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이재성의 문학 세계 인생과 문학의 동질적 진실 탐색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삶과 문학의 동행에서 찾은 인생론 이재성 시인이 희수(喜壽) 문집 『인공낙원』을 상재하고 그의 인생과 문학의 접목에 대한 거룩한 결실을 이루고자 한다. 대체로 문학의 본령은 인생문제를 별개의 지향점으로 정립하지는 않는다. 일찍이 시인 P. 발레리의 언지와 같이 문학의 목적은 인생의 목적과 같이 미정(未定)이며 미완(未完)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학, 그것도 시(詩)에 대한 열정을 인생과 동행하면서 희수를 맞게 되는 이재성 시인의 인생 행보(行步)는 인생 유토피어의 건설을 위해서 참으로 위대하게 향기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가 희수 인생을 영위하면서 체득(體得)하는 정감(情感)은 바로 이 사회와 인간들을 향한 호소이며 진정한 감흥(感興)을 유발하는 시이며 수필로 형상화하면서 인생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재성 시인과 필자는 양띠(1943년생) 갑장(甲長)이다. 그는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문학을 필생의 업(業)으로 살아가는 전원(田園) 시인의 풍모를 잃지 않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의 온후(溫厚)한 인품이 말해주듯이 산촌에 파묻혀 살면서도 전국의 문우(文友)들과의 교감도 잊지 않는 정적(靜的)인 친구로서의 우정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성 시인은 1943년 춘천에서 태어나 다양한 현실적 생활 전선에서 체감(體感)한 이미지들을 정리하고 함축해서 문학전문지 월간 『ᄒᆞᆫ맥문학』 신인상 응모에서 시가 당선 되어 당당하게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어 지금까지 농사와 문학을 병행(竝行)하는 억척 시인이다. 그는 시집 『사랑 그 타는 허무』를 발간하고 불교문학상과 ᄒᆞᆫ맥문학 모범상, 국민카드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는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인연대, 연천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불교문학회 이사, ᄒᆞᆫ맥문학가협회 부회장으로 우리 문단에서도 그가 발양하는 문학적 의식은 과히 상찬(賞讚)할 만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재성 시인은 이 책 ‘책 머리에’서 ‘문학은 이상과 실제 사이에 다리와 같은 생각이 문학으로 바뀌고 문학이 현실로 이루어 질 때 인생도 구름에 달가듯 굴러가리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그의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살이가 그의 문학에 많은 이미지와 의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는 다시 『연천문학』 2004년도 제2호에 발표된 그의 글 「성숙한 삶의 노래」 중에서는 그는 삶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함축시키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친구 /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보약 / 첫 사랑에 빠지듯 / 황홀한 통증을 주는 아름다운 함정 / 알싸한 향기로 영혼을 사로잡는 / 행복의 요람이다.’는 ‘영혼’과 ‘행복’을 동시에 긍정하는 인생론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이어서 ‘무릇 시는 자기 감정의 표출이다. 따라서 순수하고 적나라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유로운 인간본능의 쾌락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상으로 리듬과 직유 은유와 풍자가 있고 경우에 따라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눈과 역설적인 감정, 그리고 함축된 알갱이로 토해내야 한다.-중략-이 시대의 바턴을 물려받은 주인공이시여! 비록 시는 돈과 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과 교감을 통해 누구나가 시인이 되어 인생을 즐겁게 만들고 오늘의 삶을 북돋우면서 사람다운 성숙한 삶으로 태어나 주어진 오늘을 마음껏 향유하여 행복의 날개를 활짝 펴자.’라는 의미심장한 시에 대한 위의(威儀)나 본령을 토로(吐露)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살지 않을 수도 없고 죽지 않을 수도 없는 피동적인 존재, 지금 이 순간도 신이 부여해준 소중한 순간들이 싸늘하고 외로운 무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삶의 현실 앞에 차라리 그 운명을 쓸어안고 즐겨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우연히 왔지만 광활한 인생 무대에서 사는 방법을 택할 자유가 있다. 