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장 천마봉(天摩峯)의 대혈전(大血戰)
-1
①
군웅들은 전신이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눈 앞에 이십여 명의 인영이 유령같이 나타났는데 맨 앞장
선 자는 전신에 금포를 입은 면사괴인, 바로 수라궁의 궁주이자
전 무림에 피의 음모를 뿌린 일세의 마존 수라혈신이었던 것이다.
그의 뒤에는 백골사마, 오독비마, 불면소살, 고루혈마, 지도마살,
비천야차, 열화풍사, 화의사신 등 수라궁의 중심을 이루는 팔대당
주가 음침한 표정으로 늘어서 있었다.
또한 그들 옆에는 금악비와 천하우물 백화미가 나란히 서 있었고,
다시 백화미 옆에는 얼마 전 수라궁 이 관문 때 고루혈마와 같이
서 있던 왜소한 체구의 청의 복면여인도 서 있었다.
수라궁의 목교를 지키던 흑백쌍로도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그때
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권태가 실려 있었고 만묘선랑 장염하도 두
눈에 매혹적인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가장 신비한 것은 맨 오른쪽에 위치한 네 명의 괴인이었는데 그들
은 나이를 추측할 수 없었으며 모두 두 눈에서 괴이한 광망을 흘
리며 서 있었다.
좌측의 마의노인(麻衣老人)은 얼굴 반쪽에 시커멓게 탄 자국이
있어 모든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는 성성한 백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채 두 눈과 코는 마치 독수
리를 연상하게 했으며 왼손에 괴형의 흑도(黑刀)를 들고 있었다.
두 번째 노인, 그는 오 척 단구의 작은 키에 적의(赤衣)를 입은
노인으로 그의 몸은 키에 비해 대단히 뚱뚱했다.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노인의 등에는 자신의 몸 만
큼이나 큰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메고 있었다.
세 번째 노인은 체격이 팔 척은 됨직한 우람한 노인이었고 그 노
인의 모습 또한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머리는 완전히 금발(金髮)이었고 두 눈은 짙은 녹색인데다 피부는
기이할 정도로 희었다.
마지막 노인은 채의를 걸친 깡마른 노인이었는데 두 눈은 뱀을 연
상할 정도로 가늘게 찢어진 채 음산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피
부는 괴이쩍게도 청동색 빛을 띄고 있었다.
'으음, 드디어 수라궁의 주력(主力)이 모두 등장했구나.'
무영종은 침중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이때 수라혈신이 기
이한 눈으로 군웅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노부가 누군지 아느냐?"
군웅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자 수라혈신은 일진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노부가 바로 수라혈신(修羅血神)이다."
군웅들의 안색이 변하며 크게 술렁거렸다. 그러자 조천명이 이를
갈며 진천마도를 치켜들었다.
"흐으... 이제 보니 네 놈이 바로 수라궁의 궁주였구나."
수라혈신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실로 듣는 사람의
전신이 오므라들 정도로 으스스 했다.
무영종의 오른쪽에 있던 천산비검옹 비간운이 문득 낮게 침음성을
터뜨렸다.
"으음, 저 네 명의 노마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수라혈신 저 자가 어떻게 저 네 명을 포섭했는지
모르겠군."
현광대사가 탄식했다.
"아미타불... 산 넘어 또 산이라더니......."
무영종은 눈살을 찌푸리며 현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현광사형, 저 네 명이 누구길래 그러십니까?)
현광대사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미타불... 소사제, 나의 말을 잘 들어보게. 저 네 명의 노인은
모두 백 년 이전에 강호무림을 진동시켰던 대마두들이라네.)
'백 년!'
(오른 쪽에 있는 마의노인은 지옥도(地獄刀) 사천무(史天武)란 인
물로 현재 나이가 백오십이 넘는다네. 그는 과거 대파산(大巴山)
에서 적봉우사(赤鳳羽士)의 감리신공(坎離神功)에 의해 얼굴이 저
렇게 타버린 것이라네. 저 자의 마음은 흉악하기 이를 데 없고 잔
인하기가 천하에 짝을 찾기 힘들 정도라네.)
무영종은 낮게 신음성을 발했다.
