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血鳳閣主라는 少女
황금면구인은 느릿하게 빙옥교를 향해 다가들었다.
그런 그의 전신에선 가공할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빙옥교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황금면구인은 그대로가 하나의 거대한 산(山)이었다.
다가서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서고..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이내 끝났다.
물러서는 빙옥교의 걸음을 벽이 끊어 놓았던 것이다.
죽음의 덫처럼 등으로 와 닿는 벽의 차가운 감촉에 빙옥교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황금면구인이 우뚝 멈춰서며 스산한 웃음을 피워 올렸다.
"본좌가 두렵느냐?"
말을 하는 그의 눈은 기이하게도 녹광(綠光)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순간 빙옥교는 전신의 맥이 탁 풀림을 느꼈다.
섭혼대법(攝魂大法)!
황금면구인은 상대의 혼을 조종하는 섭혼대법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섭혼대법에 있어선 공력이 우선한다.
빙옥교의 무공이 높다 하여 그것이 공력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무공은 어떠할지 몰라도 이미 내공의 대결에서 빙옥교는 황금면구인에게 패하지 않았던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짓깨문 그녀의 입술이 터져 핏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두려워 하지 마라.."
황금면구인의 섭혼대법은 더욱 기세를 돋우며 극점(極點)을 향해 치달렸다.
극점(極點),
그것은 스스로 자신이 펼치는 섭혼대법에 빠져들지 않으면 이르지 못하는 상태다.
허나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바로 그순간을 노리며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번-쩍!
한 자루의 핏빛 혈광(血光)이 허공을 환상처럼 갈랐다.
오송학의 그 일검초식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했다.
"컥..."
비명은 짧았다.
혈혼검은 황금면구인의 머리 위 천령개(天靈蓋)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천령개라면 인체(人體)의 삼십육대사혈(三十六大死穴) 중 최대사혈(最大死穴)이다.
쿵...
황금면구인은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일단 황금면구인을 해치운 오송학의 다음 동작은 일사불란했다.
그는 시체의 황금면구를 벗겨 삼십대 중반의 얼굴임을 확인하고는
신물(信物)인 듯 보이는 팔각금패(八刻金牌)를 거두고 옷까지 바꾸어 입었다.
이어 그는 삼매진화(三昧眞火)의 수법으로 시체를 불태워 삽시간에 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화르르..
이윽고 시체가 흔적도 없이 재로 변해 흩어졌을 무렵,
오송학은 어느새 황금면구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이어 그는 유유자적하듯 뒷짐을 지고 방안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어흠..!"
빙옥교는 망연자실한채 눈앞에서 오송학이 부리는 재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오송학이 불쑥 빙옥교를 향해 말했다.
"두번 다시 이런 실수가 있을 땐 결코 용납 못한다! 썩 물러가거라!"
밖에까지 들릴 정도의 커다란 호통성,
그 음성은 물론 황금면구인이 자아내던 기도(氣度)와 분위기까지 한 치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송학의 재빠른 대응으로 방금 있었던 일련의 사건이
완벽하게 외부(外部)에 은폐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빙옥교는 부끄러움에 가볍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오송학의 뜻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오송학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당주(堂主)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어 그녀는 지체없이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좀전에 겪은 곤욕으로 하여 그녀는 이제 매우 신중해지리라.
그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것은 말그대로 용담호혈(龍潭虎穴)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친 일은 스스로가 알아서 대처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오송학의 눈에 만족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느릿하게 밖으로 나섰다.
바로 그때,
부용단주라 불리웠던 은면구인이 때마침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오송학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혈봉각(血鳳閣)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사람이...?"
"혈봉각주께서 늘 보내 오던 두 시비(侍婢)입니다."
"음...그래..?"
"오늘도 혼자 혈봉각에 다녀오시겠는지요?"
'오늘도 라고...? 그렇다면 당주라는 아까 그 황금면구인은
거의 매일 혈봉각이라는 곳에 들리는 모양이군!'
