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즈베키스탄 알기
1.국명 :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2.수도 : 타쉬켄트
3.종교 : 이슬람교,그리스 정교
4.언어 : 우즈벡어(공식어), 러시아어
5.기후 : 대륙성기후(1월평균-3~-8℃ / 7월평균 25~29℃)
우즈베키스탄의 기후는 전형적인 사막형 대륙성 기후로서, 평균 기온이 7월에는 섭씨 영상 30° 1월에는 영하 6°정도이다.
습도가 매우 낮으며, 일교차가 심하여 한 여름에도 밤에는 서늘하다. 비는 겨울에 소량 내릴 뿐이므로
우리나라에 비하면 연중 건조 한편이다. 4계절은 뚜렷하나 겨울이 아주 짧으며, 봄은 긴 편이고, 여름이 뜨겁고,
가을은 온화하다.
6.시차 : 타쉬켄트 - 서울간 4시간 차이
7.자연 :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라고 불리우는 지역의 중심부에 동서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나라이다.
우즈베키스탄을 중앙아시아의 심장 또는 중앙으로 부르는 이유는 한 가운데에 있을 뿐 아니라 다른 5개국과
모두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구도 최다이며 문화적 전통 역시 가장 찬란하기 떄문이다.
국토는 남북간의 거리가 925km, 동서간은 1,400km이며 면적은 약 447,400km제곱이다.
이 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약 두 배이다. 서유럽의 영국과 베네룩스삼국을 합한 면적보다도 넓다.
위도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약간 높아서, 만주 일대와 같은 북위 40도선에 위치한다.
크게 보아서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심부 투란 분지를 차지한 나라다. 따라서 국토의 5분의 4가 평원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스탄(stan)은 ‘평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강우량의 부족으로 이 평원의 중북부는 구 소련에서 두 번째로 큰 키질쿰 사막으로 되어 있다.
동쪽 국경 지대 5분의 1은 산악 지방으로서 동북부 쪽은 텐샨 산맥의 산자락에, 서남부 쪽은 파미르 고원에 부분적으로 걸쳐 있다.
이 산악 고지대는 높은 곳은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들인데, 이것이 바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신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곳 고지대 산악의 눈 녹은 물과 지하수는 남쪽과 북쪽 국경을 따라서 연간 강수량이 거의 제로인 드넓은 평원을 지나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 아랄해로 들어간다. 이것이 유명한 아무다르야와 시르다르야 두 강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이 두 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하여 옛부터 관개사업이 전개되었고, 구소련 시절 집중적으로 수리 시설과 관개가 이루어진 덕택에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은 비가 없는 사막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 되었다.
낙타조차도 먹을 것을 발견할 수 없던 열사의 사막이 이제는 농장과 과수원과 오아시스로 변한 것이다.
이런 끊임없는 관개사업으로 인해 최근 수 년 전부터는 이 두 강이 하류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려, 아랄 해가 잦아들 지경이다.
그러나 인공에 의한 이런오아시스 지대말고, 우즈베키스탄에는 약 50만 헥타르의 잘 보존된 아름다운 숲과 국립공원지대가 있으며
40만 종의 동식물 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우즈벡에는 사이가(Saiga)영양, 사막 도마뱀, 눈표범, 산양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그곳에서도 자라고 있는 포플러, 아카시아, 뽕나무, 벚나무, 그리고 무궁화꽃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밖에 자귀나무, 버드나무 등 우리나라와 식물상도 비슷하다. 파, 마늘, 무, 당근 등 야채도 거의 같다.
우즈베키스탄의 기후는 전형적인 사막형 대륙성 기후로서, 평균 기온이 7월에는 섭씨 영상 30~36도, 1월에는 영하 6도 정도이다. 습도가 매우 낮으며, 일교차가 심하여 한 여름에도 밤에는 서늘하다. 그 대신 연간 일조 시간이 2,700~3,130시간으로 맑은 날이 300일 이상 계속된다. 우리나라 서울의 일조 시간이 2,107시간인데 비하면, 엄청난 일사량인 것이다. 비는 겨울에 소량 내릴 뿐이므로 우리나라에 비하면 연중 건조한 편이다.
4계절이 뚜렷하지만, 겨울이 아주 짧으며, 봄은 긴 편이고, 여름이 뜨겁고, 가을은 온화한것이 우리나라와의 차이이다.
