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건강, 어떻게 지켜야할까? - 위에 좋은 음, 헬리코박터균 자세히 알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이하 헬리코박터)는 우리 나라에서 꽤 유명한 세균이다. 이 세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 생리ㆍ의학상을 받은 호주의 베리 마셜 박사가 국내 한 유산균 제품 광고를 찍은 것이 헬리코박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헬리코박터는 특이하게도 위(胃)가 주 활동 무대다. A형 간염처럼 비위생적인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으로 부모가 음식을 씹어서 자녀의 입안에 넣어주면 침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음식이나 술잔을 돌려 마시는 것도 감염의 원인이다.
한국인은 절반 이상이 위에 헬리코박터를 지니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위생 상태가 나아지면서 많이 개선된 수치다. 20년 전만 해도 성인 감염률이 70%에 달했다. 10년 전엔 감염률이 60%로 낮아졌고 현재는 55% 정도다. 이 세균은 대부분 소아ㆍ청소년기에 감염된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소아ㆍ청소년의 감염률은 절반 아래로 감소해 현재는 10% 내외로 추정된다. 따라서 앞으로도 성인 감염률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균 있어도 위암 걸리지 않아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헬리코박터 양성(검출) 판정을 받으면 겁이 덜컥 날 것이다. 위궤양과 위암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위암 발생률은 10만 명당 63명으로, 일본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 헬리코박터에 감염되면 위암에 걸릴 위험성이 3∼8배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헬리코박터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가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므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헬리코박터 감염에 위축성 위염ㆍ장상피화생(위 벽의 점막이 소장 벽의 점막처럼 변한 상태) 등이 동반돼야 위암 위험도가 높아진다. 위암의 발생 원인에서 헬리코박터 감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짜고 비위생적인 음식 섭취 등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 등도 관련이 있다.
헬리코박터에 감염되면 위암 외에 급성 위염ㆍ만성 활동성 위염ㆍ만성 위축성 위염장상피화생ㆍ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 등 다양한 병이 생길 수 있다. 특히 감염 후 만성 위염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감염돼도 증상이 전혀 없는 ‘운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헬리코박터를 진단하는 검사법의 정확도는 90% 정도로 아직 완벽하지 않다. 헬리코박터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은 뒤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나중 검사에서 균이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염증 등 다른 이유로 복용한 항생제 덕분일 수 있다. 각종 세균에 대한 무차별 ‘공세(항생제)’에 헬리코박터가 ‘유탄(流彈)’을 맞아 죽었을 거란 가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진단 검사가 부정확해서 균을 찾아내지 못한 탓이 원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
무조건 제균 치료할 필요 없어
만약 검사에서 헬리코박터가 검출되면 균을 죽이는, 이른바 제균(除菌) 치료를 받아야 할까? 헬리코박터 감염이 확됐더라도 소화 불량 정도의 증상만 있다면 제균 치료 대상이 아니다. 대개 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ㆍ림프종이 있거나 가족 중 위암 환자가 있거나 위암 수술을 받은 경우 균을 없애는 치료에 들어간다. 일본에선 지난해부터 헬리코박터가 만성 위염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되면 균을 없애는 치료를 환자에게 권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헬리코박터 감염 초기에 균을 죽이면 위암 발생 위험이 낮아진다는 일부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우려해서인지 헬리코박터에 의한 만성 위염으로 진단돼도 제균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감염+만성 위염’을 갖고 있다면 균을 없애는 치료를 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조언하는 소화기내과 전문의들이 더 많다.
헬리코박터는 세균의 일종이므로 항생제를 사용해야 죽일 수 있다. 항생제에 견디는 힘이 강한 헬리코박터를 한 종류의 항생제론 죽이기 힘들다. 보통 세 가지 약(위산 억제제 1종, 항생제 2종)을 함께 처방한다. 여러 개를 복용하므로 설사ㆍ입맛 변화ㆍ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매년 헬리코박터의 항생제 내성이 강해지는 것도 문제다. 10년 전만 해도 균을 없애는 치료를 하면 10명 중 9명은 효과를 봤으나 성 탓에 지금은 치료 성공률이 60∼70%로 떨어졌다. 성인 대상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성공해 균이 모두 죽었다면 재감염 가능성은 연간 5% 미만이다.
녹차·마늘, 헬리코박터 증식 억제
헬리코박터 감염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식품들도 있다. 요구르트 등 유산균 발효유와 홍삼, 녹차 등이다. 이들은 항생제가 아니므로 균을 이진 못한다. 그러나 균의 증식을 멈추거나 늦추는 데는 도움이 된다. 특히 녹차가 헬리코박터 증식 억제에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가 많다.
항균 효과를 지닌 마늘도 헬리코박터를 죽여 궤양 예방을 돕는다. 생강과 꿀을 함께 섭취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위 속의 헬리코박터를 어느 정도 ‘소탕’할 수 있다.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 연구진은 마누카 꽃에서 얻은 마누카 꿀이 헬리코박터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고 발표했다.
위암 예방을 위해 헬리코박터의 제균 이상으로 강조되는 것이 있다. 싱겁게 먹는 것이다. 소금 섭취를 갑자기 줄이기 힘들다면 신선한 채소(양파ㆍ마늘 등)나 우유를 충분히 섭취한다. 이런 식품은 소금의 ‘독성’을 중화시킨다. 특히 우유에 풍부한 칼슘은 위 점막 세포를 보호하고, 채소의 항산화 성분은 유해(활성)산소를 없앤다. 서양인 중에도 짜게 먹는 사람이 많지만, 한국ㆍ일본인보다 위암 발생률이 낮은 것은 채소ㆍ우유를 즐겨 먹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위암을 예방하려면 대표적인 위암 발암물질인 니트로스아민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니트로스아민에 최대한 적게 노출되려면 질산염이 아질산염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남은 음식, 특히 채소를 바로 냉장고에 보관하면 음식 속의 질산염이 아질산염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음식을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것도 위암 예방법이다.
위암 책에서 식생활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진단이다. 위암은 일찍 발견하면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이기 때문이다. 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 등 소화성 궤양은 속이 쓰린 증세가 오래가면 누구나 일단 의심하는 질환이다. 보통 여성보다 남성의 소화성 궤양 발생률이 2배가량 높다. 일반적으로 위궤양은 50대, 십이지장궤양은 30대 환자 수가 가장 많다. 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 환자 수를 합하면 40대가 최고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의 주원인은 헬리코박터와 더불어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ㆍ진통제다. 스트레스ㆍ흡연궤양을 유발할 수 있다.
박태균 중앙일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