이 끝나가는 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앞으로 각자 생각을 계속하기로 하고 탈의실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한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던 진영이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형님! 저기 tv 뉴스 좀 봐요. 혹시 아까 동굴속의 그림의 서해안 섬이 위도를 말하는 거 아닐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tv에는 요즘 위도 방사능폐기장 문제로 부안군민의 민심이 술렁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화면에는 위도(蝟島)라고 크게 써 있었다. 민혁이 형이 무릎을 치며 말한다.
"위도(蝟島)가 맞다. 왜 그걸 몰랐지? 그럼 위고암(蝟高巖)은 위도의 제일 높은 바위..라는 말이고..
진영이가 한건했네?.... 그럼 이번엔 개금(開金)은 뭘까?"
"개금(開金)이라...."
"쇠를 연다?" 그때 내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어릴 때 할아버님께서 열쇠를 개금(開金)이라 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형님! 잠깐만요. 어릴 적에 들었는데요. 할아버지께서 열쇠를 개금(開金)이라 하시던데요?"
"그래? 그렇다면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위도의 제일 높은 바위에 고주몽 설화의 열쇠가 있다?"
순간 우리는 심장 박동이 멈춘 듯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개금(開金)이 열쇠 맞나보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위도로 가자는 눈빛이었다.
아~~ 너무 아쉬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우린 뛰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침착하려 노력했다.
민혁이 형님이 말한다.
"우리 조금 더 알아보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일단 다음 일요일에 위도로 출발하자"
"그래요. 일단 현지에 가서 바위를 눈으로 본 후 다시 의논해요."
<2003년 7월 13일 일요일>
위도로 가는 배에는 민혁이 형, 진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타고 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태연한척 감추며 긴장된 표정으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가 꿀꿀하고 비가 부슬 부슬 내렸다. 우린 비를 맞으면서도 갑판에 그냥 서있었다.
그 이유는 1993년 위도 페리호 전복사고가 떠올라서 솔직히 배 밑으로 내려가기가 무서웠다.
때는 1993년 10월 10일(일) 오전 10시 10분경
서해 페리호가 북부안군 위도면 파장금항을 떠나 부안군 격포 항으로 가던 중
동쪽으로 6㎞쯤 떨어진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적재량과 승선인원 초과와 삼각파도와 돌풍으로 침몰해서 292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가 있었지...
그때 그 사고는 너무도 참혹한 사고였다. 우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묵념으로 영혼을 위로했다.
"부디 이승에서의 고통을 다 잊고 행복만 가득하시길..."
격포 항을 떠난 지 40분 만에 위도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위도는 고려 때부터 조정 관리들이 유배되면서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고슴도치를 닮았다하여 고슴도치 위(蝟)자를 쓴다.
또 벌금 항에서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위도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하고, 모래밭을 건너 빼어난 절경에 빠져 있노라면
곧 분지를 이루는 산이 나오고 그곳에서 으악새(억새)가 떼거지로 슬피 운다.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돌 수 있는 12km의 해안일주도로는 연인들에게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꿈꾸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질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
그런데 요즘.. 그림처럼 평화로운 섬 위도가 핵폐기물센터 유치를 둘러싸고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어서 모든 게 순리대로 잘 해결 되어 예전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랬다.
마음이 바쁜 우리는 서둘러 망월봉(望月峰, 255m)에 올랐다.
역시 망월봉 정상에 바위가 있었고,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바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위 표면엔 글씨인가 그림인가 뭐가 있긴 있는데..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이 바위 위에 올라가 메아리를 불러 대서 그런지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이 부릅뜨고 세 명이서 돌아가며 바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격포 항을 향하는 마지막 배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어쩌지?
"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봐 뭘 그리 보는가? 지금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을 텐데?"
그 소리에 우린 귀가 번쩍 뜨였다
"지금은? 그럼.. 예전에는 보였다는 것 아닌가?"
돌아보니 연세가 지극한 노인 분이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혹시 이 바위에 무슨 글씨가 있었나요?"
"나도 이야기만 들을 것뿐인데 글씨는 아니고 그림이라 하던데..."
"어르신 혹시 무슨 그림인지 아세요?"
"응... 어릴 때 조부님께 들었는데 그 바위에는 용의 그림이 있다고 들었네..."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민혁이 형을 보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눈치다.
말을 마친 노인은 산 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우린 공손히 인사드렸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우리 셋은 이곳을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 다음주에 다시 한번 와야겠네요. 오늘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하네요."
민혁이 형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자꾸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진영이 와 난 형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오는데
산 중턱에 아까 그 노인이 앉아있다. 진영이가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 저희들 먼저 내려가 볼게요.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건강하시고요."
진영를 보는 노인의 눈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진영이를 불러 세운다.
"어이~~ 젊은이! 나 힘들어 못 내려가겠는데 나 좀 업고 내려가 줄 수 있겠나?"
진영이의 등에 업힌 노인이 놀라운 말을 한다.
"작년에도 누가 물어봤었는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셋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우리 셋은 노인의 말을 끊으며 동시에 물었다.
"저희 말고 누가 그걸 물어 본 적이 있었어요?"
"일년쯤 되었지 아마......."
아! 우리가 한발 늦었나보다. 모든 게 수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한 가지 안 가르쳐준 게 있지"
"그게 뭔데요?"
