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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게시판 스크랩 느림의 미학 276 제41회 43포럼 DMZ백마고지행 기차를 타다<힐러들의 따스한 동행>
홍진후 추천 0 조회 84 15.04.19 13: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5.  2.  7.  04;00

달빛이 창가로 스며든다.

보름을 갓 지난 달이 허공(虛空)에 매달려 있다.

월(天中月)인가?

집 앞 작은 남산 위에 떠있으니 산중월(山中月)이겠지.

 

휘영청 달빛은 밝고 차다.

자귀나무를 비껴 스며든 달그림자가 꽁꽁 얼어붙었다.

 

오늘 포럼행사는 60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데 진행은 차질없이 될까?

동행하는 친구들에게 사고나 유감스런 행동은 생기지 않겠지.

쓸데없는 걱정이 드니 나이 먹은 노파심인 모양이다.

 

08;20

매달 1박 내지 2박 이상으로 여행을 다니며 승용차, 버스, 배, 비행기 등을 이용하지만

특히 기차여행은 더욱 설렌다. 

 

여행이란 바람처럼 떠나야 제격이라지만 오늘같이 60명이 두런거리며 떠나는 것도

괜찮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정의 끝에 있는 DMZ에 내 발걸음이 스며들까.

 

09;20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연말은 송년회 등 각종 모임에 참석하다 보니 휴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1월은 휴식과 Healing이 필요한 시간이었는데,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다 정신없이 1월이 지나고 2월이다.

 

치유는 빈둥거리며 쉬는 것만으로 될까?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제격이라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하는 여행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보통의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서부터 시작인데, 기차여행은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정월 초하룻날은 일출이 장엄한 바다나 산은 사람들로 넘쳐났었지.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치유가 될까?

 

오늘은 눈 덮인 철원의 산야(山野)를 걸으며 지난 한 해는 제대로 살았는지, 올해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려놓고 스스로 문답(問答)을 하는 시간을 갖겠지.

 

09;27

DMZ행 특별열차는 Time machine이다.

시간 재조정장치를 가동할까?

기차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면 첫사랑과 데이트도 하고, 복권도 당첨되고,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법대도 들어갈 수 있을까?

 

Back to the future라,

내 청춘의 추억을 실은 Train은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이등병 계급장을 단 육군 이병 김흥만은 군용백을 메고 용산역에서 춘천행 군용열차에

올라탔었지.

42년 전 살벌한 호송관과 헌병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기차바닥만 쳐다보던 이등병이 오늘은 초노(初老)의 몸이 되어 Dmz행 기차에 오른다.

 

앞으로의 희망보다는 묻었던 추억을 꺼내 사는 세대가 되었으니 자리에 앉자마자

학창시절 옛이야기로 꽃이 핀다.

 

옛날이라는 말은 묘하고 참 아련하다.

겪을 때는 참으로 힘들고 아팠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아픈 강도(剛度)가

덜해진다.

 

먼 옛날 초평 양촌리 둘째 큰아버지 댁에 계시던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씀을 하신다.

"옛날 타령만 해서 나아질 일이 무엇이 있겠냐"라며 야단을 친다. 

 

그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서운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할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다.

한글을 겨우 깨우치신 할머니는 많은 세월을 살아가며 몸으로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거다.

 

나는 옛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옛날보다 더 좋아질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할머니는 옛일을 잊어버리라며 단호하게 거절을 하신다.

그래도 추억이 쌓인 옛날 이야기는 정겹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인 나이에 똑같은 말썽을 저질러도 할머니는 긴 담뱃대로

내 머리만 톡톡 때리고 사촌들은 두둔을 하셨지.

 

그게 보기 싫어 아버지가 둘째 큰댁엘 가자고 하시면 꽁무니를 빼며 실갱이를 벌리는

경우가 많이 생기니 아버지는 내 아래 동생들만 데리고 다니셨다.

 

10;00

목에 목도리를 잔뜩 두른 패션이 요즘 우리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서 

목(目), 목(頸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잘룩한 부분), 목(手), 목(足)의 4목에 변화가 생긴다.

 

평생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길들어진 나의 목(경頸),

은퇴 후 목이 긴 셔츠를 입으면 목이 답답하고 닿는 부분이 싫어 가급적 목이 짧은 옷을

입다가 어느 날부터는 긴 옷을 찾아 입는다.

