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명절(雨中名節)!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위도(蝟島)!에서 처음 만난, 나와 전 선생님은 공연히 비오는 날이면
비가 온다는 핑계로 가끔씩 만나곤 한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날이 개이면 농사일을 돌봐야 했고,
비가 내리면 우선, 들에 나가 힘든 농사일을 거들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어른들도 비가 오는 날은 한가하게 쉬면서 막걸리 잔이라도 기우리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어른이 된 지금도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것을 보게되면
그저 아무 까닭 없이 마음이 편안해 지곤 한다.
처음, 섬 위도로 발령 받아 가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한 바,
나로서는 '위도'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섬을 들어 갈 때는 섬으로 간다고 울고 들어가고,
섬을 떠나 올 때는 뱃전까지 배웅 나온 섬 아이들과 또 울며 헤어졌다.
그래서인지 다시 가보고 싶은 곳, 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섬 위도를 꼽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떠나와 마음 한 곳은 늘 어떤 아픔 같은 응어리가 있고,
그곳의 소식을 들으면 그것이 마치 고향 이야기인 냥,
내 집안 일이라도 되는 듯 마음이 쓰이곤 하는 것이다.
내가 떠나 온 이후 '카 페리호'라는 여객선 침몰 사고가 있었다.
옛, 곰소였던 선착장이 퇴적으로 메꿔지면서 차츰 물길이 낮아져,
배가 들어 올수 없게 되자, 변산반도 끝에 있는 '격포'항으로 옮겨 가게 되었고,
격포에서 출항, 위도를 왕래하던 여객선 참사였다.
당시, 바다낚시 철이어서 그곳 위도 주민들은 물론,
낚시를 하러 가던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고 한다.
나중에야 들어 알게 된 일이지만 가슴 아프게도,
내가 아끼던 제자의 부친(父親)과 맏형이 그 사고 때,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우리가 항상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하는 일이 될 터이다.
더구나 기피(忌避)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핵 폐기장'을
위도에 유치한다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나로서도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워하는 바는 아니었다 해도,
가만히 생각해보기를 일자리 창출, 재정적 투자 지원을 가져올 것으로
위도와 그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닐까 여겨졌다.
본래 섬이라는 것이 평평한 곳은 물에 잠기고, 바다 위로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위도는 그 대표적인 돌섬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육지와 사뭇 떨어져 있고, 비교적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핵 폐기장'이라는 시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기로 위험한 기피 시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면에서 바로 앞 영광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미루어 생각하건데
섬 위에서는 예년처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사람들 살기 좋게, 정말 쾌적하게,
새로운 위락시설 등을 갖추고, 남들이 기피하고 염려할 때,
나는 일부러 내가 아끼는 섬 위도에 찾아가,
할 수만 있다면 전망 좋은 곳에 예쁘게 집을 짓고,
공기 맑고, 인심 좋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위도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근무하던 위도초등학교가 자리한
'치도리'는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약 5백여 미터(?) 안팍에 아름다운 무인도(無人島), '딴치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그 섬은 썰물일 때는 그저 맨발로 걸어 갈수 있게 길이 나고,
들물일 때는 바다 건너 떨어진 섬이 되는 것이다.
그곳의 경관은 마치 7, 8월 카렌다에서 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여름 바다 경치였다.
어쨌거나 결국 '핵 폐기장' 유치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 때 당시 부안의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동원되어 학교도 가지 않고,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서울 청와대까지 올라와 울고 눈물 흘리며,
핵폐기장 반대 시위를 할 정도로 반대 여론이 거세었다.
아마 그곳 읍내에서 나처럼 눈치 없이 '핵폐기장 유치 찬성' 운운했다가는
몰매 맞지 않았을까?
당시 지방 행정관인 부안 군수(본인의 고향이 위도인 것으로 사료됨)는
'핵 폐기장 건설'이 그 지역의 발전과 섬 위도를 위하는 일이라는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핵폐기장 건설에 참여, 유치를 시도했다고 본다.
그 분은 변산 반도에 위치한 사찰(寺刹) '내소사(來蘇寺)' 라는 절에까지 방문,
아마 지역 주민 대표, 내소사의 주지 스님이 반대를 했는지,
핵폐기장 건설의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반대 입장의 의견도 들으며, 서로의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의사 결정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갔던, 그래도 그 지역의 최고 행정관,
지역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소신을 갖고 열심히 일 해보려는,
거기다 자기들 손으로 직접 뽑은 군수님을, 자기들 의사와 반해
'핵 폐기장' 유치를 추진한다하여 그 자리에서 폭행,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듣기로는 갈비대도 부러져
수 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했다고 들었다.
나로서는 그 결과의 호(好), 불호(不好),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
그 모든 것을 수용한다고 해도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용인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 공간을 막론하고 소위 민주주의를 표방하고서
물리적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댓글'을 포함, 언어적 폭력까지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불상사는 소위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자기들의 의견 개진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으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역행이며 법적인 책임까지 엄격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