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원제 : Hurry Sondown
TV 방영제 : 석양
1967년 미국영화
감독 : 오토 프레밍거
출연 ; 제인 폰다, 마이클 케인, 존 필립 로우
다이안 캐롤, 로버트 훅스, 페이 더너웨이
버지스 메레디스, 조지 케네디, 매들린 셔우드
비어 리차드, 윌리암 엘더
1970년대에 개봉한 할리우드 호화배역 출연 영화들 중에서 완전히 잊혀진 영화들이 있는데 제인 폰다 주연의 '귀향'은 그 중 한 편입니다. 특히 할리우드의 명배우 반열에 오른 제인 폰다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개봉작이 많이 없는 편이고 그나마도 '바바렐라' 같은 수준 낮은 영화들이 개봉되었는데 그 몇 편 안되는 전성기 당시의 개봉작 중 하나가 '귀향' 입니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제인 폰다는 미모와 연기가 모두 뛰어난 톱 배우인데 후덜덜한 대표작들인 '캣 밸루' '그들은 말을 쏘았다' '클루트' '줄리아' '차이나 신드롬' '황금연못' '인형의 집' '만사형통' '귀향(78)" 등이 모두 국내 미개봉작입니다. 할리우드 톱 여배우 중에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작 2편이 모두 미개봉된 경우는 드물지요. 시대가 좋아져서 그녀가 출연한 쟁쟁한 영화들을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귀향'은 마이클 케인, 페이 더너웨이, 존 필립 로우, 버지스 메레디스, 조지 케네디 등 호화배역진 입니다. 2시간 20분이 넘는 대작이지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개봉될 수 있었던 건 페이 더너웨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인 폰다와 달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연인들의 장소' '파리는 안개에 젖어' '열망' '작은 거인' 등 출연작이 활발히 개봉되던 페이 더너웨이의 인기 때문에 그녀의 출연작을 찾다가 데뷔작인 '귀향'까지 개봉되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배우로서의 레벨을 따진다면 더 오래 장수한 제인 폰다가 더 우위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달랐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미 인기 배우인 제인 폰다는 주인공이고 페이 더너웨이는 데뷔작이라 조연이며, 세련된 의상을 멋지게 차려입고 등장한 제인 폰다와 달리 페이 더너웨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연한 시골 아낙 역할이지만 국내 개봉 때는 마치 공동 주연처럼 홍보하였습니다.
제인 폰다
사촌에게 땅을 팔라고 권하는 헨리(마이클 케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속담도 있는데....
가족을 만나 기뻐하는 래드(존 필립 로우)
그런데 장남만 왠지 차에 혼자 있는데....
부부로 등장한 제인 폰다와 마이클 케인
부동산 투기와 인종문제, 가정문제 등을 다룬 사회물입니다. 더구나 약자인 흑인편에 선 영화 입니다. 통속 드라마지만 역시나 제인 폰다가 선호하는 진보적 내용의 영화라고 볼 수 있지요. 제인 폰다는 사고가 바른 여자인 듯 등장하지만 중간에 속물 남편을 닮아 사악해지는 듯 하다가 다시 정신차리는 선-악-선 역할입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남부의 시골, 긴 경제공항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호황기가 오면서 개발과 투기가 성행하던 상황, 지주의 딸이었던 줄리(제인 폰다)와 결혼생활을 하는 헨리(마이클 케인)는 부동산 개발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줄리의 땅을 팔려고 합니다. 줄리의 땅이 있는 지역 중 일부는 헨리의 사촌 래드(존 필립 로우)와 흑인가족인 로즈와 리브(로버트 훅스) 모녀 소유입니다. 래드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래드는 리브와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줄리도 로즈를 엄마처럼 친하게 지낸 사이입니다. 하지만 남부지역의 특성상 인종차별이 심하고 흑인과 친하게 지내면 적대시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마을 판사 퍼셀(버지스 메레디스)은 줄리의 동생인 사제가 흑인에게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화를 낼 정도입니다. 헨리는 사촌 래드를 설득하여 땅을 팔라고 하고 줄리를 시켜 리브 가족에게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강제로 팔게 하려고 합니다. 줄리는 과거 로즈의 조상이 노예시절 땅을 빌려서 살았으니 실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로즈는 조상이 경매로 당당하게 구입한 자신의 땅이라고 맞섭니다. 딸처럼 생각하던 줄리가 땅을 빼앗으러 오자 충격을 받은 로즈는 세상을 떠나고 이로 인하여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리브는 줄리와 척을 지게 됩니다. 결국 이들의 대립은 소송으로 이어지고 백인편인 퍼셀 판사가 담당하여 줄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상황입니다. 하지만 리브의 애인 비비안(다이안 캐롤)이 합세하여 상황을 반전시키려 애쓰는데 비비안은 흑인 여성이지만 뉴욕에서 수학을 한 교사로 배운 여성 답게 당당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거기다 래드가 흑인과 친하게 지낸다는 조롱을 딛고 리브의 편에 서는데....