요즘같은 추위에는 목이 긴 옷을 입어야 몸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목에 살과 기름기가 빠지며 쭈글거리는게 보기 싫어 일부러 입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답답하다며 목이 짧은 양말을 선호하지만, 요즘같이 추운 날에 짧은 양말을

신으면 괜히 종아리가 시려 발목 위로 길게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단화보다는 방한화나

목이 긴 장화를 신게 된다.

 

젊었을 때는 조금만 활동을 해도 손에 땀이 나 장갑을 벗지만

나이가 들면 손에 땀이 나기는 커녕 손바닥이 뽀송뽀송해지고 갈라져 핸드크림이나

장갑이 없으면 매우 시려 고전을 한다.

따라서 목과 손목, 발목이 시린 사람은 황혼이 깃든 사람이라 단정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햇살이 강하다.

한여름에나 쓰던 선그래스를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 속에서도 써야 한다.

눈부심으로 어쩔 수 없이 쓰니 눈(目)마저도 나이를 먹어가며 서럽게 한다.

 

선그래스는 그래도 양반이다.

대부분은 돋보기를 쓰며, 어쩌다 사물을 보려면 안경을 살짝 올리던지 아래로 조금 내려서

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은 코메디의 한 장면이다.

 

10;20

행사 진행을 하며 당첨금의 50%는 본인이, 나머지 50%는 포럼에 기부하기로 하고

120매의 스피또 즉석복권을 긁는다.

 

오늘 과연 누구에게 행운이 올까?

동전으로 행운을 찾는 모습이 평화롭다.

 

내 고향 충청도의 잔치 풍경이 그립다.

충청도에서는 잔치를 하면 음식은 먹고 남을 정도로 풍족하게 준비하고, 돌아갈 때는

양손에 선물을 쥐어 보내야 그 집 잔치 잘했다고 좋은 소문이 돌지만,

조금이라도 음식이 부족하고 주는 선물이 없으면 좋지 않은 뒷담화가 나온다.

 

오늘의 선물은 홍삼, 백세고, 곤드레 등인데 과연 누구에게 행운이 돌아갈까?

선물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라,

선물을 협찬한 친구나 추첨에서 당첨된 친구의 모습이 밝다.

 

겨울의 창백한 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비껴 내리길래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언젠가 죽자가 아닌 '살자'라는 말로 유명했던 행복의 전도사가 '살자'의 반댓말인

'자살'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삶을 마감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었지.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는 건 비겁한 짓이 아니라 나 자신을 치유하기 좋은 방법이다.

 

시간 위에 점을 찍을까?

얼굴에 점을 찍을까 망서리다 손등 위에 줄을 긋는다.

 

곱던 손등의 피부가 탄력이 떨어져 쭈글거린다.

세월은 얼굴뿐만 아니라 손등에도 내려 앉았다.

 

11;47 백마고지역

철도 중단점 옆으로 보이는 마을이 잠든 것처럼 고즈넉하다.

감나무 위에 새밥을 먹던 까치가 까악대며 손님을 맞는다.

 

오래된 담벼락 지붕이 정겹고 이고 진 소나무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잠시 서서 철도 중단점에 시선을 둔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부드러운 바람은 조급증에 빠졌던 마음을 토닥거리며 어루 만진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재촉하지 말자.

사람도 바람도 구름도 새들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갈뿐이다.

 

우린 슬프거나 외로운 존재만은 아니지.

여행을 하며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기에 술 한잔을

나눠 마시며 행복을 마신다. 

 

12;40

백마고지 전승비 위 하늘에 새 한 마리 빠르게 날아간다.

그 뒤에 한 마리, 그 뒤에도 또 한 마리가 줄을 잇더니 떼를 지어 먼 길을 떠나는가 보다.

잠시 걸음을 멈춰 부러운 마음으로 카메라 앵글을 맞추지만 망원렌즈가 없이 내 카메라로는

찍기가 어렵다. 

 

새들이 부럽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서 부러운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허공을 가로질러

나는 게 부러운 거다.

 

사람의 고통은 비워서 오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욕심으로 싸안아서 시작된다고 성현(聖賢)은

말한다.

버리는데 인색하고, 비우지 않고 채우기만 하면 고통이 지워지지 않는다니 오늘은 부지런히

비우자.

 

잠시 멈췄던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은 시간마다 다르다.

