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쁘고 감사하게./살전 5:16-23.
예전에 우리나라는 참 가난했었습니다. 본시 부요하지 못했던 나라였는데 36년의 식민지 생활과 6. 25 동란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불과 60년 전 일입니다. 그때는 국민소득이라고 할 것이 없었고 전쟁이 끝난지 한참이 지난 61년도에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0불 정도였습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었습니다. 거지들이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곤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엘 가면 외국에서 보내 준 우유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나누어 주곤 했었습니다. 옷도 그렇게 얻어 입곤 했었는데 그것을 우리는 구제품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제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학교 수위셨는데 당시 월급이 쌀 한가마 반을 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돈으로 생각하면 25만원 정도였습니다. 25만원으로 세 식구가 한 달을 살아야만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제일 가난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정말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실패하고는 세운상가에서 점원 노릇을 일 년 정도했었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만 이 천원 정도였습니다. 78년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임 전도사가 되었을 때 제가 처음 받았던 월급은 7만 원이었습니다. 동료들 중에 많이 받았던 친구들은 당시 10만 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그해 7월인가 제직회에서 어느 집사님이(그 집사님이 누군지 아직도 기억합니다.) 우리 전도사님이 월급이 너무 적다고 발언을 하여 12만 원으로 올려 받았습니다. 그 때 갑자가 월급이 12만 원이 되었을 때 얼마나 부자처럼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불과 30년이 조금 지난 이야기입니다.
텔레비전과 전화와 냉장고가 있는 집이 부잣집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74년도에 선풍기를 들여 놓았었고, 75년도에 텔레비전을 들여 놓았습니다. 금성 19인치 흑백 텔레비전이었는데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서 받은 보상금으로 들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냉장고와 전화는 80년도에 놓았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을 장만하고 행복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새벽종을 치고 일찍, 일찍 일어나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 길을 넓혔습니다. 고속도로도 놓았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은 김용기 장로님의 가나안 농군학교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과 운동이 나라를 살렸습니다.
나라는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78년도의 제 월급이 12만 원이었는데 82년도에는 50만원을 넘게 받았습니다. 82년도에 자가용도 생겼습니다. 물론 교회서 준 차였습니다. 차 넘버가 7540이었던 아주 낡은 포니 원 이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서울 거리에는 자가용이 그리 많지 않아 서울 어디든 30분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83년도에 교회에서 맵시나라고 했던 1,300cc 새 자동차를 뽑아 주었습니다. 그때 행복했던 것은 말도 못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정말 부자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평균을 넘어선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후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하여 지금은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되었습니다. 화폐의 구매력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3만 불 수준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는데 제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제일 부요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제일 잘 입고, 제일 잘 먹고, 제일 잘 노는 것 같아 보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할 때 새벽마다 동네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새마을 운동 노래였습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정말 그 노래대로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전쟁 통에 태어나 60년대에 국민소득 100불 미만인 때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구제품을 얻어 입고 우유가루와 옥수수가루를 배급 받아 먹으며 살았던 세대인데 지금은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세대에 국민소득 100불 미만의 최빈국에서 국민소득 2만 불이 되는 OECD 즉 선진국의 삶을 사는 사람은 세계에 몇 나라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과 발전을 이룬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의 개발도상국가들과 빈국들의 로망입니다. 꿈입니다. 모델입니다. 물론 아직도 개인적으로 가난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잘 사는 일이라면 우리는 새마을 노래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이루어야만 할 최종적인 우리의 꿈일까요? 이와 같은 성장과 발전이 우리를 정말 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요? 소득 100불에서 2 만 불을 이룬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다 행복한 것일까요? 국가적으로 말고 개인적으로도 빈곤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부자로 사는 것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선교하고 있는 러시아 노보니꼴쓰꼬에 고려인들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열매나눔재단이 세운 공장과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부자가 되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너희도 한 번 정말 잘 살아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소원이요 말씀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던 당시 국가 지도자의 뜻과 소원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좀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마을 길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종을 치고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국민소득을 높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여 부자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과 뜻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정말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살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잘 사는 길과 법이 본문 19절에서 22절 사이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정말 행복하게 잘 살려면,
첫째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행복할 때는 성령의 충만을 느낄 때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입니다. 소위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 믿는 최고의 축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의 매주 토요일 결혼주례를 합니다.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를 보면 참 예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행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혼의 때만큼 행복한 때가 인생 중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성령충만의 삶이 영적인 신혼생활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느끼는 행복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교인들 중에는 그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점점 더 크게 늘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 안타까운 것은 후자의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낡은 포도주 부대와 같은 사람이 되어, 부대가 낡아 포도주가 다 새어버린 사람처럼, 그래서 새삼스런 은혜도 없고, 감동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에 삶에 절대로 기쁨 없습니다. 감사 없습니다. 행복 없습니다. 돈도 중요하고, 세상적인 성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성령의 충만 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은혜 충만을 욕심내십시오. 성령이 소멸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이 낡아빠진 포도주 부대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둘째, 예언을 멸시치 마십시오.