(그 옆의 왜소한 노인 역시 사천무 못지 않는 대마두일세. 그는
벽력천마(霹靂天魔) 갈영비(葛影非)란 자인데 백 년 전 화공(火
功)의 제일인자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던 인물이네. 그리고 금
발의 괴노인은 천절금마(天絶金魔) 서염무(徐焰茂)란 자로 백 이
십 년 전 서역(西域)의 마교인 마라혈교(魔羅血敎)의 제일고수이
자 서역의 최대마존이라네.)
'마라혈교?'
(마지막 채의노인은 나이가 거의 이백 세에 가까운 노마일세. 과
거 백오십 년 전 음혼혈마(淫魂血魔) 영호풍(令弧風)이라면 희대
의 색마(色魔)로써 무림의 아녀자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네. 그는
온갖 음양비술(陰陽秘術)에 능통하여 여인의 음기를 취해 내공(內
功)을 높인 자로, 저 노마의 공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네.)
현광대사는 탄식했다.
(그런데 백 년 전 천뢰사숙에게 패해 사라졌던 저 노마가 다시 나
타나다니! 아미타불.......)
무영종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늙은 노마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
그는 더욱더 수라궁주인 수라혈신에게 의혹과 괴이함을 느꼈다.
'수라혈신. 저 자는 대체 어떻게 해서 저 무서운 마두들을 모두
포섭했단 말인가?'
수라혈신은 나직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흐흐... 지금 시간은 정확히 오시(午時)다. 그러나 저 태양
이 지기 전에 너희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통천마군 흑고가 코웃음을 쳤다.
"흥! 수라혈신! 그 뼈다귀 같은 늙은 놈 몇 놈을 믿고 까불지 마
라! 흐흐흐... 나 흑고는 저런 놈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
수라혈신은 다시 으스스한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통천마군 흑고, 네가 조금 전 뱉어낸 그 말은 아마 너
의 마지막 망언(亡言)이 될 것이다."
이제껏 묵묵히 그를 노려보고만 있던 위전풍이 차갑게 말했다.
"수라혈신, 아니 석기량(石奇亮), 가증스럽다! 명문(名門) 석가
(石家)의 빛나는 명성에 온통 네가 먹칠을 하는구나!"
그 말에 군웅들은 대경실색했다.
"석... 석기량이라니?"
"석대선생(石大先生)!"
군웅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수라혈신은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벗었
다. 그러자 인자하기 짝이 없으며 두 눈에 혜광(慧光)이 빛나는
구순 가량의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크핫핫핫핫...! 좋다, 위전풍. 목숨을 살려 주었더니 이제는 은
혜를 그 따위로 갚는구나."
"아니, 저런! 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군웅들은 드러난 수라혈신의 얼굴을 보고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
다. 그들은 마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참담한 기분을 맛
보아야 했다.
복건성의 석가(石家). 그 얼마나 찬란한 명성을 누려온 무림의 명
문(名門)인가? 비록 사대세가(四大世家)에 들지는 않았어도 오히
려 사가를 능가하는 명성을 누려온 석가였다.
특히 석대선생 석기량은 그 명성이 만사(萬事), 귀곡(鬼谷)과 함
께 뛰어난 지혜로 널리 알려져 있어 무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분명 금마비(金魔匕)에 의해 살해된 그가 살아서 그것도
수라궁주가 되어 있다니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군웅들은
모두 의혹과 불신, 그리고 분노와 경악에 치를 떨었다.
천수겁천 당환성이 이를 갈며 외쳤다.
"석기량! 네 놈이 진정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수라혈신, 즉 석대선생 석기량은 음산하게 웃었다.
"후후후... 당환성, 입을 닥쳐라. 속은 너희들의 어리석음을 탓해
라."
군웅들은 분노하여 여기저기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무영종이
나섰다.
"여러분. 잠깐만 진정하시오!"
군웅들은 금새 입을 다물었다. 무영종은 석기량을 주시하며 담담
히 물었다.
"석대선생, 아니 수라혈신께 소생이 한 마디 묻겠소."
"흐흐... 얼마든지 물어 봐라."
"당신은 한 달 전 석가에서 죽지 않았소?"
석기량은 음산하게 비웃었다.
"흐흐흐... 목이 달아나고 없는 시신을 구해 노부라고 알렸을 뿐
이다."
무영종의 고요한 눈에 언뜻 살기가 떠올랐다.
"석대선생. 금악비의 금마비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만사(萬事)는
쉽게 그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석대선생의 눈이 번쩍 빛났다.
