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이 고통받았다는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나는 뉴욕 맨해튼 도심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밤을 부엌 탁자의 컴퓨터 스크린 불빛 앞에 구부려 앉아 보냈다. 나는 그 시절 지하철에서 북한 사람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했었다. NGO 모금 봉사활동을 자원하였고 많은 논문을 썼으며, 돈 많은 기업가들에게 기부를 요청하고 그들의 연락처를 하나 하나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눈을 반짝이며 휘몰아치는 대학 생활속에서 몇몇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나만의 길을 찾아나갔다. 그 중 몇 명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대담한 탈북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도시의 야망을 품은, 컴퓨터에 열정적인 2000년대 세대였다는 점에서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사실상 별 다른 점이 없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내가 이 두 그룹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온 친구를 어떤 모임에 데리고 나갈 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모호하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에요."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현실을 살짝 왜곡했으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내가 만약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모임 구성원은 이들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을 것이고, 그리고 결국,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그녀를 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아마 한 인간으로써 비춰지기 보다는 동물학적 돌연변이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어렸을 때의 경험을 물어보면, 나는 이들이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사적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심문하듯 과거에 대해 물어보는 것에 대해 짜증을 냈었다. 종종, 그들은 내가 그들의 정체성을 숨겨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대해 주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원했다. 파티에서의 몇몇 대학생들이 마주할 문제보다, 이 주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사실 더욱 심오한 차원의 문제다. 북한 사람들을 피해자로 대해줘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그들이 항상 세계 인권 사회에서 '부당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강요를 느끼게 했다. 인권 활동가들에게는, 그들이 얼마나 진실한지의 여부와 상관 없이, 정치와 무관하게 이들을 그들만의 삶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기는 무척 어렵다. 북한 사람들을 억압의 양면성의 상징으로 바라보려는 큰 경향은 이들 탈북자들을 소외시키는 무언의 압박이다. 사실, 이주민들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사람에 따라서 재밌을 수 있고, 정이 많을 수도 있고, 까칠할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그들도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들도 랩음악과 여행을 좋아한다. 그들 중 몇몇은 헬스장에서 운동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또 다른 몇몇은 집에서 미드 '왕좌의 게임'을 보며 과자를 먹는다. 그들도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들도 클럽, 스포츠, 한국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선의의 인권 활동가들은, 북한의 망명자들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묘사가 아니며, 내가 봐온 바로는 NGO 모금을 돕는 등의 순기능보다는 부정적인 기능이 훨씬 크다. 북한 사람들을 절망스러운 과거의 영원한 소산물로 보는 것은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들이 어딜 가든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는 억압정인 정권의 먹구름 아래 '고통받은 망명자'라는 영원한 고정관념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켜야 한다. 물론 탈북민들이 특별하게 힘든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의 정체성에 큰 타격을 주기는 하나, 타격을 받는 것이 정체성 전체는 아니다. 이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정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제 노역이나 성노예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같은 하늘 아래(Under the Same Sky)'라는 책의 공동 저자인 조셉킴과 같이, 그들이 겪었던 고난에 대해 자세한 증거를 제시했다. 명확하게는, 이들의 이러한 답변들은 현대 인권의 담론에 관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선전용 사람으로 대할 때에 그들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들의 과거가 어쨌든간에, 오늘날 북한 사람들은 기자이자 번역가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엄마이자 애인이기도 하다. 그들은 교수이기도 하고, 동성애 인권옹호가이기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건설 노동자이기도, 대학생이기도 하다. 다른 어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은 보잘것 없는 시민 모델로부터 기회주의자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엔 기금 모금 광고로부터 자주 소개되는 이주민의 이미지는 북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북한 사람은 가장 그리고 영원한 피해자로, 굶주리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내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북한 사람들은 미디어가 자주 증언을 해달라는 요구에 짜증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짜증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린다. 