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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식과 구성의 미학
- <검댕이> 작가 이은희의 삽화가 있는 수필집 『버선코』를 읽고 -
권대근
(문학박사, 수필비평가)
Ⅰ. 열며
이은희 수필은 관조의 눈으로 발견한 것을 인식의 체로 걸러낸, 한마디로 산문으로 쓴 몸시詩다. 여기서 ‘관조의 눈’이란 칸트의 심미적 취향이요, ‘인식의 체’란 평범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치열한 삶의 응시요. ‘산문으로 쓴 시’란 전략화로 빚어지는 예술 수필의 경지를 보이는 작품이란 말이다. 이은희는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수상으로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하여 줄곧 수필문단과 독자의 각별한 관심을 모은 실력 있는 작가다. 2004년에 등단한 후로 2005년에 수필집 『검댕이』, 2007년에『망새』를 발간하였고, 2009년에 세 번째 수필집 『버선코』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놀라운 창작 열정이다. 이은희 수필을 읽노라면 그녀는 형이하학적 제재의 속성을 잘 파악하여 형이상적인 인간과 우주의 본질로 나아가는 데 참으로 익숙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면에서 품어 나오는 열정의 거친 호흡뿐만 아니라 eye-catching의 흡인력까지 느껴진다. 바로 ‘필마’의 기운이다. 그녀의 수필을 읽는 순간 우리는 촉촉한 감동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 전달된다. 전업작가가 아니면서도 이처럼 편편이 수작인 수필을 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수필집 『버선코』를 읽으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문예성이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감동이 전해오는 이 책에 실린 40여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녀의 수필세계를 진단해 결과, 몇 가지 측면에서 문학적 특성을 범주화할 수 있다. 수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크게 한국적이고 민속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는 수필, 삶 속에 녹아있는 그리움과 정에 얽힌 수필, 성찰이 돋보이는 수필, 참신한 발견과 새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수필들로 대별된다. 이는 이은희 수필이 지니고 있는 성격에의 구분일 수 있고, 또한 주제적인 지향성이나 내적 구조의 유형일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식의 체’와 ‘관조의 눈’이 돋보인 수필집『버선코』에 실린 작품들에는 이전 수필들과 마찬가지로 긴장감을 갖추고 있기에 치열한 작가정신이 드러나 있다. 문학성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가 없으면 본격수필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소재라 해도 작가는 그것과 하나 되려는 동화와 삶 속에서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본격수필을 빚어낼 수 있었으리라 본다. 어머니의 손길과 사유의 창을 열고, 열정을 뿜어내며 그녀가 달려가는 문학성이란 고지로 가보자.
Ⅱ. 펼치며
1. 참신한 발견과 새로운 구성 미학
수필의 쾌미는 인식에서 나온다. 수필을 창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의미이다. 발견은 수필쓰기의 첫 번째 과정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글감을 찾아내는 정도의 발견으로 좋은 수필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즉, 인식을 통해 의미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은희의 수필 <실죽>, <폐타이어>, <제자리걸음>은 참신한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실죽>에서 작가는 으레 비어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대나무 땅속줄기의 속이 꽉 차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땅속줄기가 대나무를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음을 알아채고 삶의 비움과 채움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나간다.
그것은 실죽이었다. 나의 앎은 표피에 머물며 여태껏 보이는 세계만 말하였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던 땅속 세계, 강한 흔들림에 대비한 뿌리와 속이 꽉 찬 땅속줄기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무들이 폭풍우에 뿌리째 뽑혀나갈 때, 대나무가 단단히 버틸 수 있던 비결이었다.
