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전교수님의 다급하신 목소리다. "딸아이가 복통을 호소하는데 어떡하면 좋죠" 박선생님을 바꿔 드렸다. 변비치료자리를 열심히 설명하신다. 전화를 끊고, 짐정리를 하면서 록키마운틴이 좋았니, 여기가 좋았니 실랑이를 벌이는데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틀동안 구안와사로 진료를 받으신 분이셨다. 30년전에 이곳 캐나다로 건너와 토론토와 에드먼튼에 살고 계신 분으로, 한번이라도 침을 더 맞고 싶으셔서 전날 선생님과 얘기가 되어 오늘 아침 호텔방으로 오신 것이었다. 말씀하실 때는 표정이 찌그러지셨지만, 가만히 계실때는 구안와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좋아진 느낌(나의 착각일까)을 받았다. 미건의료기로 처음 치료받으러 온 날도 저랬을까. 순간 혼동이 온다. 어째튼 그분은 침맞고 좋아진 느낌을 분명히 받았고 그래서 한번이라도 더 맞으려고 오셨고, 감사의 표시로 어젯밤 선생님께 양주 한 병을 선물로 주신 분이셨다. 양쪽 팔 다리도 저리다는 말씀에 척추와 팔, 다리에 침을 놓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시 만날 기회가 되면 함께 라운딩하자는 덕담도 나누며... 공항까지 배웅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 오신 교민회의 양사장님과 함께 얘기하다가 호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그냥 굶기로 했다는 우리의 대답에 아침밥을 먹이고 보내겠다며 댁으로 전화해 사모님께 아침식사준비를 부탁한다. 가는 날까지 양사장님 내외분께 폐를 끼친다. 그래도 호텔음식보다는 한식이 최고다. 염치불구하고 신세지기로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전교수님댁에 들렀다. 박선생님은 복통을 호소하는 따님을 치료하고, 난 전교수님 장모님에게 침을 놓아 드렸다. 90세신데 아주 정정하시고 고우신 분이시다. 부럽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영국신사처럼 볼 때마다 옷을 달리 입고 멋을 부리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휘어잡으시는, 예전에 여행사를 경영하셨다는 최사장님도 오셨다. 당신 차로 직접 공항까지 모시겠다며. 따스한 인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선 아침식사를 위해 모두 양사장님댁으로 향했다. 양사장님 사모님은 출근도 미뤄가며 부랴부랴 따뜻한 밥과 된장찌게를 끓여 내놓으신다. 뜸이 덜 들어 설익은 밥이지만 눈물나게 고맙다. 에드먼튼 체류기간 내내 장모님처럼 정겹고 구수하게 반겨주시고 챙겨주신 분이시다. 따님들도 어쩜 한결같이 미인들이고, 바르고 곱게 키웠다는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괜히 침(?)만 흘리고 말았다. "김치와 김만 있으면 됩니다" 했는데, 그러는게 아니라며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아 덕분에 뚝닥 밥을 다 비웠다. 첫날은 늦은 밤이라 집구경을 제대로 못했는데, 그래도 짬을 내 예쁘게 가꾼 정원을 구경했다. 박선생님은 한쪽 귀퉁이에 심겨진 양귀비꽃을 보고는 열심히 씨를 주워담는다. 어떻게든 한국에 갖고 들여가겠다며... 나도 사진에 담고, 예쁜 집도 찍었다. 이제는 정말 작별의 시간이다. 양사장님 내외분과 함께 집앞에서 집과 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 가슴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영원히 두 분의 따스한 인정과 대접, 그리고 이 집의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리라 다짐했다. Boarding time까지 아직 1시간의 여유가 있길래 여러분들을 졸라 내 관심사인 골프매장인 골프타운(Golf Town)에 들렀다. 내 약점인 퍼팅보완을 위해 마음에 드는 퍼터가 있으면 장만하고픈 마음이었다. 또 굳이 사지 않더라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기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전부터 봐뒀던 타이틀리스트 카메론 퍼터는 한국과 가격이 거의 비슷해 굳이 사갖고 들어갈 필요가 없어 그냥 나왔다. 오전 11시에 공항에 도착해 배웅나오신 최사장님, 양사장님, 전교수님과 작별을 나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토론토행 비행기 AC 126편에 올랐다. 비행시간만 3시간 30분(인천에서 사이판까지의 비행거리다, 세상에!)으로 시차까지 합치면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맨뒷편 구석진 자리가 우리 좌석이다. 창밖으로 펼쳐진 평원을 보고싶어 기웃거리는데 창가에 앉으신 선생님은 연신 못보게 시야를 가리신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드셨다. '잠만 잘거면 굳이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게 뭐람. 제자에게 양보해도 될텐데... 하여튼 말로만 제자사랑 하신다니까...' 새로 깨끗하게 지어진 토론토국제공항에 오후 5시 50분에 도착했다. 한마음 선원 캐나다 지원에 계시는 청동스님이 직접 수하물찾는 곳까지 나와 반겨주신다. 훤쭐하게 키도 크고 잘 생기신 멋쟁이 스님이셨다. 옷걸이가 좋아서인지 승복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도 차트를 찾느라 고생했다. 