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29보> - 참으로 편리한(?) 상하이의 주소체계
여기는 우리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쩡리루(政立路) 000호, 인터넷신청대리점 앞이다.
중국기준의 ADSL이 된다는 인터넷을 신청하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자마자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주소를 들이밀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사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목적지는 파출소였다.
중국에서 살려면 주거지 관할 파출소에 가서 거주신청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상하이에 도착한 지 삼사 일이 지나기가 바쁘게 파출소에 신고하러 가는 길이었다.
상하이차이징대학과 붙어 있는 우찬루(武川路)를 타고는 우똥루(武东路), 쩡민루(政民路), 궈띵루(国定路)를 지나 다시 오른쪽으로 꺾더니, 왕복 2차선인 쩡쑤루(政肃路)로 접어들었다.
차는 서행을 하면서 오른쪽 왼쪽을 살피더니 또 다시 좌회전을 했다.
그리고는 궈췐루(国权路) 양 옆으로 적혀 있는 주소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천천히 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나보고 내리라고 했다.
“다 왔어요?”
“아니, 지나왔어요. 조금 전 네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 되는데 좌회전하는 바람에 그만···.”
“잉? 그럼, 여기에 내려놓으면 어떻게 해요? 난 길도 모르는데 다시 돌아가야지요?”
“아, 여기는 왕복 2차선이라 차를 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조금만 걸으면 되니까 걷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CBB0D4CF2527D18)
(이 파출소 찾아가야 하는데 얼마나 멀리 있는지 원... 택시 기사가 이걸 못 찾다니...)
나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 따지지도 못 하고 내려야만 했다.
낯선 지역이라 겁이 났다.
훤한 대낮이었지만 인적이 거의 없고 어두침침한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아래가 무서웠다.
운전기사가 알려준 대로 백여 미터 떨어진 네거리까지 걸어서 되돌아가야만 했다.
마침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아저씨 한 명이 지키고 있었다.
다짜고짜 휴대폰에 들어있는 주소를 보여주며 물었다.
“여기 이 주소에 나와 있는 파출소 어디 있어요?”
“아, 이 파출소는 한참이나 가야 되는데···. 한 삼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네? 삼십 분이나 가야 한다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가게 주인이 가리킨 방향은 택시 기사가 말한 방향과는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택시를 내린 방향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입을 불룩하게 내밀고는 인도를 걸으며 도로 옆에 붙어 있는 주소를 읽어 봤다.
궈췐루(国权路) 00호.
그런데 이 주소와 내가 들고 있는 주소가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새 <도로명 주소체계>는 주소만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58번이라고 하면 이 건물은 반포대로가 시작한 지점에서 580m가량 떨어진 지점의 도로 우측에 있다.
서초구 서초대로 30길 35번이라고 하면 서초대로에서 오른쪽으로 15번째로 분기된 작은 길을 찾아 그 길에서 350m 정도 들어가면 길 왼편에 있다.
그리고 서초구 샘마루길 34-14번 건물은 서초구 샘마루길 시작지점으로부터 340m 떨어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분기된 작은 길로 140m 들어가면 길 우측에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 사실 난 이게 더 복잡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4FDE0D4CF2525E0D)
(중국 대도시의 주소는 이런 식이다. 00시 00구 00로 153. 아파트 이름 같은 것 불필요.)
하지만 중국 상하이의 주소체계가 아무리 우리가 새롭게 추구하고 있는 도로명 주소체계를 이미 적용하고 있다고 한들, 우리나라의 새 주소체계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내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가게 주인은 택시 기사가 말한 것과 다른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택시 기사도 틀렸는데 가게 주인이라고 알고 있으란 법이 없으니까.
또한 무엇보다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내 중국어 듣기 실력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까 택시 기사가 말한 것도 자세히 못 알아들은 것 같고, 방금 그 가게 주인이 말한 것도 사실상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마음이 다급해지니까 갑자기 일본 사람이 생각났다.
20여 년 전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였다.
왕왕 길을 몰라 물으면 그때마다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내 소매를 꼭 붙잡고는 목적지를 찾을 때까지 끝까지 안내를 해 줬으니까.
사실 나 같은 외국 사람들에게 지금 중국 사람들도 거의 그런 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말을 못 알아들고 있으니 초조함만이 더해가고 있었다.
나는 가게 주인이 알려 준 방향대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이 플라타너스 길은 왜 그리도 긴지 원망스러웠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도로변에서 청소하는 남자 미화원을 잡고 다시 물었다.
“궈췐루(国权路) 96호에 있는 파출소 아세요?”
“아, 그 파출소요? 이 도로를 따라 쭉 계속 걸어가면 됩니다. 몇 백 미터 앞에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도 제대로 말을 알아듣기는 했나?
몇 백 미터라니?
그렇게 멀리 있을 리는 없는데···.
분명 택시 기사는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지금은 도리어 그 반대방향으로 벌써 몇 백 미터를 걸어왔는데, 또 다시 몇 백 미터를 더 걸어가라니···.
