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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시판 ▒ 스크랩 일본기행 6- [大阪 2] 오사카성-大阪城-
一雲 추천 0 조회 111 23.09.06 18:4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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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9.07 13:49

    첫댓글 一雲 님: ' 일본기행 6- [大阪 2] 오사카성-大阪城- ' ...

    大阪城 을 찾은 기행문을 보면서, 우선 느끼는 바는
    많은 이들이 大阪城을 둘러봤겠지만, 一雲 님과는
    달리 외관만 본, 그야말로 관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생각하게 됩니다. 豊臣秀吉 때의 성의 규모보다 德川家康
    때의 성이 더 크게 개조 된 사실을 포함해서 우리의
    윤봉길 의사가 이 성안의 감옥에 갇혔더 사시를 비롯해서
    한 때는 일본 군부의 중심이 된 사실 등,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면서 탄방하는 자세는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겠
    습니다. 물론 大阪 단독 투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현지
    교포(대전출신)의 협조도 도음이야 되었겠지만, 남 다른
    목적 의식이 값지다 하겠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눈 뜨면서
    기행문,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 작성자 23.09.07 18:51

    안녕하세요 어르신!

    언제나 어김없는 과찬의
    댓글 감사합니다 .
    현지에서 구경할 때는
    이런 큰 역사적 사실은
    잘 몰랐습니다. 이번 자료
    편집 중 올렸던 영상을 보고서
    소생도 놀랐습니다.

    특히 윤봉길 의사와 같은 시기
    오사카 성의 형무소 옥중에서
    병사한 일본인 반전 작가
    쓰루 아키라(鶴 彬)의 추모비가 있어 형무소 자리를 알게되었다는 내용 등
    사전공부 때 이 영상을 찾았다면
    하고,,,,,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소생이 아는 모든 지인들,
    아이들에게도 영상을 뿌렸습니다.
    오사카성 방문시 참고 하라고요.

    늦더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몸 살피시고 내내 강녕하십시오.


  • 23.09.08 17:15

    一雲님: 기다리던 “日本紀行 [大阪 2] -오사카 城,” 자미 있게 읽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입니다만, 풍부한 사진과 참고자료를 동원한, 해박한 해설 솜씨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번 호의 구 육근형무소 유적에 관한 기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생도 몇 번이나 그 앞을 지니면서도 거저 허물어진 옛날 형무소 정도로만 알고 지나쳤는데, 그곳이 윤봉길의사가 갇혀 있던 곳이었다니...놀랐습니다. 당시, 만주로, 중국으로 파죽지세로 확장해 가는 제국주의 일본의 힘 앞에서는 거저 무력한”螳螂之斧“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감히 목숨을 걸고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이 벽돌담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사형을 기다렸을까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그로부터 100여년 지난 지금,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이 독립을 성취하고, 당시 원수였던 일본국에도 밑지지 않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배트남 소녀가 한복을 일본에서 자랑스럽게 입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니..., 지하에서도 윤의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해 봅니다..

  • 23.09.08 17:16

    一雲님@:오사카성은 규모에 있어서나 외양에 있어서나 일본 제일의 고성으로 공인되어 있지만, 그 건물..天守閣.. 자체는 여러번의 천재나 전란을 겪고 오면서 창건시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 철근 시멘트 구조물로 되어버려, 고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거대한 규모와 수려한 외양으로 보는 이 들을 감탄케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 거대한 석재들을 구사한 섬세한 축성기술은 가히 세계 일류를 자랑할 수가 있다 하겠습니다.
    천민중의 천민으로 태어난 秀吉이가 그의 대망인 일본 통일을 이룩하고 종국에는 조선까지 침략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습니다만, 그도 눈을 감을 때는 “浪速のことは夢のまた夢” 라는 辭世句를 남기고 아무것도 갖고 가지 못했답니다...그는, 대부분의 영웅,호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야망으로 인해 희생된 국내외의 수많은 중생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책도 없었답니다.
    좋은 기행문, 자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 호가 기다려집니다.

  • 작성자 23.09.08 18:30

    어르신 반갑습니다.
    3월에 은인 이토오님
    산소 참배가 동기되어
    예까지 온 것은 어르신들
    의 댓글 격려가 있어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오사카성은 지금도 안타깝고
    아쉽기 그지없는 마음입니다.
    허나 뒤늦게 나마 이 귀한 영상을
    알게 되어 윤봉길 의사님을
    다시 회상하게 된 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확고한 민족의식을 지키려는
    어르신들의 희생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있다고 믿기에....

    늦더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오 .

  • 23.09.12 11:31

    一雲 님
    기대하던 大阪 2를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제선 님과 일천 님의 댓글도 읽었습니다. 오사카성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이렇게 큰 것을 미쳐 몰랐습니다. 특히 윤봉길 의사가 수감되었던 곳이 성안에 있는 군 위수 형무소였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그럼에도 오사카성에 갈 때마다 豊臣秀吉, 淀君, 秀頼 일가의 흥망성쇠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공원으로 인식하고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다음에는 꼭 찾겠습니다.
    한가지, 天守台石垣의 어긋난 흔적은 8월14일의 대 폭격 때문인데 그 폭격을 소생이 직접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상세한 설명과 많은 영상을 인용하시고 기술하신 정성에 경의를 표해 마지 않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작성자 23.09.12 14:18

    어르신!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성 폭격 시 그곳에 계셔
    직접 목격하셨다고요.!
    참 용케 건재하셨습니다.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일어의 구사가 정확하신 걸
    이 댓글에서 느꼈습니다.
    소생이 요도의 호칭에 좀
    머뭇거렸는데요.

    淀殿는 아무리 굳혀진 호칭이라도
    쓰기엔 거부감이 있었고, 기냥
    요도淀나 차차라고 하기엔 문어로선
    그렇고 ,,,,,했는데

    淀君! 적확하네요!

    이제 씨잘 데 없는 사적 내용의
    기행문은 다음으로 끝을 맺으려구요.

    늦게 나마 좋으신 댓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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