"흐흐... 네 말의 뜻을 알겠다. 물론이다. 호불귀는 결코 금마비
에 당한 것이 아니다. 그를 제거한 것은 바로 나, 아무리 어려서
부터 친분이 있었다지만... 흐흐... 자칭 만사인 그가 어리석게도
나를 너무 믿었었다."
곁에서 그 말은 들은 호불범은 충격을 받고 쓰러질 듯 몸을 비틀
거렸다.
"아아......."
군웅들이 오히려 더 분노하여 치를 떨었다.
"저런, 파렴치한 놈!"
"전 무림을 우롱한 것도 모자라 친구를 배신하고 살해하다
니......."
그러나 석기량은 가책은 고사하고 살기띈 얼굴로 장내를 둘러 보
았다.
"흐흐흐... 너희들은 전체 정사무림의 반(半)에 해당된다. 그러니
너희들만 모두 제거하면 전 무림의 반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이 없
다."
구주진천도 조천명이 입가에 야릇한 냉소를 머금었다.
"크흐흐... 우리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석기량은 일진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저 쪽을 보아라!"
군웅들은 그의 손길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앗! 저... 저건!"
군웅들은 모두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천마봉의 사방에
엄청난 숫자의 청의무사(靑衣武士)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실로 헤
아리기조차 까마득할 정도로 그들은 천마봉 전체를 면밀히 포위한
채 살기등등하게 서 있었다.
"하하하핫... 너희들의 숫자는 고작 백오십육 명, 우리는 이천
팔백 명이다. 자, 이래도 이길 자신이 있느냐?"
군웅들의 안색은 질리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팽천후는 코웃음을 쳤다.
"흥! 저 따위 오합지졸은 이천팔백이 아니라 십만(十萬)이 덤벼도
겁나지 않는다."
그 말에 이제껏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옥도 사천무가 갑자기
부엉이 울음소리 은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크크... 오합지졸이라고 했느냐? 좋다, 그렇다면 오합지졸의
맛이 어떤지 보여주마!"
그는 품속에서 하나의 검은 깃발을 꺼내 들었다.
"지옥칠십이살(地獄七十二煞). 나타나라!"
휙! 휙! 휙! 휙---!
연이은 파공성과 함께 수십 개의 백영이 군웅들을 에워쌌는데 그
들은 모두 칠십 이 명의 백의복면인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무영종은 안색이 변했다.
'저들은 바로 수라궁의 첫 번째 관문에 있던 자들이 아닌가?'
지옥도 사천무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이들은 노부가 백 년 전부터 고련시킨 이른바 지옥
의 귀객(鬼客) 지옥칠십이살이다!"
군웅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지옥칠십이살이라는 이름부터가 웬
지 으스스했기 때문이었다.
지옥도 사천무는 뒤이어 음침하게 외쳤다.
"얘들아! 저들에게 너희들의 진면목을 보여 주어라!"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 우--- 아---!"
칠십 이 명의 지옥칠십이살은 일제히 장소를 터뜨렸으며 마의 괴
소성은 천마봉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것은 실로 가공할 내공력으
로 개개인으로만 따져도 족히 백 년 수위에 이르고 있었다.
장소성이 터진 순간 그들의 몸에 걸쳐져 있던 백의와 백건은 모두
가루가 되어 날아가더니 그들의 감추어졌던 본신이 드러났다.
②
핏빛의 비늘(鱗).
그들의 전신은 오직 두 눈(眼)을 제외하고 핏빛 비늘로 된 갑옷
(甲衣)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괴수(怪獸)를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지옥도 사천무는 다시 광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지옥칠십이살이여! 혈련마갑(血鍊魔甲)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줘라!"
쨍! 쨍! 쨍.......
귓청을 따갑게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일제히 울려퍼졌고 지옥칠
십이살의 팔꿈치에서는 톱니가 번쩍이는 강륜(剛輪)이 솟아나왔
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 끝과 발 끝에서는 독(毒)이 시퍼렇게 묻은
검(劍)이 튀어 나왔으며 또한 전신의 핏빛 비늘이 일어서더니 무
수한 독침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앗!
군웅들은 모두 대경실색했다.
"저... 저들은 인간이 아니다!"
정녕 지옥칠십이살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 개의 눈
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한 곳도 공격할 틈이 없는 그야말로 무시무
시한 상대인 것이었다.
