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올드만 A to Z
Actor's actor 배우의 배우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국 프리미어에서 게리 올드만을 격하게 껴안는 톰 하디. 2.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현장의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올드만.
게리 올드만은 '배우의 배우', 즉 배우에 의해 높게 평가되는 배우다. 물론 대중도 그의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놀라움 이상의 그 무엇이다. 특히 올드만은 젊은 배우들 사이에선 우상과도 같은 존재인데,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2012)까지 세 편 연속 올드만과 함께 하고 있는 톰 하디는 서슴없이 "최고의 배우는 단연 게리 올드만"이라고 단언한다. 브래드 피트와 조니 뎁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배우로 꼽는 올드만의 추종자들 명단은 쉽게 끝나지 않는데, 라이언 고슬링, 조셉 고든 레빗, 샤이아 라보프, 크리스 파인, 마이클 패스벤더, 대니얼 래드클리프 등 최근에 잘 나가는 수많은 젊은 배우들은 기꺼이 그의 연기를 보고 영감을 얻었음을 인정한다.
앤서니 홉킨스나 존 허트 같은 선배부터 콜린 퍼스나 레이프 파인즈 같은 동시대의 잔뼈 굵은 배우들도 게리 올드만의 연기적 재능이 얼마나 놀라운지 역설하는 상황. 로저 에버트와 진 시스켈을 비롯 [롤링 스톤즈]의 피터 트래버스나 [뉴욕 타임즈]의 재닛 메이슬린 같은 평론가들에게도 게리 올드만은 최고의 배우이며,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로 오스카 후보에 오르기 전 [더 가디언]의 리 싱어는 "최고지만 오스카 후보엔 오르지 못한 배우" 명단의 맨 위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아무리 가볍고 그저 그런 영화 속에서도 오로지 연기로서 '볼 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배우 게리 올드만. 콜린 퍼스의 말처럼 그는 "생존하고 있는 배우 중 최고의 배우를 꼽는다면 가장 강력한 후보"일지도 모른다.
Brit Pack 브릿 팩
1. 게리 올드만과 팀 로스가 공연한 [로렌크란쯔와 길던스턴이 죽다]. 2. 2011년 영국의 영화 전문지 [엠파이어]의 시상식에서 '엠파이어 아이콘' 상을 수상한 올드만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일군의 영국 남자 배우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더 페이스 The Face]라는 잡지에선 그들에게 '브릿 팩'(Brit Pack)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게리 올드만, 팀 로스, 대니얼 데이-루이스, 콜린 퍼스 그리고 [
패신저 57](1992)의 브루스 페인과 데릭 저먼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스펜서 리 등이 바로 브릿 팩의 구성원들. 이들 중 게리 올드만은 선두주자였고 가장 먼저 할리우드에 진출해 성과를 거둔 배우였다.
올드만의 첫 할리우드 영화는 마틴 캠벨 감독의 [
크리미널 로](1988). 영국 출신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영국식 영어 발음이었는데, 올드만은 완벽한 미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며 연착륙했다(어릴 적부터 흉내 내기의 달인이었던 올드만은 거의 모든 스타일과 액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데, 영국의 로열 코트 씨어터 단원들과 '짐바브웨식 영어 발음'을 놓고 내기를 이겼다는 얘기마저 있다). 연쇄 살인 용의자의 변론을 맡아 승소하지만 그가 유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고민하는 변호사 벤 체이스 역을 맡았으며 상대역은 케빈 베이컨이었다. 올드만이 체이스 역을 맡은 이유는 그 캐릭터와 자신이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었기 때문에 생긴 호기심 때문이었다.
1. [크리미널 로]에서 궁지에 빠진 변호사 역을 맡은 올드만. 2. [헬스 키친]의 올드만. 이 영화는 그에게 그때까지 최고의 현장 경험을 제공했다.
이후 그는 대서양을 오가며 활동하는데 [우린 너의 세상을 생각한다 We Think the World of You](1988)에선 감옥에 가게 되는 선원 쟈니 역을 맡아, 당시 표류하던 영국의 청년상을 잘 보여주었고, 톰 스토파드가 쓰고 연출한 ([햄릿]의 외전격인) [로렌크란쯔와 길던스턴이 죽다](1990)에선 '브릿 팩'의 일원인 팀 로스와 공연하며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후보에 올랐다.
할리우드에서의 작업도 이어졌는데 [
고독한 투쟁 Chattahoochee](1989)은 에밋 폴리라는 사람의 실화를 담은 영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인 그는 전후 후유증으로 '차타후치'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데, 그곳은 인권이 짓밟히는 감옥보다 더한 곳. 폴리는 그곳의 참상을 고발하기로 결심한다. 데니스 호퍼,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과 공연했다. 다음 작품은 숀 펜 주연인 [
헬스 키친](1990). 올드만은 마약상에 방화범에 갱스터에 싸이코인 재키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해내며 평단으로부터 로버트 드 니로와 비교되기까지 했다.
올드만은 이 영화가 그때까지 했던 모든 작업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며, 특히 한 신을 20번 이상 테이크를 가면서 제대로 될 때까지 촬영했을 때의 희열은 대단했다고 한다(저예산 영국 영화에선 누려 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한편 당시 숀 펜은 마돈나와의 부부 관계로 힘들어하던 시절. 이때 올드만은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숀 펜의 앞에서 부르는 악취미적 만용을 부렸는데, 그 모습에 숀 펜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이후 올드만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Contender, The [컨텐더]
1. [컨텐더]의 올드만. 2. 하원의원 웹스터(오른쪽) 역의 크리스천 슬레이터는 [트루 로맨스] [일급 살인]에 이어 [컨텐더]에서 올드만과 세 번째 만났다.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와 미국배우조합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
컨텐더](2000)는 게리 올드만에게 영광과 구설수를 동시에 안겨 준 영화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 잭슨 에반스(제프 브리지스)는 공석인 부통령 자리에 상원의원 레이니 핸슨(조앤 앨런)을 앉히려 한다. 최종 관문은 청문회. 하지만 여성 부통령의 탄생이 못마땅한 공화당의 셸리 러니언(게리 올드만) 상원의원은 그녀의 과거(대학 시절의 흥청망청 섹스 파티)를 들춰낸다.