오송학은 내심 염두를 굴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늘 하던 대로한다."
이어 그는 천천히 부용단주의 곁을 스쳐 지나며 위엄있게 한 마디를 던졌다.
"좀전 내린 명령은 차질 없이 시행하도록..."
"무슨...?"
"너는 갑자기 머리가 둔해졌느냐? 총단의 총순찰 말이다."
"아, 지금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당주께선 염려를 놓으시지요."
부용단주는 황망히 대답을 하며 오송학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 오송학은 이미 오장여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용단주의 두 눈 가득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날로 화후(化厚)가 더해지시는 듯 하다. 이제는 마주 대하기조차 힘드니..'
오송학은 긴 회랑을 지나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니 그곳은 등성이였다.
본래 그가 잠입해 든 곳은 등성이 위에 위치한 하나의 석전(石殿)이었던 것이다.
등성이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탈혼도의 경관(景觀)은 한 마디로 불야성(不夜城)이었다.
시각은 묘시(卯時)를 넘은 밤(夜)이나
탈혼도 전체는 밤을 무색케 하는 휘황한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혀 있었다.
거대한 고루거각(高樓巨閣)은 물론이고,
사이사이를 연결시키듯 자리한 숱한 건물들이 훤히 시야에 잡혔다.
그리고 녹음(綠陰)을 자아내는 무수한 기초이목(奇草異木)들...
마치 별유천지(別有天地)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 황홀한 불야성 속에 천하(天下)를 피(血)로 씻고자 하는
악마(惡魔)의 숨결이 배어들어 있는 것이다.
오송학은 눈앞의 장관(壯觀)에 일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때 문득 한줄기 앳된 소녀의 음성이 그의 앞에서 들려왔다.
"형당주(荊堂主)님을 뵈옵니다."
오송학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음성이 들려 온 쪽으로 던졌다.
그의 앞에 두 명의 소녀가 공손히 시립해 있었다.
둘 다 십오 세쯤 되어 보이는 홍의소녀(紅衣少女)들이었다.
청등(靑燈)과 홍등(紅燈)을 나누어 든 두 소녀의 용모는 깜찍하도록 귀여웠다.
'이 소녀들이 혈봉각에서 온 소녀들인 모양이군!'
오송학이 내심 염두를 굴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서 앞장 서거라."
"무슨 말씀이신지?"
"고약하구나. 내가 이시간에 혈봉각으로 가는 것도 잊어버렸단 말이냐?"
"아..!"
홍의소녀는 그제서야 짐작했다는듯 황망히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몸을 돌렸다.
두 소녀는 등성이를 왼쪽으로 돌아 몇 채의 전각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는 다른 전각들과 별도로 자리한 한 채의 거대한 전각 앞으로 다가갔다.
오송학은 그녀들을 따라 조각의 둥근 원형 문안으로 들어섰다.
전각 안은 또다른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좌우로 화원(花園)이 길게 이어져 있고,
몇채의 전각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두 홍의소녀는 화원 사이로 난 길을 지나 한동안 걷고 난 후에야
한 채의 화려한 이층 누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황궁(皇宮)의 내전(內殿)인 듯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도 운치 있게 지어진 누각이었다.
청등을 든 홍의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당주님, 소녀들은 여기서 물러갑니다."
"수고했다."
그 말에 두 홍의소녀는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기쁜 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어,
청등을 든 홍의소녀가 오송학을 향해 귀엽게 웃었다.
"소녀들은 형당주님이 무서운 분인 줄로만 알았어요.
헌데 오늘은 저희 자매들에게 이토록 친절하시니 소녀들은 정말 기뻐요."
본래 형당주였던 자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말이었다.
오송학은 내심 뜨끔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들이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두 홍의소녀는 오송학이 침묵을 지키자 조용히 물러갔다.
오송학은 그녀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려 누각의 주사빛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혈봉각이라..혈봉각주라는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거늘..'
