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모든 조건화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생각 아닌 그 전체를 봐야만 합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에요. 한번 시도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뭔가를 생각 아닌 것으로 바라본 적이 있기나 합니까? 대상에 대한 전체 반응의 과정 없이 듣거나 본 적이 있나요? 생각 없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군요. 그 어떤 마음도 조건화 안 될 수는 없다고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이미 생각으로서 스스로를 막아버리는 꼴입니다. 왜냐면 실제로는 그게 어떤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 J. Krishnamurti, Talk 3, Poona, 14 September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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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역시 아주 핵심적인 말씀이지요! 인간으로서 이미 자신의 두뇌에 축적된 ‘기억’의 활동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면, 절대로 “자유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쳐서 말하자면, 인간이 “생각” 아닌 그 무엇으로서 사물을 “지각”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때라야 “인생은 고해”라는 헛된 전제를 벗게 될 테니까요.
물론 쉬운 일이겠습니까마는, 그거 아니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맨날 하는 소리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길은 외줄기 오로지 딱 그 길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아름답기도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문제 해결의 방도가 여러 갈래라면, 또 우리는 그 얼마나 헤매고 다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뿐이니까 전혀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저런 말씀은 사람에 따라서, 오열을 쏟아낼 만큼 ‘고마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진지하게 “고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런 ‘오열’을 쏟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안 맞는 시지만, 어째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그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나그네가 어찌 “생각”의 문제를 다 해결한 “자유인”이겠습니까만, 이왕 나왔으니, 그냥 그 시를 한번 읽어볼까요?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