이 영화가 개봉된 뒤 미국의 수많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저널들은 프로듀서로 참여한 게리 올드만이 영화에 대해 큰 불만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올드만과 그의 매니저 더글러스 우반스키는 이 영화의 배급사인 드림웍스가 자신들의 정치적 상향(민주당)에 맞춰 편집에 간여했으며, 그 결과물에 대해 올드만이 "나치 시대에 만들어진 프로퍼간다 영화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 진원지는 '미스터 쇼비즈' 사이트. [
컨텐더]에 대한 특집 기사를 만들던 중 이곳저곳에서 근거 불분명의 기사를 인용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사를 영화 전문지 [프리미어]가 인용하면서 소문은 '정설'처럼 굳어져 버렸다.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된 2000년 10월 13일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대선에 나서면서 선거 운동을 하던 시점. 그렇게 의혹은 증폭되었다.
1. [팁토즈]의 올드만. 영화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올드만의 연기는 극찬의 대상이 되었다. 2.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등장한 [한니발]의 올드만.
자초지종은 이렇다. 1차 편집본이 4시간 30분이었는데, 그것을 줄이는 과정에서 올드만은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원했지만 로드 루리 감독은 명백하고 알기 쉬운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드림웍스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널의 주장처럼 올드만은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며(사실 그는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는 쪽이다) 프로듀서로서 최종 편집본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올드만은 할리우드에서 암암리에 '까다로운 배우'로 낙인 찍혔고, 4년 가까이 주류에서 멀어진 채 인디펜던트 영화에 출연한다. [노바디스 베이비](2001)는 선댄스영화제에 초청 받은 작품.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되지 못했다. 평단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
인터스테이트](2002)도 DVD 시장으로 직행해야 했다. [
팁토즈 Tiptoes](2003)와 [씬 Sin](2003)은 혹평 세례를 받으며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올드만의 연기만큼은 인정받았다는 것. 특히 [팁토즈]의 난쟁이 연기에 대해 영국 BBC의 평론가 마크 커모드는 "졸작 속의 위대한 연기"라고 평했다.
4년 동안 그의 출연작 중 유일하게 극장에 개봉됐던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
한니발](2001). 그는 아동 성추행자인 메이슨 버거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마약에 취해 자신의 얼굴을 자해해 괴물처럼 변해버린 인물이다. 영화 내내 특수분장을 덮어쓰고 등장하는데, 엔딩 크레디트에서 확인하기 전까진 그가 게리 올드만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Dracula [드라큐라]
알렉 볼드윈, 에이던 퀸, 크리스천 슬레이터, 니콜러스 케이지, 휴 그랜트, 루퍼트 에버릿, 레이 리오타, 카일 맥라클랜, 앨런 릭맨, 콜린 퍼스, 더모트 멀로니, 앤디 가르시아, 가브리엘 번, 안토니오 반데라스, 아만드 아산테 그리고 비고 모텐슨. 이외에도 여러 명의 후보들을 제치고 게리 올드만은 드라큐라가 되었고, [
드라큐라]로 그는 영화 데뷔 10년 만에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원 톱 주연 흥행 배우가 되었으며 새턴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기존의 400년 묵은 흡혈귀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 여성의 연인이자 전사이며 다양한 몬스터로 변신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재창조한다. 그는 영화 내내 사랑의 고통에 얽매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 두 번째 아내였던 우마 서먼과 헤어지면서 겪은 사적인 고통과 겹쳐 있었다. 당시 올드만과 서먼은 1930년대 영국 시인인 딜런 토머스에 대한 전기 영화를 통해 재결합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이혼했던 것. 여기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현장에서 더욱 올드만을 몰아치며 극한의 감정을 끌어냈다(이후 올드만은 이 영화의 모든 감정은 드라큐라가 아닌 올드만 자신의 것이었다고 말했다).
1. 위노나 라이더와 올드만. 2. 현장의 코폴라 감독과 올드만.
좀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위해 발성 코치를 고용해 한 옥타브 정도 목소리를 낮춘 그는, 메이크업 때문에 알러지를 겪기도. 그 유명한 면도날의 피를 핥아 먹는 장면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촬영되었는데, 당시 올드만은 만취된 상태였다고 한다. 영화만큼 화제가 되었던 건 올드만과 위노나 라이더 사이의 불편한 관계. 코폴라 감독은 라이더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현장에서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가혹했고, 올드만은 거의 잠도 안 자고 식사도 거른 채 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리허설 때만 해도 괜찮았던 관계는 결국 점점 악화되었는데, 올드만이 위노나 라이더와 사귀게 되어 우머 서먼과 헤어졌다는 소문이 돌자 올드만은 "내가 위노나와 사귄다고? 차라리 조니 뎁과 사귀겠다"고 대답했고, 라이더도 "모든 사람과 사귈 수 있어도 올드만만은 아니"라고 받아쳤다.
Edward Bond 에드워드 본드
1. [핫 볼티모어]의 올드만. 2. [해골 속의 생쥐]의 올드만.