햇살이 없을 때는 칼바람이고, 한나절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기대어 불어오는 바람은

된바람이다.

 

사람이 만든 자국을 바람이 쓸어가고,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려 자작나무숲 사잇길을

오른다.

스치는 바람에 자작나무가 오들오들 떤다.

 

언덕으로 올라가며 범상치 않은 두 개의 첨탑이 우뚝 솟았다.

자작나무숲을 지나 낮은 언덕에 서 있는 첨탑이 그림처럼 조화롭게 하늘을 찌른다.

 

탑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생각을 정리한다.

바글거리던 생각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으로 산화한 장병에게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이곳을 찾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안내병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들어와 조금은 가벼워진다.

 

시산혈해(屍山血海)로 표현 되었던 백마고지.

시체가 산을 이루고 살점이 으스러지고 피가 흘러 강이 되었던 곳.

포탄이 산을 밀어 백마가 누은 형상을 만든 곳.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여 일간 계속된 백마고지

전투는 12차례의 전투가 반복되면서 이 지역에서만 약 30여 만 발의 포탄이 사용되고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다는 전투의 역사가 기록된 곳.

 

기념비에 참배를 하며 문득 영화배우 '고수'가 주연한 '고지전'이라는 영화와

Ost가 떠오른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중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2개 사단이 완전히 와해되었고,

전투에서 승리한 보병 제9사단은 백마사단으로 명명되었다.

 

서로의 포격에 395고지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백마가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으로 바뀐

백마고지.

9사단도 총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니 단일 전투에서 2만여 명이나 사상한

기록을 가진 백마고지 전투가 전세계의 어떤 전투와 비교가 될까.

 

처참한 전투를 치룬 흙먼지와 산을 뒤덮은 시체(屍體)의 비명소리가 바람소리에 섞여 들린다.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장병의 넋을 추모하는 전적비 앞에 겸허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종루에 서서 저만치 멀어진 GOP와 들판을 바라본다.

 

내 시선이 닿는 곳 모두가 숱한 곡절과 전쟁의 상흔(傷痕)이 그대로 남았고,

그 위로 강요된 고요와 위장된 평화가 보일 뿐이라 가슴이 답답해진다.

 

서로 총을 들어 쏘고 빼앗고 빼앗기며 서로를 죽이던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백마고지에 스며있는 시간이, 들판에 더께가 쌓인 세월이 욕심을 버리라 한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이념과 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냥 평범한 자유를 누리며 한세상 살면 되는 거지.

 

13;00

나이 들어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 있을까? 

요즘 내 가슴속을 답답하게 하는 화두(話頭)이다.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소리가 아직도 귀에 긴 여운으로 남았는데

한달이 훌쩍 지나고 2월이다.

 

이 종(鐘)도 묵직하면서도 둔중한 소리가 여울져 흐를까?

빨리 지나가는 시간에 멀미가 날 정도이다.

 

지난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했지.

그만큼 시름도 깊었던 해였으니 금년의 내 소원은 무엇일까.

내 소망은 무엇일까 잠시 서서 생각을 해본다.

 

13;20

싸락눈이 살짝 얼굴에 떨어진다.

북한 노동당사의 낡은 건물은 곱게 세월의 더께가 쌓인 모습이 아니라 추함과 비극을

동시에 가졌다.

하긴 비극의 장소에서 고졸(古拙)하고 우아한 모습을 찾는 내가 바보겠지.

 

처마 끝 풍경소리에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욕심을 버린 지는 오래 되었음을 아는 된바람은

폐허가 된 노동당사 건물을 스쳐 지난다.

 

1945.8.15. 해방 후 북한이 공산 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가 을씨년스럽다.

 

이 건물을 지을 때 1개 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하였고, 내부공사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만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3층 건물로서 당시의 공습과 포격에도 견뎌낸 철근콘크리조 건물의 뼈대가 앙상하다.

 

근대문화유산 제22호인 이 건물에서 공산치하 5년간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에서

양민수탈과 애국지사들을 체포 구금하여 고문 학살 등을 저지른 현장을 둘러본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오면 시체나 반송장이 되어 나갔다는 비극의 현장,

우리가 서 있는 뒤쪽 방공호에서는 수많은 인골(人骨)과 실탄, 사람을 묶었던 철사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3:54

동토(凍土)의 나라인 이곳에도 정녕 봄이 올까?

철교에서 강물을 바라본다.