수라혈신 석기량이 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핫핫... 너희들은 용케도 수라궁을 벗어났지만 이제 모두 이
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석기량은 양 손을 번쩍 치켜들며 군웅들을 향해 쌍장을 들었다.
쿠르르릉.......
이어 죽음을 부르는 명령이 그의 입에서 떨어졌다.
"모두 공격해라!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지옥칠십이살, 수라궁의 팔대당주를 비롯한 마두들, 게다가 이천
팔백 명의 청의무사.......
그들은 일제히 군웅들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고 드디어 대혈전(大
血戰)이 벌어졌다.
난무하는 장풍, 병장기 부딪치는 금속성과 경천동지의 회오리, 그
리고 피(血), 피, 피.......
연이어 꼬리를 무는 단말마의 비명, 또 비명.......
마침내 천마봉은 죽음(死)의 지옥으로 화하고 말았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이 바로 이곳인가, 구천지옥대제(九天地獄大
帝)인 염왕(閻王)조차 이곳에 이르러서는 얼굴을 가리리라!
피의 난비와 인육(人肉)이 뒤엉키는 가공할 혈전장은 인세(人世)
의 일대 참경을 이루는 듯 했고 군웅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천군맹의 맹주인 구주진천도 조천명, 그는 지옥도 사천무와 무시
무시한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공에서는 단연 사천무가 위였으나 구주진천도의 도법(刀法)은
초식에서 오히려 위력이 강했다.
차차-- 창---!
두 사람은 한데 엉켜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릴 대결전을 전개했
다. 실로 막상막하의 형세였다.
선풍마서생 위전풍은 음혼혈마 영호풍과 붙고 있었는데 실상 전대
의 노마두와 이제 갓 사순에 이른 위전풍과는 서로 비교할 대상조
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위전풍의 선법(扇法)은 기괴막측하고 변화
가 다양해 음혼혈마와 거의 백중지세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그것
은 실로 예기치 못했던 뜻밖의 현상이었다.
촤라라--- 락!
부챗살이 활짝 펼쳐질 때마다 화살같은 경기가 뻗쳐 음혼혈마의
전신대혈을 뒤덮었다. 반면 음혼혈마는 가공할 장력으로 위전풍을
몰아치고 있었다.
검제 남궁진강. 그는 백골사마와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팽천후 또한 팔대당주 중 음풍당의 당주인 호천광과 막상막하의
혈전을, 그리고 천수겁천 당환성은 독혈당주인 오독비마 구우령과
독공(毒功) 대 독암기로 끔찍한 격전을 전개했다.
사해신군 구양경은 벽력천마 갈영비와 결전을 벌였으며 나머지 군
웅들 역시 그밖의 마두들과 처절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었다.
엄청난 격전의 소용돌이가 천마봉을 광풍으로 몰아넣었으나 군웅
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지고했다. 사실 그들이 오백 인 중에서 지
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가?
오직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무림의 철칙을 그들은 철
저히 입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계속되는 혈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 지옥칠십이살의 가공무비한 공격에는 피하기에만 급급할 뿐
감히 아무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공격은 고사하고 군웅들은 지옥칠십이살의 몸에 스치기만해도 즉
사를 면치 못했다.
한편 무영종은 장내의 처절한 상황에 안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
었다.
그는 내심 이를 악물며 부르짖었다.
'이제 최후의 혈전이다. 더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설사 내 몸
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마도들을 뿌리째 소탕하고 말리라!'
"으악!"
처절한 비명이 가까이서 들렸다. 무영종의 눈에 한 군웅의 목에
지도(紙刀)가 깊숙히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지도마살 마운천이 만면에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 사이에
십여 개의 지도를 끼고 있었다.
무영종은 무한한 살심(殺心)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홱
돌려 관동삼괴를 향해 말했다.
"삼괴, 그대들은 일체 싸움에 참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호소협
을 보호하게!"
"넷!"
이미 그를 신같이 우러러 보고 있는 관동삼괴는 대답과 동시에 재
빨리 호불범을 둘러쌌다.
휙!
무영종은 즉시 신형을 날렸고 번쩍 하는 순간 어느새 그는 지도마
살 앞에 내려서 있었다.
지도마살은 눈 앞에 환영처럼 무영종이 나타나자 흠칫했으나 곧
음흉하게 말했다.
