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박3일, 꿈을 꾼 듯한, 신선이 되어 걸어간 길...
민족의 영산 지리산, 항상 꿈꿔 왔던 길, 가고 싶어도 하루 이틀로 끝날 수도 없고 간다해도 수박 겉핱기식 그냥 보고 지나치기만 하던 곳이라 엄두를 못낸 곳입니다. 그런데 이번 8월 16-18일 금토일 2박3일 일정으로 오케스트라에서 다녀 왔습니다. 지리산,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곳임에도 쉽게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오지임도 뿐 아니라 지리산 전문이신 산맥님이 현지진행 덕분, 2박3일 동안 지리산에 푹 빠졌을 뿐 아니라 함양 상림숲,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지안재와 오도재, 서암정사, 실상사, 정령치 등 지리산이 품고 있는 보물들까지 섭렵, 떠나올 때 생각해보니 분명 2박3일 일정이었는데 보고 느끼고 즐긴 것은 4박5일 일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6일 광복절 다음날 금요일 차량 두 대로 힘차게 경상도쪽 지리산 입구인 함양군 휴천면으로 떠납니다. 놀멍쉬멍 가는 길, 막바지 피서기간이라 차가 많을 것 같아 저녁 때 숙소에 모일 예정이었는데 차량소통이 빨라 오후 2시경 함양 상림숲에 도착합니다. 첫 번째 보너스로 생각지도 않았던 함양 상림숲을 천천히 걷고 즐깁니다. 함양 상림숲이 보너스가 아닌 대박인 것은 마침 이곳 관리소장님이 오케스트라 회원이자 건각을 자랑하는 이군님 친구분, 산맥님과도 잘 아시는 분, 오케스트라에서 귀한 분(?)들이 오셨다고 설송주 등 지역특산물 등 선물을 바리바리 내놓으시고 함양에서 가장 이쁜(?) 카페,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공연까지 소개하는 등 졸지에 지리산 2박3일 아닌 1박2일 함양펨투어로 바뀌는 바람에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에 있습니다. 관리소장님 선물만 해도 참가비 절반은 나왔습니다.
함양 상림숲을 잘 걷고 아직도 해가 길어 근처 서암정사에 들립니다. 한국의 일반사찰과 달리 중국풍(?)의 서암정사, 노을지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사찰을 걸으니 분위기가 다릅니다. 서암정사에 나와 숙소로 가니 오케스트라 남원지부장이시자 지리산 약초연구 30년의 와이님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냥 오셔도 반가운데 남원 운봉의 고랭지포도와 김부각을 들고 오셔서 수박, 복숭아 등 과일파티를 신나게 즐겼습니다.
지리산에서 최고의 선물은 말이 필요없는 웅장하고 웅혼한 지리산이겠죠. 그런데 숙소에서 오케스트라를 반겨준 8순과 7순의 노부부, 산맥님과는 11년째 인연을 이어오신 ‘대구댁’ 산장 노부부였습니다. 지리산을 닮아서인지 인자하고 참 고운 인상의 두 분 덕분에 2박3일 잠자리도 밥도 편하고 좋았습니다. 특히 아침 저녁 밥상은 흔히 말하는 고향의 맛, 전형적인 집밥, 모처럼 인공조미료 없는 순수한 시골밥상이었습니다. 지역색은 아니지만 경상도쪽이라 전라도 특유의 남도밥상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지리산을 찾은 나그네에겐 호사스런 밥상이었습니다.
지리산에 기대어 노부부가 살고 있는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대구댁 숙소에서...
저녁을 잘 먹고, 과일로 뒷풀이도 해도 아쉬움이 남는 법, 산맥님이 근처 야간 달빛걷기를 제안합니다. 마침 맑은 날씨 속 너무 붉은 보름달(홍월)이 지리산에 걸려 있고, 숙소 근처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고 해서 밝은 달빛을 벗삼아 잘 걷고 오다가 한 분이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무릎을 다치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리산 달빛걷기도 큰 추억의 하나였습니다.