"음... 사실은 용의 그림 주변에 구름도 있었고
용 그림위에 누가 장난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의 머리를 그리려다 그만 둔 것 같은 그런 닭의 그림이 있었지.. "
우리가 그들보다 한발 늦었다는 생각에 기운이 다 빠진 채로 산을 내려 왔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과연 비밀을 알아냈을까?)
노인분과 헤어지려는데 노인분이 한마디 더 하신다.
"이 사람들아~ 힘내.. 그림이 세 개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네들뿐이야~~"
그래.. 그들이 먼저 왔다지만 우리가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어르신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우린 진심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고 격포 행 배에 올랐다.
우리 셋은 그림에 대한 깊은 생각을 골똘히 하느라고 대화 없이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용, 안개...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노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음...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용 그림 위에 누가 장난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의 머리를 그리려다 그만둔 것 같은 그런 그림이 있었지..
그리고 그때 남자 두 명에 여자 한명이었는데... 젊은 아가씨의 왼쪽 볼에 있는 보조개가 참 예뻤어..."
"닭... 그리고 보조개라....."
(난 개인적으로 보조개 있는 여자를 무척 좋아하는데...쩝..)
김제에 도착한 우리는 단골집인 "금평상회"에 들렸다.
금평상회는 일반 슈퍼인데 가계 안에 테이블이 두개 있고, 값이 저렴해서 우리가 주로 애용하는 단골집이다.
우리는 주로 맥주를 마시는데 안주로는 갑오징어가 환상적이다.
사실 우리는 갑오징어 먹으러 이곳에 온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안녕 하세요?"
"네! 어서와요. 이번엔 왜 이리 오랜만 이래?"
"그렇게 되었네요. 장사는 잘 되시죠?“
“그저 그렇지 뭐”
“갑오징어와 맥주 주세요."
"형!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큰 거예요."
진영이는 화장실에 간다.
맥주를 마시며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던 민혁이 형이 입을 열었다.
"만일 수중동굴의 그림과 글씨가 위도를 가리키는 게 맞다 면 답은 둘 중 하나야.
망월봉(望月峰)의 암석 밑에 무엇인가가 있던지. 아니면 다른 장소를 가리키던지.."
난 나도 모르게 "엄정화의 몰라"를 불렀다. 흉내도 내면서...
"몰라! 알 수가 없어~~"
화장실에서 진영이가 왔고, 맥주 몇 병을 더 마셨고, 우리의 술자리는 소득 없이 끝이 났다.
<여기는 강민혁 집>
땡! 땡! 벽시계가 새벽 2시를 알린다. 강민혁..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와 밖을 바라보다가. 이번엔 밖으로 나간다.
잘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정원을 서성인다.
"용....안개...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런데 닭은 또 뭐야... 가만...닭?.... 한자로는 계(鷄)?
그렇다면... 용계... 계룡... 계룡?"
순간 민혁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계룡산(鷄龍山)...
- 능선이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鷄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풍수지리에서도 명산이며, 무속신앙과 관계 깊은 신비스러운... -
갑자기 강민혁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능선이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부른다는.... "
"맞아... 그 노인의 이야기 중 그림이 겹쳤다는 것은, 단지 일반인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
사실은 닭의 벼슬을 쓴 용의 그림 이었던 것이야."
<여기는 정재형의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나는 곤히 자다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 보 세 요.."
"재형아! 계룡산이야! 계룡산!"
나는 투덜대려다가 민혁의 들뜬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계룡산 요?"
"그래! 계룡산은 능선이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불렸거든.... "
그이야기에 나는 잠이 번쩍 깼다.
"아니 그럼 용 그림과 닭 그림이 계룡산을 암시하는 열쇠였네요?"
민혁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바로 그거야.. 또 하나의 문제는 안개가 계룡산 어느 곳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직 모르겠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계룡산이 맞는 것 같네요. 근데 지금 몇 시 인줄 알아요?"
"아이고... 벌써 2시가 넘었네? 미안해. 하던 일 계속해."
"하던 일 요?"
"응.. 잠자던 중 이었잖아.. 그럼 계속 자라고...ㅎㅎ
"네. 자세한건 내일 이야기해요. 형님도 이제 그만 자요. 노인네라서 잠도 없구먼...ㅎㅎㅎ"
전화를 끊은 후 잠을 청해보았지만 설레는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용과 닭이 계룡 이었다니...음...계룡산(鷄龍山)이라... 그렇다면 이제 안개(霧)가 문제인데... 무(霧)...
혹시 계룡산 지형 중 무(霧)자가 들어간 곳이 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2003년 7월 14일 월요일>
여기는 벽골제 유물전시관...
민혁이 형과 계룡산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내 휴대폰이 울린다.
"응.. 진영아.. 어디야.."
"유물전시관 안내데스크인데. 형은 어디 있는 거야.."
"3전시실로 와.. 민혁이 형이랑 같이 있어."
진영이가 구해온 자료는 계룡산의 상세 지도였다. 지도를 내밀며 진영이가 말한다.
"1차로 내가 확인해봤는데 안개 무(霧)자 가 들어간 지명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랬다 우리 세 명이서 아무리 봐도 안개 무(霧)의 글씨가 들어있는 지명은 없었다.
진영이가 서류봉투에서 또 다른 자료를 꺼내며 말한다.