오래 바라보아도 얼어붙은 강물은 말이 없고, 말이 없으니 더 많은 사연을 전한다.

 

아직 봄은 저만치 멀고,

꽃소식은 커녕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었다.

강물에 몸을 섞고 흘러간 세월에 마음을 휑구고 싶은데 초병(哨兵)의 눈초리가 매서워

감히 내려갈 생각을 못한다.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가슴속에 꽃 한 송이 피우면 봄이 시작되는 건데,

굳이 겨울 찬바람을 탓한다.

봄은 저만치에서 눈치를 보며 이쪽으로 건너 오려 하지 않기에 급한 마음 잠시 접어두고

끊어진 철길 위를 걷는다.

 

철교를 다 건너니 철도는 끊어져 흔적조차 사라지고 산천은 무심하다.

꽁꽁 얼어 물도 흐르지 않는 겨울 강에는 고요만 흐르고 얼어붙은 폭포는 바람을 맞고 있다.

 

빛은 그림자를 만드는데 잔뜩 찌푸린 하늘은 구름 사이로 빛을 새게도 하지 않으니

이곳은 눈물의 상징인가 보다.

기쁨보다 슬픔이 많은 곳이라 강물이 얼어 느리니 시간도 느리게 흐르고,

나도 역시 느리게 걷는다.

 

정선의 아우라지를 굽이치는 강물의 한(恨)은 흥(興)이 되어 '아리랑'이라는 가락을

남겼는데 한탄강은 무슨 가락을 남겼을까?

한(恨)과 탄(嘆)만 남겼길래 한탄강(恨嘆江)인가.

 

14;00

철새들이 V자 형태로 비행을 한다.

잠시 후 뒤에서 따르던 새가 앞으로 나서고 맨 선두에서 날던 새는 뒤로 간다.

새들은 이동할 때 무리의 우두머리가 특별히 정해진 건 아니다.

 

맨 앞자리는 기류의 저항을 받아 힘들다.

앞에서 나는 새의 날개 끝에는 공기의 소용돌이가 생기며 뒤따르는 새는 그 상승기류를

이용하여 날면 힘이 덜 든다.

 

새들은 교대로 힘이 많이 드는 선두로 나선다.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임승차는 없고, 통계에 의하면 32%는

다른 새를 따라가며 상승기류를 이용하고 도움을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고 한다.

 

또한 펭귄도 새들과 마찬가지로 남극에서 눈보라가 치면 수백 수천 마리가 몸을 밀착해

체온을 나누는데, 이때 제일 바깥에 있는 펭귄은 안쪽보다 체온손실이 크기에

펭귄무리들은 물결치듯 조금씩 움직이면서 바깥에 있는 동료를 안으로 보내고 안쪽 펭귄이

밖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서로의 체온을 유지한다.

 

지하철로 갈아타며 교통카드를 댄다.

내 카드를 대면 삑삑 신호음이 두 번 울린다.

전철에서만 통하는 '복지카드'라는 무임승차권이다.

 

자연에도 무임승차가 없는데 복지카드를 대며 괜히 머쓱해진다.

지난 연말 자선냄비에 달랑 만 원짜리 한 장만 넣은 내 손이 부끄럽다.

 

빡빡한 일정 속이라도 1926년 세워진 금강산 전기철도용 교량 위에서 잠시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다.

 

철원을 시발로 종착역인 내금강역까지 총 연장 116.6km로 일일 8회 운행하였으며,

4시간 반이 걸리는 기차요금은 당시 쌀 한 가맛값인 7원 56전으로 연간 이용객이

15만 4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반출하기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된 이 철도 교량은 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끊어진 철교를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그냥 60년 세월의 흐른 시간에 마음을 휑군다.

 

1m 위쪽으로 지뢰표지판도 보이고 끊어졌길래 갈 수 없는 길, 가보지 못하는 길에

살짝 두려움을 느낀다.

 

14;20

시간은 바삐 흐르고 군대환경도 급하게 변해 간다.

그동안 속칭 '빽'이 없는 많은 사병들은 전방부대에서 근무를 했다.

그러나 윤일병 총기 난사 사건으로 군대와 사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전방 자원제도가 생겨 DMZ 근무를 자원(自願)하면 휴가와 수당에 우대를 해준다니

얼마 전 양주 보충대에서 전방지원 경쟁률이 7대1이 넘었다는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나는 양구 백두산부대에서 근무한 것을 평생 자부심과 자랑으로 알고 사는데

요즘 대부분의 사병들은  Gop수당을 주고 우대를 해도 전방부대 근무를 꺼린다.