인간 본능은 생명의 자유, 마음 하나로 괴로움과 즐거움이 나눠지는 소욕지족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자. --「소욕지족」 중에서 이재성 시인의 확고한 가치관이 정립한 생활신조(信條)가 적나라(赤裸裸)하게 적시(摘示)되어 있다. 그는 ‘소욕지족’이라는 삶에 대한 평소의 심저(心底)를 발현함으로써 그의 인생이나 문학이 ‘운명’이라고 결론짓는 고차원의 심성(心性)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어차피 인생은 임어당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말한 대로 ‘인생의 황금시대는 늙어가는 장래에 있지, 지나간 젊은 때의 무지에 있지 않다.’는 말처럼 현재 진행형인 성숙한 삶에서 그 의미를 탐색해야 하는 것이다. 2. ‘신망리’에서 감응하는 시적 환희 이재성 시인은 이러한 인생론에서도 절감(節減)하고 있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하면서 그의 문학을 완성시키려는 완고한 의식이 용암(鎔巖)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것의 중심에는 그가 일찍이 생활의 터전으로 일군 연천군 ‘신망리’를 배제하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어렵게 정착의 입지(立地)를 마련하지만 여기에 전개된 애환(哀歡)이 바로 그의 시적 진실을 발현케 하는 모태(母胎)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재생이나 이미지의 창출은 이 보금자리 ‘신망리’에서 생성한 그의 시적 보고(寶庫)이다. 도시를 떠나 통일호에 몸을 싣는다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는 도원경 향기로운 산나물은 손길을 유혹하고 산새들은 풍류를 즐기잔다 무언의 교감으로 보이지 않는 행복 그 누가 알랴. --「신망리에 가면」 전문 그렇다. 이재성 시인은 이곳 ‘신망리에 가면’ 그는 ‘무언의 교감으로 / 보이지 않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산과 들이 / 조화를 이루는 / 도원경’임을 감응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다. 도농(都農)이 숨쉬는 신망리(新望里)에 푸른 생명의 보금자리 틀었네 일도 절반 놀이도 절반 빛이 어둠 털어내듯 번거로움과 외로움 걷어 가리니 꿈은 저만치서 들꽃은 이만치서 저리도 손짓하는데 구름 사이로 천수(天壽)의 미소 황홀하여라 --「중용(中庸)의 노래」 전문 다시 이 작품에서도 ‘푸른 생명의 보금자리’가 바로 ‘도농이 숨쉬는 신망리’이다. 그가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직접 그곳을 방문해 본 사람은 모두 잘 안다. 그가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에서 이제는 ‘꿈은 저만치서 / 들꽃은 이만치서 / 저리도 손짓하는데 / 구름 사이로 천수(天壽)의 미소 / 황홀하여라’라는 쾌재(快哉)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희수 기념으로 출간하는 문집 『인공낙원』 출판기념과 함께 제막하는 시비에 각자(刻字)된 소중한 그의 분신(分身)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신망리’와는 별개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인공낙원’이 건재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 작품 창작에서 자신의 체험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연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삶과 인생행로에서 경험한 오욕(五慾)과 칠정(七情-喜怒哀樂 愛惡慾)에서 분사(噴射)된 그 궤적(軌跡)들이 재생하여 시적인 발상이 되고 주제가 되는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경향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재성 시인의 의식에도 이러한 인식이 도농(都農)의 복합적인 사유(思惟)로 활성화하여 작품의 모태가 되고 문학 정신의 기치(旗幟)를 높이 세우는데 초석(礎石)이 되고 있어서 그의 뇌리(腦裏)에는 언제나 희수라는 인생연륜과 동시에 안온하고 풍만한 가치관이 잠재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3. ‘흔들리지 않는 노년’의 회상과 성찰 이재성 시인에게서 명징(明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 정신은 이와같은 역경과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노년’으로 그의 일생을 성찰하고 있다. 