영화계로 진출하기 전, 게리 올드만은 연극계의 스타였다. 그 결정적 계기는 해롤드 핀터와 함께 1960년대 영국 연극계의 이단적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본드의 연극. 올드만은 총 다섯 편의 본드 연극에 출연했다. 올드만이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건 틴에이저 시절이었다. 1970년대 중반 그리니치에 있는 영 피플스 씨어터(Young People's Theatre)에 들어갔는데, 얼마 다니지 못해 다시 생활 전선으로 나서야 했다. 공장 노동자, 짐꾼, 신발 장사꾼, 돼지 도살자 그리고 좀도둑 등으로 살아갔지만 그의 마음속엔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는데, 왕립연극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에 떨어진 후 결국은 켄트에 있는 로즈 브루포드 연극 학교(Rose Bruford College of Speech and Drama)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1979년(21세)에 졸업했다.
첫 프로 무대는 요크스 씨어터 로열(York's Theatre Royal)의 [딕 휘팅턴과 고양이]였고, 그는 고양이 역을 맡았다. 이후 글래스고우의 시민 극단(Citizen's Theatre)에 들어갔는데, 이곳에서 마임을 비롯한 기본기의 모든 것을 제대로 배웠고, 강렬한 감정 연기로 극단 최고의 인기배우가 되었다. 1년에 서너 작품씩 출연하던 그는 연기에 중독되었고, 특히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받쳐 주는 연극 작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분노와 긴장과 혼란을 무대 위에서 연기로 승화시켰다.
1983년에 조 오튼의 [슬로언씨를 위하여]에 이어 1984년에 에드워드 본드의 1965년 작품인 [구조되다 Saved]에 출연하면서, 그는 연기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올드만은 최고의 극단 중 하나인 로열 코트 씨어터(Royal Court Theater)의 예술 감독인 맥스 스태포드 클라크에게 공연을 보러 와달라고 편지를 썼고, 올드만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클라크는 로열 코트 씨어터의 다음 작품인 [교황의 결혼식] 주인공에 올드만을 캐스팅 했다. [교황의 결혼식]은 에드워드 본드가 1962년에 내놓은 데뷔작으로, 그 초연 공연을 로열 코트 씨어터에서 했다.
이후 올드만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단원이 되었으며(1985~86년), 앤서니 홉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배우가 되었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영국 연극계의 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다. 1987년까지 무대에 선 그는 에드워드 본드의 전쟁극 세 편인 [레드 블랙 앤 이그노런트 Red Black and Ignorant] [더 틴 캔 피플 The Tin Can People] [그레이트 피스 Great Peace]에 모두 출연했다.
Financial problems 경제적 문제
첫 아내 레슬리 맨빌과 1990년에, 두 번째 아내 우마 서먼과 1992년에 헤어진 게리 올드만은 이 시기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시작했고, 1991년엔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었으며, 1993년엔 스스로 클리닉을 찾아갈 정도였다. 그러면서 계속 연기를 해나갔지만 그는 절대 많은 개런티를 받는 배우가 아니었고, 2001년에 세 번째 이혼을 할 즈음엔 세 아이의 양육비와 위자료와 소송비 등으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
컨텐더] 이후 인디펜던트 영화에 출연하던 그에겐 계속 빚이 쌓여갔고, 2004년엔 30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마저 내야 했다.
그 어떤 작품도 가리지 않았고, 비디오게임의 목소리 연기로 푼돈을 벌던 시기. 하지만 270만 달러에 달하는 빚은 블록버스터에 출연하지 않고선 갚을 수 없었다. [
스타 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2005)의 그리버스 장군 목소리 연기도 거부했던 그가 2004년 [
해리 포터] 시리즈에 합류하고 2005년 [
배트맨 비긴즈]에 출연한 건 이러한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했던 듯. 하지만 두 시리즈에서 그는 '돈 때문에 하는 연기'로 폄하하기엔 너무나 근사한 연기를 보여준다.
Guest appearance 특별 게스트
1. [프렌즈] '시즌 7'의 게리 올드만. 2. 매트 르블랑과 공연한 [로스트 인 스페이스].
수많은 스타들이 게스트로 거쳐간 시트콤 [
프렌즈]. 게리 올드만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조이(매트 르블랑)와 함께 연기를 하는 리처드 크로스비가 그가 맡은 캐릭터다. 진정한 배우는 감정을 표출할 때 침을 튀기게 되며, 그러는 가운데 우정이 싹튼다고 역설하는 그는 특히 'P'와 'T' 발음에 힘을 실어 조이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수분을 공급한다. 이에 조이의 '침 역습'이 이어지는데…. 이 연기로 올드만은 2001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게스트 부문 후보로 올랐다. 한편 매트 르블랑과 올드만은 [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르블랑은 우주 비행사인 돈 웨스트 소령 역을, 올드만은 사악한 과학자 닥터 스미스 역을 맡았다.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올드만. 2.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현장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올드만.
[
해리 포터] 시리즈 제작진은 세 번째 시리즈인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준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새로 등장할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캐릭터 때문. 해리 포터의 부모를 죽인 자로 여겨지는 '현상금 붙은 악당'이지만, 사실은 해리 포터의 대부인 '착한 편'. 그런 이중적인 이미지에 비장미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며, 마이클 갬본이나 앨런 릭맨이나 매기 스미스 같은 배우들의 무게감에 절대 뒤지지 않을 배우. 그러려면 꽤 묵직한 필모그래피를 지녀야 할 것이며, 영국의 연극 무대 출신이라면 더욱 신뢰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바로 게리 올드만이었다.