뭐가 잘 못 되어도 한참 잘 못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 이름이나 지하철역 이름도 대부분 도로명으로 되어 있다. 아주 쉽다.)
하지만 또 걸었다.
작은 블록 몇 개를 더 지났을까.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대로가 가까워지는 모양이었다.
대로만 나타나면 무서운 것은 없다.
그리고 외로울 것도 없다.
지금까지 거쳐 온 도로는 주택가라서 그런지 너무나 조용하고 음침했다.
금방이라도 누가 나타나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았다.
내겐 아직 낯이 선 중국 상하이의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누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기라도 하겠는가.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밝은 빛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네거리가 가까워지자 지하철 10호선 궈췐루(国权路)역 안내 표지판도 나타났다.
근처에서 리어카로 과일 장사하는 아저씨께 접근하여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주소지 파출소 어디 있어요?”
한참이나 내 휴대폰에 적힌 주소를 응시하더니 손짓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위치를 말해 주었다.
“저쪽으로 몇 백 미터 정도 가면 있어요.”
“그렇게 멀리나요?”
꺄악!
또 몇 백 미터란다.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한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근처에 정말로 파출소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물을 때마다 파출소 방향과 위치를 일관되게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택시 기사가 더욱 미워졌다.
죽도록 미워졌다.
당장이라도 신고하여 붙잡아서는 한 방 패 주고 싶었다.
이렇게 먼 곳에 있는 파출소를 두고 엉뚱한 곳에다 내려놓다니···.
다리는 아픈지 이미 오래다.
거기에다가 거리마다 적혀 있는 번지수를 일일이 비교해 가면서 오느라, 신경도 곤두서 있을 대로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멀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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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노선 안내도. 정류장 이름이 도로명으로 되어 있죠? 처음엔 도로명 외우는 데도 힘들어여.)
네거리 화단 분리대 위에다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다리의 피로부터 풀어 놓고 볼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계속 걸을까.
아니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이미 쌓일 대로 쌓였으니 택시를 다시 타고 갈까.
계속 걸으려니 그 몇 백 미터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고, 택시를 타려니 바로 옆일 가능성이 있어서 정말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중국의 이 주소 체계는 그야말로 OECD 선진국에서나 사용하고 있는 <도로명 기준>의 선진 주소체계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주소만 알면 찾아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니 현재 상하이의 모든 주소는 도로명 뒤에다 번호를 붙여 놓았다.
그것도 도로 한쪽은 짝수 번호가, 반대편은 홀수번호가 붙어 있다.
그리고 모든 장소나 위치들은 모두 이 주소 방식대로 안내되고 생활하고 있다.
참으로 일률적이고 질서정연해 보인다.
이처럼 정말로 편하고 찾기 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태우고 온 이 택시 기사가 이토록 찾기 쉽도록 되어 있는 도로명 기준 주소가 적혀 있는 파출소를 못 찾았다는 것이다.
주소 체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도 고생을 하고 있거늘···.
다시 네거리를 건너서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좀 쉬고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힘은 빠질 대로 다 빠져 있었다.
터벅터벅···.
등에는 식은땀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한 블록을 건너고 또 다시 반 블록을 걸었을까.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경찰 차량 몇 대가 경광등을 돌리며 도로변에 서 있었다.
제복 입은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나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그만 다리가 다 풀려 버렸다.
황급히 경찰서 민원실로 뛰어들어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여기는 바로 우리 집 근처인데···. 우리 집 바로 코앞에 파출소가 있었는 걸···. 이렇게 한참을 돌아서 오다니···. 나쁜 XX택시 기사···. 망할 놈의 도로명 주소···.”
2012년부터 새로 도입된다는 우리나라의 <도로명 기준 주소체계>.
수천수만 개나 되는 그 도로명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려나.
걱정이로고···.
2010년 11월 28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김지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 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 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 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 문자 주세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파출소 찾느나 멋진 욱 고생 많이 하셨구먼 .....
대구 흥사단에서 금슬(琴瑟) 좋기로 소문난 모범 부부 건강들 하시지요
오랜칸만이요 !
한국의 절기는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을 지나
강원도 지방에는 첫 눈이 왔다고 하니, 대구도 이제 겨울이 찾아
왔는가 싶소.
몸 건강, 마음 튼튼, 뜻 한바 목표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시고
금의환향(錦衣還鄕) 하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중국에서 비단 옷 한벌
맞추어 입고 입고 오시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터인데 .....
금의환향은 저희들 마음속에서만 하면 되는거지요?^*^ 대구 소식은 이모저모로 매일 듣고있습니다만, 단우님도 건강하신지요? 추워지는 날씨에 무리하시지 말고 건강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윤자씨 12월례회는 볼 수 있으면 좋겠네... 지욱씨도 건강하시고...
12월 월례회는 일정상 무리가 있겠구요... 1월 월례회는 아마도!!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