-<실죽> 전개 부분-
남다른 탐구와 관찰을 통해 작가는 드디어 ‘사람도 대나무처럼 삶의 마디가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자신의 삶에서 비워진 부분과 채워진 부분을 점검해보기에 이른다. 좋은 수필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발견하는 데서 생성된다. 이은희의 수필의 위대성은 쓰기의 출발점을 인식에 둔다는 점에 있다.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참신한 발견에서 빛을 발하고, 문학적 형상화에서 그 꽃을 피운다. 삶의 한 가운데 위치한 그녀가 쏟아내는 언어들의 내포에는 불꽃이 피어 있다. 그 불꽃은 삶을 관통하고 있어 더욱 향기를 품어낸다. 그녀는 ‘오래된 풍경’을 좋아한다. 수필을 읽는 매력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읽는 데서 나온다고 볼 때, 명징한 삶의 사유로 빛나는 그녀의 수필은 매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폐타이어가 초장에 반기를 든 이유일 게다. 내 삶처럼 제 육신이 마모되는 줄 모르고 도로를 활보하였다. 까칠한 주인의 성정에 맞추느라 얼마나 애를 태웠을 것인가. 결국, 목숨 줄인 속도를 잃고 버려진 자신의 모습, 바라던 종말은 아니었으리. 거기 울타리로 버티며 화려한 거리를 바라보다 ‘한때는 나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자신을 위로하겠지.
-<폐타이어> 전개 부분-
<폐타이어>에서 작가는 타이어의 생성과 활용 그리고 버려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본다. 타이어나 작가나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고무나무에 상처를 내어 받은 수액으로 타이어가 생성되는 것처럼 어미의 몸을 찢고 나왔고, 타이어가 쉼 없이 질주하는 삶을 산 것처럼 자신도 성공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으며, 타이어가 닳아 폐타이어가 될 즈음 자신은 지난 삶을 반성의 눈으로 재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폐타이어를 변신의 귀재로 정의하고, 문학이라는 새로운 길에서 주춤거리지 않고 변화를 도모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수필을 인간학으로 구성한 것이다. 자신을 삶의 반성대 위에 세우고 자신을 향해 채찍질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은희는 이런 노력을 승화시켜 ‘몸부림’, ‘담금질’이란 이름으로 구성하고, 세파에 꺾이지 않는 문사가 되길 원한다. 이은희 수필을 읽는 매력은 위의 수필처럼 발견, 상관화, 동화, 성찰, 결속성이란 단계적 층위를 가지며, 특히 발견의 단계에서 참신한 인식을 맛보게 한다는 점이다.
수은등 불빛 아래 물기둥이 눈부시다. 물기둥은 분수의 상징, 아니 뜨거운 심장이었다. 물기둥은 솟았다 떨어져 파장을 만들지만, 금시 제자리의 골을 타고 유유히 흘러간다. 물방울도 자기들끼리 보이지 않는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니 결국 서로 배려하며 순리를 따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돌고 도는 분수의 생리와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제자리걸음> 뒷부분-
<제자리걸음>에서도 작가의 인식은 크게 빛을 발한다. 베트남에 있는 공장을 인수하게 된 회사의 실사팀을 이끌고 그곳을 방문한 작가는 마음의 거리가 느껴지는 그곳 직원들과 간격을 좁히는 방법을 두고 고민한다. 분수의 물기둥이 솟았다 떨어지는 모습 속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본다. 분수의 물방울들이 충돌을 일으키지만 순리를 따라 흐르고 다시 물기둥으로 솟는 모습을 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돌고 도는 분수의 생리와 같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단순한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삶의 담금질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참신한 발견으로 인해 이 수필은 독자에게 문학적 쾌락을 주며 본격수필로 탄생할 수 있었다. <폐타이어>와 <제자리걸음>의 이런 인식은 결말 단계에서 삶에 대한 성찰로 연결되어 형상 미학으로 빛난다. 삶에 대한 고도의 세련된 지적 통찰은 이은희 수필의 핵이다. 디지로그 풍경 속에 핀 노마디즘 미학을 구축한 수필 <맥놀이>에 수놓아진 ‘삿된 기운’, 목어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물고기 날다>에 놓여진 ‘삿된 생각’ 그리고 작은 돌탑을 순정한 간구의 상징으로 본 <난쟁이 탑>에서 발견된 ‘삿된 마음’이란 문구를 통해 우리는 이은희 작가가얼마나 경건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영혼의 순수를 지켜내려고 노력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구성상의 참신함 역시 이은희 수필의 큰 강점이다. 