물론 그들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조명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게 여긴다. 그들도 북한에 있는 친구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이웃들이, 혹은 가족들이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영원히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싶진 않아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되어 싶어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슬픈 이야기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북한사람들이 많이 있다. "고통 받은 망명자"라는 모습이 현실의 모습과 충돌하는 모습은 내가 일 년동안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물망초학교에서 가장 심했다. 물망초는 북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로, 학생들이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주류 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학교에는 E-2 비자를 가지고 있는 영어선생님 팀이 많았고 그들은 매주 일요일 무료 언어 수업을 했다. 종종, 새로 온 자원봉사자들은 쇼크를 받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같은) 조용한 어린 아이들을 예상했다. 만약 그것이 그들이 처음으로 하는 이주민 관련 일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망명자에 대한 개념은 유튜브에 있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캠퍼스에 오면, 커넥트포(connect four, 입체 오목 게임)게임을 할 때까지 짓궂게 선생님의 팔을 잡아당기고 지나치게 시끄럽고 활기찬 초등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물망초 아이들은 포켓몬에 홀딱 빠져있어 (90년대 유년기를 보낸) 나는 포켓몬과 같은 만화 시리즈를 수업에서 다루려고 노력했다. 내가 닌텐도 3D를 수업에 가져왔을 때, 아이들은 누가 제일 먼저 볼 건지를 두고 다투었다. 그들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점프하고, 뛰어다니고, 그들이 찾을 수 있는 모든 납작한 평면에 겨울왕국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그러나 미디어는 종종 그들이 정상이라는 걸 인식하길 거부한다. 이주 아이들은 종종 무력하거나 필요한 게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꿈이 가득한 개인보다 말이다. 내가 아는 물망초 학생들 중 하나는 승마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는데, 나는 올림픽에 나가도 경쟁이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나는 그저 어른들이 그의 이러한 원대한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걱정되었다. 대신, 그들은 그가 아이로서 북한에서 마주했을 학대에 집중하고 싶어 그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음에도 과거에 질질 끌리도록 묶어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물망초 학교를 위한 모금 활동에서의 꽃제비("길거리 고아"라고 대략 해석되는)의 이미지를 피하는 이유이다. 내가 우리 페이스북 팬 페이지의 관리자 역할을 할 때, 나는 그것을 이주민 연구자들의 답사, 연구, 여러 다른 활동들을 하는 사진들로 채웠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기관의 톤을 정하기 때문이다. 물망초는 이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현실을 숨기지 않지만 그들이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 지보다, 앞으로 어디로 갈 지를 강조하고 싶어한다. 나는 어떻게 이 NGO가 학생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술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지 소개하고 싶었다. 어른으로서, 그들은 다른 곳에 사는 북한사람들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주고 다른 망명자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자율권을 주는 접근은 슬픈 길거리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 벌 수 있는 어떤 금액보다도 더 많은 기금을 모았다. 이주민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함으로서 고정관념을 깬 또 다른 NGO는 LiNK이다. 맨해튼에 살 때 나는 LiNK를 더욱 확장한 형태로 조직했고, 그들의 비전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소셜미디어적인 웹사이트는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적응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망명자들은 절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복지 중독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독특한 인격과 특별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생존자로 묘사되었다. 사람들은 탈북민에게 연민을 느껴 기금을 하는 것이 아닌, 북한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현대의 경제에 편입되어 그들의 이웃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지식과 믿음이 있어 기금한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오늘날 LiNK라는 신선한 브랜드는 기부 시장을 지배하고 150만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자랑한다. 시장은 증명했다. 북한 망명자들에 대한 개개인의 긍정적인 묘사는 그저 더 이득을 가져올 것임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훨씬 나은 일임을 말이다. 활동가들과 미디어에 종사하는 이들은 북한 사람들을 어둡고 두려운 장소의 상징으로 바라보기 보다 개개인으로 바라보도록 자각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항상 그들의 개인적 경험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주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그들이 그들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그들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rachel-stine/post_10474_b_8936712.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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