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옥희
요즘 나는 동행(同行) 이란 단어를 계속 생각하였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서일까, 동행이 주는 어감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동행은 함께 간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것, 또는 함께 보조를 맞춰서 걷지 않아도 방향이 같을 경우 보통 동행이란 말을 쓴다.
그런 점에서 동행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설렘’이다. 34년 가까이 교직에서 선생님이란 말을 들으며 수많은 제자들과 매년 설렘을 갖고 만나 공부를 가르쳐주고 제자들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립학교라서 동료 선생님들과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해왔기에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로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나의 교직 생활은 자신감, 자부심, 열정적으로 물론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생활했기에 후회는 없다. 중학교에서 근무한 나는 정년 퇴임이 아닌 명예 퇴임을 선택하였는데 코로나가 심해서 제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선생님들만 계신 가운데 퇴임식을 하게 되었다. 퇴임사를 마친 후 선생님들과 제자들, 정든 교정을 떠난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고 섭섭했다.
설렘을 갖고 같은 목적과 방향으로 교직에 몸담았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이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조심스레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취미활동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나는 예술인문학도 배우고 앙금 케이크와 디저트 빵도 만들어 봤다. 또한 대학에서 미술상담심리사 강좌를 신청하여 초급과정이라 깊게는 아니지만 나름 배우면서 공감도 되었다. 열심히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시험을 위해 새벽까지 공부도 하고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도 느껴보며 자격증도 땄다.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도 만나 앞으로 꾸준히 모임을 갖기로 하였으며 캘리그라피와 수필반에 등록하여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면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나 이런저런 일도 생기고 마음과 의욕만 앞서며 배움에서 중요한 노력의 흔적이 아주 적어 게으른 나를 반성해보면서도 어차피 긴 호흡을 갖고 조바심내지 말며 천천히 가지 뭐~ 라고 또 다짐해본다. 새로운 분들과 만나 가는 이 길도 동행이리라 여기면서.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요즘 날이 너무 더운데 너는 어찌 지내니? 엄만 이런 시기에 경로당이라도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더라. 아빠 먼저 가시고 친했던 친구들도 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어디가 아파 입원하거나 다리가 불편해서 휠체어 생활을 하거나 요양병원에 간 친구도 있어서 동창과의 모임도 점점 횟수가 적은데 아파트 단지에 매일 경로당에 가서 이웃에 있는 할머니들과 시원한 곳에서 수다도 떨고 놀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애. 그리고 너희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엄만 늘 너네들 건강하게 잘 지내길 기도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힘은 드시겠지만 그래도 친구분들과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재미나게 잘 지내시니 좋네요. 저도 감사해요. 엄마 파이팅. 사랑해요’ 라고 말하자 엄만 ‘우리 딸도 파이팅. 사랑해’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엄마랑 매일 전화하고 종종 같이 밥을 먹지만 그래도 엄마는 외로우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맘이 편치 않았다. 또한 엄마는 사시는 날까지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나이 먹으니 여기저기 아픈 것은 어쩔 수 없고 병원과 친구 하면서 약 먹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한 생각으로 보내시는 것이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마지막 동행이 될 거라는 것을.
여태껏 살면서 올해 같은 무더위는 첨이라 생활하기가 힘듦을 느낀다. 너무 더운 이 시기에 내 몸이 점점 불어나는 상황에 당황하며 마음을 다잡아 저녁에 걷기로 했다. 저녁 식사 후 뒷정리를 한 다음 집 주변을 걷다가 한 건물에 플랜카드에 쓰여있는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선물은 오늘이다’ 이 문구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선물로 ‘오늘’을 받았으니 소중한 오늘이 될 것이고 그 오늘과 매일 매일 동행한다면? 나의 사랑하는 딸과 아들은 결혼해서 나와 남편에게 사위와 며느리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주었고 그 애들은 각자 자기의 가정을 예쁘게 꾸려가며 손잡고 같이 앞날을 헤쳐가고 있다. 평생의 반려자와 함께 동행하는 귀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있는 여러 일들이 어쩜 결국에는 서로 연결되어 끝을 맺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며 그런 마음을 갖고 보내는 오늘 하루하루가 나한텐 귀한 동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