작가가 내용과 사건을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배열을 거꾸로 한다거나 시간과 공간을 병행한다거나 체험과 인식을 교차시킨다거나 두 개의 체험을 함께 엮는다거나 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작가는 시도한다.문학의 아름다움은 탄탄한 구성에서 나옴을 알고 있음이다. 탄력성에의 질주다.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 인생을 보는 작가의 세련된 고도의 성찰과 정연한 논리는 그녀의 탁월한 구성 미학에 힘입어 비장한 손맛을 풍긴다. <괘릉>, <비자금>, <느티나무>, <이랑, 물결=주름>이 구성적 측면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은희는 <괘릉>에서 알려진 이런 방법들과는 다른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다. <괘릉>의 구성은 ‘능 주인 왈’ - ‘나그네 왈’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나그네 왈’ 부분은 다시 나그네의 말-경주 소나무-무인석- 사자석-12지신석-결미로 짜여진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능 주인 왈’ 부분에서는 능 주인이 화자가 되어 자신이 누군지 관심이 부족한 후세인들에게 노여움을 토로한다. 이어지는 ‘나그네 왈’ 부분에서는 능 주인의 말을 감지한 나그네가 능 주인의 조언대로 괘릉을 에워싸고 있는 풍경과 수호사자인 무인석과 지신석을 살펴보고 그 감흥을 표현한다. 그 외에도 작가의 구성상의 노력을 한 가지 더 찾아볼 수 있다. 처음과 끝을 문단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다섯 줄의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여 구성상의 수미상관을 이룬 것이다. ‘답답하다. 왜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는가?’, ‘능 주인이여, 넘 서운히 생각마소.’ 선인과 후세인의 문답이 재미있지 않는가. <괘릉>은 이런 인상적인 구성을 도모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과 강조성을 획득하였기에 주제와 구성이 잘 매치된 좋은 작품이 되었다.
비(秘) : 어떤 상황에서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는 일치하기란 쉽진 않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속으로만 욕을 버럭버럭 지르며 살아갈 게 뻔하다. 나만의 비밀인 양 숨길 비(秘)가 될 때까지 말이다.
자(資) : 자신의 소질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좋아하는 일로 승부수를 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그 기운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또 다른 효과를 낳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 ‘나’, 지금 소중한 자산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금(金) : 원자번호 79, 원소기호Au, 원자량은 196.967. 내 이름 석 자 중 들어 있는 황색의 금속원소이다. 은 은(銀), 애석하게도 한 글자로 온전히 들어 있진 않지만, 반쪽자리에 앞자리를 차지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평생 금을 끼고 살 팔자다.
- <비자금>에서 -
<비자금>에서도 구성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비자금秘資金의 글자 하나씩을 떼어내어 그 글자의 의미에 천착하여 세 개의 의미부를 따로 만들고, 그것이 모여 비자금이란 하나의 의미화된 수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자는 표의문자이기에 의미화가 쉽다. 그러나 한 낱말을 글자로 분리하여 의미화하고 전체를 모아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별로 시도되지 않은 것이기에 매우 흥미롭다.
한편, <로꾸거 로꾸거>는 <실죽>이나 <폐타이어>처럼 발견을 통한 참신한 인식이 돋보이면서, <괘릉>이나 <비자금>처럼 구성에 있어 새로운 시도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새로 올해의 사자성어로 발표된 ‘곰문운공’의 글자 모양을 보고 작가는 곰을 거꾸로 하면 문이 되고, 운을 거꾸로 하면 공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각 글자에 대한 치밀한 의미화를 이룬 다음 작가는 그것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미에 도달한다. 이는 작가의 ‘다시 보기’, ‘새로 보기’라는 발견에의 천착이 없었다면, 생성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소재를 쫓는 작가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낯설게 하기’의 대표작이다.