"네 놈도 나의 종이칼을 맞고 싶으냐?"
슈슈슉!
그는 한꺼번에 다섯 자루의 지도를 던졌으나 무영종은 냉소했다.
"종이칼은 어디까지나 종이칼일 뿐이다."
파---팟!
은월도가 허공을 가르자 다섯 자루의 지도는 과연 종이장으로 화
해 흩날렸다.
"헉!"
지도마살은 대경했으나 무영종의 은월도가 그 순간 무지개같이 뻗
었다.
"서래범음(西來梵音)!"
불영구검(佛影九劍)의 제 오 초는 무지개빛 도광(刀光)으로 지도
마살을 휘감았다. 지도마살은 혼신의 힘을 다해 피하려 했으나 소
용 없었다.
"으... 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의 오른팔이 날아가며 피를 뿌렸다.
"탄지신통(彈指神通)!"
쉬잉---!
무영종의 일지(一指)가 뻗었다.
"크악!"
소림 불문의 유일한 지법(指法) 탄지신통은 여지없이 지도마살의
이마 한 복판에 구멍을 뚫었고 지도마살은 이마 앞뒤로 피화살을
뿌리며 쓰러졌다.
처참한 악인의 말로였다.
그러나 다시 무영종의 등 뒤로 누군가가 패도적인 장력을 뿌리며
덮쳤다.
무영종은 빙글 몸을 돌렸고 그의 눈 앞에는 전신이 핏빛 비늘로
덮인 지옥칠십이살의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의 전신은 군웅들의 혈육으로 시뻘겋게 젖어 있었고 땅바닥에
는 오십여 명의 군웅들이 처참하게 짓이겨져 죽어있는 것이 보였
다.
무영종은 두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내심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부처님이시여! 제자는 이제부터 정말로 살계(殺戒)를 열겠나이
다. 용서하소서!'
무영종의 입에서 웅후한 불문의 사자후(獅子吼)가 터져 나왔다.
"우-- 우--- 우----!"
그 놀라운 사자후에 천마봉이 온통 흔들리자 하늘의 구름조차 흩
어지는 듯 했고 장내의 싸움은 일시간에 멈추었다.
"천(天)과 불(佛)의 뜻으로 살심(殺心)을 억누르려 했건만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 모두 멸절시키리라!"
무영종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쩌렁쩌렁한 외침에 수라궁도들과 군
웅들의 안색은 모두 크게 변했다.
그리고 곧 지옥살 두 명이 그에게 흉측한 기세로 덤벼들었으나 무
영종은 피하지 않았다.
'이환결! 탄공결! 유화결!'
그는 내심 이렇게 부르짖으며 불문의 최고무공인 반야밀다대승신
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고 지옥살 두 명은 정면으로 그와 부딪쳤
다.
쾅----!
"크악! 큭!"
천번지복의 폭음과 함께 두 마디의 단말마가 터졌다. 그리고 지옥
살 두 명은 무영종과 부딪친 순간 전신이 폭발하듯 터져 날아가
버렸다.
놀랍게도 강륜, 검, 독침, 혈륜마강 등이 박살이 나고 그 속에 들
어있던 지옥살은 피떡으로 뭉개져 날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소림사 십팔나한들의 무시
무시한 합공(合攻)속에서 금강봉마저도 엿가락처럼 휘어버리게 만
들었던 무영종, 아니 하후성이었으므로.
아무리 지옥칠십이살이 무섭고 그들의 혈련마갑이 견고하다고 한
들 결코 무영종의 반야밀다대승신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오오! 무대협이 저 정도일 줄이야......."
군웅들과 수라궁 인물들은 이 광경에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말았으
며 무영종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것은 뇌(雷)의 힘(力)이다!"
그가 다시 이렇게 외치자 그의 쌍장에서 수십 갈래의 섬광(閃光)
이 뻗었다.
"크--- 아--- 악!"
이번에는 한꺼번에 다섯 명의 지옥살이 시퍼런 섬광에 덮이더니
녹아 사라져 버렸다. 혈련마갑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뇌음신공(雷音神攻)이 무서운 위력으로 그들을 영원히 지
상에서 녹여 소멸시킨 때문이었다.
"와--- 아----!"
군웅들은 그 통쾌한 광경에 일제히 환성을 질렀고 삽시간에 그들
의 사기는 충천했다. 가라앉아 있던 용기가 백 배로 상승된 것이
었다.
