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성(物神性)과 '연금 고갈론'에 대하여 (계속)
노정협 202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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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기부는, 부자들 개인들의 도덕적 양심도 있겠지만 빈곤과 불평등에서 폭발하는 민중의 폭동을 막고, 체제를 안정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종교의 자선도 이와 유사하다. 국가나 자본도 마찬가지다. 기부나 자선을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행한 것이다. 폭력으로 얼룩진 구빈법의 역사가 바로 그렇다.
사회복지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결실이자, 국가나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양보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제도도 마찬가지다. 자본과 자본가 이데올로기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회보장을 전면 없애자니 폭동이 일어나 사회의 안정성이 훼손될 것 같고, 사회보장을 확장하자니 자신의 이윤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틈만 나면 사회보장을 축소하려 한다.
2022년 기준으로 청년 노동자 10명 중 4명의 근속 평균은 1년이 되지 못하고, 정규직조차도 25.2개월 밖에 되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의 굴레에 빠진 노동자들을 도덕적 해이자로 취급하고, 더 나아가 일종의 범죄라고 간주하면서 이른바 “나이롱 실업급여 신청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지급 인정조건을 강화하고, 반복 수급자의 수급액을 최대 50%까지 감액하려 하고 있다.
유시0은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문제를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의 몫을 강탈해가는 “부도덕한” 제도의 문제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 세대의 과거의 사회 발전과 생산 기여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정당한 인정과 생존보장의 문제를, 일방적인 시혜와 특혜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열시켜서 정규직 임금양보를 주장하고 궁극적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노동자의 삶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이로써 자본의 이윤을 추구하는 작금의 공세와 마찬가지로, 세대 분열을 통해 이윤을 늘리려고 하는 비열하고 악랄한 의도에 다름 아니다.
'연금고갈론'은 연금 수급자들의 정당한 사회보장을 사회에 빌붙어 사는 버러지 정도로 취급하는 악선전을 하고, 연금이 고갈되게 되면 마치 사회의 파국이 올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여, '연금개악'을 하기 위한 겁박이자 공포 조성이다.
이 악랄한 공포 조성 프로파간다 앞에 서면 누구나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고, 울화통이 터지더라도 이 사회의 존속을 위해 양보를 감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철두철미 공세 앞에 서면, 노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연금보장 요구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고, 오직 '어느 정도 후퇴 수준을 정할 것인가' 하는 정도 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러나 연금고갈론은 철저한 '사기'다. 자본가들이나 자본가언론들도 연금고갈론을 과도하게 내세움으로써 연금지급 자체를 거부하는 흐름이 확산되자,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 우려는 '절대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실제 연금 지급방식을 현재의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바꾸면, 고갈 문제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도 상당부분 해소된다.
다른 연금선진국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민연금의 운용방식을 현재의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바꿔서 세금 등으로 연금 재원을 조달하면 된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의 운용방식은 적립방식과 부과방식 등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적립방식은 보험료를 거둬서 일정 기간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미리 쌓아놓고, 그 기금을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부분 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부과방식은 해마다 그 해 필요한 연금 재원을 당대의 젊은 세대한테서 세금이나 보험료로 거둬서, 노년 세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미국, 독일, 스웨덴 등 오래전 연금제도를 도입한 많은 연금 선진국도 과거 제도 초기에는 우리나라처럼 상당 수준의 기금을 쌓아뒀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연금 수급자 규모 증가, 급속한 노령화 등의 영향으로 적립기금이 거의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국가가 연금을 계속 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연금 재원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2023연금개혁] 기금 소진되면 국민연금 정말 못받을까, 연합뉴스, 2023-01-27)
'연금고갈론' 협박과 달리, 지금까지 연금이 고갈되어 연금지급을 전면 중단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첫째, 기금 고갈로 연금을 주지 않은 나라는 역사에 없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못 받을까? 기금 없이도 연금을 지급할 수 있고, 대부분 국가가 이렇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나라가 망했던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9.1%, 재정 파탄을 겪은 그리스도 GDP의 15% 정도를 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연금지급에 필요한 돈 100%를 적립하고 이 기금으로 연금을 주는 나라는 칠레와 싱가포르 딱 두 나라뿐이다. 아주 예외적이다.
연금의 100%를 받다가 2057년 이후부터 갑자기 65%가 삭감된 35%짜리 연금을 받는다? 다른 말로 2060년에 1900만 명에 달하는 노인들의 연금이 갑자기 65%가 삭감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비가 급감하고,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재원을 어떻게든 마련해, 약속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즉,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은 일은 역사상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단, 부과방식으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나, 저출산·고령화가 가져오는 대규모의 연금적자를 우리 사회가 감당 가능한 규모인지,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세대 간에 합리적으로 분담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둘째, 2030 세대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2057년 기금 고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확히는 기금을 고갈시킬 수가 없다. 이유는 역설적으로 막대한 국민연금 기금 때문이다. 기존 추계에 의하면, 2035년에 연금기금은 GDP의 48.2%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하지만 투자수익이 예상외로 커지면서 2021년에 이미 GDP의 47%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되며, 2035년에는 GDP의 50%를 훨씬 넘게 적립될 것이 분명해졌다.
최근 3년 간의 막대한 투자수익으로, 기금 고갈이 몇 년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기금을 많이 쌓아두면 좋으나, 풀기 어려운 딜레마가 발생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된 천문학적인 자산을 연금지급을 위해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제·사회적 충격이 나타날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기금고갈론이 ‘공포마케팅’인 세 가지 이유, 국민연금 개혁 연쇄기고 _2, 김연명 |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한겨레, 2022-02-23)
이처럼 연금고갈은 연금지급이 중단된다는 의미보다는, 연금으로 막대한 자본을 조달했던 자본가들에게 손해와 충격이 갈 수 있는 문제다.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액은 채권시장의 13.3%,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10%를 차지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웬만한 재벌기업 주식의 10%를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다.
연금급여는 주식과 채권으로 못 주니, 연금을 주려면 기금을 매각하여 현금화해야 한다(이를 유동화라 한다). 2057년 기금 고갈은 2040년을 전후하여 GDP의 50% 넘게 적립된 주식, 채권, 부동산 자산을 17년 만에 완전히 매각하여 현금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고, 만기채권을 연장하지 않고 원금을 회수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조차 힘들다. 이 때문에 국외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유동화 과정에서 환율리스크 등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위 같은 기사)
지난 2023년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수익이 126조원에 달하고, 기금 순자산은 1,035조 8천억 원이며 2022년 대비 약 145조 원이 증가하였다. 국민연금의 투자는 기업에게 막대한 자본을 공급해 주고, 연금의 관리자인 국가는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국가와 자본과 정치 모리배들이 합작하여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계속 살찌우고자, '연금고갈론'으로 공포를 조성하고 이미 굶주린 국민들을 끝 간 데 없이 쥐어짜내려고 하는 것이다.
출처; https://mlkorea.org/v3/?p=1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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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본래 원문의 앞부분입니다.
위 사이트(사상의거처)에는 생략한 채 뒷부분만 실려서
다시 찾아서 보완합니다.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