"이번 토요일에 오전 근무하고 계룡산으로 출발해요. 물론 그때까지 자료 수집은 계속하고요."
진영이가 내밀은 자료는 생각보다 꼼꼼했다.
민혁이 형과 나는 진영이가 준비한 자료가 너무도 훌륭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새워줬다.
"김진영... 화이팅!"
<2003년 7월 19일 토요일>
진영이가 벽골제로 찾아왔다.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퇴근시간이 13시인데 12시부터 와서 어서가자고 보채고 있다.
우리들 사이에 진영이의 별명은 "순돌이 아빠"다. 맥가이버 보다 솜씨가 더 좋은 순돌이 아빠...
진영이는 손재주도 좋고 성격 좋고 유머감각도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한 가지 좀 터프하다. 그 터프함을 감추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좀처럼 감춰지지 않는다.
진영이는 군대생활을 김해 공병학교에서 지뢰폭파반 교관으로 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작은 폭발로 우리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한다.
그런데 주로 성냥개비의 황으로 장난을 치는걸 보면 전혀 전문가 같지는 않은데..
본인이 계속 우기니 믿을 수밖에...쩝
일년 전부터 진영이는 석궁 사격장을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바닷속에서도 작살 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소도시라서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마다 쉬는 것을 보면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부인에게 일당 10만원 주고 맡겨놓고 왔다고 한다. ...ㅎㅎ
12시 30분경이 되자,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3시가 되자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침하늘이 너무 맑아 기상청예보를 웃었는데,
정말 비가 오고 있다. 몇 년 전에 비해 일기예보가 정확해졌다.
13시.. 우린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내리는 이 비의 양으로는 끓어오르는 우리의 열정을 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출발합시다. 가다가 우비 하나 사지 뭐..." 역시 용감한 진영이었다.
나도 진영이 편에서 망설이는 민혁이 형에게 다가서며 몸을 비볐다.
"아~~~이~~~잉~~~ 가자~~~"
"하하하..."
<여기는 고속도로 상행선 여산 휴게소>
서전주 I.C 로 고속도로에 진입해 유성I.C 를 향해 달리던 우리는
여산 휴게소에 들려 간단한 요기를 한 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전의(?)를 불태웠고 주유 후 다시 출발했다.
연료비를 무시할 수 없어서 지프인 진영이차를 이용하긴 했는데 경유차라 너무 시끄러웠다.
대화도 못하고 음악도 못하고... 그런데 차라리 그게 잘되었는지 모른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고대 유물을 발견하기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가슴을 두근거리며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까...
출발하기 전 우리는 탐사 위치를 계룡 8경중의 제7경인 은선 폭포를 거쳐 제4경인 관음봉으로 목표를 정했다.
그 이유는 관음봉이 계룡산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계룡 8경]중 안개나 구름의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은선 폭포와 관음봉"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특별한 정보를 구할 때까지 계룡산을 탐사하고 주변 마을에서 전설이나 설화를 조사 해보기로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호남 고속도로 유성I.C 에 도착했고, 32번 국도를 탔다.
진영이가 준비한 교통자료는 정확했다
(호남고속도로 유성I.C →32번국도 공주방향 7.2km 진행 →조각공원앞에서 좌회전후
1번 국도로 1.5km 진행 →학봉초등학교에서 우회전 →1.8km →동학사 입구)
동학사에 도착했다. 아까보다는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아직도 비가 멈추질 않고 부슬 부슬 내린다.
동학사 입구의 "자작바위"의 지명은 세조가 초혼제를 지내고 돌아갈 때
뒤를 돌아보면서 넘어질듯 자작걸음을 걸으며 울었다고 하는데 에서 유래했다 전하는데...
우비를 입은 우리는 매표소 직원들의 "비 오는데 무슨 짓이야?"라고 하는 듯한
꺼림칙한 눈빛을 뒤로한 채 은선 폭포를 향해 자작걸음(?)으로 걸었다...ㅎㅎ
오늘 산행은 은선 폭포를 탐사한 후 은선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관음봉까지 가는 것이다.
꽤 많은 비가 온다. 가뭄으로 마음으로 많은 고생을 해왔던 농민들이 한시름 놓게 될 것 같았고
저수율이 낮아 걱정하던 수자원당국도 조금은 안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학사에서 은선 폭포까지는 약 1km 안팎인데 빗길이어서 1시간 넘게 걸렸다.
은선 대피소에 이르기 전,
진영이가 대피소가 숲 사이로 바라보이는 지점 주등산로 왼쪽의 아래의 경사진 바위위로 가더니
"형님! 여기서 폭포가 보여요!"라고 말하기에 가서보니 은선 폭포가 보인다.
드디어 은선 폭포에 도착했다.
은선 폭포의 길이는 약 30m쯤 되는데, 가뭄일 때는 물줄기가 미미하여 별로 볼품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수량도 풍부하고 오랜만에 폭포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우리는 은선 폭포 정면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로 가서 넋을 잃고 바라봤다.
비, 안개, 폭포.... 분위기가 너무 멋지고 황홀했다.
잠시 후 나의 시선은 폭포 옆의 나무숲속으로 향했다.
폭포 옆 나무 숲속에는 칡넝쿨이 얽혀있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동굴이 있다.
