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찰교향악단 지휘와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영원한 마에스트로 정철주
박숙현(작가)
영원한 마에스트로 정철주(79). 현재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장 겸 음악감독인 그는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여전히 객석을 가득 메운 세종문화회관 무대 위에 선 국립경찰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정철주로 기억되고 있다.
25년간 몸담았던 국립경찰교향악단을 정년 퇴임한 2004년, 곧바로 민간오케스트라인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약을 한 정철주 단장. 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지는 10년이 넘었다. 1986년 충남 대둔산 경찰충혼탑 제막식 연주를 하러 가는 도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2010년 본의 아니게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더 이상 지휘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의 음악 인생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이때부터 지휘를 인계하고 단장 겸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용인필을 성장시키는 데 더욱 혼신을 쏟았다. 정철주는 자신의 자리를 이어
용인필을 키울 국내외 저명 지휘자를 초청해 풍부한 경험으로 지도하게끔 정성을 쏟아 짧은 시간에 용인필을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성장시켰다. 자신이 직접 지휘만 하지 않았을 뿐 그의 마음은 영원한 지휘자다. 그는 실력이 뛰어난 젊은 지휘자들에게 많은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우리나라 음악 발전에도 이바지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20년을 한결같이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놀라운 기획과 폭넓은 레퍼토리 이끌어
용인필은 지난해 9월,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최현석 창작곡 ‘2022 관현악을 위한 아리랑 미르 용인’을 초연해 용인에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중심 용인……, 우리 민족의 역동성이 넘치는 이곳! 선인들의 지혜와 숨결이 어린 풍요로운 이 땅에 새로운 아침 해가 떠오른다. 보라!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태양을……우리 모두 한민족의 번영의 새 역사를 위한 발걸음에 한마음으로 노래하자. 고난을 극복하고 얻은 환희의 찬가로의 승화를 이룬 아리랑 미르를…….”
탄탄한 연주 실력을 갖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용인필은 특히 용인을 배경으로 한 이러한 창작곡을 계속 발표함으로써 시민들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용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유일한 연주단체로 주목받고 있다.
“용인에 용인을 상징할 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창작곡을 만들어 이것을 하나의 자산으로 만들어두기로 한 거죠.”
그동안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선보인 창작곡은 ‘용인의 빛과 소리 판타지’ ‘굼벵이’ ‘회상’ ‘용인 하늘울림 땅울림 판타지’(20분 소요) 등으로 용인필을 특화하면서 발표 때마다 연주회장을 찾은 청중을 감동하게 했다.
정철주 단장은 20년을 한결같이 용인필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기획과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관객을 매료시키는 무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주춤했던 공연이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용인필의 본격적인 연주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엄선된 63인의 전문 연주인으로 구성된 정상급 연주단체인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용인시 민간오케스트라 지원육성사업 단체에 선정돼 지난봄, 차이콥스키를 연주해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용인필은 20년이 넘는 역사성이 있어서 많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오디션에 해외 유학파까지 좋은 단원들이 많이 지원한다.
용인필은 지금까지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기획연주 등 380여 회에 이르는 공연을 했다. 다양하고 색다른 예술적 요소들을 결합하는 차별화된 무대와 다채롭고 특색있는 프로그램으로 청중에게 깊고 넓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며 지역 예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또 고전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유롭게 소화해냄으로써 음악 애호가들이 다양한 관현악의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 정철주와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만남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빛나는 찬사 뒤에는 항상 정철주 단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용인필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경찰교향악단을 정년퇴직하기 2년 전인 2002년이었다. 그해 막 창단한 용인필 단장이 정철주 당시 국립경찰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찾아와 객원지휘를 부탁했다. 34명 단원 규모의 용인필의 초창기 상황은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도저히 용인필만으로는 연주가 어렵다고 판단한 정철주 단장은 경찰교향악단을 투입해 무대에 섰다. 용인여성회관에서 열린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2004년 정년 퇴임하자 용인필로부터 상임지휘자 요청을 받았다. 민간오케스트라를 키워보자는 뜻으로 승낙했다.
경찰교향악단 시절, 110명 4관 편성의 대규모 국립 단체를 이끌던 스케일과 전국을 대상으로 펼쳤단 화려한 연주 경험의 소유자를 지휘자로 모실 수 있던 용인필로서는 더 이상의 행운이 있을 수 없었다. 그처럼 유능한 선장이 함께한다는 것은 용인필의 탄탄대로를 예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찰교향악단 시절, 안 해본 무대, 안 해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워낙 탁월한 기획력까지 겸비했던 정철주 단장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자산은 무궁무진하다. 이 황금 보따리를 용인필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정철주 단장은 국립경찰교향악단 시절의 풍부한 경험과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용인필을 짧은 기간에 정상급 연주단체로 성장시켜 오늘에 이르게 했다.