그는 ‘금년부터는 영광(?)스러운 나이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토로하고 있다. 그것은 ‘정부라는 느티나무 그늘에서 전철을 무료 승차하고 노령 연금 수령 등 경로 계급을 달게 되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몸이 아파오는 고통이 없는 고독, 돈이 없는 불편과 친구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허무감 등이 추억에서 울고 고독과 권태에 몸부림칠 수도 있지만 어차피 그 운명이 내 것이라면 그것을 쓸어안고 달래가며 사는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의 틈바구니에 끼어 웃다가 울다가 사그라지는 인생길, 고통과 슬픔이 이야 말로 인간에게 형이상학(形而上學)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닐까. 내가 죽거나 말거나 이 세상은 아무런 상관없이 돌아가리니 자유로이 굴종(屈從)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이성적인 창조물에게만 허용 되는 것이리라.(이상 「흔들리지 않는 노년」 중에서)’는 비장한 어조는 그의 가치관에서 배제할 수 없는 성찰의 의지가 활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함께 가는 세상은 포근함이 묻어 옵니다 혼자선 살 수 없는 인생이기에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며 부대끼며 이 길을 갑니다 그리하여 비정한 세상에서 두려움이 행복으로 추함이 깨끗함으로 멋진 조화를 이루며 빛과 소금이 됩니다. --「더불어 삶」 전문 그는 이렇게 지향적인 삶의 설계를 끝없이 그려 나가고 있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더불어 삶’으로 축약(縮約)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비정한 세상에서 / 두려움이 행복으로 / 추함이 깨끗함으로 / 멋진 조화를 이루며 / 빛과 소금이 됩니다.’는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본능은 생명의 자유가 아닌가. 경찰서든 병원이든 자식이든 재산이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돈은 너무 없어도 많아도 인간은 부자유스럽다. 늙고 병들고 돈이 없어 자식들에게 구박 받는 것도 추한 모습이지만 반대로 상속(相續)을 위한 기대 심리로 자식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상실과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을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생각하기조차 끔직한 일이다.(「흔들리지 않는 노년」 중에서)’는 언지는 그의 숭고한 인생 철학의 발현이라고 할 있을 것이다. 도도한 세월 속에 찾아온 고희라는 손님 아-아 치차에 맞물렸던 세속 이젠 자아의 노래를 부르리 순수한 들길처럼 자유로운 산새처럼 아름다운 사랑처럼 --「귀농」 전문 이재성 시인은 ‘고희라는 손님’을 맞이하면서 지나온 회포(懷抱)에 잠기고 있다. 그는 모든 상념(想念)을 떨쳐내고 작심한 듯이 ‘이젠 자아의 노래를 부르리’라는 단언적인 결론으로 성찰을 정리하고 있다. 그것이 ‘귀농’이라는 단초가 바로 그의 인생관이나 문학관에 다양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즐기면서 살아 왔으며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향년(享年)이 될 때까지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가 심중에 깊이 간직한 노래 ‘순수한 들길처럼 / 자유로운 산새처럼 / 아름다운 사랑처럼’이라는 순정적인 메아리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가오는 것은 ‘자아의 노래’이다. 이 자아(自我-the self)는 자존(自尊)과도 일치한다. 일찍이 K. 야스퍼스가 그의 글 「현대의 정신적 상황」에서 ‘인간은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의식하고 자기의 세계를 탐구하고 계획을 세워서 그것을 바꾼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동일물(同一物)의 무의식적인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 자연의 성사(成事)로부터 얻어 맞는다.’는 논지로 자아의 정신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사고(思考)는 자아에 대한 이재성 시인의 사유에서 순수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만유(萬有)의 사랑으로 현현되어서 그의 삶과 자아에 대한 밝은 등불로 영원히 빛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4. ‘휴전선’에서 소망하는 이산(離散)의 슬픔 이재성 시인이 지금까지도 오매불망(寤寐不忘) 가슴 아프게 애통(哀痛)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다. 