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지만 있는 국경, 있지만 없는 사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면, 세상은 온통 선하다. 선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마냥 선하지 않고, 악이 선을 이기곤 한다. 바울이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역설하는 이유는(롬12:21), 주로 악이 선을 이기기 때문일 터다. 선이 악을 이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그 당위를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3월 12일 대구논공필리핀교회 성도들이 기도하는 예배당에 경찰이 들어왔다. 문서위조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하러 왔다는 것이다. 예배가 끝나기 전이었지만, 설교가 끝났다는 이유로 경찰은 예배당에 들어와 비자 기한이 만료된 이주민 9명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낮시간에 모이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예배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리츄얼 속에 각자에겐 절실했을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었다. 수갑을 차기 전, 이주민으로서 살아가는 고단함을 토로하며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의 안녕을 구하며 한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건강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기도하다가 수갑 채워져 연행된 사람들은 열흘도 되지 않아 필리핀으로 강제 추방되었다고 한다.
기도하다가 수갑 찬 필리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선한 세상이라 선언하셨다(창1:31;딤전4:4). 필리핀 이주민들이 기도하던 공간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세상이건만, 기도하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비자가 없을 경우 공장에서 일하다가 단속되기도 하고, 기숙사에서 쉬다가 단속되기도 한다. 흔치 않지만 길에서 단속되기도 한다. 예배당에서 단속된 사례는 아주 희귀하다. 2007년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원들이 예배당에 난입해 미등록 이주민들을 단속한 사례가 가장 최근이다. 국경이 대체 무엇이길래 일하기 위해 국경 넘은 사람들이 비자 시한 넘겨 체류하는 것을 불법이라 단죄하고 이렇게 엄히 단속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에 국경은 없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선을 긋지 않으셨다. 바람은 무시로 국경을 넘나 들지만 철조망에 찢기지 않고, 철새는 계절마다 영공을 침입하지만 격추되지 않는다. 옛날 바울 살던 때에도 왕들은 사람들의 오고 감을 엄하게 통제하지 않았다. 성령을 따라 바울은 안디옥에도 가고, 마케도니아에도 가고, 로마에도 가고, 심지어 땅끝 스페인에도 가고 싶다지 않았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라크를 거쳐 이집트까지 가지 않았는가. 야곱은 기근을 피해 먹고 살려고 이집트로 가족 전체가 이주하지 않았는가. 성서 속 사람들은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어디에서 온 나그네라도 환대해야 했다(출23:9;딛1:8).
하나님께선 바닷가 모래 위에 보이지 않은 선을 그으시긴 했다. 「나는 모래로 바다의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바다가 넘어설 수 없는 영원한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 비록 바닷물이 출렁거려도 그 경계선을 없애지 못하고, 아무리 큰 파도가 몰아쳐도 그 경계선을 넘어설 수가 없다(렘5:22).」 모래를 넘을 수 없는 건 바다다. 바다에 사는 생물은 해류를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고,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생물도 많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 침범하지 않을 뿐, 바다와 육지에 사는 모든 생명은 저마다 저 살고 싶은 곳에 산다.
인간만이 국경에 갇혀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엔 ‘없지만’, ‘있는’ 국경에 인간은 스스로를 가둔다. 없지만 있는 것을, 어거스틴은 악이라 부른다.
악한 세상에선 약한 사람들이 위험하다. ‘쁘라와 세닝문추’는 10년 전에 관광비자를 받아 태국에서 왔다.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축사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축사에서 돼지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잤다. 돼지 축사에서 일하고 숙식하며 한국에서 10년 관광을 마친 날, 쁘라와 세닝문추는 트랙터에 실려 산에 버려졌다. 3월 4일, 주검으로 발견됐다(한겨레신문23-3-8). 무슨 사연으로 태국에서 한국에 왔을지, 축사에서 생활하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돼지 똥오줌 냄새 가득한 침실에서 숨을 거둘 때 누구를 떠올렸을지, 전혀 모른다. 아는 게 있다면, 이 또한 짐작이지만 돼지 축사에서 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돼지 축사에서 죽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세닝문추도 사람이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돼지 축사에서 살다가 돼지 축사에서 죽고 싶지 않다.
수갑 채워져 출국당하기도 하고, 비참하게 죽기도 하지만, 또 사람은 살아간다. 삶은 이어지고, 사랑도 그치지 않고, 그래서 사람이다.
“30cm 요리용 나무젓가락으로 아이들 종아리를 각각 1대씩 때린” 이유로 세 딸과 분리된 M에게 중고자동차가 생겼다.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만나는데, 아이들과 이동하기 위해, 또 아이들이 복가할만한 양육 조건을 갖추기 위해 2011년식 레간자를 산 것이다. 아직 갚지 못한 빚만 있을 뿐 자동차를 살 여력이 없었지만 K교회 L권사가 수채캘리전시회를 열어 작품 판매액 전부인 412 만원을 후원해 마련케 했다.