당시 올드만은 2002년에 [씬]을 촬영한 이후 1년 동안 캐스팅 제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상태. "그 동안 R등급 영화를 주로 해왔는데 내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디즈니 영화의 캐릭터를 맡은 건 아니었다. 전편들과 달리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의 톤은 꽤 어둡게 끌어내렸고, 올드만은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캐릭터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기할 수 있었다. 한편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올드만의 광팬이었는데, 올드만은 그에게 베이스 기타를 선물하고 직접 교습을 해주기도 했다고.
Immortal Beloved [불멸의 연인]
[
레옹](1994)에서 베토벤을 들으며 총을 난사하던 형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해 베토벤 역을 맡게 된다. [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에 대한 전기 영화이자, 그가 죽은 후 플래시백 구조를 통해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 올드만의 연기는 물론 작품적으로도 인정 받았던 영화다. 아마도 베토벤은 올드만에게 가장 어울리는 예술가 캐릭터일 듯. 올드만은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지면서도 "지금 관객들 중엔 아무도 그를 만나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올드만은 유독 전기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
시드와 낸시](1986)의 시드 비셔스로 시작해 [
귀를 기울여](1987)에선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조 오튼이 되었고, [
고독한 투쟁]에선 인권 유린에 맞섰던 에밋 폴리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카메오로 출연했던 [
북회귀선](1990)은 아나이스 닌과 헨리 밀러와 준 밀러의 이야기. 로트렉과 렘브란트와 르느와르의 콜렉터이기도 한 올드만은 친구인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
바스키아](1996)에서 앨버트 밀로(슈나벨 감독 자신이 투영된 가상 인물)로 등장했다. 전기 영화라고 보긴 힘들지만 [
JFK](1991)에선 케네디의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로 나오기도. 그리고 TV 영화 [
지저스](1999)에선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되었다.
James Gordon 제임스 고든
1. [다크 나이트]의 올드만. 2. [배트맨 비긴즈]의 올드만과 배트맨.
2004년 [
해리 포터] 시리즈에 몸을 실은 올드만은 2005년 [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프랜차이즈 무비 캐릭터의 이미지를 굳혔다. 고정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악당 캐릭터를 짐작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제임스 고든. 형사로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 오면 경찰청장이 된다) 배트맨의 든든한 지원군인 '착한 편'이다. 그가 예전에 맡았던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하고 정상적인(!)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올드만의 열혈 지지자인 BBC의 마크 커모드 같은 평론가는 제임스 고든 캐릭터가 과소평가되었다며 오히려 [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보다 올드만의 연기를 높이 사야 한다며 "[다크 나이트] 최고의 연기자는 올드만이다. 그는 월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Kung Fu Panda 2 [쿵푸 팬더 2]
1. [쿵푸 팬더 2]의 쉔. 2. [크리스마스 캐롤]의 밥. 퍼포먼스 캡쳐를 통해 외모도 올드만과 매우 흡사하다.
온갖 액센트를 소화할 수 있으며 성대 모사에도 능한 게리 올드만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목소리 연기의 기회는 [
매직 스워드](1998). 아서왕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올드만은 악당 루버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후 한 동안 뜸했던 그는 [
크리스마스 캐롤](2009)에서 1인 3역에 도전하는데, 스크루지 밑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밥, 유령 말리 그리고 꼬마 팀까지 정말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스페인 애니메이션 [
플래닛 51](2009)에선 그롤 장군 역을 맡은 그는 [
쿵푸 팬더 2](2011)에서 악역인 공작새 쉔 역으로 애니 어워즈의 목소리 연기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편 올드만은 게임에도 종종 목소리가 등장했는데, 그 시작은 [드라큘라] 핀볼 게임. 이후 비디오 게임으로 영역을 옮겨 [제5원소](1997)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 스피어헤드](2003)의 잭 반스, [트루 크라임: 스트리트 오브 LA](2003)의 록키, [더 레전드 오브 스파이로] 시리즈의 이그니투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레즈노프 등의 캐릭터를 맡았다.
Lee Harvey Oswald 리 하비 오스왈드
1. [JFK]의 올드만. 2. 현장의 올드만과 스톤 감독.
아직 [
드라큐라]는 만나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에서 점점 주가가 오르던 시절, 게리 올드만은 일생 일대의 캐릭터를 만난다.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던 범죄자 리 하비 오스왈드. 바로 존 F 케네디의 '공식적인' 암살자다. 모든 것을 음모이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올리버 스톤의 [
JFK](1991)에서 오스왈드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악당이어선 안 됐다. 이 캐릭터엔 모호한 느낌이 있어야 했고, 스톤 감독은 그것을 올드만이 즉흥 연기로 채우길 바랐다.
오스왈드의 아내인 마리나를 비롯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후 캐릭터를 창조한 올드만은, 몰입을 위해 촬영 기간 동안 현장 사람들 이외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고. 리 하비 오스왈드는 매우 고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역할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오스왈드가 "나는 결백하다!"라고 소리치는 장면 때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최종 편집에서 삭제되었다.
Malcolm McDowell 말콤 맥도웰
1. [만약]의 말콤 맥도웰. 2. 2011년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말콤 맥도웰이 이름을 새길 때 함께 하며 헌정 연설을 했던 올드만.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스포츠 샵에서 일하던 올드만에게 아직 '연기'는 그의 구체적인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 TV에서 본 두 편의 영화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바로 린제이 앤더슨 감독의 [
만약 If…](1968)과 브라이언 포브스 감독의 [
달빛 스캔들 Raging Moon](1971). 모두 말콤 맥도웰이 주연을 맡은 영화였다. 우리에겐 [
시계태엽 오렌지](1971)의 알렉스로 잘 알려져 있는 맥도웰은, 1960년대 영국에 뉴 시네마의 바람이 불 때 그 주역 중 하나였던 인물로, 전통과 제도와 인습에 반항하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배우. 그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항적 에너지는 올드만이 당시 겪고 있던 상실감, 분노, 소외감 그리고 억압 등을 자극하며 그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불어넣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함께 연기한 적은 없는 올드만과 맥도웰([
일라이](2010)에서 만나긴 했지만 맥도웰의 비중이 너무 작았다). 하지만 2013년 개봉 예정인 [
몬스터 버틀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맥도웰이 연쇄살인마 로이 폰테인 역을 맡았고, 올드만은 박제사로 등장한다.