또 한쌍의 부부로 등장한
페이 더너웨이와 존 필립 로우
'록키'의 트레이너로 더 많이 인식되는 버지스 메레디스(,왼쪽)
다소 희화화 된 판사 캐릭터로 감초 조연이다.
한 때 모녀처첨 친했지만 땅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두 여인
땅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웃, 친척끼리의 암투, 그리고 인종문제로 대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회물입니다. 하지만 '앵무새 죽이기' '흑아' 같은 부류의 영화처럼 너무 심각한 일변도가 아니라 판사나 보안관(조지 케네디) 등의 캐릭터를 희화하하면서 조금은 부드럽게 이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흑인들도 제법 머리수가 되고, 보안관이 사악한 인물이라기 보다 약간 어수룩한 캐릭터로 다루어져서 폭력이나 학대 같은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인종차별 영화들에 비해서 조금 편하게 볼 수 있지요. 거기다 제인 폰다와 마이클 케인이 벌이는 부부간의 이야기도 영화의 또 다른 부가적 소재로 비중있게 다루어집니다. 미국 현대사회의 문제를 다룬 사회드라마 형식이지요.
5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면 훨씬 재미있을 이야기입니다. 1967년 등장할 당시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도 아니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아니지만 통속적 스토리 자체가 제법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인 폰다의 명연기를 비롯하여 주 조연 배우들의 이름값이 있어서 별로 지루함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지요. 다만 아쉬운 부분은 이 영화가 하필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등장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이루어지던 시대에 함께 걸린 영화라서 어느새 올드한 원로 감독이 되어 버린 오토 프레밍거의 연출이 전성기 때 보다 무뎌지며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같은 뉴시네마에 확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60년대 후반에 '자이안트' 같은 분위기의 다소 올드한 영화를 만든 셈이죠. 오토 프레밍거는 40-50년대의 명감독이고 숱한 수작들을 만들었고 특히 제가 아주 좋아하는 '로라 살인사건'과 '슬픔이여 안녕'을 연출한 인물이지만 역시 나이가 들었는지 다소 평범한 연출과 시네마스코프 효과를 제대로 못 살리는 화면구성 (연기하는 배우가 귀퉁이에서 몸이 가려질 듯한 화면 등도 보이고) 등 확실히 뉴시네마에 밀리는 느낌입니다.
