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장. 民不畏威(민불외위)
- 백서본 제37장
남 : 사람을 사랑하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장 :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주 : 백성을 핍박하고 착취하면 안된다
톨 : 백성들이 강한 자에 두려움을 멈출 때
오 :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 – 백성 사랑이 자기 사랑
김 : 민중의 마지막 저항 - 혁명革命
여운 : 권위는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는 것
남 : 남회근(1918~2012) 근래 20~30년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은 분으로 장개석과 장경국의 국사
장 : 장치청(1959~)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 북경중역국학원 원장.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
주 : 주춘재(1957~) 화가, 작가. 중국문화보급과 전세계 대중화에 앞장섬.
톨 :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과, 사상가.
오 : 오강남(1941~)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명예교수, 종교학자.
김 : 도올 김용옥(1948~) 철학자, 사상가.
여운 이준호 : 야매 한학자.
72.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 不自見. 自愛, 不自貴. 故去彼取此.
백성들이(民) 통치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면(不畏威), 위대한 위엄에(大威) 이르게 되는 법이다(則至). 통치자가 거하는 곳을(其所居) 조롱하지 않으며(無狎), 통치자의 존재를(其所生) 싫어할 이유가 없다(無厭). 대저(夫) 오로지(唯)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不厭), 그런 까닭에(是以) 싫어하지 않는다(不厭). 그런 까닭에(是以) 성인은(聖人) 스스로 깨닫기에(自知),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不自見). 스스로 사랑하나(自愛), 스스로 귀히 여기지 않는다(不自貴). 도리어(故) 과시와 잘난 척을 버리고(去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사랑함을 취한다(取此).
When the people do not fear what they ought to fear, that which is their great dread will come on them.
Let them not thoughtlessly indulge themselves in their ordinary life; let them not act as if weary of what that life depends on.
It is by avoiding such indulgence that such weariness does not arise.
Therefore the sage knows (these things) of himself, but does not parade (his knowledge); loves, but does not (appear to set a) value on, himself. And thus he puts the latter alternative away and makes choice of the former.
民不畏威(민불외위), 則大威至(즉대위지). 無狎其所居(무압기소거), 無厭其所生(생염기소생).
남 : 사람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위엄이 이르게 된다. 그 거처하는 곳을 희롱하지 말고, 그 사는 바를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장 :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큰 화가 이른다. 거처를 핍박하지 말고, 생활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주 : 백성이 군주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끔찍한 위협이 닥칠 것이다. 백성이 몸 둘 곳을 모르도록 핍박해서는 안 되며, 생계에 위협을 느끼도 록 착취해서는 안 된다.
톨 : 백성들이 강한 자에 대한 두려움을 멈출 때, 강한 자들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집이 어떤 것이든 성자에게는 비좁지 않다. 탄생의 장소가 어떤 곳이든 성자에게는 마찬가지이다.
오 :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욱 큰 어려움이 이를 것입니다. 그들의 거처를 좁게 하지 말고, 그들의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 합니다.
김 : 백성이 통치자의 치술이 너무 가혹하여, 백성이 통치자의 권위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결국 가장 두려운 하늘의 형벌, 민중의 뒤엎음이 닥치게 된다. 치자는 백성이 사는 곳을 들들 볶지 마라! 치자는 백성이 사는 것을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하라!
여운 : 백성들이(民) 통치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면(不畏威), 위대한 위엄에(大威) 이르게 되는 법이다(則至). 통치자가 거하는 곳을(其所居) 조롱하지 않으며(無狎), 통치자의 존재를(其所生) 싫어할 이유가 없다(無厭).
民(백성 민) - 백성, 사람, 민심, 어둡다, 잠자다.
畏(두려워할 외) -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꺼리다, 심복하다, 죽다, 두려움.
威(위엄 위) - 위엄, 권위, 세력, 힘, 권세, 두려움, 거동, 시어머니, 두려워하다, 구박하다.
則(곧 즉/칙) - 법칙, 준칙, 이치, 본보기로 삼다, 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곧, ~하면.
大(클 대) - 크다, 심하다, 높다, 훌륭하다, 하늘.
至(이를지) - 이르다, 미치다, 과분하다, 지극하다, 힘쓰다, 다하다, 이루다, 주다.