Nil by Mouth [닐 바이 마우스]
1. 레이 역의 레이 윈스턴. 2. [닐 바이 마우스]로 연기자가 된 올드만의 누나 모린 올드만. 게리 올드만은 누나에게 라일라 모스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게리 올드만은 1997년 [
닐 바이 마우스]를 연출하면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화해한다. 사우스 런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그의 반자전적인 이야기. 주인공 레이(레이 윈스턴)는 아내 발레리(캐시 버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는 레이를 사랑하고, 그러한 딸의 모습을 재닛(라일라 모스)은 그저 바라본다. 그녀도 그러한 폭력의 피해자였던 것. 올드만은 이 시나리오를 알코올 클리닉에 있을 때 썼는데, 문제는 제작비 마련. 450만 달러의 돈이 필요했는데 올드만 자신이 140만 달러를 충당하고 뤽 베송이 나머지를 책임졌다.
존 카사베츠의 즉흥적 스타일을 토대로 켄 로치나 마이크 리 감독 스타일의 직접적인(아니 그보다 훨씬 더 거친) 대사가 오가는 이 영화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수확 중 하나는 올드만의 13세 연상 누나인 모린 올드만이 배우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올드만은 재닛 역할에 수많은 배우들을 오디션 했지만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했고, 캐릭터의 실제 모델인 누나 모린에게 역할을 제안하며 '라일라 모스'라는 이름을 선사했다(라일라 모스(Laila Morse)는 이탈리아어로 '나의 누이'(mia sorella)를 재조합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전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
닐 바이 마우스]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예술가로서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영화"라고 말하는 올드만.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며 친구이자 매니저인 더글러스 우반스키와 함께 'SE8 그룹'이라는 영화사를 만들었고 이후 [
컨텐더]를 제작한다.
Oscar 오스카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올드만. 2. 84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들과 함께.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로 '첫' 오스카 후보가 되었을 때 수많은 저널과 팬들은 환호했다. 사실 아카데미 위원회가 '제대로' 투표를 했다면, 게리 올드만은 진작 (수상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두세 번 후보에 올랐을 배우였다. 하지만 [
드라큐라]나 [
불멸의 연인]은 그 어떤 조명도 받지 못했고, [
컨텐더]로는 배우협회 시상식 후보로 올랐음에도 아카데미 위원회의 외면을 받았다(배우 부문 후보와 수상자에서, 배우협회 시상식과 오스카 사이의 싱크로율은 80퍼센트 이상이다).
7킬로그램의 체중을 늘리고, 발산하기보다는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준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는 올드만에게 첫 오스카 레드 카펫을 밟게 해준 영화.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역은 TV 시리즈에서 영국의 대배우 알렉 기네스가 맡았던 역할인데, 올드만은 "이 캐릭터엔 약간의 사디스트적인 면이 있다"며 기네스의 연기와 차별점을 두었다. 이 영화가 올드만에게 안겨 준 또 하나의 기쁨은, 존 허트와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 배우가 되기 전부터 팬이었던 존 허트 앞에서 마치 '소년 팬'과도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조지 스마일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지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는 격투기를 할 필요도 없고 빠른 차나 총도 필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이 조지를 위험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는 쉽게 섞이고 또 사라진다. 그는 먹잇감을 덮치기 위해 몸을 숨기고 있는 정글의 표범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Prick up Your Ears [귀를 기울여]
1. [귀를 기울여]의 올드만. 2. 올드만과 앨프레드 몰리나. 몰리나는 [스파이더맨 2]의 닥터 옥토퍼스로 잘 알려진 배우다.
[
시드와 낸시](1986)로 급부상한 올드만의 커리어는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
귀를 기울여](1987)로 이어지면서 확고한 이미지를 지니게 된다. 그가 맡은 역할은 희곡 작가였던 조 오튼(그는 1983년에 조 오튼의 [슬로언씨를 위하여] 무대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희곡 작가 중 한 명인 조 오튼과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케네스 할리웰(앨프레드 몰리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그들의 관계와 오튼의 비극적 죽음을 담는다(오튼은 할리웰의 망치에 의해 살해되었다).
올드만은 이 영화에서 자만심에 가득 차 있고 어린아이 같으면서 부주의한 성격의 젊은 작가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제목인 'Prick up Your Ears'는 (완성되진 않았지만) 오튼이 쓰던 시나리오 제목. 그는 비틀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여기에 할리웰은 이 제목을 붙였다. [
귀를 기울여] 이후 올드만은 니콜러스 뢰그 감독의 [
트랙 29](1988)에 출연하는데. 이 영화의 작가인 데니스 포터는 당시 급부상하던 올드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드만은 매우 위대한 배우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범죄적 이미지를 지녔다. 그는 어떤 경계 위에 있다. 그래서 관객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불안감을 느낀다."
Quotes 게리 올드만 어록
"아이들을 플레이스테이션이나 각종 게임기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무엇이라도 찬사를 보낸다. 그건 거의 기적이니까."
"유명해지는 건 연기를 하는 것과 다른 영역의 문제다. 그리고 나에겐 유명해지기 위해 사용할 그 어떤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할리우드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을 캐스팅 할 때, 난 아마도 리스트의 맨 아래에 있을 거다."
