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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탐사기획 스크랩 월출산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보기 - 1부
裕耕 박노철 추천 0 조회 213 11.03.21 13:1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마애삼존불을 친견치 못하고 /

 

           금릉경포대 - 삼존골 샘터 - 마애삼존불 지능선 - 주능선 - 천황봉 - 향로봉 지능선 -  금릉경포대 (7시간)

 

 

                                                                                                                                   2010. 12. 18

월남사지에서 바라본 월출산

 

 

월남사지모전석탑(月南寺址模塼石塔)

 

보물 제298호. 높이 740㎝.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놓여 있다.

높은 하대석 위에 있는 단층 기단은 우주(隅柱)와 면석(面石)이

각각 다른 석재로 되어 있고 폭이 좁은 편이다.

기단 위에는 여러 개의 판석(板石)으로 된 갑석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과 옥개석은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층의 옥신은 단층 기단과 마찬가지로 우주와 면석이 다른 돌로 되어 있지만

3층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옥개석은 복잡하게 여러 개의 석재로 짜여 있는데

1·2층의 층급받침은 3단으로 상단·하단은 소로형이고, 중단은 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3층은 2단이다. 상륜부에는 방형 석재와 별석(別石)이 있는데 이것은 노반(露盤)으로 보이며,

그 위에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있다.

이 탑은 폭이 좁은 단층기단과 1·2층의 3단으로 이루어진 옥개석 받침형식에서

백제시대의 정림사지5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의 영향이 보인다.

또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주로 중부지방에서 유행했던 전탑이

전라도지방까지 전파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 석탑 조성에 대한  전설 -

 

이 탑을 조각하게 된 석공에게는 아름답고 젊은 부인이 있었다.

석공은 이 불사가 끝나기까지 나를 찾아오지 말고 집을 잘 지키라고 당부한 후 왔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운 남편이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었다.

어느날 그녀는 몰래 이곳 월남사를 찾아 들었다.

리고 먼 발치로 석탑일에 열중한 남편을 훔쳐보았다.

불사에 열중한 남편은 그 일에만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지 수척해 보였다.
돌아서려던 그녀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남편을 불러봤다.

사랑하는 부인의 목소리를 들은 석공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순간 벼락이 치며 그가 완성직전에 있던 석탑은 조각나고 그의 사랑하는 부인은 돌로 변해버렸다.

석공은 돌이 되어버린 부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으나 이미 때가 늦어 버렸다.
다시 처음부터 일을 새로 시작해야 했던 석공은 인근을 뒤져 석재를 구했으나 쓸만한 돌이 없었다.

석공은 생각 끝에 그의 부인이 화신한 돌을 쪼아 다시 이 탑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

 

 

 

 

 

 

보물  제313호

(인터넷상에서 구한 출처 불명의 사진)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 ~ 1234)를 추모하기 위해 고종 37년(1250)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이규보(1168 ~ 1241)가 지었고, 글씨는 왕명에 의하여 서예가 탁연 (卓然)이 쓴 것이다.

진각국사의 속가 성은 최씨이고 별명은 혜심으로 화순사람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았고, 송광사 16국사 중 제 2조인 고승이다.

비는 거북 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이다.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었는데, 그 모습이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목과 머리 조각의 세부표현 역시 전체적인 균형과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현재 비의 전면은 떨어져 나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뒷면은 상당부분 남아있어

많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  내용은 비 앞에 적힌 해설문을 옮긴것이다. -

 

 

 

금릉교에서 바라본 천황봉과 양자봉

 

 

 

샘터(삼존암지)

 

 

 

삼존암지(약수터)에서 본 삼존마애불 암봉(오른쪽)

사진출처 (http://blog.daum.net/ggodsarang/238)

 

 

 

샘터를 약간 지난 지점에서 우측 지능선으로 치고 올라와 돌아본 모습.

가운데 소나무 아래쪽 바위 북사면에 마애삼존불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윗쪽에서만 찾고 있었으니....

 

 


월출산 삼존골 마애삼존불


이 마애불이 특별히 주목되는 이유는 백제의 대표적 마애불상인 서산 마애삼존불과 도상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

즉 중앙에 부처 입상을 두고 그 왼편에 보살 반가상, 오른편에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러한 형태의 삼존불은 이제까지 서산 마애불에서만 발견된 것이었다.