바로 그곳은 나에게 위험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난 민혁이 형과 진영이에게 그때 사건을 이야기해줬다
"음... 7년 전 1996년 8월.. 대학교 여름 방학 때였지..
나는 대학 때 등산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스쿠버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 극기 훈련을 왔었어.
은선 대피소에서 며칠을 묵으며 한밤중에 담력 훈련으로 등산도 하고
새벽에는 근처에 개발되지 않은 작은 동굴 속 연못에서 스쿠버훈련도 했었는데
스쿠버 훈련 중 친구와 함께 그 연못 속에서 길을 잃고 위험에 빠졌었거든
다행이 구조가 되긴 했지만 그 와중에 물속에서 공기통을 분실 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 스쿠버 회원 여러 명이 동굴 연못에 들어갔었지만 공기통을 찾지 못했다는 거야
동굴 지하수로는 매우 불규칙한 미로 같았고 생각보다 깊어서 길을 잃기 십상 이었어..."
내말을 들은 진영이가 묻는다.
"지금은 자신 있죠? 언제 시간 내서 형님이랑 여기 한번 와야겠네요."
"그래 그때는 나도 스쿠버를 몰라서 물속에 들어가니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고..."
"재형이형! 우린 환상의 스쿠버 짝꿍이잖아요. 같이 한번 꼭 옵시다."
"그래..."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빙그레 웃던 민혁이 형...
갑자기 심각한 얼굴이 되어 주변을 살피더니... 입을 연다.
"안개.... 재형아! 우리가 계획을 잘 세운 모양이다!
아직 관음산에 안 가봤지만 아무래도 이곳의 안개가 우리가 찾는 안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에 진영이와 나도 그런 예감이 들었고, 다시 폭포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띠는 게 없었고, 계속해서 추적추적 비가 내렸기에 일단 은선 대피소로 가기로 했다.
은선 폭포에서 500m정도 위에 위치한 은선 대피소는 71년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장들이 들어설 때 지어졌다한다.
지금 건물은 87년 개축한 것으로 정기천-김기순 노부부가 관리하고 있으며
숙박이 가능하나 한두 시간이면 하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묵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랜만에 산행을 했기에 그런지 배가 고팠다.
참고로 대피소에는 컵라면, 차 종류 등을 팔며, 술 담배는 취급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안개속의 산장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최고였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피소의 김기순씨는 "새 할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77년부터 남편과 함께 은선 대피소를 관리해온 김씨는
어느 해 겨울인가부터 눈밭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새들을 위해 모이 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할미새, 박새 등, 온갖 새들이 부화한 새끼들까지 데리고 와 모이를 먹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할머니와 가까워진 새들은 이제는 지나가는 탐방객들의 손에 내려앉기에 이르렀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셋은 동시에 말했다
"나도 잘할 수 있었는데....쩝"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무래도 다시 폭포로 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민혁이 형이 웃으며 말한다.
"샤워하는 기분으로 비 맞으며 그냥 내려가 볼까?"
진영이와 나는 박자를 맞추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절대로 그리는 몬 합니다....ㅎㅎㅎ“
“날짜를 너무 잘못 잡았나 봐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올 줄은 예상치 못했지 뭐야."
"하룻밤 묵기로 했으니 다행이지 하마터면 낭패를 볼 뻔 했어요"
이 빗속에 산을 내려가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뭐 억지로 내려 갈수도 있겠지만
아마 빗길에 넘어지고 뒹굴고 온몸이 머드 팩이 아닌 황토 팩으로 범벅이 되고
얼굴에 상처도 입고 멍도 들었겠지, 멀쩡히 생긴 남자 세 명이서 온몸에 황토 팩을 하고 옷이 찢겨지고
코피마저 질질 흘리며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푸하하하..
민혁이 형이 생각난 듯 말한다.
"참! 공주박물관의 학예연구사에게 전화 한번 해볼까?
계룡산의 역사와 설화, 전설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어차피 이곳에서 이렇게 발목 잡혀있는데 전화한번 해 보세요"
그때 옆에 계시던 대피소를 관리하시는 어르신이 말을 건 낸다.
"이봐 젊은 친구! 궁금한 게 뭔데... 계룡산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많이 알지..."
"그래 맞아..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어르신! 계룡산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그래 말해보게나~~"
민혁이 형이 먼저 묻는다.
"혹시 계룡산내의 여러 지명 중에 안개나 구름 등의 글씨가 들어가는 이름이 있나요?
"음... 특별히 이름에 들어있다기보다 이 대피소 아래의 은선 폭포와
계룡산의 중심에 있는 관음봉에 그런 안개와 구름의 이야기가 있지."
"이야기라뇨? 전설 말인가요?" 진영이가 급하게 묻는다.
"자네들도 들어봤겠지만 [관음봉의 한운]이라 해서 계룡산의 중앙에 위치한 관음봉의
정상에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는 말이 있지.
그리고 [은선 폭포의 운무]라고 해서 옛날 신선들이 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숨어 지냈다하고
특히 안개가 자욱할 때의 풍광이 압권이라고 하지..
그런데 안개나 구름이 그곳에만 있는 게 아닐 진데 유독 그곳을 그렇게 표현한 게 이상하지 않나?"
이번엔 내가 물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그건 왜 그런 거죠?"
"그건..."
그때였다. 다른 일을 보시던 할머니께서 버럭 화를 내시는 거다."