"나는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상냥하며 부드러운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
드라큐라] 현장에서 위노나 라이더와 연기할 때 그녀는 '제기랄! 당신은 너무 강렬하게만 연기하려 해요!'라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말했다. '뭐라고요? 난 강렬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난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내 열정과 에너지는 종종 분노로 오해 받곤 한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그 자체가 되었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가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닌 이상 당신을 속이고 있는 거다."
"나에게 한때 연기는 치료와도 같았다. 난 연기라는 엑소시즘을 통해 내 안의 악마를 몰아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선 우선 어느 정도의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Romeo Is Bleeding [로미오 이즈 블리딩]
1. [로미오 이즈 블리딩]의 올드만. 2. 올드만과 레나 올린. 올린이 맡은 모나라는 캐릭터는, 아마도 올드만이 만난 가장 악독한 팜므파탈일 것이다.
[
드라큐라]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타이틀롤을 맡을 만한 '급'으로 뛰어오른 게리 올드만의 선택은 '나쁜 형사' 캐릭터였다. [
로미오 이즈 블리딩](1993)은 오로지 '한껀'을 통해 인생 역전을 바라는 형사 잭 그리말디의 이야기, 그는 악과 손잡고,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며,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하지만 갱 보스의 정부이자 잔혹한 킬러인 모나(레나 올린)라는 '팜므 파탈'과 얽히면서 구렁텅이에 빠진다.
다음 해 나올 [
레옹](1994) 이전에 그가 악역 이미지의 워밍업을 시작한 영화. 그는 이 영화의 촬영을 마치고 다음 날 곧장 [
트루 로맨스](1993)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
로미오 이즈 블리딩] 촬영 막바지엔 이미 [트루 로맨스]의 포주 역할에 어느 정도는 젖어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Sid and Nancy [시드와 낸시]
1. [시드와 낸시]의 올드만. 2. 영화 속 시드(올드만)와 낸시(클로에 웹)와 실제 시드와 낸시를 비교한 것.
게리 올드만의 인생을 바꿔놓은 영화는 [
시드와 낸시](1986)였다. 당시 그는 연극에 매진하던 20대 배우. [회상](1982)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영화 경험은 그것이 전부였고, 몇 편의 TV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한 정도였다. 이때 알렉스 콕스 감독은 1984년에 올드만의 [교황의 결혼식] 무대를 보았고 즉시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펑크 록의 아이콘이었던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와 그의 연인 낸시 스펑겐의 이야기를 다룬 [
시드와 낸시]에 대해 처음에 올드만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펑크 록에 별 관심이 없었고(그는 블루스 음악을 좋아한다), [시드와 낸시] 시나리오가 거의 쓰레기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로열 코트 씨어터에서 주급 80파운드를 받던 그에게 개런티 3만5천 달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고, 그는 시드 비셔스가 되기로 결심했다.
1. 'My Way'를 부르는 장면. 2. 알렉스 콕스 감독과 올드만과 클로에 웹.
시드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받은 체인 목걸이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역할을 위해 20킬로그램의 체중을 뺀(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올드만은, 말 그대로 시드 비셔스의 '빙의' 상태가 되었다. 그의 개인사는 그의 연기를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갔다. 7세 이후로 만난 적 없는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드디어 직접 만나 그간의 세월을 화해하기로 했지만, [
시드와 낸시] 촬영 기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버렸던 것. 올드만은 그 상실감과 분노를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시켰고, 영화 속 시드 비셔스의 몽롱한 느낌과 언제나 혼란스러운 듯하며 자기 혐오로에 빠져 있는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이었던 쟈니 로튼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의 진정성에 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올드만의 연기를 '목격'한 후 "정말 끝내주는 배우"(bloody good actor)라고 평했다. 특히 'My Way'를 부르는 장면의 올드만은 거의 접신의 경지. 이 영화에 이어 역시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
귀를 기울여]까지, 단 두 편을 통해 그는 영화배우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힐 수 있었고 곧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TV career 텔레비전 경력
1. [민타임]의 올드만. 2. [더 펌]의 올드만.
연극 배우 시절, 그는 생계와 경험을 위해 TV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마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TV 영화 [민타임 Meantime](1984). 영국 하층민 가족의 비루하고 거친 삶을 그린 영화로 팀 로스가 주연을 맡았는데, 게리 올드만은 인종주의자 콕시 역을 맡았다. 스킨헤드로 등장하는 모습이 꽤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은 겁 많고 엄청나게 멍청한 캐릭터다. 이후 아동용 연극 TV 시리즈인 [드라마라마 Dramarama](1984)나 [모건스 보이 Morgan's Boy](1984) [썸머 시즌](1985) 같은 TV 시리즈에 잠깐씩 출연한다.
1986년 TV 영화 [어니스트, 디센트 앤 트루 Honest, Decent and True](1986)에서 런던의 여피족 스타일 광고 에이전시로 등장한 후 [더 펌 The Firm](1989)에서 그는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가 맡은 역할은 훌리건들을 이끄는 벡스. 1988년 챔피언스 리그를 둘러싸고 점점 폭력 사태로 번져가는 훌리건들의 전쟁을 다룬 중심에 있는 인물인데, 카리스마와 위트와 잔인함을 동시에 지닌 연기로 호평 받았다. 영국의 영화잡지 [토털 필름]은 [더 펌]의 연기를, 올드만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최고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헤딩 홈 Heading Home](1991)은 데이비드 헤어의 작품. 올드만은 2차대전 후 런던의 교활한 부동산 개발업자로 등장한다. 이후 한 동안 TV 출연이 뜸했던 올드만은 1999년 TV 영화 [
지저스]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 역을 맡았다.