M은 베트남에서 온 미등록이주노동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나연, 시은, 하율 딸 셋을 낳았다. M을 사랑하는 사람은 떠났지만, M은 사랑하는 딸들을 떠나지 않았다. 의료보험도 안 되지만, 지역아동센터에 갈 수 없지만, 보육지원금도 받을 수 없지만,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을 수 없지만, 주중엔 사출 공장에서 일하며, 주말엔 인력사무소 통해 일하며, 평일 밤엔 부업을 하며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아왔다.
공장에서 일해야 해서 초등학생 딸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이할 수 없었다. 엄마가 공장에 있는 시간, 미등록이주아동을 받아주는 지역아동센터가 없어 아이는 혼자 하교하고 집에 있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아동 유기라 했다. 아동을 유기하는 엄마 M을 관찰하던 김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30cm 나무젓가락으로 아이들을 폭행한 혐의로 고발했고 엄마와 세 딸은 분리 조치됐었다(22년5월호복음과상황참조).
분리된 후 1년 6개월이 지난, 22년 10월에야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엄마에게 6개월 동안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 한 대를 때린 게 유죄라는 건지 무죄라는 건지 모호한 판결이다. 유죄라 하진 않았지만 무죄도 아니어서 항소할까 고민했지만, 언제 재판이 열릴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항소하고 또 1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해도 법익이 없겠어서 법원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6개월이 지나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상담 일정을 잡기 위해 보건복지부 기관과 면담하던 날, M은 카페에서 소리내며 울었다. 아이들과 엄마가 분리되어 있기에 법무부에서 체류연장 불허 방침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자가 없는 M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양육자 자격으로 임시 체류 허가를 받았는데, 아이들이 보호시설에 따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엄마 M이 체류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임시 체류 허가 기간이 종료되면 강제 출국해야 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구두 통보를 받은 것이다. 보건복지부 기관을 만나는 자리에 동행했던 민들레교회 목사는 담당자에게 M과 세 딸이 분리되기까지 있었던 그간의 과정과 내용을 곡진히 설명했다. 김포시청 담당자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서 M 가정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줄 것을 청원했다. 김포시외국민주민지원센터(센터장:최영일)를 통해 법무부가 M의 체류허가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강청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그리고 다섯살 짜리 막내가 엄마 없는 한국 살이를 하게 될까 두려웠다. 혹은 아이들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엄마와 함께 강제 출국 당할 수 있다는 걱정으로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두통은 심했고 잠은 얕았고 기도는 중언부언 길어졌다. 보건복지부 기관, 김포시청,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도 민들레교회 목사의 중언부언에 시달려야 했다.
보건복지부는 법무부를 살피고, 법무부는 보건복지부를 살피는 듯했다. 완강하고 완고해 보이던 정부기관에도 사람이 있었고, 김포시외국인지원센터의 전략은 치밀했다. 곡진함에 귀를 열고, 눈으로 진실을 확인한 사람들이 M에게 체류허가를, 아이들에겐 복가를 결정했다. 7월 초, 세 자매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분리된 지 2년 2개월 만이다.
M이 한국에서 낳은 세 딸 중 막내 하율이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나연이와 1학년 시은이는 등록번호가 없다. 등록번호가 없어도 유엔아동인권협약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등록번호가 없는 나연이와 하율이는 계좌를 만들 수 없고, 비행기를 탈 수 없고,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고, 지역아동센터에 갈 수 없고, 사설 보험 가입이 안되고, 자기 이름으로 손전화를 개통할 수 없고, 고등학교 졸업해도 대학에 입학 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게 많을 아동청소년기에, 여느 한국 학생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등록번호 없는 나연이와 시은이는 할 수 없다. 출석하는 학교장 의지가 강하면 수학여행 갈 때 어찌어찌 비행기를 탈지 모르고, 교육감 보증으로 교육청 내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해 줄지 모른다. 여느 한국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상이 나연이와 시은이에겐 기적을 동반한 선물로 겨우 주어질지 모른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등록번호가 없어,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게 순간마다 사건마다 기적이 닥치길, 그래서 일상을 살길 기도한다.
옛날, 기근을 피해 국경을 넘었던 야곱 가족을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국경 넘은 이주노동자 곁으로, 지금 오소서
옛날, 압제를 피해 파라오에 저항했던 히브리 사람을 생각합니다
자유를 얻고자 국경 넘은 난민 곁으로, 지금 오소서
옛날, 사람 수에 들지 못했던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서류로 자기를 증명할 수 없는 아이들 곁으로, 지금 오소서
옛날, 죄를 지어도 체류할 수 있었던 도피성을 생각합니다
체류가 불법이라 예배당에서 잡혀간 “죄인” 곁으로, 지금 오소서
이파리 나오기 전 서둘러 피는 꽃잎처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아멘.
글/ 김영준
김포에 산다. 민들레교회와 달팽이학교가 운영하는 공간 민들레와달팽이를 지킨다.
*복음과상황, 23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