"영감!"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당황해하시며 말을 멈추셨다.
"아니네.. 거기까지만 알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네... 허허허"
"잉?" 우린 영문을 몰랐다.
우리는 어르신을 따라다니며 여러 차례 졸라봤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음 이야기는 안 하시는 거다.
그리고 끝내 우리를 피하려는 듯 비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다.
우린 할머니를 돌아봤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보신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뭘까?
창밖을 보니 산중인데다 비가 오는 탓에 어느덧 깜깜해졌다.
<2003년 7월 20일 일요일>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어제 피곤해서인지 9시경이 되서야 일어났다.
우리가 간단한 아침을 먹고 관음봉으로 출발할 때까지도 할아버지는 안 보이신다.
비는 멎었고, 안개에 묻혀 있는 계룡산은 관음봉으로 향하는 우리의 눈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은선 대피소에서부터는 다소 지루한 돌밭이다. 힘이 많이 든다.
오랜만 의 산행이라 숨이 차오르고 다리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걷기 힘든 돌밭, 경치도 눈에 안 들어온다. 그저 전진 또 전진이다.
진영이는 멀쩡해 보이는데 난 너무 힘들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발걸음을 세며 오른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끙끙.."
마침내 관음봉 고개에 도착했고.. 잠시 후 숨을 몰아쉬며 관음봉에 도착했다.
"휴~~ "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니 젊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에 바위 한쪽에 정답게 앉아 김밥을 먹는 커플이 눈에 띈다. 부럽다...
여자는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재형아 이쪽으로 와봐라.." 민혁이 형이 부르는 바람에 그쪽으로 갔다. 그곳에 가보니..
십여 명의 중학생들에게 선생님인 듯한 분이 계룡산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으니 선생님 티가 물씬 풍긴다. 지식도 풍부하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그때였다. 갑자기 불어오는 한줄기 돌풍에 안개가 회오리친다 싶더니,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어머나!.."
소리 나는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엇인가가 내 품으로 날라 온다. 얼떨결에 잡고 보니 모자였다.
그것은 바로 아까 그 커플 중 여자의 모자였다. 모자에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이 참 좋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그 여자가 내게 다가온다. 사뿐 사뿐 걸어오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어느새 내 앞에까지 다가선 그녀..
그녀의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리고... 그리고... 보조개가 있다.
겸연쩍게 살짝 웃고 있는 그녀의 볼에 보조개가 있는 것이다.
"아얏!" 갑자기 옆구리가 아파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내 앞에 와서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모자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멍~ 하니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진영이가 내 옆구리를 꼬집어준 것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모자를 받아갔다... 아니 빼앗듯이 가져갔다.
그리고 그 커플은 그길로 산을 내려갔다.
나는 왜 보조개를 보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지 모르겠다. 보조개...
아~~ 오늘 모처럼 만난 나의 이상형의 여자에겐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정말 부러웠다.
진영이가 나를 바라보며 놀린다.
"얼레리 꼴레리..."
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민혁이 형도 날 놀린다.
"얼레리 꼴레리..."
또 다시 강풍이 불어온다. 아무래도 내려 가야할 것 같다.
산세가 수려하고 계절마다 독특한 멋을 보인다는 명산 계룡은 끝내 모습을 들어 내지 않는다.
우리의 이번 산행이 별다른 수확이 없어서 어차피 다시 와야 할 계룡산 이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우린 대피소에 잠깐 들려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사실은 관리소 어르신을 만나보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대피소를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마주친 어르신은
할머니를 힐끔 바라보시 더니 일부러 우리를 피하듯이 밖으로 나가신다.
유리창으로 보니 이번엔 가시는 방향이 은선 폭포 쪽이다... 끙
차를 마신 우리도 서둘러 출발했다.
다시 한번 들려보자는 민혁이 형 말에 우린 은선 폭포에 다시 왔다.
폭포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별다른 무엇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민혁이 형이 말한다.
"하긴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는 없을 거야,
다음에는 정확한 정보를 갖고 와야 할 것 같다. 내일부터는 자료 수집을 하자."
폭포를 막 떠나려는데 대피소의 어르신이 우리 쪽으로 오시더니 내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시며
"미리 보지 말고 꼭 산을 내려가서 보시게.."라고 하신 후 빠른 걸음으로 대피소로 올라가신다.
우린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그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쪽지를 펴봤고 쪽지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주차장을 나가서 가다보면 학봉리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 마을에 가서
조인호 할아버지를 찾게 나 그분이 계룡산에 대해서 잘 아시고 계시지.."
주차장을 출발하여 유성 I.C 를 향해 가다가 도로변에 통나무를 이용하여
고풍스럽게 [학봉리]라고 쓴 마을입구를 알리는 푯말을 발견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밭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다.
진영이가 유리창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난 진영이 엉덩이를 때렸다.
"찰싹!"
"아야! 왜 그래요?"
차에서 내려 정중하게 여쭈어봐야지 그게 뭐야... "메롱!"
난 차에서 내려 아주머니께 정중히 물었다
"아주머니! 말씀 좀 여쭐게요!"
아주머니께서 돌아보신다.
"저.. 이 동네에 조인호 할아버님 사시나요?"
"조인호?... 글쎄... 아! 그 고집쟁이 영감님?"
아주머니께서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신다.