우즈베키스탄 산간 지방은 한 여름에도 봄날씨를 보이므로 에메랄드 빛 초원이 녹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8.언어 : 구 소련 시절에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였다. 그래서 인구의 82%가 우즈벡어를 사용하고 52%가 러시아어 를 안다. 그러나 1991년 독립 이후, 우즈벡어만 공용어로 인정된다. 하지만, 주요 호텔이나 관공서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할 때는 주로 러시아어를 쓴다.영어는 차츰 많이 쓰이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은 간단한 영어 단어조차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거의 소통되지 않는다.
9. 종교 : 우즈벡은 특정 종교를 국교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 인구중 약 90%가 이슬람 교도이며 그중 약 80% 수니파, 20%는 시아파 교도이다. 온건한 수니파가 압도적이다보니 터어키의 세속적 신앙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즈벡 정부는 과격한 시아파 원리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침략을 받기 이전 고대에는 조로아스터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대의 샤머니즘 신앙이 오늘날의 문화, 관습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즈벡인들은 아무다르야 강 삼각주에서 조상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러한 조상 숭배는 아직도 쉽게 볼 수 있는 민간 신앙이다.
10.생활 풍습 : 우즈베키스탄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관광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우즈벡인의 민족성에 광한 스스로의 평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즈벡인의 가장 특징적인 전통은 친절이다. 우즈벡인은 손님을 신이 보낸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우즈벡인도 손님은 극진히 대접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가를 바라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행자인 손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 뿐이며, 손님의 의례적인 선물을 선사하면 더없이 기뻐한다.
이처럼 손님 접대를 극진히 하기 때문에, 우즈벡인의 집에 가서 뭔가를 보고 좋다고 자꾸 칭찬하면, 집주인은 그것을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정도이다. 그 다음 우즈벡인의 특징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자신들간에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서로 교우하기를 즐긴다. 바자나 차이하나(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즈벡인의 주요 레저 가운데 하나이다. 우즈벡인은 휴일이 되면 춤과 노래를 즐기며, 경마와 민속씨름은 쿠라쉬를 구경한다. 또한 그들의 민속음식인 플로브(기름볶음밥), 샤슬리크(양고기 꼬치구이)를 만들어 먹는다. 우즈벡인들의 식문화와 다도 풍습에 관해서는 제 2장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4시간 늦은 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근무 시간은 원칙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그리고 토, 일요일은 휴무이다. 그 밖의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신정(1월 1일), 여성의 날(3월 8일), 나브루스(이슬람 신정, 3월 21일), 승전기념일(5월 9일), 독립 기념일(9월 1일), 라마단(이슬람 연휴, 10월중), 스승의 날(10월 1일), 제헌절(12월 8일).
11.역사 : 페르가나 주와 부하라 주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영토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는 과거 구석기시대 때부터 인류가 이곳에 정착해 살았음을 보여준다. 기원 전 3천년 경부터 이 지역 인류는 청동기를 사용하였고, 기원 전 2천년대에는 농경문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농경과 목축이 정착되면서, 이곳에는 호레즘-소그디아나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 이 지역에 원시적인 개념의 국가가 형성된 것은 기원 전 3~4세기경 인데 이때 이미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을 받았다. 5~6세기 경에는 봉건국가 형태의 틀을 갖추었지만, 동서 무역로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8세기 무렵엔 아랍인들이, 13세기 경에는 몽골의 칭기스칸이 이 지역을 정복하여 통치하였다. 이처럼 정신없이 외부인들의 침략에 휘둘리다보니, 이 지역에는 뚜렷한 정치적 정통성도 민족적 주체성도 확립될 수가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우즈벡의 민족적, 정치적 정통성이 수립된 것은 15세기 말 이후 이 일대에 칭기스칸의 후손들이 각지에 한국(汗國, kanahate)을 건설, 통치하면서 부터였다.
몽골의 후예이자 투르크계인 이들 한국의 지배자들은 자기들을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불렀다.