2004년 용인필로 오게 된 정철주 단장은 오케스트라 단원 오디션을 통해 실력 있는 단원 선발부터 시행하고자 했다. 때마침 용인교향악단이 통합을 요청해와 용인필과 용인교향악단을 합쳐 용인시교향악단으로 재창단을 했다. 그 후 2009년 오디션을 통해 63명 정예 단원을 갖추고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철주 상임지휘자가 이끄는 용인필은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정철주의 명성의 덕도 한몫을 했을 터였다.
지금도 용인필에 인재들이 모이는 것은 정철주라는 우뚝한 선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적극적이고 젊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용인필 운영을 위해 관심을 쏟고 있다. 남다른 아이디어와 운영의 묘안도 많다.
# 국립경찰교향악단을 경찰의 꽃으로 만든 명지휘자 정철주
정철주 단장은 30대 젊은 시절에 국립경찰교향악단에서 첫 지휘봉을 잡았다. 그때 그가 보였던 패기와 추진력은 대단했다.
정철주 단장은 1981년 8월 10일, 내무부 산하에 창설된 국립경찰악대 초대 상임지휘자로 임명됐다. 그때 정 단장은 육군본부 군악대 부대장을 막 전역한 직후였다. 육해공군 군악대장의 추천을 받아 경찰악대 초대 지휘자로 전격 특채가 됐다. 초창기에 경찰악대였으나 정철주 단장이 교향악단으로 바꿨다.
“군악대는 군가를 연주해서 군인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지만 경찰악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좀 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수준 있는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딱딱한 경찰에서 부드러운 경찰의 이미지로 순화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군악대를 따라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을 한 거죠.”
국립경찰악대는 최초 영국 근위병 군악대 80명 체제를 본받아 80명에 예비병력 30명을 포함해 110명 체제의 관악기 편성을 갖췄다. 정철주 단장이 점차 이를 개편해 유휴 인력까지 포함해 현 파트 50명, 관 파트 60명으로 갖춰 야외 행사도 가능하고 오케스트라 연주도 가능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갖췄다.
“경찰에서는 좋은 꽃이 생긴 거죠. 매년 세종문화회관에서 4천석 객석이 꽉 찬 가운데 정기연주회를 했죠.”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부임하자마자 창단한 지 2개월도 안 돼 악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10월 21일, 제36회 경찰의 날을 맞아 기념식 무대를 매머드급 무대로 대성공시킨 일이다.
세종문화회관 기념연주에 출연하기 위해 경찰가를 테마로 한 경찰교성곡을 이병욱 작곡가에게 의뢰해 곡을 완성했다. 부족한 악기들은 육해공군 군악대의 협조를 받았다. 80명의 연주 단원들을 편성해 연습했고, 합창단은 경찰대학생 120명(제1기)과 여경 80명을 합쳐 200명의 대 합창단을 편성했다. ‘얼굴’ 작곡가 신귀복 씨의 합창 지도를 받아 마침내 경찰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좌우로 의장대가 기를 들고 들어오고, 200명의 합창단과 80명의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져나왔다. 세종문화회관을 놀라게 한 공연이었다. 무대 메인 행사를 끝냈을 때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당시 기념식 주관사였던 KBS한국방송 피디가 애초 악기도 부족하고 창단 2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막상 연습 과정을 보면서 욕심을 내 마지막 주 무대를 장식했다.
정철주 단장이 부임 2개월도 채 안 돼 벌인 통 큰 행사였다. 대 성공이었다. 부임하자마자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때 작곡가며, 합창 지휘를 맡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장관 표창을 받았다.
국립경찰교향악단에 25년 동안 몸담고 있으면서 세종문화회관 연주는 매번 초만원사례를 이뤘고, 정철주 지휘자는 풍부한 레퍼토리로 청중을 매료시키면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게 했다. 정철주 단장은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50여 회를 연주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지휘자로 꼽힌다.
국립경찰교향악단이 용인 구성읍에 있는 국립경찰대학교 부속이었기 때문에 용인과 인연이 있었지만, 용인에서 연주 활동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 용인은 예술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초청 자체가 별로 없었고, 막상 초청 연주회를 할 때도 전국 문예회관을 순회했던 정철주 단장의 눈에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설무대를 만들어 연주하거나 문예회관에는 음향판조차 제대로 갖춰있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용인은 인구 110만 명의 거대도시가 됐고 특례시가 됐다. 정철주 단장은 실력을 갖춘 용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특례 시민을 위해 보다 더 자주 시민 곁을 찾아가는 열정적인 연주단체로 거듭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박숙현|작가. 저서로 『태교는 인문학이다』 등이 있음. 현재 이사주당과 태교신기, 처인성, 김윤후 등 지역학을 연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