"그 할아버지 사시는 댁이 어디예요?"
"응.. 저기 파란 기와지붕 뒤에 보이는 슬래브 집 보이지? 바로 그 집이야"
"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집은 문이 열려 있어서 문을 밀고 들어갔다.
"계십니까?"
"..............."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세요?" 6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하나가 뒷마당에서 돌아 나온다.
"어른 아무도 안계시니?"
"네! 아무도 안 계시는데요."
"꼬마야~ 우리는 할아버지를 만나려고 왔는데 할아버지 어디 가셨니?"
"우리 할아버지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가셨어요."
"기침?" 감기인가?
뒤에 있던 민혁이 형이 명함을 내밀며 말한다.
"네 이름 뭐니? "
"재민이요."
"그래 재민아~ 할아버지 오시면 이것 좀 전해줘라. 꼭!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온다 했다고 말씀 전해드려 알았지?"
"네 알았어요."
"재민아 잘 있어라. 또 보자!"
우린 별 대화 없이 김제에 도착했고, 우리의 첫 번째 계룡산 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2003년 8월 24일 일요일>
나는 유성으로 향하는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을 달리고 있다.
계룡산에 다녀 온지 한달여의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유물에 대한 더 이상의 자료를 얻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계룡산을 다시 찾아가려고 마음먹었다가 몇 번을 그만두었는지 셀 수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잊고 지냈던 조인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래 가보자. 그 할아버지를 만나보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요즘이 휴가 막바지인지라 고속도로에는 피서를 떠나는 차량이 길게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고,
휴가철에는 변산 격포에서 익산 전주 등 집으로 돌아가는 피서객들이 벽골제에 들려
잠시 쉬어가는 경우가 많아 벽골제 직원들은 모두 비상근무 하느라고 아직 휴가를 가지 못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민혁이 형이랑 함께 출발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진영이에게 전화를 해보았으나 진영이의 석궁장도 손님이 많아 못나온다고 한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주얼리’의 ‘니가 참 좋아.’
여자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관음봉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가 생각난다.
향긋한 내음의 그녀가... 보조개가 예뻤던 그녀가...
어느덧 학봉리 마을이 보인다. 동네 입구로 들어서는데..
무슨 일인지 동네입구 도로변에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갔다.
도로변 중간 중간 전봇대에 "喪家"라는 글과 화살표가 그려진 종이가 붙어있다.
동네의 어느 집이 상을 당했나보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느낌이 이상하다.
그랬다. 조인호 할아버지 집 대문에 "喪中"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했단 말이야?"
"설마..."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답답하다.
빈소 앞으로 다가서는 나의 눈에 보이는 영정의 사진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마당 한쪽에 상복을 입고 있는 그때 그 꼬마... 아니 재민이가 보였다.
"재민아... 잘 있었니? 나 알아보겠어?"
잠시 머뭇거리던 재민이가 나를 기억해냈다."
"아! 기억나요. 근데 어쩌죠? 우리 할아버지 어제 하늘나라 가셨는데..."
"어제?"
"예! 한 달 전쯤에 병원에 다녀오신 후 건강해지셨는데, 어제 밤 갑자기.. 에이~ 하루만 일찍 오지... "
머리 속이 멍~ 해지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영정을 바라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나무라는 듯 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빈소에 절을 했다.
"부디 고통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시길..."
허탈한 마음으로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잠깐만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무심결에 돌아보니 상주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저.. 혹시... 강민혁씨...이신가요?"
"아.. 저는 그때 민혁이 형이랑 같이 왔던 사람인데요..."
내말을 들은 상주가 옆에 있는 재민이를 바라보니, 재민이는 맞다 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것 받으세요. 아버님께서 임종하시기 직전에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이걸 전해주라 하시며 제게 맡겼어요." 라며 편지봉투를 내민다.
봉투를 황급히 받아 열어보았고, 그곳에는 [鷄龍 霧瀑內 魚鼈]이라 써있었다.
"계룡 무폭내 어별?... 혹시... 계룡산 안개 폭포 안에 물고기와 자라가 있다???"
난 너무 기쁘고 놀라서 하마터면 상가 집에서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서둘러 상가 집에서 나오려다가 뒤돌아서 영정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어느새 은선 폭포를 향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 주변 경치를 감상할 여유는 없었지만 은선 폭포로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은 뛰었다.
드디어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신물이 모습을 보이는 것이란 말인가?
결국 단서를 얻은 것이다. 한 달 동안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안개가 피어나며 나를 반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폭포주변은 안개가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안개폭포라고도 하고,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폭포를 마주하고 섰다. 오늘은 떨어지는 폭포수의 양이적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폭포 안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폭포가 떨어지는 곳은 그냥 절벽 같은 낭떠러지인데..."
한참을 자세히 관찰 했으나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어디선가 상큼한 향이 나의 코를 자극한다.
"잉? 이 향기는? 그래 코에 익은 향기다...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있는 향기... 바로 보조개 여인의 향기..."
주변을 살펴보니 아까는 분명 없었는데 어느 틈엔가 오른쪽 관람객 틈에 그녀가 서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 혼자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쿵쿵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녀의 왼쪽 볼에 있는 보조개가 자꾸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난 그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꼈고
한발 한발 그녀에게 다가서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난 그녀 옆에 서있었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저...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
"누구시죠?"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쩝..
