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74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73년말 12월초 마지막 시험보고
학교는 끝이었습니다.
11월쯤 직장이 정해졌지요.
학교냐? 회사냐?
당시 학교 월급은 23000뭔
회사는 첫월급 4만원 3개월후 5만원
3년위 언니가 학교가지 말라고 당부
첫월급 4만원짜리를 73년 말부터 다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월급 3,400프로 일년에 오르고
보나스도 700프로나 받았습니다.
참고로 외국인회사요.
수출이 엄청 잘 되었어요.
회사다니며
결혼도 했고
2년 남짓 다니고
미국으로 가게 되어서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남편따라 미국을 가야한다고 결정
그 좋은 직장 버리고 갔습니다.
210 S. Fuller Av. 102 Ca.90036 주소
우리가 타던 차는 Camaro 2 door.
자동차 넘버는 710 PDU
처음 rent 190불로 기억합니다.
방 2개 거실 부엌
8unit 아랫층 4 윗층4가구.
안쪽으로는 고급 주택
입구쪽에 저리 몇유닛트짜리 연립주택같은 것.
유태인 타운
백인촌으로 조금 괜찬은 동네입니다.
나의 고모가 근처 사셨는데
내가 간다니 구해준 집입니다.
지하실에 공동 세탁기 건조기가 있엇습니다.
그 때는 미국집에도 아주 큰집 아니면
각자 세탁기 건조기가 없었습니다.
멋있다고 2도어의 차인데
문짝이 커서 차대기가 불편합니다.
옆을 마니 띠어야 열립니다.
아님 커브에 걸립니다.
6기통이라 차가 잘 나갑니다.
고속도로에서 밟으면 아마 13,40 마일도 갔던듯
즉 200킬로요. 80마일이 속도제한
그 때는 속도단속기도 없던 시절
너무 과하게 밟으면 페이트롤이 따라오던 시절.
뒷좌석에 카씨터를 달고
애기를 꼭 거기에 태워야합니다.
울면 안아줄 주도 없습니다.
투 도어라 내가 내려서
의자를 접고 뒤의 애기를 봐주고
멋 찾다가요.
2도어는 연인 둘이나 타야지
애기 데리고는 안되겠는차였죠.
남편이 미리 사놓은 차
유태인 타운이라
일요일이면 전 식구가 시네각(교회)을 갑니다.
남자는 모두 머리에 어른이고 애고 손바닥만한
빵떡을 하나 머리에 얹습니다.
이것 처음 볼때 얼마나 웃기던지요.
배나온 뚱보가 머리에 빵떡.
창덕여고 빵떡모자보다 작은 것.
여자들은 모두 드레스.
처음
수퍼마켓 가서 놀란일
그 비싼 바나나가 즐비
그 비싼 오랜지가 즐비
분명 생강이 맞는데
한국에서본 생강을 돋보기를 쓰고 본 듯 크고
고기는 얼마나 싸고 좋은지...
애기를 낳고도 157센치 키에
49킬로 였습니다.
40여년후 키는 줄고 몸무게는 마니 늘었습니다.
210 Fuller에서 우리를 이뻐해주시던 유태인 할머니
저 아들이 지금 46살입니다.
오래된 사진 한장 찾았습니다.
첫댓글 와우~~
엘리트~~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엘리뜨 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캐 만났나도 궁굼하시겠지요.
때가 되면 하지요.
당시 집값도 엄청 뛰어오르고
임금오르고 처음으로 돈의 위력을 느꼈을 때였죠.
저당시
울 동창들 학교, 회사, 외국인 회사, 스튜와디스
뭐 이런 직업들을 갖었는데
외국인 회사가 월급으로는 최고였죠.
그때는
억세게 운이 좋거나, 선택받은 자만이 외국나들이 하던 시절이었죠.
남보다 이른 시기에
바다건너가 여러가지 값진 경험들도 하셨네요.
열심히 살아내신 결과라 생각합니다.
