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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어 및 게송 스크랩 자장율사(慈裝律師)
이슬 (신행화) 추천 0 조회 37 13.03.06 11: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장율사(慈裝律師)

(590-658)

자장율사는 신라 선덕왕(善德王) 14년(서기 645)에 당(唐)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頂骨)과 사리(舍利)를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성지(五대山 聖地)에 봉안하고 적멸보궁(寂滅寶宮)과 마애보탑을 세워서 한국 불교의 본거지로 삼고 곧이어 국왕에게 황룡사(黃龍寺)에다 구층석탑(九層石塔)을 세워서 신라의 통일의지(統一意志)를 국내외에 천명하도록 건의하여 2년 후에 완성함과 동시에 대국통(大國統)에 추대되어 승려(僧侶)들의 기강을 세우고 강원도에 상주하며 전국 각지에 사찰을 건설하여 국민교화에 힘써 불국정토(佛國淨土) 건설에 정진하다가 통일 전에 입적(入寂)한 암하고불(岩下古佛)의 도시조(都始祖)이다.

① 탄생설화(誕生說話)

자장율사는 신라가 중흥대도(中興大道)를 지향하던 진평왕(眞平王) 12년(590)에 진골(眞骨) 가문에서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 관직에 있었던 김무림(金武林)의 아들로 태어났다.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던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진粱)이 되게 할 것을 축원하면서 천부관음(千部觀音)을 조성하였는데 어느날 그의 아내가 품안에 별이 떨어지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한 4월8일에 낳았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자장은 민족의 조상신앙(북두칠성)의 별 꿈과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감응(感應)이 어울린 위대한 인물로 운명(運命)을 타고난 고불(高佛)이다.

② 출가설화(出家說話)

자장은 어려서부터 마음이 맑고 슬기로우며 문장(文章)과 생각(生覺_이 풍부하여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았다. 부모를 여인 뒤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자기집을 원녕사라 하여 수도(修道)의 길로 들어섰다. 구도(求道)에 혼신의 정열을 쏟고 있을 때 조정으로부터 여러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선덕왕(632-647)이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리라.” 하여도 끝끝내 굽히지 않고 “내 차라리 하루라도 계(戒)를 지니고 죽을지언정 백년을 살자고 파계(破戒)하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 고 마음을 출가에 두고 있으니 왕이 고불(高佛)이 되기를 기대하여 출가(出家)를 허락하였다고 한다.

③ 도당 유학(渡唐 留學)

자장은 석덕왕 5년(636)에 승실(僧實)등 제자 10여명과 함께 당나라에 건너가서 먼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물고 있는 청량산(淸?山) 문수보살 석탑(石搭)에게 문수보살의 음밀한 감응(感應)을 기도 하였다. 7일 동안의 기도 후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4구계(四句偈)를 주었다. 꿈에서 깨어서도 그 네귀의 글은 기억할 수가 있으나 모두가 범어(梵語)여서 그 뜻을 전혀 풀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갑자기 중 하나가 붉은 비단의 금색(金色) 점이 있는 가사(袈裟:스님의 옷) 한 벌과, 부처님의 바리때(식기) 하나와, 부처님의 머리뼈 한 조각과, 사리(舍利)를 가지고 법사의 옆으로 와서는 어찌해서 무료(無聊)하게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법사는 대답하였다.

“꿈에 네 귀의 글은 받았으나 풀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하였더니 중이 번역하여 말했다. 첫째 귀는 일체의 법을 깨달았다는 말이고, 둘째 귀는 본래의 성품은 가진바 없다는 말이고, 세 번째 귀는 이와 같이 법성(法性)을 해석 한다는 말이고, 네 번째 귀는 노사나불(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을 곧 본다는 말입니다.“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법사에게 주며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이것은 본사 석가 세존(本師 釋迦 世尊)이 쓰시던 도구이니 그대가 잘 보관해 가지십시오.” 그는 또 말했다. “그대의 본국의 동북방 명주(溟洲)의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만(萬)의 문수보살이 항상 그 곳에 머물러 있으니 그대는 가서 뵙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그 뒤 수도 장안(長安)으로 갔는데 당나라 태종(太宗)은 사신을 보내 그를 위로하고 승광 별원(勝光에 別院)에 머물게 하였다.

어느날 한 장님이 그의 설법을 듣고 참회하자 곧 눈을 뜨게 된 일이 있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그를 찾아와 계(戒)를 구하는 사람이 매일 1,000여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자장이 당에서 한참 활동하는 시기에 선덕왕은 자장에게 귀국을 청하였다.

④ 환국(還國)

귀국길에 오른 자장율사는 신라에 불상과 불경 그리고 문화가 미비함을 생각하고 대장경 한 길과 번당(幡幢) 화개(華蓋) 등을 마련하고 데리고 가서 불교문명을 배우게 한 제자 10여명을 거느리고 7년 만에 화려하게 선덕왕 12년(643)에 고국에 돌아왔다.