그때 주사빛 문이 열리며 십 칠팔 세쯤 되어 보이는 미모의 홍의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평소 그러했던 듯 묵묵히 오송학을 이층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그녀는 주렴이 쳐진 안쪽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방안을 향해 공손히 입을 열었다.
"각주님께 아룁니다. 내당당주(內堂堂主)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방안에서 즉시 아름다운 여인의 옥음(玉音)이 들려 왔다.
"모셔라. 그리고 너는 물러가 있거라."
"명을 받드옵니다."
홍의소녀는 말을 마치자 주렴을 젖히며 오송학에게 길을 터 주었다.
오송학은 서슴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일견하여 여인의 규방(閨房)이었다.
여인의 방향(芳香)이 은은한 가운데
이곳 저곳 여인의 장신구(裝身具)가 걸려 있는 방안의 분위기는 매우 아늑했다.
오송학의 시선이 안쪽의 분홍빛 휘장을 향해 던져졌다.
휘장을 통해 여인의 그림자가 비쳤다.
오송학은 느릿하게 그쪽으로 다가가 휘장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한 명의 여인이 파고들었다.
자색복면을 쓴 여인이었다.
그녀는 둥근 원탁(圓卓)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오송학이 안으로 들어서자 백설같이 흰 섬섬옥수를 들어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어서 앉으세요."
'언행으로 보아 결코 당주급 이하가 아니다. 나보다도 어린 듯 보이고..'
오송학은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자리에 앉았다.
"나하고 상의할 일이라도 있소?"
순간 여인의 두 눈에 한줄기 이채가 스쳤다.
허나 그것은 거의 느끼기 힘들만큼 빠르고도 미미한 변화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호호..오늘은 좀 이상하시군요. 면구도 벗지 않고 늘 있던 일을 물으시니 말이예요."
오송학은 내심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
면구를 벗지 않고 있다니...
그렇다면 벗어야 한단 말인가?
오송학은 일시 난감했으나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이상한 건 오히려 각주인 듯 하구료. 항상 먼저 복면을 벗던 각주가 아니었소?"
넘겨짚어도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난 혈봉각주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맑은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그렇군요."
이어 그녀는 천천히 복면을 벗어 들었다.
순간 오송학은 방안의 분위기가 한층 환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러난 것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소녀의 아름다운 옥용(玉容)이었다.
그린 듯 섬세한 아미(蛾眉)와 고즈녘한 코,
그리고 붉은 꽃잎을 베어 문 듯한 입술과 불우물이 살짝 패인 홍조가 감도는 두 볼...
한쌍 봉복에 어린 눈빛은 어찌 그리도 맑고 선명한지
마치 상대의 마음속마저 꿰뚫어 볼 듯했다.
그 모습에 오송학은 내심 혀를 찼다.
'쯧쯧..아깝군, 아까워. 저토록 아름다운 소녀가
어쩌다 마굴(魔窟)속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단 말인가?'
그는 내심 탄식하며 자신도 황금면구를 벗어 원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냉막한 표정의 삼십대 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혈봉각주는 그의 얼굴을 일견한 순간 아미를 살풋 찌푸렸다.
"역시 그 모습은 막대장(幕隊長)의 본래 모습보다 인상이 안좋아요."
순간, 오송학은 하마터면 안색을 일변시킬 뻔했다.
'막대장의 본래 모습..? 도대체...'
혈봉각주는 오송학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더니 잘게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부끄러워 하시나봐."
'침착하자, 침착해. 여기엔 뭔가 내막(內幕)이 있다!'
오송학은 짐짓 정색을 하며 말을 받았다.
"누가 듣겠소."
"호호. 막대장께선 아직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러시나요?
아니면 갑자기 겁이 나서 그러시나요?
누가 있어 감히 혈봉각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겠어요.
탈혼부주(奪魂府主)라 해도 나 예사령(芮裟玲)을 만나려면
하루 전에 미리 연락을 하여야 하거늘..
