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콜럼버스 항해의 성공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콜럼버스의 항해 / 바하마제도 입성
항해를 떠나 70일 만에 미대륙 앞 바하마제도의 작은 섬에 첫발을 디딘 콜럼버스 일행은 그곳이 인도(India)인 줄 알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도사람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라 불렀는데 영어로 하면 인디언(Indian)이다.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곳은 바하마제도의 쿠바 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 구아나아니(Guanahani) 섬이었는데 이름을 ‘구세주’라는 뜻의 산살바도르(San Salvador)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아직도 미국 앞의 바하마제도를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라 부르고, 미국 원주민을 인도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언(Indian), 중남미 원주민을 같은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로 부른다.
그리고 동양의 진짜 인도(印度/India)는 ‘동인도(東印度)’라고... ㅎ
첫 항해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엄청난 환영을 받았지만, 그 이후 항해에서 금과 향신료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콜럼버스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콜럼버스는 그 후로도 세 차례 더 신대륙을 다녀왔지만 세 번째 항해에서 총독 지위는 물론이고 그동안 신세계에서 얻었던 모든 재산을 잃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자신을 가장 믿고 지지해 주었던 이사벨 여왕이 죽었고, 콜럼버스도 2년 뒤 바야돌리드에서 숨을 거뒀는데 스페인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그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결국 자신이 발견한 쿠바(Cuba)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을 가져다준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하여 콜럼버스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모셔오는데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세비야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하고 스페인의 네 명의 왕이 관을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을 통일하기 전 아라곤(Aragon), 카스티야(Castilla) 등 작은 네 개의 왕국이 있었는데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항해에 투자(投資)하자 각 왕국의 왕 중에서 두 명은 찬성하고 두 명은 반대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관을 앞쪽에 메고 의기양양하게 머리를 들고 있는 왕들은 찬성하였던, 그리고 뒤쪽 두 왕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모습인데 반대를 하였던 당시 왕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콜럼버스가 죽은 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이처럼 탐험가들이 발 벗고 모험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발단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곁들여진다.
※콜럼버스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1492년 10월 12일.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12일 콜럼버스 데이(기념일)이다.
<6>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이야기(전설) 속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되어있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았다.
또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벌거벗은 온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내는데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제물로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황금도시로 꿈의 도시요, 이상향이었다.
그 이후 엘도라도 붐이 일어나 탐험가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찾아 나서는데 콜롬비아의 산간오지(山間奧地)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탐험가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고,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細工技術)을 보면 정말 이곳 어디에 엘도라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측컨대, 정복자들이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구했는지 물었을 것이다.
차마 약탈(掠奪)했다고는 못하니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Aztec)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Cortes)는 아즈텍의 마지막 왕이었던 쿠아우테목(Cuauhtemok)을 인질로 삼고 그의 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왕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즈텍 사람들은 황금을 가지고 와서 방에 가득 채우고 석방할 것을 탄원하지만, 복수가 두려워 결국 왕을 죽여 버리고 마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만큼 이곳 중남미지역은 황금이 많이 생산되었던 곳이었다.
나는 남미 콜롬비아를 홀로 배낭여행을 했는데 이곳 황금박물관을 비롯하여 엄청난 유물유적을 둘러보고 왔으니 이 이야기가 이해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콜럼버스(1451~1506)가 조금 서운할 일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을 첫 번째 탐험가였던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고 후배 탐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의 이름에서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으니 억울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