Upcoming movies 차기작들
1. [파라노이아] 현장의 올드만. 2. 해리슨 포드와 올드만.
내년 개봉을 예정으로 현재 후반작업 중인 영화는 [
파라노이아]. [
금발이 너무해](2001) [
21](2008) 등을 만든 로버트 루케틱 감독의 작품으로, 회사 공금을 유용하다 보스에게 발각되어 산업 스파이 일을 강요 받게 되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리암 헴스워스가 스파이로, 그에게 스파이 일을 강요하는 사악한 보스 역으로 게리 올드만이 출연한다. [
에어 포스 원](1997) 이후 16년 만에 해리슨 포드와 게리 올드만이 재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현재 촬영중인 영화는 [
로보캅] 리메이크. 올드만은 로보캅의 모든 설계를 책임진 닥터 노턴 역을 맡았다. 내년 여름 개봉 예정이다. [로보캅] 촬영이 끝나면 그가 발걸음을 옮길 현장은 어릴 적 우상이었던 말콤 맥도웰과 공연하는 [
몬스터 버틀러]다(M 항목 참조).
Villain 악당
1. [트루 로맨스]의 드렉시. 2. [레옹]의 노먼 스탠스필드.
게리 올드만이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탄탄한 기반은 '악당 캐릭터'였다. MTV에서 유명 스타들의 대결을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단편 시리즈 '셀러브리티 데스매치'에선 크리스토퍼 워큰과 누가 최고의 악역 연기자인지를 놓고 한판 붙기도. 1980년대에도 몇 편의 악역 캐릭터가 보이긴 하지만, 아마도 그의 본격적인 '나쁜 역'은 [
트루 로맨스](1993)의 포주인 드렉시일 것이다. 시나리오는 커녕 영화 내용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토니 스콧 감독을 만난 게리 올드만은 감독의 단 한마디에 드렉시가 되기로 결심했다. 토니 스콧은 말했다. "드렉시라는 캐릭터는… 자신이 흑인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포주지."
올드만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워큰, 데니스 호퍼, 브래드 피트, 발 킬머, 제임스 갠돌피니, 새뮤엘 L. 잭슨 그리고 주연을 맡은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패트리샤 아퀘트. 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놀라운 캐스팅 라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단 10분 출연했던 게리 올드만이었다. 그는 직접 머리를 꽈서 레게 스타일의 헤어를 만들고, 치과에 가서 이상한 의치를 끼워 넣고, 진한 눈 화장을 했다. 혹시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을 맡은 조니 뎁이 모방한 건 아닐까 싶은 독특한 스타일로 영화에 등장한 올드만은, 이 영화의 진정한 신 스틸러가 되었다.
1. [일급 살인]의 밀튼 글렌. 2. [제5원소]의 장-밥티스트 엠마누엘 조르그.
이어지는 [
레옹](1994)의 '미친 형사' 노먼 스탠스필드는 결정타였다. 이 영화의 연기에 대해 영국의 영화잡지는 '특등 사이코'(psycho deluxe)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단순히 발산하는 열연이 아니라 내적인 갈등을 강렬하게 몸으로 표현하는, 그가 연극 시절부터 쌓아 올린 자신만의 스타일과 내공이 폭발하는 놀라운 연기였다. 수많은 저널들을 통해 현대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악역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죄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알카트라즈의 교도관으로 등장하는 [
일급 살인](1995)도 '게리 올드만 악역사'를 이야기할 때 뺄 수 없는 작품. 그리고 뤽 베송 감독과 다시 만난 [
제5원소](1997)에선, 머리 반쪽만 삭발한 파격적인 헤어 스타일로 등장해, 은하계를 넘나드는 무기 거래상 장-밥티스트 엠마누엘 조르그가 되었다. 그는 이 캐릭터를,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무소속 열풍을 일으켰던 로스 페로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 [에어 포스 원]의 이반. 2.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의 플로이드 배너.
[
에어 포스 원](1997)의 테러리스트, [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의 닥터 스미스 등은 그의 악역 캐릭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캐릭터에 흡수된 느낌이 있지만 올드만 특유의 느낌은 여전했던 작품. 이후 [
해리 포터] 시리즈와 [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통해 '좋은 편'으로 이미지 전환을 했지만, 갱스터인 플로이드 배너로 등장한 최근작 [
로우리스 : 나쁜 영웅들](2012)만 봐도, 짧은 출연 시간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지는 올드만만의 신공은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표면적이며 1차원적인 악역이 아닌, 사이코이면서도 묘한 연민이 느껴지며 혹은 인간 아닌 그 어떤 존재처럼 다가오는 올드만의 악역 연기는 분명 영화 역사에서 캐릭터의 지평을 한 뼘 정도는 넓힌 일종의 '예술 작품'이었다.
Who's Kyle? [후즈 카일?]
1. [후즈 카일?]의 올드만. 2. [비트 더 데블]의 올드만.
게리 올드만은 단편 작업에도 종종 참여하곤 했는데, [후즈 카일?](2004)은 대표적인 작품. 고리대금업자의 돈을 훔쳐내 달아나는 젊은이 카일의 이야기로, 올드만은 바로 그 고리대금업자인 스카우스 역을 맡았다. 2002년엔 BMW의 프로모션 필름 시리즈 중 한 편인 [
비트 더 데블 Beat The Devil]에 출연하기도. 클라이브 오웬을 드라이버로 이어지는 시리즈였는데, 제임스 브라운, 마릴린 맨슨 등과 출연한 올드만은 '데블', 즉 '악마' 역을 맡았다. 한편 [도넛 Donut](2006)은 노키아의 N 시리즈 프로모션 영상으로, 올드만이 직접 연출한 것. N93 폰으로 촬영한 것이다.