 

추위와 외로움, 위험 속에서 나누는 전우애 등

전방근무에서 배운 인내는 살아가며 인생의 버팀목이 되는데 말이다.

 

전역이 일 년 남았다는 육군 하사의 표정이 해맑다.

내 몫으로 받은 간식 봉지를 슬그머니 건네주려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포기를 한다.

 

겨울 한낮의 햇살이 고철이 된 탱크 위로 살짝 비껴든다.

인적이 드믄 터는 비어 있어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걸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툭툭 튀어나와 옛이야기를 들려줄 거만 같다.

 

민족의 아픔, 역사의 아픔이야 어떻게 되던 또 한 번의 봄이 오려는지 탱크 아래 깔린

잔듸의 뿌리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비무장지대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오르며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산행과 여행을 할 때 참 길고도 힘든 길이 많다"라고 표현을 하면 쓸데없이 돈 써가며

고생한다고 빈중대며 놀리는 친구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말하지.

"너는 그러한 길을 가본 적이 있느냐?

내 나이에 좀 힘든 길을 걸으면 안 되는 거냐?"라며 반문을 한다.

떠나보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면 참 답답하다.

 

험한 길을 걷다가 정 힘이 들면 뒤돌아서면 되는 게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먼 길을 어찌 걸었나 싶기도 하고,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어떻게 걸어갈지 멀고 아득할 때가 많다.

 

그래도 동행이 있으면 멀고 힘든 길을 갈 수 있다.

살아가며 진짜로 중요하고 소중한 게 무엇인지 몸소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고지의 흰 눈과 적요(寂寥)가 내려앉은 비무장지대를 바라본다.

적막(寂寞)도 사치스런 들과 고지를 바라보며 진리(眞理)를 생각 해본다.

 

동부전선의 산악에 있는 DMZ와는 다른 풍경이지만 눈을 들어 조용히 응시를 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씻끼며 자연이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어쩌면 오늘 이곳에 서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호들갑을 떨었나 보다.

 

자연 앞에 서면 사람도 닮아가기 마련인가?

가슴이 뻥 뚫리며 담았던 응어리들이 쑥 빠져 나간다.

 

이곳에선 바람마저 순정(純正)하다.

궁예의 흔적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북쪽의 저 산들은 무슨 죄가 있기에 저리 헐벗었을까.

 

궁예의 도읍지였던 들판에는 냉기가 감돈다.

저 냉기가 사라지면 봄이 오려나?

얼어붙은 민족의 가슴엔 언제 봄이 오려나 갑자기 먹먹해진다.

 

철원평야, 평강, 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를 피로 차지한 백마고지 전투에서 철원

일대를 빼앗끼자 김일성은 식음을 전폐하고 3일 동안이나 울었다는 일화를 남긴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듯 아련하고 뒤쪽으로 낙타고지가 보인다.

 

14;50

어느 순간 하늘을 올려다 보니 까만점들이 날아다닌다.

독수리일까?

금년에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는데, 조금 지나니 군무를 추려는지 하나둘씩 모여든다.

 

먼 들판에서도 산에서도 쉴 새 없이 나타나더니 흐린 하늘을 까맣게 물들인다.

이들은 어둠이 짙어지면 함께 밤을 지낼까, 아니면 쁠뿔이 흩어질까.

 

군사분계선 위를 나는 새들은 자유를 누리는데 사람은 마음대로 오가지 못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자유를 누리며 평화를 노래하는 땅.

천혜의 청정지역으로 살아 남은 곳은 기적의 땅일까?

비극과 슬픔이 남은 땅일까.

 

반세기가 훌쩍 넘었어도 비극이 상존하는 땅을 망연히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곳.

1953년부터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있는 곳.

궁예와 태봉국 도성지의 흔적이 있는 곳.

사람도 짐승도 자유롭지 못한 땅을 바라보며, 세월의 더께만 덕지덕지 붙은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전세계 대부분 전쟁의 원인을 차지하는 종교(宗敎)전쟁이 아닌 곳.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대고 싸우다가 휴전한 전쟁.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자유는 무엇이고 속박은 무엇일까?