미련스럽게 보이는 곰이지만, 이면에 기회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운도 닿고, 결국 인생은 공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달려가니 두려울 게 없다. <중략> 간혹 난 이렇게 세상보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아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내공을 다진다.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는, 나와 함께 로꾸거를 부르자. 자꾸만 꿈을 꾸자. 멈추었던 행복의 시계도 째깍거리겠지.
-<로꾸거 로꾸거> 결미 부분-
‘로꾸거 로꾸거’라는 노래가사가 이 경우에 적합한 표현임을 찾아낸 것도 또 그것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곰문운공- 곰▶문-운▶공의 구성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 것도 거꾸로 하면 같은 글자가 됨을 알아낸 발견에 힘입은 새로운 구성형태였다. 종합-분석의 구성 형태를 취함으로써 위에 제시된 이 작품의 결미처럼 작가는 보다 수월하게 정리된 자기 성찰로 나아간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는 끈질긴 시선과 보이지 않는 것도 꼭 보고야말겠다는 의지가 돋보이고, 중심 사상을 새롭게 보기를 통해 구체화시키는 단락 구성이 눈길을 끈다. 문학은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다. 전략화된 수필문장 구성의 원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는 기법은 이은희의 문학적 기량을 말해준다.
2. 치열한 삶의 몸부림과 성찰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그래서 끊임없이 삶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음미하려고 한다. 이은희 역시 거울을 보며, 진정한 자기 찾기를 시도한다. 그것이 문학적 방식으로 변용되어 나타났을 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 감동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이 작가의 인품과 융화되어 문학성을 가질 때 현대인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에 본격수필창작의 네 번째 원리로 필자는 성찰의 원리를 들고 있다. 이은희의 수필집 『버선코』에 실린 수필들은 대체로 이 원리에 충실하다. 어떤 수필도 성찰의 단계를 그치지 않는 수필이 없다. 그 중에서 성찰의 원리가 돋보이는 수필을 뽑아보자면 <몸시>, <스러지는 것들>, <안개 속에서>, <호들갑을 떠는 여자>를 고를 수 있다.
질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가 보다. 어느 쯤에선 멈춰 서서 자신이 달려온 길을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재충전할 기회를 만들며, 생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 말했지.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몸시> 전개 부분-
이은희의 수필은 진솔하기에 감동을 준다. 자기 고백과 성찰을 통해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그 빈 자리에 긍정적이고 신선한 삶의 활력을 심는다. ‘시궁이후궁’이라는 말이 있다. ‘그 무엇’의 밖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수필가의 내부에 한을 머물게 해 그 정신적 에너지를 예술에 쏟아 붓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섯 자매의 맏이로서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계속하고, 주경야독하고 남자직원들과 경쟁하며 직장의 임원으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즐길 여유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고사목을 보면서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내 삶은 어디쯤에 와 있는가.’ 이처럼 이은희의 수필은 자조나 고백적 성격보다는 관조적 성격으로 해서 문학적 향취를 가진다. 그만큼 수필 창작에 있어서 작가는 관조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꽃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혜안, 즉 관조가 빛나는 작품이다.
장담할 수 없는 게 세상일인 성싶다. 자신의 마음 밭을 갈무리하여 씨앗을 뿌리는 것도, 열정을 다해 꽃봉오리를 피우려는 일도, 꽃 진 자리에 성근 열매를 가꾸어 거두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간단한 진리 앞에서 아직도 난 마음자리를 다잡지 못하고 헤맨다. 아마도 내 안에 피어난 아집과 헛된 욕망의 꽃 때문일 것이다. 그저 스러지길 바랄 뿐이다.