 

아마도 삼존골 마애삼존불은 서산 마애삼존불을 염두에 두고서 그것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월출산 마애삼존불과 서산 마애산존불의 도상적 유사성은 두 불상이 역사적·문화적으로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백제 승려 혜현(慧顯)의 수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의하면 백제의 승려 혜현은 처음에 수도 북쪽의 수덕사에서 수행하다가

명성이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고요한 수행처를 찾아 남쪽 지방의 달나산 즉 월출산으로 옮겨 수행에 전념한 뒤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석굴에 방치된 그의 시신을 호랑이에 의해 모두 먹어 치웠지만 그의 혀만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있을 때와 같이 부드럽고 붉은 색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그가 평생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혜현의 이야기가 주목되는 이유는 삼존골 마애삼존불과 비슷한 서산 마애삼존불이 혜현이 처음 수행하였던

수덕사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유독 혜현의 수행지에서 같은 도상의 삼존불이 발견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자연히 혜현이 남쪽에 새 수행지를 마련하면서 이전의 수행지에 있던 불상의 모습을 새롭게 조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삼존골 마애삼존불이 혜현이 수행하던 백제시대의 것인지는 보다 더 전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월출산 불교사의 첫장을 연 혜현의 행적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위 글은 최연식 목포대학교 교수의 해설을 정리한 것이다 -

 

 


※ 월출산 칠지계곡 마애불

 

칠치폭포에서 200m정도 사자봉을 향해 올라가는 오버행 암벽에 조성 되어있다.

수인으로 보면 아미타여래좌상으로 보인다.

 근엄함 보다는 회화적, 해학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조성시기는 고려중기로 추정한다고.

 

 

 



※ 월곡리 마애여래좌상

고려시대 - 높이 5.5m

 

 용암사지 마애불이 위치한 구정봉과 직선거리로 약 2.5km가량 떨어져 있고

용암사지마애불과 거의 마주보고있는 형태이다.

 마애불 아래쪽 암벽 동굴은  수행굴로 보인다.

용암사지보다 늦은 고려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

전남유형문화재 제 14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있다.


 



※ 월출산 월곡리 마애불두


 월곡리 마애불에서 좌측으로 20m정도 떨어진 높은 암벽에 위치하고 있다.

불두 부분만 양각되어 있고  높이는 약 2m정도.

불신 전체를 조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 위 7장의 마애불 사진은 "목포대학교 역사학 심포지움" 카페에서 옮겨온 것이다.

 

 

 

지능선을 치고 오르면서 바라본 천황봉

 

 

 

좀 더 가까이...

 

 

 

오른쪽 하단부의 샘터에서

 소나무가 있는 가운데 지능선을 치고 오르는 중.

 

 

 

멀리 향로봉 능선이 보인다,

오늘은 저 능선을 따라 하산할 예정.

 

 

 

왼쪽 바위 아랫쪽에 이르면 

구름다리 쪽에서 올라오는 주능선과 만나게 된다.

 

 

 

양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흘러내린 기암 라인

 

 

 

 

 

 

 

앞쪽의 천황봉과 멀리 향로봉과 구정봉 라인

 

 

 

드디어 주 능선에 당도.

이 바위 아래쪽 지능선으로 올라왔다.

 

 

 

 

 

 

 

사자봉 아래로 구름다리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장군봉 

 

 

 

멀리 달구봉이 보인다.

 

 

 

통천문 직전의 빙벽

 

 

 

통천문

 

 

 

 

 

 

계곡 윗쪽,

가로로 낮게 이어진 지능선을 따라  맨 왼편 가운데 바위 아래로 올라왔다.

 

 

 

멀리 가로로 늘어선 노적봉 사리봉 라인

 

 

 

향로봉을 향하여

 

 

 

 

 

 

 

 

 

 

 

 

 멀리 달구봉이 보인다

 

 

 

 

 

 

향로봉에서 바라본 왼편의 구정봉과 멀리 천황봉 일대

 

 

 

 

 

 

 

 

 

돼지바위

 

 

 

돼지바위 뒷 사면

 

 

 

남근바위

 

 

 

 

 

  

 

 

 

삼존암지(샘터)에서 공단 직원으로부터 '마애삼존불'의 정확한 위치까지 설명을 듣고

잡목에다 산죽과 너덜로 이루어진 급사면을 치고 올라 여기 저기 기웃거렸건만

끝내 부처님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거부.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주능선에 올라 천황봉을 향한다.

고도를 올리고 나서야 뭐가 잘못 됐는지 알게되었는데...

 

출발 지점에서 목표로 했던 바위 위에 선 두 그루 소나무.

내가  헤매고 있던 바위가 아니라 바로 아랫쪽의 바위 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번에 마애삼존불을 친견코자 서두르는 어리석은 중생의 조급증에

부처께서 제동을 걸어주신 것으로 접수, 다음 시절인연을 기약하련다.

 

 

 

 

- 1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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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3.21 13:45

    첫댓글 칠치계곡 마애불위치도 전에 올랐다 되돌아온 칠치폭포 암봉 바로 측면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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