⑤ 문수보살 친견(文殊菩薩 親見)

일연선사(一然禪師)가 이야기로 역사(歷史)로 엮은 삼국유사 제3권편 오대산 오만진신조에서 산중의 고전(古傳)을 상고해보면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을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살던 곳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자장(慈裝法師)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⑥ 오대산 적멸보궁(오대산 寂滅寶宮)

자장이 당나라에 유학 가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물고 있는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의 감응(感應)을 받고자 7일 동안 기도하여 꿈에 대성(大聖)이 나타나서 4구게(四句偈)를 주고 또한 부처님의 정골(頂骨)과 사리(舍利)를 주면서 환국 하거던 오대산에 모시고 큰 절을 세우라고 당부하였다.

사구게는 화엄(華嚴) 사상의 묘지(妙旨)이므로 자장이 도(道)를 깨쳤다는 뜨이고 사리를 오대산에 모시라 하였기에 청량산을 중심으로 한 산세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가 돌아와서 지금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당나라에서 본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지형을 찾아내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과 사리를 정중히 봉안하고 그 표식으로 “마애보탑”을 설치하고 참배하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최초로 세운곳이 지금의 월정사 상위에 있는 상원사(上院寺)이고 월정사(月精寺)는 적멸보궁을 관리하며 참배자에게 편리를 공여하며 도(道)를 닦는 인재 양성소 이다.

그래서 오대산을 한국에서의 불교성지(佛敎聖地)라 하고 도를 닦는 암하고불의 본거지이다.

⑦ 구층석탑 건립(九層石塔 建立)

자장율사는 불국토(佛國土) 통일(統一)을 구사하고 국왕에게 황룡사(黃龍寺)에 구층 석탑을 세워서 국내외에 불국토 통일의 신라의 의지를 천명할 것을 건의하여 2년에 걸쳐서 설립하였다. 이 탑은 삼국통일을 기원한 원탑(願搭)이기도 하다. 기공(起工)은 선덕원 14년(645)이고 완공(完工)은 선덕왕 15년(646)이다.

⑧ 대국통 추대(大國統 推戴)

자장율사가 강원도 오대산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과 사리를 모셔놓고 이어 황룡사에 구층 석탑을 세워 통일 의지를 천명하였으니 이제 불국토를 건설을 주도(主導)할 인물로 국왕이 자동율사를 백관회의에서 대국통으로 추대하여 불교계의 기강을 확립하고 국민교화를 위하여 정진(靜振)하게 되었다.

⑨ 불국토 건설(佛國土 建設)

자장율사의 대공훈(大功勳)은 불교홍통(佛敎弘通)을 통한 국민교화와 불교 교단(敎壇)의 기강확립(紀綱確立)의 능력과 수완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다듬는 강론(講論)에 있다.

승려 수행 진도에 따른 직책이 합리적으로 꾸며지고 교단이 평화스럽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수행하다 보면 승진하게 되고 사찰을 갖거나 주지가 되며 성불하게 된다.

자장율사는 왕의 요청이 있으면 궁중에 들어가서 자문에 응하고 대승론(大乘論)을 강하여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황룡사에서 7일기도를 자주 열어서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강하였다.

지도층에 있는 고승은 항상 승려들의 수행 진도에 관심을 갖고 토굴이나 암자로 마련해 주어 도와주어 제자를 양성하게 조직화 하였다.

자장율사가 화엄경을 강할 때 52인의 여인이 나타나 법을 듣고 깨달아 그 문인(門人)들이 수만금을 내어 나무를 심어 이적(異蹟)을 기념하였다.

그리하여 신라 통일 전에 지상 극락세계를 이룩하여 불국토 건설을 먼저 하여 호국불교의 길을 터 놓았다.

⑩ 양산 통도사 건립(梁山 通道寺 建立)

자장율사는 선덕왕 15년(646)에 양산 통도사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⑪ 정암사 건립(淨岩寺 建立)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오대산 오만진신(五萬眞身) 제4조에 의하면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古汗里)에서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꿈에 뵙고 석가모니 부처님에 사리를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모시고 적멸보궁을 세웠으며 화암(畵岩)동굴과 약수(藥水)로 유명하여 강원도 문화재 제32호로 보존되어 있다.

⑫ 설악 신흥사 창건(雪岳 新興寺 創建)

강원도 향교 서원 사찰지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진덕왕 6년(653)에 사찰을 세우고 계조암(繼祖?)에 구층석탑을 세워 부처님 사리를 봉안 하였다고 한다.

⑬ 백담사(百潭寺)

1) 소재지(所在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2) 개창(開創)

신라 진덕여왕 원년 (서기 647)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한계사(寒溪寺)라 하였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서지보살.관음보살) 3위를 받들어 봉안하였다.

⑭ 강원도 영주(江原道 永住)

자장율사는 만년에 경주를 떠나 명주(溟洲) 땅을 찾아서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상주하여 각지에 사찰을 세우다가 658년에 입적(入寂)했다.

그래서 조정에서 일이 생기면 사신을 보내서 자문(諮問)을 구했다. 그런 관계로 강원도 사람을 암하고불(岩下高佛)이 사시는 곳에 사람이라는 뜻에서 인격자(人格者)로 대우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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