여기서 이야기하는 예언은 ‘앞일을 말 함’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면 살수록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진리가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를 진정 잘 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 된 본능을 자꾸 이 하나님의 말씀 즉 예언을 멸시합니다. 무시합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학교로부터 예배당으로 쓰던 강당을 비워 달라는 공문을 받았을 때 제 상식과 본능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작정한 200억 원의 헌금을 우선 전용하여 우리 예배당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예배당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것을 나중으로 조금 미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 즉 예언은 누가복음 9장 62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정말 순종하고 따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5천 명 출석교인을 데리고 길 밖으로 나 앉게 생겼는데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헌금을 전용하여 보이는 예배당의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된다고 예언해 주셨습니다. 길바닥에서 예배드릴 각오를 하고 순종하였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것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 속에 은혜가 넘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제 평생에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2008년 9월 7일 주일 설교를 준비하다 받은 하나님의 예언은 성령충만함을 받아 부흥하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사탄의 시험으로 핍박을 받아 사방으로 흩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사탄은 불을 끄려고 핍박하여 흩었지만 교회는 그로 인해 사방에 불을 지르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그 감동을 높은 뜻 숭의교회를 분립하라는 예언으로 받았습니다. 교회를 분립하면 내가 손을 떼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순종하였더니 그 또한 제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기쁨이 되었습니다. 감동이 되었습니다. 감사가 되었습니다. 예언을 멸시치 않고 순종할 때마다 제 삶엔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 즉 예언을 멸시치 말아야만 합니다.
셋째,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에게 ‘사람이 죄 안 짓고 어떻게 사냐?’고 반문합니다. 살려면, 잘 살려면 중요한 때 한 두 번쯤은 죄를 지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잘 살 수 없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면서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쥐도 새도 모를 것이라고 합니다. 송곳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그것을 끝까지 감추기는 어렵습니다.
죄는 암과 같습니다. 암은 처음에 자각 증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입니다. 죄가 꼭 그와 같습니다. 죄가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이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러나기 전에도 죄는 치명적입니다. 그것은 죄가 우리에게서 성령을 소멸케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은혜를 빼앗아 가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우리를 잠시 세상에서 부자가 되게 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잠시도 잘 살게는 못합니다. 그냥 부자로 사는 것이 아닌 정말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되려면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만 합니다. 억만금이 생겨도 죄와는 타협하지 않고 의를 고집하다가 핍박을 받는 한이 있어도 죄를 받아 들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도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하며, 늘 기뻐하며 행복하게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를 믿는 근본적인 이유요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늘 기쁘고 감사하게 사는 것입니다.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세상적인 성공을 위하여만 최선을 다 하다가 그것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도 없이, 은혜도 없이, 삶의 감격도 없이 초라하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속상합니다.
건성으로, 습관적으로 예수를 믿지 말고, 그냥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 그를 의지하고 믿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며 범사에 좋은 것만 취하고 억만금이 생겨도 악은 흉내도 내지 말고 모양이라도 버리며 살아보십시오. 그리하여 정말 이 땅에서 구원의 감격을 날마다 누리며 세상적으로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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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과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