혈전은 다시 전개되었다. 무영종은 종횡무진 수라궁도와 지옥칠십
이살을 격살시켰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 그의 등 뒤로 접
근해 장력을 날렸다.
위--- 잉!
'이환결!'
펑!
등에서 폭음이 터졌으나 무영종은 앞으로 십여 걸음 밀려났을 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내심 매우 놀라고 있었다.
'누가 이런 무서운 공력을?'
그는 몸을 홱 돌렸다. 그곳에는 수라혈신 석기량이 두 눈에 경악
을 담고 서 있었다.
석기량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자신
의 일 장이 무영종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
랐기 때문이었다.
"애송이 놈, 네 놈은 대체 누구냐?"
"무영종."
무영종의 간단한 대답에 석기량은 안색을 일그러뜨리며 살기 띈
음성으로 물었다.
"네 놈은 소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무영종은 차갑게 외쳤다.
"알 필요 없다, 이것이나 받아라!"
눈부신 금광(金光)이 뻗으며 무영종의 주먹에서 태산이라도 무너
뜨릴 듯 금강복호신권(金剛伏虎神拳)이 작렬했다.
석기량은 크게 놀랐으나 역시 자신도 전력을 다해 쌍장을 뻗으며
외쳤다.
"발칙한 놈, 아수라비천마공(阿修羅飛天魔攻)이다!"
'아수라비천마공!'
무영종은 안색이 변했다.
③
꽝--- 꽈르르--- 릉---!
두 사람의 권력과 장력이 부딪치며 가공할 폭음과 함께 땅바닥을
일 장 깊이로 파헤쳤다.
"우욱!"
"윽!"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졌고 석기량은 뒤로 주르르 밀
려났다. 그러나 무영종은 단지 두 걸음 물러섰을 뿐이었으며 수라
혈신 석기량은 이 일장의 대결의 결과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
다.
'천하에 이토록 강한 놈이 있다니!'
두 사람은 다시 맞붙었고 무영종은 소림칠십이종절예를 연달아 구
사했다.
펑--- 퍼--- 펑!
연이은 폭음과 함께 광풍같은 회오리가 일어났다. 수라혈신 석기
량은 무영종의 웅장하고 도도한 공격에 연신 뒤로 밀려났으며 이
마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어린 놈, 받아라!"
근처에 있던 고루혈마 곡우양이 혈장(血掌)을 날리며 싸움에 가담
했으나 무영종의 백보신권(百步神拳)이 그를 단 번에 십 장 밖으
로 날려 버렸다.
콰쾅---!
"크윽!"
곡우양은 늑골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을 느끼고는 피를 뿌리
며 즉사했다.
무영종은 마침내 분노를 터뜨린 것이었고 그를 통해 천 년 역사의
소림무학이 가공할 위력으로 무림에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근 백 년 만의 일로 강호의 일반적인 인물
들이면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평범한 소림의 권법 백보신권으로
일세의 대마두 고루혈마 곡우양을 일권에 즉사시킨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수라혈신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공격을 개시했다. 뿐만
아니라 비천야차, 화의사신 등 팔대당주 두 명이 다시 무영종의
전후에서 가세했다.
삼대 일의 싸움이었다.
비로소 싸움은 백중지세를 이루게 되었으니 실로 무영종의 무학
은 개세적이었다.
그러나 군웅들은 수천 명의 수라궁도들에게 차례로 쓰러져 가고
있었고 특히 지옥칠십이살로 인해 더욱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
다.
지옥칠십이살은 군웅들을 갈기갈기 찢었고 그 시체마저도 짓이겼
다. 그 광경에 무영종의 눈에서는 불길이 번져 나왔다. 그는 은
월도를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제천구도(濟天求道)---!"
불영구검(佛影九劍) 제 팔 초.
"으--- 악!"
가공할 도광(刀光)이 천지를 뒤덮는 가운데 처절한 비명이 터졌고
비천야차 환우령과 화의사신 곡량은 전신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
갔다.
"으헉!"
수라혈신 석기량은 간담이 얼어 붙었으나 공세를 더욱 급증 시켜
무영종을 몰아부쳤다. 이때 어디선가 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으아아... 악!"