염려 놓으시고 어젯밤에 하던 얘기나 마저 해요."
느긋한 음성이었다.
오송학은 비로소 깨닫는 바가 있었다.
'혈봉각주 예사령..
이 소녀의 신분은 이곳 탈혼도 내에서 절대적이다.
또한 이 소녀는 무엇인가 암계(暗計)를 꾸미고 있다
. 상황으로 보아 내가 죽인 형당주라는자는
이미 막대장이라는 자와 바꿔치기 되어 있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때, 예사령이 넌즈시 다시 말을 건네 왔다.
"어쩌시겠어요? 당신의 뜻대로 당신을 탈혼도 주요 인물과 바꿔 주었으니
이젠 나를 믿을 때도 되지 않았나요?"
"나의 사사형(四師兄)이 오셨어요.
그는 분명 백팔철기대(百八鐵騎隊)를 데려가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해요.
막대장이 그것을 막아야 해요."
"당신은 아직도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 같군요."
오송학은 침묵을 지켰다.
아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그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고 대뜸 나는 막대장이 아니라 오송학이라는 사람이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러나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좋다. 어차피 탈혼도에 잠입해 들어온 것부터가 모험이었다.
다시 한번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그의 눈빛이 일순 예리하게 빛났다.
"낭자, 낭자의 말마따나 낭자는 나를 내당당주와 바꿔쳐 주었소.
허나 그것만으로 낭자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일이오.
왜냐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엔 수천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오.
내 입장을 양해해 주었으면 고맙겠소."
일사천리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둑한 배짱에서 비롯된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헌데, 그 배짱이 적중했음인가?
예사령은 그 말을 듣자 안색을 심각하게 굳히며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으니..
오송학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낭자, 낭자가 무슨 연유로 나를 도우게 되었는지 이유가 될만한 증거를 보여 주시오.
내가 낭자를 완전히 믿을 수 있는 확신할 증거를..."
음성도 표정도 단호했다.
순간, 예사령은 잠시 갈등의 기색을 짓더니
이내 결심이 선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히 그러시다면..."
그녀는 말과 함께 상의(上衣) 앞섶으로 손을 넣어
한 통의 얇은 봉서(封書)를 꺼내 오송학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오송학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봉서를 받아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봉서 안에는 한 통의 서찰(書札)과 푸른빛이 감도는 옥패(玉牌)가 하나 들어 있었다.
오송학은 먼저 서찰을 꺼내 펼쳐 보았다.
<예사령,
그대는 원수를 도우려는가?
암흑마천은 그대의 부모(父母)를 죽인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의 집단이다.
믿고 안 믿고는 그대의 자유이나 여기 용봉쌍패(龍鳳雙 ) 중 용패를 동봉하니 참조하라.
그대가 진실을 깨닫고 나름대로 의지를 보여줬을 때,
우리는 그대 앞에 나타나 그대의 신분내력(身分來歷)을 밝히겠노라.
대의(大意).>
간단한 내용이었다.
허나 그곳에 실린 뜻은 너무도 큰 것이었으니..
오송학은 서찰의 마지막에 쓰여진 대의(大意)라는 두 글자를 잠시 눈여겨보다
이번엔 봉서 속의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예삿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 벽옥패였다.
헌데 벽옥패의 앞면엔 살아 움직이는 듯한 한 마리의 용(龍)이 정교하게 양각(陽刻)되어 있는 반면,
뒷면은 거칠게 쪼개져 있었다.
즉 그 벽옥패는 누가 보아도 반쪽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예사령이 목에서 목걸이를 풀어 오송학에게 내밀었다.
"어려서부터 차고 있던 것이예요. 그 용패와 맞추어 보세요."
오송학은 천천히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그 목걸이엔 용패와 같은 재질의 벽옥패가 하나 달려 있었다.
또한 그 벽옥패의 앞면엔 날아갈 듯 정교한 한 마리의 봉황(鳳凰)이 양각되어 있고,
뒷면은 용패와 마찬가지로 거칠게 쪼개져 있었다.
