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오늘날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인정하고 있듯이 세계 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기적적인 부흥을 이룩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이미 교회 성장 신학자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세계적으로 교회 성장의 빛나는 예는 한국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면서 "백여 년 전에는 기독교인이 하나도 없었으나 현재는 기독교인이 인구의 30%에 달하며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와그너의 긍정적인 전망과는 달리 각종 통계자료들은 한국교회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성장 둔화 내지는 가파른 하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제시해주고 있다. 루츠 드레숴(Lutz Dre-scher)는 그의 논문「성장의 끝인가?」에서 한국교회 성장이 그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그렇다면 "무한정의 교회 성장"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던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 내지는 감소하게된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며 새로운 밀레니움을 향해 한국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도전적인 비젼은 어떤 것인가? 이제 한국교회가 또다시 세계 속의 모범 교회로 성장하려면 그동안 숫자 불리기식의 양적인 부흥에 매달렸던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철저한 신학적 반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야만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침체 현상에 대한 원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한국교회의 목회와 신학 사이의 괴리적 현상도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결론 짓고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아울러 창조적 목회를 위한 몇가지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신학과 목회의 상관적 관계최근에 우리 주변에는 신학이 마치 목회의 거침돌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 목소리들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신학을 알면 여러 가지 비판적인 내용 때문에 목회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고 급기야는 교회 성장에 큰 방해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루한 신학적인 논쟁이나 흑백논리식의 비판이 없어야 목회자나 교회가 추구하는 방법대로 교회 운영을 해 나감으로써 성공적인 목회 사역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론적인 신학과 실천적인 목회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극화 현상이 있다. 물론 현대의 신학적인 경향들을 면밀히 살펴볼 때 교회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변적인 논증이나 학적인 연구들에 집중되고 있음은 부인치 못할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는 신학을 필요치 않으며 신학은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목회와 신학이라는 표현은 실천신학에 수반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학전반의 프락시스로서의 일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두 분야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독특성들을 각기 지니고 있다. 신학이란 신앙을 분명한 언어형식과 개념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서 신앙의 기독교적 증언을 전폭적이고도 반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목회는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개인들에게 전달하는 현장의 신학으로서 영적으로 교화시켜 주는 행위와 그 영향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공통분모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신학은 하나의 원리적인 학적 근거를 제시해 주는 반면에 목회는 그것을 실제적인 현장의 언어로 바꾸어 실천을 가능케 해준다. 때로 목회와 신학 사이에는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이질적인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예리한 신학적 비판은 목회의 특수성을 저해함으로서 교회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신학적 기초 없는 목회는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산만하고 무질서하기 때문에 목회 그 자체의 존립까지도 위태롭게 만든다고 말한다.사실상 지금까지 한국교회 안에서는 신학이 교회의 목회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특수계층의 신학자들만의 독점물인 것처럼 간주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한국교회 안에 신학이 존재하고 있느냐라는 원색적인 물음을 제기해야 될 정도로 목회와 신학, 더 나아가서는 교회와 신학의 괴리적 현상은 날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신학이 목회에서 이탈 내지는 이질화되는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신학이란 과제를 교회문제로 다루는 데 등한시하거나 혹은 신학자들이 일반 목회현장의 경험을 무시하고 형식적이고도 추상적인 면에 치우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학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목회의 대상은 각 개인이다. 전자가 불변적인 근본문제라면 후자는 가변적인 현실 문제이다. 양자 사이에는 분명히 서열이 있다. 신학은 현실적인 문제가 근본문제들을 배제할 수 없다는데 주목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보다 강력하게 현실적인 문제들을 취급하는 목회는 다만 신학의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논할 때는 목회의 이론 형성이 신학의 이론들을 변경시킬 수 있는지와 또한 어느 정도 경험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믿음과 목회의 실제가 신학의 이론형성을 비판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만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목회는 신학적 전달의 이론에 역점을 둘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제를 분석하여 인식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목회는 신학이론을 위해서도 한계 조건으로서 중대한 행동체계를 해명하는데, 목회에서부터 신학의 권위를 역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간주될 수 있다. 