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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과 인생의 행복 (잠3:11-15절)
인생은 처음부터 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사랑을 줌으로서 새 생명이 만들어집니다. 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문화와 문명을 물려줍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오늘 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들이 갖지 못한 아주 값진 것들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행복을 추구하며 또 행복해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높은 존재로 창조하시고 행복을 누리도록 허락하셨으며 동시에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많은 인생이 행복이라는 꿈을 좇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을 바라고 좇기는 하지마는 무엇이 참된 행복이며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이며 인생의 참 행복은 어떤 것인지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 왕의 고백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a.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보실 때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은 아름답고 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아름답다’ (히) 야패 의 원래 의미는 밝다, 꾸미다의 뜻입니다.
*시45:9 왕의 귀비 중에는 열 왕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우편에 서도다. 이 때에 꾸미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의 상징적인 뜻은 ‘어여쁘다’ 라는 말입니다. 즉 이 말은 자신을 치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서 다른 것들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에게는 공통된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두움보다는 밝은 것을 좋아하며 뒤떨어지기보다는 뛰어나서 드러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이러한 것을 주셨습니다.
b.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모한다’ (히) 아하브 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라는 뜻으로 성적(性的)으로나 다른 방법으로 애정을 가지고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대상을 지정하여 선택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영원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영원이라는 히브리어 ‘오람’ 은 ‘숨겨진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작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 때의 숨긴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간으로서 미래의 비밀에 가려진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라서 누구나 숨겨진 비밀, 곧 영원에 속한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그 곳에서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파스칼은 이러한 사실을 말하기를 ‘인간은 누구나 뻥 뚤린 가슴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철학이나 도덕, 선행, 재물과 명예로 이 마음의 커다란 공백을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비밀의 베일에 가려진 영원에 속한 진리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것을 사람이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음으로 그 비밀을 간절히 사모할 뿐입니다.
c.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측량하다‘ 라는 말은 발견하다, 알아 맞추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깨달을 수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더 더욱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마음과 생각이 부패해지고 왜곡되어졌습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라 고 하지 아니하였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로 알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강한 열망이 있으면서도 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길이 영원을 얻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인생의 참 행복은 무엇입니까.
a. 살아있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행복입니다.
*전3: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물론 행복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혼의 문제입니다.
*전6: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그렇다고 전적으로 물질적, 육체적 측면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땅에서의 삶과 육체적 즐거움이 전부인양 착각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며 사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 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시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는 항상 기뻐하는 동시에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내용이 있는데 --
먼저는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전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전3: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도의적 신앙적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전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주신 달란트를 따라 맡겨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칼빈은 말하기를 세속적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 일이 곧 소명 받은 일이요, 주의 일이다. 라고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충성된 삶을 무시하고 영적인 행복만 찾고자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온전한 행복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b. 사람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행복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은 인간이 행하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을 가리킵니다. 고어 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굉장한 일을 행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범한 보통 일을 굉장히 잘 하기를 원하신다. 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가 깨달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인생의 값진 것들을 정리해 보면--
첫째: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5:18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둘째: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전3: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셋째: 죽은 후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7:1-2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 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넷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전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다섯째: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3.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전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지금까지 솔로몬은 일상생활의 평범한 일들은 단지 헛된 것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2:11 그 후에 본 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3:9-10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일상생활을 통해서 낙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부패한 인간의 심령, 공허한 인간의 영혼에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모든 일들은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요, 아픔이었습니다. 우스 땅에 왕 같은 존재로 군림하며 재물과 가정에 부족함이 없었던 욥이 갑작스런 고통을 받았을 때에 그의 친구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욥5:6-7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인생은 고난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고난의 역경을 딛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고생이요, 즐거움의 뒤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몸부림쳐도 이 한계는 극복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욥8:13-15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찌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전도자는 이전에 호화롭고 사치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린 모든 일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고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지마는 이제는 헛된 인생의 일상생활이 온전한 생의 기쁨을 주는 요소로 전환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 온 우주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미리 작정하시고, 계획하시며 한 번 정하신 일은 절대로 변치 아니하시고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 인간의 눈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우연히 일어나는 것같이 보이는 일에도 그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 섭리를 인간이 이해하고 깨닫고 순종하기에 결코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고 경배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수고하며 일하든지, 땀을 흘리든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내 것을 다 주어도 행복했고 남에게 다 빼앗겨도 행복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했고 가진 것이 적어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인생의 사전에는 불행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행복의 권리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다시는 인생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만 짙게 드리우고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죽도록 고생해도 남은 것은 빈손이었습니다. 이제 행복은 영원한 향수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의 길을 열어주심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다시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행복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장래에도 있었습니다.
*전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예전에 있었던 행복! 인생이 버렸고, 잊어버렸고, 다시는 찾지 못할 이 행복을 하나님은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마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놓으신 이 행복을 오늘 우리 모두가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주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식물도 주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식물을 맛있게 먹고 마시고 창조 세계에서 신나게 쉴 수 있는 것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즐거움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일들이 행복해야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행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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