오송학은 다시 굳은 표정으로 두 벽옥패를 맞추어 보았다.
꼭 맞았다.
두 벽옥패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들어맞아 비로소 하나의 용봉쌍패가 되었던 것이다.
예사령이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믿을 수 있나요?"
오송학은 그녀에게 용봉쌍패를 건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소. 헌데, 서찰에 서명(書名)된 대의(大意)라는 뜻은 알고 있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용봉쌍패예요."
"아직 어리구료. 그런 것 하나로 인해.."
순간 예사령이 싸늘하게 눈빛을 굳혔다.
"말을 삼가세요. 당신은 내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를 알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예요
. 한낱 금수(禽獸)도 혈육(血肉)의 정(情)에 목숨을 버리거늘.."
"아.. 알았소. 사실 내가 낭자의 처지였다 해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을 것이오.
나 역시 부모 없이 자란 몸...낭자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오."
오송학의 표정은 진중했다.
기실 그 말은 그의 진심이었다.
과거 혈부(血府)에서 유작(儒爵)이 남긴 서찰에
부모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었을 때 그는 얼마나 격동했었던가?
예사령은 그의 진중한 표정을 대하자 예의 그 맑고 초롱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요."
"좋소. 내가 할 일은..?"
"우선 당신의 잠입 세력에 연락을 취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세요.
당신은 힘을.. 나는 정보(情報)를 제공해 우리의 공동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예요."
'잠입세력..? 야단났군
. 막대장이란 인물과 연결된 세력과 어떻게 접촉해야 한단 말인가?'
산(山) 너머 산이었다.
오송학의 내심의 당혹에 아랑곳없이 예사령은 말을 이었다.
"거사일(巨事日)은 언제가 될지 몰라요. 오늘이 될지 아니면, 내일이 될지.."
돌연 말을 잇던 예사령이 흠칫 입을 다물었다.
대신 또다른 음성 하나가 창문을 통해 짤랑짤랑 울려왔다.
"혈봉각주께선 명령서(命令書)를 받으세요."
구관조(九官鳥),
음성의 주인은 뜻밖에도 전신의 털이 흑자색(黑紫色)이고
부리와 다리가 황색(黃色)인 한 마리의 구관조였다.,
예사령은 그 구관조를 발견하자 자신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싶었는지
피식 웃으며 구관조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리 오너라. 흑관(黑官)."
그러자, 구관조는 방안으로 날아들어 예사령의 손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구관조의 발에는 서찰 하나가 매어 있었다.
예사령은 그 서찰을 풀어 읽어보고는 구관조의 부리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수고했다. 이제 그만 가 보거라."
"아름다운 아가씨, 안녕.."
퍼드득...!
구관조는 예사령의 손을 떠나 창을 통해 밖으로 사라졌다.
예사령이 다시 오송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금전집회(金殿集會)에 참석하라는 명령서예요.
사사형(四師兄)이 주관하는 집회이니 나도 참석 안할 수가 없군요.
얘기는 뒤로 미루고 당신도 어서 내당(內堂)으로 가
금전(金殿)에 들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주의할 것은.."
"금전집회때 당신은 되도록 입을 열지 마세요.
만약 누구든 당신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면 만사(萬事)가 수포로 돌아가요.
특히, 사사형의 눈은 날카로우니 조심하셔야 해요."
"도대체 낭자의 사사형이란 자는 누구요?"
"오늘 도착한 총단의 총순찰 도남강이 바로 나의 사사형이예요."
"으음.."
오송학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침음성을 흘려 냈다.
총단의 총순찰이 예사령의 사사형이라면...
예사령은 암흑마천 내에서 지고한 신분을 지닌 인물의 제자(弟子) 중 한 명이 아니겠는가?
오송학은 즉시 방을 빠져나왔다.