결국 목회와 신학은 여러 가지 공통적인 접촉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다양한 이질성에서 비롯되는 차이점들 때문에 명확한 관계성을 논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학과 목회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려는 목회자의 안일한 사고방식이 지속되는 한 목회의 신학적 가치와 신학의 목회적 중요성은 결코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학과 목회를 균형있게 조화시키는 것은 우주적 진리와 구체적 진리를 조화시키는 것과 같다. 인간은 우주적인 진리만으로는 진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우주적인 진리가 구체적인 인간의 삶과 고통에 부딛쳐서 인간을 자각시킬 때에만 그것은 우주적인 동시에 구체적인 진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진리의 양면성은 우주적인 로고스가 참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속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한국교회의 목회적 과제는 이 두가지 양면성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신앙과 생활의 연결점을 찾아냄으로써 한국적 상황에 맞는 목회신학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목회(학)의 원리적 근거로서의 신학목회를 신학적 이론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체계적으로 정립시키려면 먼저 목회(학)가 실천신학에 대해 가지는 위치와 기타 신학적 분야와의 관계가 조명되어져야만 한다. 우리가 목회라는 말이 실제로 교회와는 거리가 멀고 교회와 대립적 관계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목회를 전체적인 신학적 관련에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목회학은 실천신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신학과 연관되어져 있는 유일한 학문이다. 그러므로 목회는 신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 참된 목회개념을 파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관적인 의미는 기독교 신학 속에서 확인될 수 있는 어떤 입장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실천신학의 어떤 분야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신학의 여러 입장들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일 수도 있다.목회학에 있어서 신학적인 입장의 기능은 여러 가지 가정들의 계시와 방법의 기본원리들을 위한 대비가 되며 학문적인 연구에 어떤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목회와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것은 그 입장에 대한 궁극적인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신학은 실천하는 자들에 의하여 때로 신학사상에 변화를 초래케 할 수 있다. 목회는 언제나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해 신학은 적절한 해답을 던져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은 이러한 필요에 의해 수립된 현장의 메시지요 신학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항상 목회의 어떤 경우에서부터 얻어진 지식이 얼마나 신학적으로 일반화 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그리고 신학은 언제나 목회의 근거들을 제공하기 위해 풍부한 자료들과 연구결과들을 준비해야만 한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교회의 상황은 점차로 변해져 왔고 목회의 형태와 기능도 수시로 바꿔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융통성 있고 유동적이었던 초대교회에서는 목회가 봉사였으며 이러한 봉사는 섬김의 은사에 기초되어져 있었다(참조. 롬 12:6). 그러나 점차로 교인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교회는 제도적 조직화를 서두르게 되었고 헌신적인 목회기능은 직분과 특권 사상에 종속되어 특정한 지도자에 의해 지배를 받게되는 체제로 바꿔졌다. 그후 강력한 카리스마적 교회 체제는 그레고리(Gregory) 1세가 로마감독으로 취임되면서 확립되었는데, 그는 급변하는 6세기 말의 상황하에서 뛰어난 행정력으로 자신이 속한 교회를 통일시키고 발전시켰으며 흩어졌던 오늘날의 로마 카돌릭 교회를 하나의 단일 교회로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로마 카돌릭 교회의 중앙집권적인 교회체제는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개교회적인 체제로 전환되어졌고 오늘날의 다양한 형태의 교회들로 나뉘어지게 되었다.사실상 모든 교회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한 전으로서의 에클레시아의 본질과 동일하게될 수는 없지만 그것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한편 에클레시아의 본질은 역사적인 교회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교회는 이 땅 위에서 이상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가는데 있어서 임시적인 교량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신약성경에 나오는 에클레시아도 궁극적으로는 한 역사적인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순수한 교회의 본질에 가까운 성도의 원초적인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에클레시아는 모든 역사적 교회의 모형과 표준이 되며 이것에 근거하여 우리는 교회의 미래를 가늠하고 올바른 교회관을 자리매김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4. 교회론에서 본 목회의 신학적 과제앞서 고찰한대로 모든 교회는 동일한 근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연관하여 목회의 특성이나 본질을 단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는 특정한 형태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 고찰에서 신학적 이해의 장으로 넘어가서 현실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과연 교회는 무엇이고 교회에 대한 이해가 목회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규명해야만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목회는 교회의 조직과 그 역사적인 전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져 있다. 