無(없을 무) - 없다, 아니다, 아니하다, 말다, ~하지 않다, 무시하다, ~관계없이, ~막론하고.
狎(익술할 압/합) - 익숙하다, 희롱하다, 업신여기다, 친압하다, 익다, 수결하다, 번갈아.
所(바 소) - 바, 곳, 장소, 처소, 지위, 자리, 위치.
居(살 거) - 살다, 거주하다, 차지하다, 처지에 놓이다, 자리 잡다, 앉다, 쌓다, 거만하다.
厭(싫어할 염/엽/암/읍) - 싫어하다, 물리다, 조용하다, 순종하다, 악몽, 누르다, 빠지다, 젖다.
生(날 생) - 나다, 낳다, 살다, 기르다, 서투르다, 싱싱하다, 만들다, 백성, 선비(벼슬 않는).
이번 장의 첫 구절도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해석과 다르다. 99%는 왕필본에 따라 백성들이 군주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화가 따른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노자의 평소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66장에서 “성인은(聖人) 백성 위에 서고자 한다면(欲上民), 반드시(必) 언사가 겸손해야만 하는 이유다(以言下之). 백성들 앞에 서고자 한다면(欲先民), 반드시(必) 자신이 물러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以身後之). 그러므로(是以) 성인은(聖人) 위에 머물러도(處上而) 백성들이 중압감을 느끼지 못하고(民不重), 앞에 머물러도(處前而) 백성들이 위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民不害). 그러므로(是以) 천하가(天下) 즐거워하여 받드니(樂推而) 싫어할 수가 없다(不厭).” 하였다.
그런데 이를 백성들이 통치자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화를 입게 된다고 하는 것은 석연찮다. 이는 공포정치를 옹호하게 된다. 17장에서 노자는 군주의 단계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누었다. “천자라(太上) 이름은 백성들이(下) 그가 통치하고 있다는(有) 것을(之) 알 뿐이다(知). 그(其) 다음(次) 단계는 백성들이 어버이처럼(親) 따르는(譽) 군주이고, 그(其) 다음은(次) 백성들이 두려워하는(畏) 군주이고 최악의 단계는(其次) 백성들이 업신여기는(侮) 군주이다.” 세 번째 단계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畏) 군주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본다.
“백성들이(民) 통치자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면(不畏威), 위대한 위엄에(大威) 이르게 되는 법이다(則至).”
백성들이 통치자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이 최상의 군주라고 하였다. 통치자가 권위를 드러내지 않으니 백성들이 존귀하고 위대하게 따르는 이치다. 질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발적 질서와 강압적 질서이다. 도덕적이고 대자적 민중들에 의한 자발적으로 생성된 질서는 존경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다. 민주주의 형태에서 가장 추구해야 할 대동(大同) 세상이다. 강압적 질서는 독재와 왕이 백성들을 찍어 눌러 힘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 대하여 한국과 중국을 비교해 보면 명료해진다. 한국에서 코로나에 대한 대응을 정부와 국민이 비교적 자발적으로 극복했다. 정부의 협조 요구에 국민의 자발적인 희생과 절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 정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되었다. 도시를 봉쇄하고 아예 폐쇄해버렸다. 거주지에서 한 발도 못 나오게 문에 아예 못질을 한 곳도 있었다. 통제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였다. 일본은 아예 통계 자체를 숨겼다. 강압적인 상태에서 통제되는 시스템을 열역학에서는 효율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없는 무질서의 척도인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한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조건은 백성들이 도덕적이고 이타적이어야 자발적인 상태가 된다.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따르는 상태가 되어야 노자가 추구하는 무위자연의 상태가 되는 법이고 도법자연의 이상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군주라야 백성들이 권위를 세워주고 존경하여 따르는 것이다.
“통치자가 거하는 곳을(其所居) 조롱하지 않으며(無狎), 통치자의 존재를(其所生) 싫어할 이유가 없다(無厭).”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정권 초기부터 통치 장소와 관저 문제로 국민의 염증과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 기존의 청와대를 하루도 안 있겠다며 사저에서 출근 소동을 벌이고 쓸데없는 세금과 인력을 낭비하였다. 그 몫은 그대로 국민이 떠안는 것이다. “통치자의 존재를(其所生) 싫어할 이유가 충분하다(有厭).”