그런데 청동스님을 따라 주차장 건물로 갔는데 왠일이란 말인가' 스님이 주차해 놓았다는 F8에는 도로가 나있고, 타고온 차는 온데간데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시다가 다시 오셔서 하는 말씀이 "내가 주차해 놓은 곳이 3층 F8인데, 이 곳(4층) F8열에 와서 찾았으니 못찾을 수밖에요" 하신다. 헷갈릴 만도 하다. 문득 나도 백화점에 들렀다가 주차한 곳을 못찾아 한참을 헤맸던 지난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차요금을 내는 것도 번거로왔다. 무인 결제로 현금은 불가능하고 신용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다른 차들도 한참을 헤매다가 빠져 나간다. 편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계(전자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지않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법인 모양이다. 숙소는 한마음 선원과 가까운 Crowne Plaza 호텔에 예약해두셨단다. 한 눈에 좋은 호텔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배정받은 객실이 1층 응달이다. 눅눅하고 습한 방이어서 혹시나 위층으로 바꿔달라고 갔더니 남은 방이 그 방밖에 없다고 한다. 바로 옆으로 실내 수영장과 옥외 수영장이 함께 있어 너무 맘에 드는데... 근처의 다른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괜히 청동스님을 힘들게 하는 것같다. 소련지도자인 고르바초프(청동스님)인지 후루시초프(청각스님)인지 하는 사람(누구 말씀이 옳은지 아직까지 확인 못했슴)이 토론토를 방문했을 때 묵었다는 'Inn on the park'에 갔더니 만실이라 빈 방이 없단다. 할 수없어 그 옆에 위치한 헐리데이 인(지금은 Don Valley Hotel로 바뀌었지만)에 숙소를 정했다. 그것도 정문 출입구를 몰라 한참을 걸어가서, 또 방이 마음에 안들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 528호로 결정을 봤다. 모두 나의 까탈스런 결벽증때문이었다. 어영부영 하다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 9시로 어두워졌다. 배꼽시계는 연신 울러댄다. 한마음 선원에 들러 지원장이신 청각스님(학자풍이 물씬 풍기는 학승같아 보이시는 분으로 약간은 깐깐해 보였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신도분이 운영하는 North York에 위치한 한식당인 '청기와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박선생님께서는 스님앞에서 버젓이 육회와 갈비정식을 시키신다. 그리고 당당하게 의견을 펼치시는 모습에 옆에 앉은 나는 외나무 다리위를 걷듯 아슬아슬 불안하다. 아마 어느 누구든 선생님을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당해야할 통과의례겠지만, 상대방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청동스님께서 박선생님에 대해 복싱에 비유해 "남들은 생각하고 몇번 잽을 날리면서 재고 들어갈 때, 박선생님은 틈을 주지않고 바로 어퍼컷을 날리며 한번에 들어오는 분"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간다. 식당에서도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시는 식당 사장님에게 침 몇 개를 꽂고는 연신 "어떠세요?" 하고 물으신다. "조금 좋아졌네요" 하시지만 박선생님이나 내가 기대한 만큼의 반응은 아니다. 11시에 숙소로 돌아와 짐정리와 목욕을 마친 후 캐나다에 온 후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랑 냉랭한 상태로 헤어졌는데, 아내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항상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시름시름 앓는 아낸데,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신호음이 가고 잠시후 사랑스런 아들 놈이 전화를 받는다. "Hello, How are you?"했더니 이 놈이 하는 말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야!"하고는 "툭" 끊어버린다. '세상에, 제 아비보고 '누구야'라니!' 괘씸한 마음에 분을 삭이며 다시 전화한다. 또 영어를 썼다가는 아들 놈에게 국물도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우리 말로 "나다, 아빠다(또 전화끊으면 어떡해!)" 통 사정하듯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제서야 내 목소리를 알아보고는 울먹일 듯이 반긴다. 잠시후 전화기를 바꿔든 효정이는 "아빠, 아빠, 언제와?" 하면서 아예 울음보를 터트렸다. 덩달아 옆에 있던 우석이의 우는 소리도 전화음을 타고 애절하게 들린다. 전화기를 뺏어 든 아내가 "난, 하나도 안보고 싶은데, 얘들은 그래도 아빠가 보고싶은가보네" 한다. 그새 아내의 목소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또 이역만리 타향까지 나가 있는 남편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가 담긴 목소리다. 항상 잘해줘야지 하면서도 아내의 뒤통수를 치는게 나란 인간인데, 그래도 무던히 잘 참고 인내해온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을 우석이와 효정의 울음을 환청으로 들어야 했다. 괜히 가슴이 찡하다. 이게 핏줄인가.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첫댓글 착한 아내 ..잘해줘라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