벽력천마 갈영비의 불길을 뿜는 장력이 사해신군 구양경을 불덩어
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구양경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으며 근 백여 번을 구른 끝에야
간신히 몸에 붙은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벽력천마 갈영비는
계속 쌍장으로 시뻘건 불기둥을 뿜어내며 군웅들을 마구 주살하고
있었다.
사해신군 구양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수중의 유성추를 날렸다.
위--- 잉!
펑!
"으윽!"
벽력천마는 어깨에 유성추를 맞았다. 그곳에서 피와 살점이 튀자
곧 그의 눈에서 화염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는 설마 구양경이
되살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크흐흐... 이 놈, 명이 꽤 끈질기구나! 이번에는 나 벽력천마의
화신(火神)을 보여주마."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를 꺼내더니 주둥이를 열었다. 그 순
간 엄청난 광경이 벌어졌다.
화르르릉......!
자루 속에서는 강맹한 불기둥이 뻗쳐 나왔다.
"앗!"
자루에서 뻗쳐 나온 불덩이는 근 삼 장(三丈) 크기로 괴이하게도
인간의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화신(火神), 그야말로 불의 신이었다.
"으하하하... 화신이여! 모두 태워버려라!"
휘류류류--- 륭---!
불기둥은 벽력천마의 주문에 의해 군웅들을 휩쓸었고 군웅들은 삽
시간에 불덩이가 되어 뒹굴었다.
"크으... 이, 이럴 수가!"
구양경은 치를 떨었으며 동시에 등 뒤에서 자신의 명성을 지켜온
철마궁을 꺼냈다.
위--- 잉!
드디어 철마전이 날아갔다. 그것은 불기둥의 중심을 정확히 꿰뚫
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황하의 흐름도 멈춘다는 가공할 위력의 철마전
이라지만 한낱 형체도 없는 불(火)은 꿸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것은 속절없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으으으... 이 놈!"
구양경은 이번에는 유성추를 날렸다.
윙---!
그러나 유성추는 불기둥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말
았다. 벽력천마는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화신(火神)은 천하무적이다! 으하하하... 죽여라,
태워라!"
휘류류류---륭!
"으--- 악!"
군웅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불덩이가 되어 뒹굴었으며 이제
그들의 숫자는 불과 칠십여 명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실로 처참한 결과였다.
사해신군 구양경은 만면에 처절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향해 외쳤
다. 그의 뒤에는 그를 평생 수족같이 따르던 황하이괴(黃河二怪)
가 있었다.
"이괴! 앞으로 황하칠십이채는 너희들이 관장해라!"
황하이괴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니, 총표파자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구양경은 이미 이를 부드득 갈며 몸을 날리고 있었다.
"죽어라, 벽력천마!"
그는 마침내 육탄 공세까지 불사했다. 그러나 벽력천마는 냉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화신을 날렸다.
"태워라!"
휴류류-- 륭---!
"크악!"
구양경은 역시 불덩이에 뒤덮혔다. 그러나 불덩이가 된 채로도 그
는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잠시 비틀거렸을 뿐 그는 벼락 같이 몸
을 날려 벽력천마를 끌어안았다.
"윽! 이 놈이?"
휙---!
구양경은 그를 힘껏 끌어안고 몸을 솟구쳤다. 수라궁을 감싸고 있
던 검푸른 호보하의 물결을 향하여.......
풍---덩!
불덩이가 된 구양경과 벽력천마 갈영비는 그대로 호보하의 검푸른
호수에 빠졌다.
푸시시시식.......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흰 김이 뭉클 솟아올랐다.
"크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벽력천마 갈영비는 그대로 온 몸이 산산조
각으로 터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촤악!
그의 골육(骨肉)의 파편들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에 뿌려졌
다. 천하 화공(火攻)의 극성은 바로 물이 아닌가. 따라서 그는 호
보하에 빠진 순간 내공이 파괴됨은 물론 분사(分死)를 면치 못했
다.
그가 죽자 군웅들을 휘감던 불기둥도 삽시에 환영(幻影)처럼 팍
꺼져 버렸다. 마치 벽력천마 갈영비의 혼(魂)이기라도 했던 듯
이.......