‘우즈(uz)'란 ’자기 자신, 진짜, 핵, 중심‘이란 뜻이고, ’벡(bek)'은 ‘백부장’이라는 뜻이다. 즉, 우즈벡은 ‘진짜 백부장, 심복, 신하들’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즈벡이라는 민족, 정치 공동체가 확실하게 결성되었고, 우즈벡인들은 인근의 사그트인, 카자크인, 위그르인 등을 흡수, 통합하여 우즈벡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우즈벡은 다시 북쪽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 확장 정책에 따른 침략을 받아, 부하라 한국(1868) 키바 한국(1873) 등 차례로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는 민족자결 원칙에 의해 우즈벡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았으나, 중앙아시아 일대가 반 혁명세력의 근거지가 되자, 칸의 세력을 붕괴시킨 후 인민정권을 세웠고, 1922년에는 소연방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우즈베키스탄 외에도, 같은 투르크계인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과 이란계인 타지크스탄 등이 소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스탈린 치하인 1930년대에는 사할린의 우리 동포들이 이 일대 나라들로 강제 이주 되기도 하였다.
1990년 소연방이 와해되면서, 이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모두 소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은 구 소연방에 해당하는 독립국가연합의 협조적인 일원에도 지금도 러시아와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후, 세계 40여 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고, 1992년에는 UN에 가입했다.
12.경제: 한 마디로 우즈베키스탄은 경제적 잠재력이 엄청난 나라이다. 풍부한 천연가스, 구 소련 제1위의 면화생산량, 제4위의 금생산량, 그밖에 아연, 구리, 납, 텅스텐 등 풍부한 비철금속 지하자원,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 등이 그것이다.
국민총생산액은 1991년에 615억 루블, 1992년에 4,472억 루블, 1993년에는 4조 4,280억 루블, 1994년에는 14조 3,240억 루블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모둔 구 소연방 나라들이 그렇듯이, 소연방 와해 이후 과거 연방 구성국과의 교역에 차질이 생겨 경제적 타격을 받은 탓에 실질 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최근 들어서, 소 연방의 와해로 인한 충격이 차츰 사라지면서, 우즈베키스탄의 경제는 차츰 회복되어 가고 있다.
구 소연방 시절부터, 일부 중공업이 발달해왔고, 독립 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외국과의 합작에 의한 공업화를 서두르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차산업보다는 1차산업, 그 중에도 농업이 전 산업의 대표이다.
농작물은 전체 생산량의 43%, 전체 고용의 29%를 차지한다. 특히 면화는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다. 면화와 함께 비단, 생가죽도 주요 수출품이다. 면화 이외에도 우수한 품질로 인정되고 있는 밀, 쌀, 보리, 각종 과일, 포도주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은 연간 5백만 톤씩 수출하는 면화 생산에 치중하다보니 농업국이면서도 곡물 소비량의 3분의 1, 고기는 30%, 우유는 4분의 1, 토마토는 소비량의 절반 가량을 수입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는 전체 국민총생산의 33%를 차지하며, 전체 고용의 18%를 점한다. 주요 제조업은 농기계 및 직조기계 제조업, 비행기 조립, 천연 가스, 금제련 등이고, 일반 소비재나 생필품 제조업은 뒤떨어져 있다. 최근에는 페르가나 지방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채굴중이지만 석유는 여전히 수입 비중이 높다.
1998년도 통계에 따르면 무역의 60%는 CIS국가와 나머지 40%는 서방국가들과 교역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우즈베키스탄은 1994년에 가트 준회원국이 됐다. 1993년 11월 우즈벡은 자국 화폐를 루블(Rubles) 대신 솜쿠폰(Somcoupon)으로 대치했다가 1995년에는 숨(Sum)으로 다시 바꿨다. 대 미화 환율은 2006년 8월 현재 1달러에 1,200숨이다.달러가 부족한 관계로 우즈베키스탄은 외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에는 ‘자본주의적’ 기업이 2천여 개에 달하며, 이 중 1,450여 개 기업이 외국과의 합작기업이다. 이들 기업 중에서도 110개는 100% 외국 투자 기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도 대우자동차, 삼성물산, 갑을 기업 등 많이 진출해 있다.
13.우리나라와의 관계: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20일 우즈베키스탄을 공식 승인하였고, 이듬해인 1992년 1월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홍순영 주러대사가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겸임하였다. 그 후 1993년 12월 상주 공관이 설치되었고, 1994년 4월 초대 상주 대사로 서건이 대사가 부임하였다. 한편 1992년, 1995년, 1999년 세차례나 우즈베키스탄의 까리모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었고, 1994년 6월에는 우리나라 김영삼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이처럼 국가 원수 간의 방문이 이루어지면서 양국 간의 우호친선과 경제협력관계는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은 무역협정, 투자보장 협정, 과학기술 협력 협정, 사증발급 양해 각서 등을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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