지리산 맑은 공기는 수면제 보다 성능이 엄청 강하더군요. 아침에 일어나니 오랜만에 ‘공기가 달다’라는 표현이 그냥 나옵니다. 좋은 공기, 피로가 그냥 풀립니다. 토요일 아침 산덕마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리산 둘레길을 걷습니다. 토요일 걸은 길은 지리산신선둘레길, 지리산도 감동인데 거기에 신선둘레길이라니... 역시 이 길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오랜 노하우의 산맥님이 아끼는 히든카드, 산덕마을에서 걷기좋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부운치에서 팔랑치, 바래봉으로 가는 길, 5월 중순이면 온 천지가 철쭉으로 붉게 물드는 길이면서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길이라고 합니다. 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팔랑치에서 바래봉 대신 팔랑마을로 가는 길, 뱀사골 입구이자 실상사가 한뼘인 운천마을회관으로 내려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웅혼하고, 거칠지만 다정다감한 지리산 특유의 속살을 더듬으면서 걷는 길, 가장 지리산 다운 길을 원없이, 한없이 즐긴 날, 내려오니 온 몸이 뻑쩍지근, 기분좋은 근육통이 온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며 마사지하듯 감각을 되살려줍니다. 하산 후 숙소 근방 지리산흑돼지구이로 별식을 하고 숙소에 가서 잠시 누웠더니 바로 기절, 12Km 정도의 길이었지만 신선이 된 하루였습니다.
2박3일도 눈깜짝, 어느덧 일요일 아침 햇살이 뜨거워집니다. 전날 지리산신선둘레길 만족감과 여운에 취해 맞은 아침, 새로운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지만 전날 많이 걸어 힘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위해 산맥님이 결단을 내립니다. 원래 토요일 신선길을 걷고 일요일에는 산맥님이 자랑하는 최고 멋진 길을 선보이고 싶었지만, 힘들어 하는 단원들을 위해 그 코스는 아껴두고 가까운 실상사를 들립니다. 실상사로 가니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지리산 한복판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뱀사골 쪽(남원 운봉방향)은 길가에 배롱나무가 가로수 마냥 도열하고 있는데 실상사에 가니 배롱나무에 백일홍이 반겨줍니다. 그중에 특이한 흰백일홍이 보광전(대웅전) 옆에서 부드러운 바람에 흰 꽃잎을 날리고 있습니다. 흰백일홍은 사실 말이 안되는 조어(造語)이기도 합니다. 원래 목백일홍, 빨간 꽃잎인데 빨간색 아닌 흰꽃잎이니 목백일백으로 불러야 하는데 백일홍이 사람들 입에 붙어서 백일백 아닌 흰백일홍이라는 요상한 이름이 됐지만 자태는 지리산 처녀 마냥 참 고왔습니다.
지리산 천년고찰 실상사 보광전(대웅전) 앞 흰백일홍과 배롱나무... 절이 푸근합니다.
실상사에서 나와 지리산 고유의 오래된 삼원마을로 갔는데 이곳은 생태복원중이라 출입금지더군요. 바로 정령치로 갑니다. 지리산에는 팔랑치, 부운치, 정령치 등 ~~치가 많습니다. 치(峙)는 높은 언덕, 령 중에서도 우뚝 솟은 봉을 의미하는데 가파르지 않고 완만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보니 강원도는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 령(嶺)이 많은데 령은 산의 중턱을 지나는 산길. 산의 어깨나 목 부분쯤에 나 있는 통로이면서 산과 산의 경계, 가파름이 특징이기도 하죠. 어쩌면 백두산에 출발한 백두대간이 한달음에 강원도를 지나 소백산맥을 거쳐 지리산에 오면서 많이 부드러워지면서 지리산에 ‘치’가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남원지부장이신 와이님에 따르면 철쭉이 피는 5월 중순, 정령치에서 팔랑치로 바래봉에 이르는 9.2km의 길이 환상이라고 합니다. 토요일 오전 산맥님 따라 중간 길을 올라가 감탄했던 길, 원 코스는 정령치에서 시작하는 길, 정령치 전망대에서 남원 운봉읍 일대가 한눈에, 뒤로는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정령치에서 근처 숲길을 걷고 자작나무 숲에서 힐링을 하고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남원 운봉읍에서 짜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산맥님 휴대폰에는 전국 각지의 오지 임도 못지않게 각종 식당 전번이 있는데 남원에서는 그만 짜장면집을 잘 못 잡아 엉뚱한데로 가서 탕수육을 먹고, 아쉬운 마음에 진짜(?) 짜장면집에 가서 짜장면 등으로 화려한 뒷풀이를 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뒷풀이로 짜장면집 두 번 간 것은 아마 전무후무한 일, 2박3일 지리산 일정으로는 다 용서되는 뒷풀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리산 2박3일은 일정은 2박3일이었지만 보고 느끼고 걷고 즐긴 체감일정은 4박5일 정도 였습니다. 귀족같은 함양 상림숲의 고즈넉넉함, 상림숲 관리소장님의 환대, 남원에서 반갑다고 선물들고 찾아오신 와이님의 현지합류, 지안재에서 오도재로 넘어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도 가보고, 신선들레길에 천년고찰 실상사, 그리고 정령치... 무엇보다 10여 년 지리산을 찾아 이제는 지리산의 일부분이 된 산맥님의 지리산 걷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불허전이자 오케스트라만의 자부심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대구댁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반겨주고 차려주신 밥상은 최고의 밥상,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아낌없이 즐기고 온 오케스트라 10분의 참가자가 최고였습니다.