X-wives 과거의 아내들
게리 올드만의 첫 아내는 연극 [엄청난 돈](1987)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의 레슬리 맨빌. 그들은 만나자 마자 결혼했고 다음 해(1988)에 아들 알피를 낳았지만 1989년에 이혼했다. 그들의 이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
헬스 키친](1990)의 필 조아누 감독. 그는 파티 자리에서 당시 여자친구였던 우마 서먼을 올드만에게 인사시켰는데, 그들은 곧 사랑에 빠졌고 1990년에 결혼했다. 하지만 스무 살의 신부는 12살 많은 남편과 오래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했고, 그들은 1992년에 이혼했다.
이후 올드만의 연인은 여섯 살 연상의 여배우 이사벨라 롯셀리니. 그들은 한때 약혼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나, 당시 올드만은 알코올 클리닉을 드나드는 불안정한 상태였고 결국은 헤어진다. 아이러니컬한 건, 클리닉에서 만난 도냐 피오렌티노와 1997년에 결혼했다는 것.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전처이며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피오렌티노와의 결혼 생활은 2001년까지 이어지는데, 그들의 결별은 많은 구설수를 낳았다.
법정에서 피오렌티노는 올드만이 마약은 물론 매춘을 했고, 늘 술에 절어 살았으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전화 수화기로 때렸고, 아들을 구타한 후 담뱃불로 지졌다는 끔찍한 증언을 한 것. 이에 올드만은 모든 것을 부인하며, 다시 술에 빠진 건 자신이 아니라 피오렌티노이며 게다가 마약을 상급적으로 했다고(심지어 딸 앞에서) 역공을 펼쳤다. 판사는 올드만의 손을 들어주었고, 양육권은 올드만에게 갔다.
이후 모델이자 배우인 제인 미들미스(2001년), 여배우인 알리사 마샬(2002~05년)과 사귀던 올드만은 2008년 영국 출신의 재즈 싱어인 스무 살 연하의 알렉산드라 에덴보로와 결혼해 현재 LA 지역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Youth 유년기와 청소년기
1. 어린 시절의 올드만. 2. 올드만과 어머니 캐슬린.
1958년 3월 21일 사우스 런던의 뉴 크로스 역 부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올드만의 유년기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그가 연출한 [
닐 바이 마우스]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아버지 렌 올드만은 과거에 선원이었고 용접과 배관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알코올 중독자였다. 두 명의 누나는 올드만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았고, 올드만은 자연스레 누나들 손에서 자랐으며 다섯 살 때부터 틴에이저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게리 올드만이 7세 때 아버지는 집을 떠나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는데,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어린 마음에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집을 떠났다고 생각했고, 긴 세월 동안 그것을 자책하며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살았다(반자전적 영화 [
닐 바이 마우스]는 '아버지를 위하여'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나이 많은 누나들이 결혼하면서 집을 떠나자, 올드만은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고독한 소년이 되었다.
1. 어린 시절 올드만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리처드 레스터 감독의 [하드 데이즈 나이트]. 2. 올드만보다 13살 많은 누나이자, 올드만에 의해 50대에 연기 생활을 시작하게 된 라일라 모스(모린 올드만).
그 시간에 올드만은, 뉴 크로스의 비루한 세계와는 무관한, 자신만의 공상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누군가를 흉내 내면서 연기도 하고 의상도 차려 입고 각종 캐릭터를 연구하던 그는 빈 담뱃갑을 모아 배트맨 벨트를 만들기도 했고, 드라큘라 복장을 하고 드레스 콘테스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규율에 적응하지 못했던 올드만에게 학교는 지옥 같았고, 선생들은 그를 아둔한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뭔가 영감이 주어지면 폭발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시작은 음악이었다. 누나와 극장에서 비틀즈가 나오는 [
하드 데이즈 나이트](1964)를 본 후 기타를 배운 그는 밴드의 일원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13세 땐 다락에서 우연히 찾은 리버라체의 클래식 음반을 들은 후에 쇼팽에 빠져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경기를 본 후엔 복싱에 빠져 체육관에서 살았고, 곧 축구도 그런 대상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연기자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된 시기였고,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의 삶을 살다가 곧 연극학교에 들어가 연기의 길로 접어든다.
Zealous fan of music 열정적인 음악 팬
한때 연기와 음악 사이에서 고민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른 게리 올드만은 배우가 된 후에도 틈이 날 때마다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
시드와 낸시] OST엔 직접 부른 두 곡의 노래 'I Wanna Be Your Dog'과 'My Way'가 수록되어 있고,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인 글렌 매트록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
트랙 29](1988)에도 연주하는 장면이 있으며, 베토벤 역을 맡은 [
불멸의 연인]에선 카메라 밖에서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가 연주하고 올드만은 건반을 두드리는 흉내만 냈는데, 사운드와 손가락 사이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하루에 다섯 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한다.
[
바스키아]에 출연하며 친하게 된 줄리언 슈나벨 감독의 앨범 [Every Silver Lining Has a Cloud]엔 피아노 연주와 보컬로 참여했다. 최근엔 잭 화이트의 뮤직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도 했으며, 건즈 앤 로지즈의 'Since I Don't Have You' 뮤직비디오엔 악마로 출연했다. 2011년엔 알렉스 에덴의 첫 싱글 'Kiss Me Like the Woman You Loved'의 뮤직비디오도 올드만이 연출한 것. 노키아 폰 카메라로 유태계 힙합 그룹 '후츠파'(Chutzpah)의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