그러나 그것은 무슨 사술(邪術)이 아니라 벽력천마의 화공(火攻)
의 결정체, 즉 화정(火精)으로써 내공에 의해 그의 뜻대로 움직였
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신을 잃자 자연히 화정도 소실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
은 사해신군 구양경이 장렬하게 자신을 던져 이루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군웅들은 처참지경에 처해
있었다. 이천 명이 넘는 수라궁도와 지옥칠십이살에 의해 거의 전
멸상태였으며 그나마 살아있는 자들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무영종은 이를 갈았다.
"만(萬)... 불(佛)... 광(光)... 휘(煇)!"
마침내 불영구검(佛影九劍)의 최후 초식이 발출되었다.
파-- 파-- 팟----!
천지는 온통 도광의 눈부신 광휘에 뒤덮이고 있었다.
"크--- 으--- 악!"
무려 사방 십 장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말마가 터졌다. 삼
십여 명의 청의무사와 일곱 명의 지옥살이 산산조각이 되어 피보
라로 흩어졌다.
"크큭!"
수라혈신 석기량 또한 참담한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의 전
신은 옷과 살갗이 난도질당한 듯 갈라 터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
다.
무영종의 일신에 걸쳐진 백의도 무참할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 있
었다. 그러나 반야밀다대승신공으로 인해 그는 이렇다하게 다치지
않았을 뿐더러 우뚝 선 채 냉혹한 시선으로 장내를 돌아보고 있었
다.
수라혈신은 두 눈에 무서운 흉광을 폭사하며 품 속에서 한 자루의
괴검(怪劍)을 꺼냈다.
그것은 검신이 넓고 길이가 두 자밖에 되지 않는 푸른 색 검으로
수라혈신은 문득 기이한 발출자세를 취했다. 마치 그의 몸 전체가
갑자기 하나의 검으로 화한 듯했다.
무영종은 안색이 대변했다.
'저 자세는!'
"애송이 놈! 영멸수라혼(永滅修羅魂)을 받아라!"
수라혈신의 살기띈 외침이 터진 순간이었다.
우--- 우--- 웅!
가공할 검기가 노해처럼 수라혈신 석기량의 몸 전체에서 일어났
다. 무영종은 아연실색했으나 곧 합장했다. 그것은 범자대비공(梵
慈大悲攻)의 자세였다.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 여섯 번째로 강한
무공의 기수식을 취한 것이었다.
마침내 두 가공할 공력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맞부딪혔다.
꽈--- 꽈-- 꽝--!
"으윽!"
수라혈신은 전신이 터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뒤로 튕기 듯 붕 떠올
랐고 무영종 또한 어깨가 불로 지지 듯 화끈함을 느꼈다.
피가 화살처럼 어깨에서 치솟았으나 무영종은 너무나 놀라 지혈시
키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멸수라혼! 이것은... 과거 황(皇)이 익히던 수라구마검(修羅九
魔劍) 중 마지막 초식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 자가.......'
뒤이어 그는 얼마 전 수라혈신 석기량이 아수라비천마공을 쓴 것
도 기억해냈다.
'그 무공도 분명 그때 황의 거처에서 본 수라혈경(修羅血經) 속에
기재된 것이다. 대체, 대체.......'
무영종은 넋을 잃고 있었으나 반면에 사오 장 밖에 내려선 수라혈
신은 만면에 경악의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쇠를 무우 베듯 하는 이 수라마검에도 놈이 끄덕없다니, 고작 한
치의 살을 갈라냈을 뿐이라니.......'
그러나 그는 곧 이를 부드득 갈았고 수라마검을 휘두르며 음산하
게 외쳤다.
"모두들 마지막 총공격을 가해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주살해
라!"
그러자 수천 명의 수라궁도들은 더욱더 흉맹한 기세로 군웅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군웅들은 절망을 느꼈다.
'틀... 렸다. 이젠 끝장이다.......'
마침내 그들은 전신에 힘이 빠져 버렸다. 이때였다. 문득 하늘 높
이 불꽃이 솟아오르며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펑!
연이어 사방에서 청색의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와--- 아--- 아----!"
그와 동시에 천마봉 아래로부터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
은 최소한 천 명 이상이 동시에 내지르는 듯한 함성이었다.
혈전을 벌이고 있던 군웅들과 수라궁도들은 모두 경악했다. 어디
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인물들이 천마봉으로 올라와 수라궁의 인물
들을 주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다시 피, 피....... 피의 행진이 이어졌다.
삽시에 피가 대하(大河)를 이루며 천마봉은 다시 아수라의 전장
(戰場)으로 화하고 말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