이념(理念)과 사상(思想)이 대립하는 곳.

민주와 독재, 공산과 자본주의가 직접 대립하는 곳을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일까?

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난 나는 전쟁의 참상을 모른다.

 

장성하여 최전방부대에 배치되면서 분단의 비극과 전쟁에 대해서 알기 시작한다.

제대 후 한동안 까마득히 잊었던 전쟁.

6.25전쟁은 최소한 여기에서는 결코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 아니다.

 

100만 명이 넘는 남과 북의 젊은 병사들이 총부리를 대고 긴장하며 경계를 하는 곳에

적막(寂寞)이 흐른다.

세계전사(世界戰史)상 이런 곳이 있을까?

 

비무장지대인 Dmz(Demilitarized zone)에는 일반전초인 Gop(General out post)

경계초소인 Gp(Guard post)가 있는데 통상 Gop는 남방한계선에 있고, Gp는 보다

안쪽인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다.

 

남방한계선이 한가롭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장엄한 기운이 맴돌고 나는 두 손을 모아 쌓여진 세월에

마음을 씻는다.

 

북한쪽 김일성고지와 낙타고지를 보며 잠시나마 깨끗해졌던 마음이 탁해진다.

양구 펀치볼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보던 무산의 스탈린고지, 김일성고지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고라니, 노루가 뛰어놀까 집중해 바라보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다.

 

15;00

우리의 토착신앙은 칠성신(七星神)과 용왕(龍王), 산신(山神)이 있는데

나는 또 하나의 신(神)인 군신(軍神)을 만들고 싶다.

 

우주를 주관하는거대한 시계의 북두칠성은 시간의 신이기도 하다.

수명 짧은 자식들을 오래 살게 해달라고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칠성신은

밤이나 되어야 나타나겠지. 

 

용왕은 바다를 주관하는 신이다.

뱃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용왕은 바다 밑의 수중세계를 총괄하는 신이라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이 해당된다.

 

산신(山神)은 산(山)에 있다.

역대 단군들이 죽은 뒤에 명산의 산신이 되고, 임금과 충신이 죽으면 산신이 되어

이 나라의 국토를 지키는데 저곳은 궁예가 들판의 신이 되어 지키고 있을까?

 

중국이나 일본에는 군신(軍神)이 있어 추앙을 받는다.

중국에는 관우, 제갈공명을 곳곳에 사당으로 모셨고, 일본에는 전범(戰犯)들이 군신으로

신사(神舍)에서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산화했지만 군신(軍神)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이순신 장군, 강재규 소령, 최근에 별세한 채명신 장군 등 군신의 자격이 있는

애국자가 많지만 군신으로 예우를 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산화한 고 강승우 중위, 오규봉, 안영권 하사의 육탄 삼용사가 군신(軍神)이

되어 백마고지와 나라를 지켜달라고 부탁을 한다.

 

15;20

남쪽 하늘에서 꽝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초계비행을 하는 전투기의 하얀 항적이 하늘에

금을 긋는다.

모녀가 뒤에서 대화를 하며 지적장애인으로 보이는 딸이 "별똥별이 예쁘다"고 하니까

동행한 어머니가 "우리 딸 똑똑하다"라고 칭찬해주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꽝"하는 소리는 전투기가 음속에서 마하 (340m)를 돌파하면서 내는 소닉 붐(Sonic

boom)이다.

귀는 공기의 진동을 고막을 통해 느끼는 역할을 하는데 비행기가 날면 주변 공기가 사방으로

밀리며 퍼진다.

 

이때 진동하는 파동이 생기는데 아음속일 경우에는 비행기가 가까이 오기 전에

소리부터 들리지만 초음속으로 날면 소리보다 비행기가 빠르다.

비행기 자신이 만든 소리가 앞으로 밀려나기 전에 새로 만들어진 소리가 그 위에

겹치면서 소리가 두껍게 쌓이는 현상이 생기는데 겹쳐진 소리가 한꺼번에 퍼져나오면서

지상에서는 마치 폭발음처럼 들린다.

 

소닉붐은 비행기가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내내 발생하지만 소리가 겹쳐지기에 한 차례만

발생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종교분쟁이 아닌 같은 민족끼리 벌렸던 6.25동란(動亂).

이념과 갈등, 자본과 공산의 대립을 명분으로 제3자의 대리전쟁을 치룬 곳은 시계가 멈췄다.