항상 아련하게, 저 멀리서만 느낀 지리산, 그 산을 다시 품어 봅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2박3일 첫날, 금요일 도로사정이 좋아 일찍 도착 천년 상림숲을 거닐었습니다.
상림숲 안내문
담양의 관방제림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방제림
걷기 좋은 숲길
함양을 가로지르는 위천강 위에 놓인 천년교
천년교와 위천강
길 자체가 예술인 지안재... 이 고개 이로 지리산 제일문인 오도재가 있습니다.
지리산둘레길의 서암정사를 찾아갑니다.
이곳은 함양군 휴천면과 전북 남원시 운봉 일대의 경계지역
입구도 전체적인 구성도 한국 전통사찰과 좀 다른...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지리산에 기댄 숙소 대구댁 모습. 허름해도 정겨운 곳
원래는 서암정사-백송사에서 지리산둘레길로 내려오는 길목. 2008년 전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앗는데 사유지 문제로 둘레길 코스가 바뀌는 바람에 이제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추억의 장소
남원지부장 와이님의 선물
상림숲 관리소장님의 선물
저녁식사. 모처럼 인공조미료 없는 집밥 식사
아침식사
바래봉 가는 길. 산덕마을회관에서 시작. 지리산신선둘레길로 갑니다.
신선둘레길의 시작, 걷기 편한 임도
그래도 지리산, 부운치로 치고 올라가는 길. 오르막은 잠시 ~~
오월 중순이면 철쭉으로 붉게 물드는 곳
철쭉을 헤치고 나오니 탁트인 전망속 전면이 바래봉
팔랑치 높은 봉우리에 나무데크길...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황홀하지 않나요? 힘 하나 안들이고... 산맥님이 마법을 부린 곳~~
팔랑마을로 내려가는 길
지리산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곳
걸으면 신선이 되는 길입니다
점심 행동식 식량. 라면 하나 주먹밥 그리고 복숭아
세프 산맥님이 제일 좋아하는 어묵탕 (행동식은 취사 허용장소에서 먹었음을 밝힙니다^^
일요일 아침. 걷기보다는 문화산책으로...지리산 안에 포근히 들어앉은 실상사.
산맥님이 스님 차를 따라가니 일행인줄 알고 입장료 면제~~
중후한 무게감. 온화한 분위기의 참도량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해발 1,172m 정령치... 기회가 되면 정령치-팔랑치-바래봉 코스로 걷기를....
백두대간 마루금.... 이름이 멋집니다. 마루는 가장 높다는....
아~ 바래봉이여~~
남원에서 제일 맛있다는 운봉읍의 용문객잔. 중국집 이름치곤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협지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용문객잔....
해물쟁반짜장
중화비빔밥, 짬뽕, 짜장면 등등
지리산을 닮은 두 분.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 낙화가 애용하던 똑딱이가 사망, 전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안좋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감상해 주시길.
* 인물사진은 잠시 후에 올립니다. 역시 핸드폰 사진.
첫댓글 낙화님 지리산 후기를 오매불망 기다린 1인~~ㅎㅎ 다시 또 가보고싶은 곳이네요..저는 이 여정의 늪을 빠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듯하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주심에 진심.당근. 정말.매우. 많이 등등등 감사드려요~^^
진심.당근.정말 보람찬 2박3일 이였습니다 ~^^
지리산 한눈에 흟어보기.깊은산골마을속으로~꿈처럼다녀왔네요~^^긴여정 세심한배려 감사드립니다.낙화님 글을따라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네요~^^
역시 낙화님 후기를보아야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수있어요~~^^
곰세마리~^^ 서울에서보다 지리산 골짜기 그 어딘가에서 엄청~~~~더 닮은듯요~~~ㅋㅋㅋ
@흑진주 진주님도 곰 하시게요~ㅎ 흑진주님 애쓰셨구 고마워요.다음에도~곰찾으러같이가유~
@곰이네 울 집에도 커다란 곰 한마리 있어요~
딸내미 책장 위에 먼지 뒤집어쓰고 구겨져서..
내다버리자고 해도 몇 년째 저대로 방치 상태!
이젠 곰트리오 생각 나서 그냥 끼고 살아야겠네요~ ㅋ
지리산으로의 멋진 여행이셨군요
덕분에 힐링합니다~~^^
역사와 전통의 지리산 저도
가을엔 신선이 되게 떠나고프네요.
핸펀으로도 감성충만한 기록들~ 잘보고 갑니다^^
역시 낙화님 후기를 봐야 내가 어딜 가고, 걷고.
느끼고 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