그는 어느 날 문학기행으로 백마고지를 찾았다. 백마고지 전적비 팔각정 앞에는 이렇게 세워진 글이 있었다. 건립에 붙이는 글 이곳에는 아직도 포성이 들리는 듯하다 / 참혹한 전란으로 평화롭던 이 강산이 페허로 변했던 그 시절- / 용사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어 / 저 백마 산정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돌진했다 //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하는가 / 기억하는 이는 점점 세상을 등지고 /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를 되묻고 있다 // 이제 우리는 피흘려 지킨 자유의 소중한 값을 큰 소리로 가르쳐야 한다 / 이것은 우리 조국의 영생 번영을 위한 것이다 //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이 고지를 님들과 후손에게 바친다. 1999. 5. 3. 보병 제5사단 사단장 소장 김 봉찬 참으로 가슴 아픔 사연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를 되묻고 있다’는 반공의식의 개탄이다. 필자와 그는 6. 26의 전란을 어린 시절이지만 몸소 겪었다. 그때의 비극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면서 동족생쟁의 민족적인 고통은 지금도 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강산이 6번 변했건만 애절한 소원은 철조망과 함께 녹쓸었네 피와 눈물을 즐겨마신 이념의 총구는 삼팔선에서 군침을 삼키고 강대국 사이사이 꼭두각시놀음 그칠 날이 없구나 이산가족들은 낙엽지듯 세상을 등지는데 지하에서 만나려나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휴전선」 전문 이재성 시인은 옛날에는 밤이면 대남방송이 울리는 최전방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휴전선’의 이미지를 더욱 절실하게 감응하고 있다. 그가 동원하는 언어가 ‘철조망’이며 ‘피와 눈물’이며 ‘이념의 총구’이며 ‘삼팔선’이라는 절망과 비극이 범벅이 된 무서운 전쟁용어들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아파하는 것은 ‘이산가족들’이다. 이들이 통일을 맞지 못하고, 그리던 고향을 찾지 못하고 부모형제들과의 상봉을 못하고 ‘낙엽지듯 / 세상을 등지는’ 현실이 더욱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남아 있음을 시적으로 통탄(痛嘆)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현실은 우리 국민 모두의 통일의 열망이지만 최전방에서 삶을 영위하는 한 시인의 염원은 궁극적인 우리 민족의 소망이며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할 민족적 대명제이다. 지금까지 일별(一瞥)해본 이재성 시인의 문학세게는 귀농한 농민으로서의 애환이 절실하게 분사하는 삶과 인생의 진실을 구명(究明)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은 확대되고 있디. 그는 때때로 ‘나는 시를 먹고 / 아내는 TV를 먹는다 // 돈도 안되는 시 / 개나 주라고 / 멍청이 만드는 바보상자 / 고물상에 주라고 // 상호 비웃지만 // 우리는 성질 비틀고 반쪽 지키며 / 동행하는 철길(「동행」 전문)’이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시와 더불어 진행하고 있으나 ‘아내’와의 ‘동행’에 대한 숭엄(崇嚴)한 가치관이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나의 문학세계」라는 글에서 ‘나의 글은 솔직히 독서에서 명문의 인용이 많았다. 독서에서 얻은 간접경험이 시답잖은 나의 문장을 무르익도록 계시(啓示)해 주고 깨어나게 했다. 비록 생명의 빛깔을 탐색하기 위해 긴긴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연필 방아를 찧을지언정 이웃과의 호흡을 맞추며 마음을 여는 세상을 갖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이가. 그래서 문학인은 남모르는 고뇌를 당하면서도 그 탄식과 비명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 하는 불행한 존재라고 키에르케고르는 갈파하지 않았던가’라는 진솔한 정감을 분사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문학관이며 인생관이며 남은 여생(餘生)을 송두리째 지향해야 할 진실한 가치관이다. 그가 귀한 물심(物心)으로 가꾼 ‘인공낙원’의 영혼이 그의 문학과 함께 영생(永生)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