夫唯不厭(부유불염), 是以不厭(시이불염). 是以聖人自知(시이성인자지), 不自見(부자현),
남 : 대저 오직 압박하지 않는지라, 이런 까닭에 성인은 자신을 알되 스스로 나타내지 않고,
장 : 무릇 압제하지 않아야만 미움받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은 자신을 알지만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주 : 백성을 핍박하고 착취하지 않으면, 백성이 군주를 싫어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성인은 이런 도리를 잘 알기 때문에, 자만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톨 : 어떤 사물도 그를 강요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성자는 자신의 존엄성을 잘 알고 있지만 결코 그것을 감지하지 않는다. 비록 그에게 자애가 낯설지 않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오 : 그들을 억누르지 않기에 그들도 싫증 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인은 스스로 알되 드러내지 않고,
김 : 백성들이 삶을 지겹게 느끼지 않아야만 치자를 지겹게 느끼지 않고 즐겁게 추대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자기는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여운 : 대저(夫) 오로지(唯)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不厭), 그런 까닭에(是以) 싫어하지 않는다(不厭). 그런 까닭에(是以) 성인은(聖人) 스스로 깨닫기에(自 知),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不自見).
의식의 출현과 생각의 출현은 타자에 대한 인지와 자연에 대한 인지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시간에 개념의 유무이다. 인간은 시간에 개념을 갖는 동물이다. 시간에 대한 개념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응력을 우리는 시뮬레이션 능력이라고 한다. 시뮬레이션 능력 중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에 대한 예측 능력이다. 공자는 인의예지를 중시하면서 모든 관계에 대해 법도를 규정해 놓았다. 자연과 인간, 부자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군신 관계, 형제 관계, 이웃 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해도 되는 언사와 하지 말아야 언사를 규정해 놓은 것이다. 위정자와 국민과의 관계는 수직 관계인가? 수평관계인가가 현대 정치학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내가 규정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국민과의 관계는 수직 관계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표 머슴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자리이기에 수직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관료 사회에서는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우두머리 권력자이다. 그러므로 수직적 구조의 최상위에 있다. 관료를 다스리고 지배하지 못하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허수아비라 할 수 있다.
“대저(夫) 오로지(唯)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不厭), 그런 까닭에(是以) 싫어하지 않는다(不厭).” 그러한 대원칙과 사회계약이 이루어진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니 갈등과 분란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또한 대통령은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성찰과 반성하고 뽐내고 드러내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是以) 성인은(聖人) 스스로 깨닫기에(自知),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不自見).
自愛(자애), 不自貴(부자귀). 故去彼取此(고거피취자).
남 : 자신을 사랑하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것이다.
장 : 자신을 아끼지만 스스로 귀하다고 뽐내지 않는다. 그래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주 :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겸허한 태도로 무욕의 정치를 펼친다.
톨 :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들이 존엄성과 자애를 멀리하고 그것들을 감지하거 나 자랑스러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오 : 스스로를 사랑하되 스스로를 치켜세우지 않습니다. 성인은 앞의 것을 버리고 뒤의 것을 택합니다.
김 : 자기 몸을 아끼면서도 스스로 그 몸을 높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광을 발하는 저것을 버리고 무위의 이것을 취한다.
여운 : 스스로 사랑하나(自愛), 스스로 귀히 여기지 않는다(不自貴). 도리어(故) 과시와 잘난 척을 버리고(去彼) 스스로 깨달아 자애를 취한다(取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았으니, 대통령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민을 섬기고 받드니 스스로 자신을 귀히 여길 수가 없다. 내 안의 침팬지 본능을 다스리니 과시하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는 법이다. “스스로 사랑하나(自愛), 스스로 귀히 여기지 않는다(不自貴). 도리어(故) 과시와 잘난 척을 버리고(去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사랑함을 취한다(取此).”
이토록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집권자와 집권 여당은 행하여 따르지 않는가? 자신 안의 침팬지 본능을 버리지 못하니 인간인 다수의 국민이 싫어하는 이유다. 동네 바보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