두 여자의 뼈있는 설전이 오가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엇갈린 운명의 각각의 세 쌍
다만 제인 폰다 등 좋은 배우들이 잘 살린 영화로 통속적 재미는 매우 뛰어납니다. 제인 폰다는 확실히 좋은 연기를 보이며 존재감이 두드러졌고 의상도 아름답게 잘 소화하여 30세에 접어드는 원숙미를 잘 발휘합니다. 1960년에 데뷔하였지만 30세가 된 이 시점부터가 진짜 전성기로 70년대부터 더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죠. 페이 더너웨이는 데뷔작의 풋풋함 대신 거의 화장기 없는 시골여성의 평범한 모습으로 출연하는데 같은 해 출연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의 섹시하고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확실히 다양한 역할을 잘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키는 크지만 뻣뻣한 연기의 대가 존 필립 로우나 왠지 모르게 박력이 떨어지는 배우 마이클 케인 등은 그다지 좋은 캐스팅같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두 여배우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지요. 오히려 흑인 연기자들이 괜찮았는데 리브 역의 로버트 훅스나 비비안 역의 다이안 캐롤의 캐스팅이 좋았습니다. 특히 다이안 캐롤은 흑인이지만 외모도 나름 괜찮았고 페이 더너웨이 보다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제인 폰다에게 뼈있게 조언하는 장면에서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오토 프레밍거가 연출한 '카르멘 존스'라는 영화로 데뷔했는데 그 인연으로 다시 캐스팅 된 것 같습니다. 그 외 명조연배우라고 할 수 있는 버지스 메레디스나 조지 케네디는 다소 코믹한 양념같은 조연입니다. 왜소한 체격이라 주로 밑바닥 역에 어울리는 버지스 메레디스가 판사 역으로, 덩치가 커서 마초적 연기나 무서운 역 등이 더 어울리는 조지 케네디가 보기 드물게 코믹한 역으로 나온게 이례적입니다.
1973년 지각 개봉을 했는데 한국영화연감 공식 기록에는 서울 스카라 극장에서 11일 상영하여 1만9천명을 동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성 높은 공식자료라고 생각한 한국영화연감 기록도 틀리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 이 영화는 영화연감 자료와는 다르게 73년 7월 14일이 아닌 6월 2일에 중앙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당시 신문광고 자료들이 있지요) 그래서 스카라 극장 11일 상영 기록은 틀린 기록이지요. 중앙개봉 후 스카라 극장으로 이동상영 되었거나 완전히 오류거나, 아무튼 11일 상영에 1만9천명 동원은 완전히 틀린 정보입니다. 이 영화가 1981년 5월 23일에 KBS에서 '석양'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정영일 평론가의 소개글을 보면 서울 중앙극장에서 12만명을 동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이 훨씬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페이 더너웨이의 인기와 '바바렐라' 를 통해서 섹시한 여배우로 인식된 제인 폰다가 공연하는 할리우드 대작으로 소개되었는데 2만명도 못 동원할 정도로 망했을리가 없죠. 정확한 자료라고 생각했던 한국영화연감 공식 자료도 결국 완전 틀리는 경우가 있네요.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중에서는 비교적 잔혹함 같은 것이 덜하지만 대신 아이들이 수난을 당하는 내용들이 있어서 안스럽습니다. 그래도 KKK단의 폭력 같은 것이 등장하진 않으니 인종문제 영화중에서는 거부감이 덜 느껴지지요. 젊고 똑똑한 흑인여성이 시원스런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하고. 오래도록 잊혀지기에는 아까운 영화입니다.
ps1 : 정영일 평론가는 81년 방영 당시 별 네개 만점에 세개를 주는 비교적 호평을 했습니다. 레너드 말틴이 별 두 개를 준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ps2 : 원제인 'Hurry Sundown' 은 영화속에서 흑인들이 노래할 때 나오는 첫 가사의 단어입니다. 원작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크게 의미는 없다고 보여지지요. 우리나라 개봉제 '귀향'은 존 필립 로우가 연기한 래드를 주인공으로 설정할 경우라면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하지만 이미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귀향'이란 영화가 있었고 공교롭게도 제인 폰다가 78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제목이 '귀향(Home Comming)' 이라서 제인 폰다의 '귀향'이라고 하면 그 영화가 지칭되어 혼동하기 딱 좋습니다. '석양의 야망' '석양의 욕망' 뭐 그런 제목 정도가 어땠을까 싶네요.
ps3 : 50년대 후반이나 60년대 초반쯤 나왔다면 뉴시네마 열기나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를 피해서 좀 더 흥행작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오토 프레밍거가 아직 영화를 괜찮게 만들던 시절에 나왔다면 더 나았겠죠.
[출처] 귀향 (Hurry Sondown, 67년) 부동산과 인종문제를 다룬 호화배역 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