"저 모르시겠어요?"
"...............??"
"서운하네요.. 한 달 전쯤 관음봉에서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 잡아줬었는데... "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한다.
"아... 이제 기억나네요...호호호"
이제야 그녀가 나를 기억해냈다.
"그땐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그날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이곳엔 자주 오시나 봐요? 지난번에는 일행이 계시던데 오늘은..."
"네.. 오늘은 혼자 왔어요."
"산을 무척 좋아 하시나 봐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힘없이 말한다.
"산을 좋아한다기보다 이 폭포에 자주 온답니다."
"그래요... 사실 저도 이 폭포에 관심이 많아서..."
내말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다른 폭포에 비해 멋있지도 웅장하지도 않고 별로인데 왜 이곳을?"
"네.. 이곳의 전설에 관심이 있어서요."
"이곳의 전설을 아세요?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네..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
그녀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도 무심코 고주몽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녀의 반응에 놀랐다.
"그 설화를 아세요?
"그 설화를 아세요?
그녀와 난 서로에게 동시에 물었고, 그리고 둘 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그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막 떠들고 다닐만한 내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먼저 내려가 볼께 요."
"저... 잠깐만요!"
하지만 그녀는 내말에 뒤도 안돌아보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전설을 아는 것도 그렇고.. 서둘러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좀 이상했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그녀가 남기고 간 독특한 향기가 나의 마음속으로.. 나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나보다 앞서 산을 내려간 그녀가 호젓한 산길에 남기고 간 향기가 나를 인도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향기가 점점 짙어지는 듯 하다.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무슨 일이예요?"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
"발목을 삐었나 봐요."
알고 보니 그녀는 바쁜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다가 발을 삐끗하여 넘어졌는데 마침 오가는 사람도 없었고
발목이 너무 아파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상태로 10여분을 있었던 것이었다.
신발을 보니 등산화를 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화를 신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목을 살펴보니 벌써 부어오르고 있었다.
우선 삔 발목을 고정시키고 더 이상 손상 받지 않도록 압박붕대로 감싸주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라 압박붕대가 없는 것이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밴드스타킹 신으셨어요?"
"네?"
"압박붕대용으로 쓰려고 하니 스타킹 벗어보세요. 스타킹이 고탄력이라 효과가 있을 거예요."
"............."
"괜찮겠지 생각하고 아파도 참다가 훗날 고생하지 말고 어서주세요."
"............. 그래요."
그녀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지 스타킹을 벗어주었다.
"왼쪽 스타킹도 벗어 주세요."
스타킹으로 그녀의 발을 신발을 신은 채로 신바닥의 굽 바로 앞에 접은 붕대의 중간을 대고
양끝을 발뒤꿈치 위(뒤)에서 교차시킨 후 다시 발목 앞으로 돌려 여기서 다시 교차시켜
양끝을 발뒤꿈치의 양쪽을 지나간 붕대 밑으로 넣어 걸어서 다시 발등에 이르러 묶었다.
통증을 줄이려면 얼음찜질이 급하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업히세요."
"................"
"이 상태로는 걸으면 큰일 나겠어요."
그녀는 내 부축을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풀썩 주저앉는다.
"순해 보이시는 분이 고집도 세네요.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업히세요."
"아니.. 그래도 어떻게...."
난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말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왕이면 잘생기고 마음착한 저를 한번 써보세요.
이번에도 거절하시면.. 그냥 울어 버릴 거예요?"
내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녀 이제 서야 내 등에 업힌다.
그녀를 업고 내려가는 길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 아니 사실은 많이 힘들다.
그녀가 내 등에 자연스레 업혀야하는데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그런지 뒤로 버티는 바람에 힘이 들다.
하지만 나도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도 많이 떨렸으니까.
"참! 집이 어디세요? 어디까지 모셔다 드려야죠?"
"저는 학봉리에 살아요. 학봉리 아세요?"
"알아요. 조인호 할아버지 사시던 마을이죠?"
"그 할아버지를 아세요?"
"잘 아는 건 아니고 큰 은혜를 입은 일이 있지요."
"맞아요. 학봉리 마을 뒤 언덕위에 있는 집에 살아요. 죄송한데 집까지 좀 데려다주세요."
"네 그러죠."
그녀를 업고 산을 내려오는데 대화가 없다보니 분위기가 어색했다. 난 다시 말을 걸었다.
"아참! 그런데 전에 관음봉에 함께 오셨던 분은 누구세요?
"오빠예요."
"그렇군요. 두 분이서 너무 잘 어울리시던데... "
"호호호.. 그래요?"
"두 분 사이가 자연스러운걸 보니 사귀신지 오래 되셨나 봐요?"
내말이 우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호호호~~~~~~~~~"
".............?" 난 그녀의 보조개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한참을 웃던 그녀.. 보조개를 씰룩거리며 말한다.
"뭘 그리 보세요. 창피하게...
오빠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당연하죠. 한집에 산지 26년 되었으니까요."
"26년요? 무슨 말씀인지...."
"진짜 오빠예요. 제가 26세거든요. 호호호..."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몸이 갑자기 깃털같이 가볍게 느껴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요? 저는 두 분이서 연인사이인줄 알았어요.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네요. 하하하..."
"......?"
주차장에 도착한 후 슈퍼로 먼저 갔다.