이윽고 얼마후 오송학이 내당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청의소녀 청화로 변장하고 있는 빙옥교가 재빨리 다가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당주께 아뢰옵니다. 내당 십이단(十二壇)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의 그녀에게선 조금도 느낄 수 없었던 공손함이었다.
오송학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억지로 참으며 짐짓 싸늘하고도 위엄 있는 명을 내렸다.
"모두들 들라 하라."
"예."
빙옥교의 말과 태도는 여전히 공손했다.
허나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눈은 하얗게 흘겨지고 있었다.
'여전하군!'
오송학은 고소를 금치 못하며 태사의로 다가가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잠시 후,
열두 명의 은포면구인(銀袍面具人)이 안으로 들어와
오송학을 향해 일제히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당주를 뵈옵니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꽃(花) 한 송이씩을 가슴에 수놓고 있었는데..
면구 속에서 빛나는 눈빛이 한결같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허나, 그들은 본래의 형당주라는 인물을 두려워했던지
아니면 존경했었던지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조심스러웠다.
오송학은 여전히 태사의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입을 열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라."
"예!"
은포면구인들은 대답에 이어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각(四刻)의 긴 탁자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으음..조직(組織)에 철저히 몸에 밴 자들이다.
또한 하나같이 대단한 무공수위(武功首位)를 지니고 있는듯 하구나.'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은연중 살피던 오송학은 내심 감탄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명령서가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 접수해 놓았느냐?"
순간, 자죽(紫竹)을 가슴에 수놓은 은면구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마침 당주께서 공석(空席) 중이셨는지라 속하가 접수해 놓았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는 오송학에게 다가가
예사령이 구관조를 통해 받았던 것과 같은 서찰 한 통을 오송학에게 내밀었다.
오송학은 서찰을 받아 천천히 펼쳐 보았다.
<탈혼부명령서제팔십구호(奪魂府命令書第八十九號)-
분류(分類) : 이급(二級),
내용(內容) : 단주급(壇主級) 이상의 금전집회(金殿集會)에 관한 건(件),
해당자는 술시(戌時)까지 금전(金殿)으로 모일 것.
총단 총순찰.>
오송학은 명령서를 모두 읽자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부용단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부용단주는 진척이 있느냐?"
"예! 총순찰이 오신 목적은 백팔철기대를 인솔해 가기 위함인 듯 합니다.
이미 예사령을 통해 들은 얘기였다.
그러나 오송학은 그러한 사실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짐짓 심각하게 눈빛을 굳혔다.
"백팔철기대라.."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팔짱을 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오송학은 좌중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자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되었다. 모두 따르도록.."
* * *
금전(金殿),
백여 평(坪)에 달하는 드넓은 전청(殿廳)이다.
안쪽 상단(上壇)엔 화려한 구룡옥좌(九龍玉座)가 하나 놓여 있고,
구룡옥좌의 뒤엔 찬란하고도 거대한 핏빛의 피발대제상(披髮大帝像)이
아수라(阿修羅)의 숨결을 내뿜듯 음산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구룡옥좌의 오른쪽 옆엔 연갈색 교의(轎椅) 하나..
다시 구룡옥좌를 중심으로 삼 장여 앞쪽으로 정확히 아홉 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천정으론 수십 명의 면구인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간간이 황금면구인들도 보였으나 대부분이 은면구인들이었다.
이윽고,
모일 사람이 다 모였는지 넓은 전청에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이때 오송학은 구룡옥좌 뒤의 피발대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잔살스럽군. 그러나 내손에 반드시 가루로 변하리라!'
그때 부용단주가 뒤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당주.. 어서 자리하시지 않고 무얼 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구룡옥좌 앞의 아홉 개의 자리 중
여덟 자리엔 이미 여덟 명의 황금면구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단 하나의 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저기가 바로 내가 앉을 자리인가?'
오송학은 아홉 개의 자리 중 중앙에 위치한 빈자리로 천천히 다가가 섰다.
바로 그때,
둥! 둥! 둥..!