-<스러지는 것들> 전개 부분-
작가는 매서운 바람을 견디는 꽃과 나무들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가는 꽃에 시선을 두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태풍 뒤에도 여전히 세상은 정돈되고 변화를 겪더라도 새로운 꽃이 피고 싹이 돋음을 느끼게 된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숨어있음을 생각하는 작가의 태도는 반성이 아닌 삶에 대한 사색이며 음미다. 그녀는 삶을 천천히 맛본다. 수필은 시간을 좇아가지 않고 느리게 순간을 즐기며 주위를 돌아보는 진지한 성찰 작업이어야 한다. 훌륭한 수필가는 방랑가요, 게으름뱅이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구원성’에 있다. 수필을 씀으로써 자신을 구원하고 작가를 구원한 작품은 작가의 품을 떠나 독자의 지친 영혼을 달래준다. 이은희는 ‘그저 스러지길 바랄 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내 안에 피어나는 아집과 헛된 욕망의 실체를 자주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보게 되면 언젠가 작가의 마음자리는 안정될 것이다. 그것이 글을 풀어냄으로써 작가가 받는 보답이며 글을 읽음으로써 독자가 얻는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자아의 노력으로 극복해나가는 것이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일 터, 그것을 작가는 ‘자신의 몫’이라는 간단한 어구로 제시하였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말 일이다. 변함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오로지 자신의 작업에 충실할 뿐이다. 노인의 얼굴에서 나타난 묵묵함이 나를 인도한 것일까. 물결처럼 흐르던 주름의 의미를 되새기고야 내가 만든 심연의 미로에서 빠져나온다.
-<이랑, 물결=주름> 결미 부분-
산 가득 이랑 긴 차밭을 일군 사람의 고행과 장흥 여닫이 바닷가에서 본 물결을 장터거리에서 짚신을 삼는 노인의 얼굴에 진 주름살에 오버랩시키고, 그 주름에서 어떤 노동의 대가도 인정도 바라지 않는 초연하고 신성한 정신을 본다. 작가는 그 물결을 자신의 글쓰기에 옮겨와 거울로 삼는다. 수필의 궁극적 가치는 삶의 가치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고, 행복한 삶은 아름다운 가치에 바탕을 둔 것이라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아성찰’이란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의 한 형태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에 이처럼 작가는 성찰의 원리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독자를 구원하는 길은 진지한 작가의 성찰에 있다. 이 수필은 한결같이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 즐기는 것보다 정신적 여유를 회복하는 일과 건강한 육체를 통해 건강한 정신으로 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기에 문학의 ‘구원성’에 답한다 하겠다. 이는 작가의 수필을 쓰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Ⅲ. 닫으며
수필은 작가의 분신이다. 자신의 체험을 변형과 보수작업을 통해 형상화하고 구조화의 원리에 따라 산뜻하게 단장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은희는 자신의 수필을 내용적인 면에서나 표현적인 면에서나 세심하고 철저하게 다듬는 작가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이은희 수필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발견과 구성의 참신성, 깊이 있는 성찰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이은희 수필집 <버선코>를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인식과 형상 미학이 빗어낸 예술수필이라 하겠다. 현란한 색채로 나타나는 허욕의 삶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순백색처럼 겸허한 삶을 그려낸 한 편의 멋진 벽화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전통적 제재를 다룬 <버선코>, <맥놀이>, <난쟁이 탑>등의 작품은 정말 감동적이다.
하지만 책에 실린 서평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는지라 제외하였으며, 동화와 투사의 기법이 돋보인 서간체 수필 <꽃사슴 벽화>, 자아 정체성 찾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천개의 얼굴>, 정(情)과 그리움을 다룬 <정토마을에서>와 같은 수필들은 정해진 본고의 분량상 다루지 못하였다. 이은희는 자신의 수필 <몸시(詩)>에서 한 말처럼 외양이 화려하거나 미끈한 시보다는 울퉁불퉁하지만 앞품이 넉넉한 나무를 닮은 몸시(詩)를 쓰며 살아갈 것이기에, 앞으로 <버선코>보다 더 좋은 수필로 중부권을 대표하는 수필가를 넘어 한국수필을 빛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밥 먹는 일에만 쫒겨 종종대며 살았다고 남기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각오에서 문학성의 고지를 향한 그녀의 결연한 자세가 보인다. 이제 우리는 몸시를 닮은 그녀의 수필을 읽게 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저작권은 권대근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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