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마음에 건 삶을 살게 하소서
-副題: 나의 극과 극의 신앙역정-
忍冬 양남하 /시인·수필가·논설위원
“시몬”이라는 세례명을 받은 과정을 생각하며 가끔 피식 웃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필자는 한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경멸에 가까운 언행을 일삼았던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우연하게도 영국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버트란드 러셀이 지은 <나는 왜 기독교도가 아닌가?>라는 책을 정독한 후였기 때문에, 특히 “예수를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이분법 선교를 하는 학생들이나 후배들을 밥맛없을 때 입맛을 돋우어주는 반찬으로 쉽게 요리 하곤 했었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성적도 크게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언행의 편차가 상대적으로 컸었기 때문에, 공격하기도 좋고 논쟁에서 이기기도 쉬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과 치열한 접촉과정에서 성경의 몇 가지 주요 내용과 맹점들을 역으로 알게 된 촌뜨기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지 어영부영 30년이나 된다. 그런 소생이 11월 중순경(2009년)에는 ㅇㅇㅇ천주교회 홍 제노베파 수녀님으로부터 내년부터 예비신자를 양성하는 교리강사로 봉사해 달라는 청탁까지 받게 될 줄이야!
가슴이 쿵덕거리고 점점 열이 뜨거워오는 심리를 간파하셨는지, 아니면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할까 염려되어서 그런지, 수녀님께서는 신앙역정(信仰歷程)을 써 달라신다. 하기야 한 해에 서너 번 정도 인근 사찰에 가서 보시(布施)하고 스님한테서 식솔 수만큼 부적(符籍)을 받아오는 것이 전부이면서도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성황당(城隍堂)에 치성을 드리고, 이사하는 날자와 모든 관혼상제는 물론 사주팔자까지도 용하다고 입소문난 개름쟁이에게 맡기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누가 아프면 어느 조상영혼이 아는 체했는지를 심방에게 달려가서 점을 치고 푸닥거리를 하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복잡한 관습에서 오직 자유로우신 분은, 전 친인척 중에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사시는 이모님 한 분 뿐이셨다. 그렇지만, 이 분도 수많은 천주교기도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달랑 “묵주기도” 뿐이었다. <백색종이, 자색종이, 홍색종이, 녹색종이> 중에서 하나를 꺼내 웃기도하고 울기도 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였다. 예를 들면, 성탄절이나 축일을 전후해서는 “백색종이”를 꺼내 기쁜 얼굴로 묵주기도를 하고, 대림 사순시기 때는 “자색종이”를 꺼내고 눈물지으며 기도를 하는 등의 반복적인 행동이다.
이모님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학하고서 부터다. 넓은 안채를 가슴으로 난 자식에게 넘겨주고는 부엌 딸린 방 한 칸의 바깥채에서 혼자 지내시는 이모님에게 숟가락 하나언지는 더부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이모님의 삶 자체는 퍽이나 단순하셨다. 부엌과 경계를 이루는 벽에는 십자고상하나 걸려있는 것이 장식이 전부였다. 이부자리는 붙박이장 형태로 만든 곳에 두었으므로 방 안에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라고는 나의 엉성한 책걸상과 책꽂이가 전부이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갑자기 심한 통증을 수반한 높은 열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거부하는 병으로 며칠 앓게 되었다. 어머님은 아들의 치유(治癒)를 젖먹이 때부터 도맡아오던 무당을 대동하고 오셨다. 그 무당은 쌀 낱알이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잘 다져서 담은 종지를 보자기로 싸서 쌀이 밑으로 향하도록 잡는다. 통상방식대로 조상영혼에 대해서 주술을 걸며 쌀 한 구석이 비었는지를 왼쪽 손가락으로 간간이 체크를 한다. 만약에 조상신이 들렸으면 종지 한쪽 구석이 움푹 비게 된다. 무당은 갑자기 이 집에서는 저 벽에 걸린 십자고상 때문에 안 걸린다고 선언을 한다. 그의 요구대로 고상(苦像)이 없는 이웃집으로 옮겨 뜻을 이룬 일이 있다. 즉, 자식 없이 돌아가신 큰 아버지 영혼이 몸속에 들어와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분에 대해 간이 굿을 했더니 병이 낫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영혼은 있다는 믿음과 동시에 십자고상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전히 “천국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한 성경을 진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등의 큰소리를 간간이 즐기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님을 따라서 어느 신자분의 입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신부님의 성수를 뿌리며 예식을 진행하는 동안 망자의 얼굴이 퍽이나 편안한 모습이다. 이런 체험들이 가톨릭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 직접동기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종교라고 불리고 있던 범주의 것들의 공통적인 기본사상을 모아봤더니, “경천애인(敬天愛人)”사상으로 압축된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도덕의 근본이요, 종교의 핵심이요, 철학의 결론이었다. 이는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나 공자의 '인(仁)', 석가모니의 '자비(慈悲), 그리고 예수의 '사랑'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내세(來世)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은 <불교와 기독교> 사상뿐이다. 이 두 사상은 지식보다는 실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즉, 철학은 이성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관찰한 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이 정연하고 일관된 지식체계로 정리해 내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자비와 사랑의 말씀은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만큼까지는 논리 정연하다가도 어느 부분에서는 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역설적인 이야기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철학에서는 철저한 이성만으로 지식을 추구하고 정리하며 이성이 닿을 수 있는 곳 너머는 인정치 않는 반면에, 종교는 처음부터 그 너머까지를 포함하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듯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지 않는 철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비판한 버트런드 러셀의 잣대를 보검(寶劍)처럼 휘둘렀던 철부지 시절 추억이 이마주름살을 살며시 편다. 다시는 비상식적인 성서문구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는데 에너지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왜냐하면, 예수님 사상의 엑기스인 “사랑”과 연관이 적거나 극히 비논리적인 것들은 어차피 엑기스를 짜고 남은 버려야할 찌꺼기에 해당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 속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후대의 사람들이 만든 교리에 의해 제한되거나 성령의 숨구멍을 막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모님의 투박하고 순수하게 기도하시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7)”라는 말씀도 삶의 순교자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순교자라고 하면 꼭 칼날이나 작두에 목이 잘려 피를 흘린 분들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생살이 자체도 어쩜 순교생활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의 뜻을 묵상하면서 헤쳐 나갈 때 순교의 삶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삶의 순교자들도 훗날 하느님 대전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묵시 7, 17).
주님, 십자가를 공중에 걸어 놓을게 아니라 마음에 건 삶을 살도록 도와주소서.
【물질적인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가 소중함을 느끼게 하시고,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소서. 없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저희에게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여유와 은총을 주소서. 교만으로부터 오는 자존심과 허영심을 모두 버리고, 겸손함과 정직함으로 살아가도록 하소서.
작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시고,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겸허함을 주소서. 저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기쁨을 느끼도록 하소서.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사랑 안에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소서.
삶이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소서.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였을 때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용서하고 격려하며, 포용할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을 갖도록 하소서. 노력 없이 결과를 기대하지 않도록 하시고, 성실과 정직으로 모든 일에 임하도록 하소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 가지의 일을 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진정한 하나의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하소서. 미미한 나의 능력과 지혜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해 주신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아멘】
-2009. 11. 23. ㅇㅇ연구실에서-
-월간 모던포엠, 201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