어디선가 한 줄기 장중한 북소리가 울려와 장내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피발대제상의 뒤쪽에 위치한 문(門)이 열리며
한 명의 홍의미소녀(紅衣美少女)가
손에 핏빛 혈무(血霧)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옥정로(玉鼎爐) 하나를 받쳐들고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홍의미소녀는 피발대제상 옆의 석대(石坮) 위에 옥정로를 올려놓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낭랑하게 소리쳤다.
"부주(府主)께서 드십니다!"
음성이 떨어진 순간,
피발대제상 뒤쪽의 문으로부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의복면인(血衣覆面人)이었다.
팔척(八尺)의 장신(長身)에 당당한 체격의 인물,
기이한 것은 그의 전신에선 온통 핏빛의 기운만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좌중의 모든 면구인들은 그가 나타나자 일제히 허리를 꺾어 예를 취했다.
"부주를 뵈오!"
헌데 혈의복면인은 좌중의 예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걸어나온 문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문으로부터 또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신에 묵빛 장포(長袍)를 멋드러지게 걸친 인물,
그는 복면도 하지 않은채 자신의 준수한 용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놓고 있는
미청년(美靑年)이었다.
그의 뒤에는 늘씬한 몸매의 자색복면여인이 조용히 따라나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혈봉각주 예사령이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좌중에서 고막을 찢을 듯 우렁찬 외침이 터져나왔다.
"삼가 총순찰을 뵈옵니다-!"
"혈봉각주를 뵈옵니다-!"
묵의미청년은 일제히 부복대례를 취하고 있는 장내의 면구인들을
오만히 쓸어 보며 천천히 구룡옥좌로 다가갔다.
장내의 분위기는 이 순간 엄숙하다 못해 차라리 장엄했다.
묵의미청년은 이내 구룡옥좌로 다가가 몸을 앉혔다.
이어 예사령이 구룡옥좌 옆의 연갈색 교의에 섬연한 교구를 앉히자,
그때에야 비로소 묵의미청년의 입이 열렸다.
"모두 예를 거두고 자리하라."
"황공하옵니다!"
면구인들은 일제히 우렁차게 외친 후에야 몸을 일으켜 각자 정해진 자리에 몸을 앉혔다.
묵의미청년이 좌중을 쓸어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금전집회는 본좌가 주관한다."
단조직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떨어질 새도 없이
오송학의 옆에 앉아 있던 황금면구인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허리를 꺾었다.
"명을 받드옵니다!"
"보고하라."
"예, 외당은 지금껏 천주(天主)의 지고하신 은혜를 입어.."
"잠깐."
묵의미청년이 싸늘한 음성을 그의 말을 가로챘다.
"외당 소속 총인원(總人員)만 말하라."
"명을 받드옵니다
. 외당 소속 십이단(十二壇) 산하(傘下) 총인원
현재 일천팔백사십구(一千八百四十九) 명이옵니다."
"출동(出動) 준비는..?"
"천주의 명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중원(中原)의 강남(江南) 삼개성(三個省)을 피(血)로 씻을 것이옵니다!"
"좋아. 다음은 내당."
묵의미청년의 시선이 오송학을 향해 섬전처럼 꽂혀들었다.
오송학은 침착하게 몸을 일으켰다.
"내당, 명을 받드옵니다."
묵의미청년의 입가에 언뜻 엷은 미소가 스쳤다.
"오랜만이오, 형당주. 전번에 왔을 때는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했는데...
그때 어딜 갔었소?"
오송학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실로 예기치도 못한 질문이 아닌가?
사실 그로선 어떤 질문이 가해져 온다 해도 마찬가지였지만...
헌데 돌연 그의 귓전으로 한 줄기 가느다란 전음성이 파고들었다.
"그때 당신은 그를 만났어요."
'예사령이..?'
그렇다.
전음성은 바로 예사령의 것이었다.
오송학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속하는 그때 분명 총순찰과.."