연재 내용이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긴 이리 일찍 외국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경험으로 나중에
세일즈에 큰 도움이 되었죠.
외국사람 영어하는 사람에
포비아가 덜 했으니까요.
단란한 가족사진.
모두 즐거워보여요.
가장 행복한 시절 이었나요?
때 묻지않은 행복한 시절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시로선
일반인들은 하기 힘들던 좋은 삶
미국..
비행기 자가용 풍족한 먹거리 윤택한 주변환경
그때도
지금도 시니 방장님은 서민이 아니야요 ㅋ
근데
사진속 얼굴이 지금 딱봐도 살아있네요 흠..
저시대
저정도면.. 이쁘다^^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젊은시절
5프로내의 멋진 삶 ㅎ
그쵸?
열심히 살았습니다.
행복했던 시절
사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록새록한 추억을 잘 소환 해 주셨네요
감사히 다녀갑니다
행복한 시간 되옵소서~~
벽난로가 좋습니다.
따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월등히 앞서
세상을 호령하며 사셨네요
멋진 삶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모3, 우리 4남매 7이서 컷기에
막내인 나는 언제나 심부름꾼
한번도 힘주고 산 느낌은 없습니다.
이런 가정교육으로 늘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답니다.
@시니
역시나
대가족에서의 배려하는 가정교육~
그래서
훌륭한 시니님이 탄생하신 듯 합니다. ㅋ
즐겁게 미국생활을 시작하셨네요..
한인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동네 유태인들이 잘 해주었겠어요..
덕분에 미시간에서 시작했던
저의 초기 미국 생활이 기억나네요..
유학생으로 총각때 자취를 하다가,
결혼 후 첫번째 얻은 아파트가
침실 따로 없는 거실과
부엌, 화장실은 있는 스튜디오...
세탁기는 당연히 지하에서 공용으로..
당시에 60년된 아파트인지라
시카코 깽영화에서 나오는 엘리베이터
문을 올리고, 밀어야 하는 스타일..
그런데 맨 윗층 4층인지라
겨울에는 바깥이 더 따듯하고
여름에는 바깥이 더 시원했던 듯..ㅎ
몇년 전 그곳에 다시 가보니,
100년된 건물이 아직도 있어서
반갑더군요..
그래도 신혼집이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지요..
문제는 방안 어느 구석에서 마우스,
새앙쥐 시체가 마눌님 눈에만
보여졌어요..ㅎ
옛 이야기..들은
누구인가가 적은 글을 읽는거 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찌릿 찌릿 해지니
이를 어쩌나요...ㅎ
시니님의 미쿡생활 시리즈,,,
기대됩니다.
상상만해도 웃음이...ㅎㅎ
빵을 머리 위에...ㅎㅎ
흔히들 상류층이라 일컫는 그 상류층에 속하는
분, 같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에는 한 카페의 회원으로 그저 평범하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잘난체도
않고 묵묵히 방장으로서의 책임과 겸손함까지
갖춘 시니님~ 살아온 지난 이야기 많이 들려주시면 옜날얘기 듣는것처럼 재미집니다.
이러한 삶도 있음을
실제로 살아내신 생활이기에
가식과 꾸밈없는
솔직과 순수함을 볼수있는 멋진삶이었음을~!
아무나 살아낼수있는 인생이 아닌
얼마큼의 돈으로도 살수없는
가치있고 당당한 인생을 살으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연륜에 맞는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
가진 지식을 잘 활용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백하고 솔직한 글
개운한 마음으로 읽어갑니다 ! 부라보!
아마도 평생을
누구를 속인다거나 무례하게 한 적이
모르면 몰라도 없다 생각합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나의 진실한 삶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류중에 상류이신데
인격도 소탈한 상류이시니
배울점이 많은 방장님이십니다..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소 하고 겸손하고 ᆢ
배울점이 많습니다
양파 같은 방장님 ᆢ볼매2 볼수록매력덩이 ㅎㅎ
시니님 당시 너무 아름다우세요 ~~
새롭네요..
예전모습 지금모습
다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