 

1953년의 시계에서 단 일분일초도 흐르지 않고 세월의 더께만 쌓여 사그러지는 기관차의

몰골이 흉칙하다.

 

월정리의 철도 중단점에 선다.

서울 104km, 원산 123km, 나진 731km, 목포 523km, 함흥 247km 부산 543km의

이정표가 서럽다.

 

들판의 좌우로 수십 마리의 재두루미가 서 있다.

달리는 차창으로 재빠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뚜렷이 촬영을 하지 못한다.

 

16;00

                <                    백마고지역

 

                      나즈막한 기적소리를 내며 기차는 떠나가네.

                      내 안에 나를 만나지 못하였는데도

                      백마고지발 기차는 무심히 떠나가네.

 

                      내 젊음을 찾아주던 기차는 떠나가는데,

                      삶에 지친 내 육신은 먼하늘만 바라보는구나.

 

                      두 눈을 꼭 감으면

                      오늘이란 시간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까.

                      백마고지발 기차는 영원히 내 안에 남을까.

 

                      함께 한 시간들이

                      저녁노을처럼 슬그머니 사라져도

                      어두운 밤에 스며 들어도

                      내게 영원히 남을까.

 

                      가슴속 공허(空虛)를 메꾸지 못하고

                      홀로 남은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기차는 서서히 사라지네.

 

                      기차는 멀리 떠나고 텅 빈 역사에

                      삶의 아픔을 안고 나만 홀로 남았네.                  석천   >

 

사람들은 힐링(Healing)이라는 말은 알지만 힐러(Healer)라는 말은 잘 모른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면서 지치고 아프면 희망이 없기도 하고, 또는 사고나 질병으로

많은 친구들이 운명의 줄을 놓아버렸다.

그러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가슴이 아파 미어진다.

 

때로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온다.

 

힘들 때일수록  곁에서 지켜주고 위로를 해주면서 힘들 북돋아 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힐러(Healer)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진정한 힐러가 되어 서로에게 황혼의 선물이 되자.

 

16;30

건빵은 청춘의 추억이다.

물질이 풍요할수록, 풍요로워질수록 풍요로움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세상에서 그리워하는

향수 속의 건빵을 씹는다.

 

내 청춘의 젊은 날,

군복을 입고 군대생활을 할 때 사랑했던 건빵과 침샘을 자극하는 별사탕을 입에 물고 오물거린다.

 

나는 또다시 타임머쉰(Time machine)을 탄다.

훈련시 비상식량으로 먹어야 했고, 보존기간이 아슬아슬하게 남았을 때 간식으로 선심이라도

쓰듯이 나눠주었던 건빵에 내 젊음이 묻었다.

 

배고프지 않은 게 얼마나 행복이고, 먹고 있는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를 누리던

시간이었지.

내가 만약 신(神)이라면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일생 중 청춘을 가장 뒤에

두고 싶다.

 

건빵에 묻어 흘러간 청춘이 그립다.

 

17;00

언제 그랬냐는 듯,

시간은 어느새 바람처럼 흘러가 버렸다.

 

시간이 멈추면 생각도 멈추는 건가.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취수탑(등록 문화재 제45호)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 시간들이 기차의 창밖을 스친다.

어둠이 몰려오는 풍경은 농촌의 수묵화를 그리고, 

나는 하루치의 해독(解督)과 정화(靜和)를 얻고 간다.

 

새 몇 마리가 하늘 저편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새들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동질화되겠지.

어둠이 주는 안온은 고단한 삶을 내려놓게 하고 번뢰를 사라지게 한다.

 

18;00

기차를 타고 떠났던 시간여행.

세월의 더께가 쌓이며 또 하루가 지나간다.

 

하늘빛에 힘이 빠지며 짧았던 겨울 해가 아쉬운 인사를 하고,

나의 겨울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꿈은 우리를 단단하게 해준다.

친구들과 같이 하는 느림의 미학이 천 번을 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일단 쓰기 시작을 하면 서너 시간은 화장실에 가지 않을 정도로 몰입을 한다.

 

비록 잘 쓰지는 못할지라도 1000번이라는 목표를 세우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내 후반기 인생에서 몸을 달게 만드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꿈이 있기에

나는 설레고 행복하다.

 

                       2015.  2.  7. 제 41회 포럼을 마치고

                                                   백마고지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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