"아하..내가 착각했군. 그때 그대는 본좌와 바둑을 두어 한 집을 남겼었지."
"송구하옵니다."
"그래..내당의 총인원은 얼마요?"
'제기랄...이거 몇 명이라고 대답해야 하나?'
오송학은 그 질문이 떨어지면 대충 대답하려 했으나
막상 닥치고 보니 뒤쪽의 내당산하 단주들이 의식되어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망설여졌다.
'외당 총인원이 일천팔백사십구 명이라 했으니 대충 그와 비슷할 텐데..
에라, 모르겠다. 갈 때까지 가보는 거다!'
그의 입이 열렸다.
"내당 소속 십이단 산하.."
그의 귓전으로 예사령의 전음성이 빠르게 다시 들려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천이십사(一千二十四)."
순간 오송학은 앞 뒤 가릴 겨를도 없이 그 전음성을 재빨리 받아 넘겼다.
"일천 이십 사 명이옵니다."
묵의미청년이 즉시 말을 받았다.
"본 암흑마천은 이제 머지않아 천하재출도(天下再出道)를 하게 되오.
이 기회에 형당주의 각오를 듣고 싶소."
오송학은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켰다.
'외당이 중원으로 출동한다 했으니 내당은 성격상 외당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오송학은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외당의 후원(後援)은 물론
남해(南海)의 보루(堡壘)인 탈혼도 수호(守護)에 목숨을 걸겠사옵니다."
대답이 적중했음인가?
"하핫..역시 형당주답소. 천주께서 들으시면 몹시 흡족해 하실 것이오."
"황공하옵니다."
오송학은 말과 함께 허리를 숙였으나 내심 냉소를 머금었다.
'암흑마천주는 탈혼부 멸망이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듣게 될 것이다!'
그때 묵의미청년이 다시 한 명의 황금면구인에게 예리한 시선을 던졌다.
"마환당(魔幻堂)."
"마환당, 명을 받드옵니다!"
"오늘 탈혼도로 잠입하려던 자가 있었다고..?"
"송구하옵니다."
"송구하긴..그 자가 누구이던 간에
그 자를 수장(水葬)시킨 마환당의 노고를 천주를 대신해서 치하하오."
"황공하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송학은 내심 조소(嘲笑)를 금치 못했다.
마환당이 수장시켰다는 자신은 버젓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암흑마천 탈혼부의 아홉당주 중 일인(一人)으로까지 변신해 있지 않은가.
어쨌든,
묵의미청년은 계속해서 황금면구인들을 차례로 호명(呼名)해 나갔다.
이윽고,
우측의 맨 끝에 자리한 황금면구인이 마지막으로 묵의미청년의 시선을 받았다.
"철기당(鐵騎堂)."
"철기당, 명을 받드옵니다!"
"백팔철기대가 이미 지옥십관(地獄十關)을 통과했다 알고 있는데.."
"그러하옵니다.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모두 무사히 통과했사옵니다."
"흐음.. 그렇다면 개개인이 최소한 일당천(一當千)의 무공을 쌓았다 봐야 하는데..
자신할 수 있소?"
은근하면서도 강압이 서린 음성이었다.
그러나 황금면구인의 대답은 지체없이 흘러나왔다.
"지옥십관을 통과한 백팔철기대는
이미 인간이 아닌 가공할 살인병기(殺人兵器)들입니다."
"살인병기..."
묵의미청년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러나 그 굳었던 표정이 풀린 순간 그의 입에선 앙천대소가 터져나왔다.
"으하하하하핫..가히 철기당주다운 표현이오. 또한 그 말을 믿소."
"황송하옵니다."
"헌데 떠날 준비는...?"
"이미 백팔 명 모두가 승선(乘船) 완료된 상태입니다."
쿵!
묵의미청년이 돌연 구룡옥좌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힘껏 내려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좋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곧바로 떠난다.
천주께서 그토록 기다리시던 백팔철기대가 아닌가?"
그의 입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앙천광소가 터져나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