우선 아이스크림 4개를 사서 비닐봉투에 2개를 넣어 얼음 팩을 만들어서
주차장에 있는 그녀의 차안에서 발목의 스타킹을 풀고 얼음찜질을 해줬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감동으로 흔들린다.
멋 적은 나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그녀에게 권했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녀가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내차를 주차장에 두고 그녀의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차에 시동을 걸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너무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음악이다.
라디오인가? 하며 살펴보니 테이프였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인데.. 좀 청승맞죠? 마음에 안 들면 끄세요."
카세트를 끄려는 그녀의 손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니 예요. 분위기 있고 참 좋으네요."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제목을 모르겠어요. 제목이 뭐죠?"
"Meav(메이브)Solveig"s Song 이예요.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곡이죠."
"아... 그렇군요."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차속에는 두 가지의 황홀함이 나를 들뜨게 한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향기와 그녀만의 음률이...
나도 이 테이프를 차에 두고 듣고 싶었다. 이 테이프를 구하고 싶었다.
"근데.. 제가 머리가 나빠 그러는데 제목을 적어주시겠어요?"
"그러죠. 호호호..."
메모지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메모지 없으면 그냥 제 손등에 적어주세요. 손바닥은 금세 지워지니까."
"그럼 그럴까요?"
그녀는 한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내 손등에 음악 제목을 적어준다.
그런 그녀의 보조개를 바라보며 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휴~~ 큰일이다... 왜 이렇게 내 마음이 떨리는 거지?)
마을에 도착했으나 동네사람들이 지켜보는데 다 큰 처녀를 업고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마을에 상(喪)을 당한 집이 있질 않은가. 하는 수 없이 멀긴 했지만
그녀를 업고 마을 뒷길로 돌아서 그녀가 사는 집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힘이 많이 들었지만 내색하기 싫었다.
그녀의 집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했으며 원목으로 지은 이층집의 별장 분위기가 나는 그런 집이다.
정원도 제법 넓었고 관리가 아주 잘된 작은 연못엔 비단잉어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그녀를 거실 쇼파에 앉혔다.
"오빠는 집에 안 계신 모양 이예요?"
"네! 아침에 일이 있어서 공주시내에 나갔어요."
"부모님은?"
"오빠랑 둘이 살아요."
".......? 냉장고는 어디 있죠?"
"주방에요. 그런데 냉장고는 왜요?"
"얼음찜질을 더 해야 해요. 제가 다시 해드릴게요."
"아니 예요. 이제 제가 할게요."
"냉찜질도 요령이 있어요.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에요."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얼음 팩을 만들어 그녀의 발목을 냉찜질을 해주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그때 그 남자.. 아니 그녀의 오빠가 들어왔다.
처음엔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던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자초지정을 듣고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 예요.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거예요. 동생분이 워낙 미인이시라..."
오빠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그녀의 발을 살피다가 안심이 된 듯 환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진심으로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정말 우애가 깊은 형제였다.
잠시 후 그녀의 오빠가 차를 타왔다.
"응? 무슨 차예요? 향이 참 좋네요?"
"자스민 차 예요. 중국에서 직접 가져왔죠."
"중국에 자주 가시나 봐요? 전 한번도 못 가봤는데..."
그녀와 오빠는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더니 나에게 묻는다.
"계룡산에는 혼자 오신 거예요?"
"네!"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살짝 변하더니 내게 말한다.
"오늘 고마웠어요. 혹시 다음에라도 계룡산에 오시게 되면 들려주세요."
말투가 이제 그만 가라고 하는 것 같아 섭섭했지만 난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이제 그만 가볼게요. 몸조리 잘하세요."
"오빠! 이분 차가 동학사주차장에 있어요. 거기까지 데려다 주세요. 제 차로 함께 왔거든요."
"그래.. 가시지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그녀의 오빠는 나를 주차장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손등에 그녀의 필체가 남아있다.
Meav(메이브)Solveig"s Song, 노르웨이 그리그.
유성 I.C 로 나가는 길에 학봉리 마을 앞에 다시 멈췄다. 고개를 빼고 그녀의 집을 바라보았다.
지붕만 살짝 보인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속도로를 달렸고
김제에 도착하자마자 금만 사거리의 국제음악사에 들렸다.
"Meav(메이브)Solveig"s Song 있죠?.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곡인데..."
음악을 듣고 있으니 그녀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녀는 왜 폭포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변할까?
"음... 이상한일이야..."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바보... 난 아직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아이고! 바부 븅신 쪼다 멍충이 날라리 깽깽이 같은 놈..."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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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예쁜 발님 아 !그리고 들판 나들이님 수고 만점 읽느라~~~~
ㅎㅎㅎ
예쁜 발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종결을 지으셨군요....자가 카페 주인들을 북돋기 위한 음악선물을 언릉 드려야 되는건데...ㅎㅎ...카페도 번창되시기를요~ 두고 두고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다음 편 준비하시는것 게을리하지 마시고요..ㅎㅎ
예쁜발님의 탈고를 축하드립니다. 아직 세세히 읽어보질 못해서 뭐라 말한수는 없지만 참 대단하세요.
에고, 예쁜발님. 언제 후편이 이어지나요? 캄캄해서 서리..... 보고싶네요. 예쁜발님 새 글이.....^^*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