목회자는 원래 교회라는 공동체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목회의 성공여부는 그가 봉사하는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로 자신의 타성화 내지는 고정화된 교회관은 교회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키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목회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성공적인 목회를 고려할 때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신학의 한 분야로서의 교회론은 우리들에게 목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지만 우리가 목회에서 어떻게 활동해야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론적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 준다.먼저 교회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라는 말의 어원 자체에 대해 규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교회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크게 두가지 범주로 구분한다면 표상적으로는 "주의 전", 체험적으로는 "주께서 불러낸 사람들"의 뜻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교회의 본질면에서 생각한다면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Communio Sanctorum)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서로 모여 사귐을 나누는 곳이라는 곳이다. 그러나 지상교회의 성도들은 죄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동시에 "죄인들의 교제"(Communio Peccatorum)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와 연관하여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을 "의인이며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명제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신학체계를 수립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수용하고 이를 선포하는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그 언어나 제도, 이론, 실천 등에 있어서는 세속적인 수단들을 사용하고 있고 그 조직적인 기구도 우산구조(umbrella organization)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 자체를 신학적으로 반성하고 행정적으로 부단히 개혁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지금까지 연구되어온 교회의 속성에 대한 정의를 종합한다면 공동체적(communal)인 면 (출 19:5, 사 43:20, 벧전 2:9∼10, 히 11:10)과 인격적인(personal)인 면 (고전 6:15, 엡 1:23), 영적(spiritual)인 면 (마 16:16∼18, 행 2:19, 고전 3:16∼17), 구조적(institutional)인 면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러한 속성들은 서로가 교차되어 상호 분가분리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목회와 연관하여 시급히 해결해야할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 과제는 오늘날 교회성장(Church Growth)이라는 단일 연구분야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장 자체가 교회에 여러 가지 역동적인 현상(dynamic phenomena)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의 근거는 그것이 비록 수의 증가라고 할지라도 신앙사건(faith event)에서 발생되고 있으며 그 성장의 요인들은 교회의 본질적 속성의 4가지 면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 성장의 과정 속에는 신앙의 내재성이 교회의 외적 요인인 역사의식과 사회참여라는 결단을 불러일으키며 신앙의 초월성은 선교적 열정과 구원의 확신을 고백케 만들어 준다.그동안 한국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다. 교회 성장론적인 해석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특정 교단의 의욕적인 교세 확장과 일부 교역자들의 개교회 대형화를 강력히 추구해온 그릇된 교회성장론의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선 숫자의 증가만을 꾀하는 양적 성장(called out)에 비례해서 신앙의 내용을 바르게 채워가야 하는 질적 성숙(called up)이 후속적으로 뒤따라와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확장이나 적극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물량적 거대주의나 성공지향적인 기능주의의 목회성향에서 벗어나야만 할 것이다. 한편 조직신학적으로 분석한다면 한국교회의 성장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신비적 권능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는 성령론이 주로 그 능력의 사역에 집중되고 있으며 삼위일체의 관계 안에서의 신학적 고려는 약하게 이해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조직신학적인 해석을 하는 자들은 이러한 성령 위주의 교회성장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공동체의 경험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물론 우리는 교회의 양적 성장이 질적인 성숙을 훼손한다는 식의 단순 논리를 피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지 양이나 질의 개념으로 환원시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경험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장을 신학적인 범주에 놓고 따진다면 교회성장이라고 하는 역동적 현상에 대한 이해는 한낱 공식화된 교리나 정체된 논리의 수준에 머물게 되고 말 것이다. 이때 그 신앙의 생성과정을 체험의 차원에서 분석한다면 교회성장의 요인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사회적, 문화적인 변화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사회적 책임의 도피, 교회의 신축성이 결여된 전통구조, 교회지도력과 영성의 결핍, 질적 성숙의 외면 등에 기인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반성과 수정을 위한 절대규범으로 놓고 교회의 모든 삶과 활동이 그리스도에게서 왔는가와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향해 행해지고 있는가를 진지히 물어야만 할 것이다.5. 목회와 다른 신학 분야와의 대화목회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사건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목회를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토대와 존립의 타당성, 실제적인 형태 등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목회의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려면 목회가 신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중을 자리매김해 둘 필요가 있으며 이로써 오늘의 목회실천을 이해할 수 있게될 것이다.신학의 한 분야로서의 목회는 필연적으로 다른 신학분야들이 가지는 기능에 대한 문제를 수반한다. 그리고 신학에 관한 일반이론에서는 목회의 특수한 조건들을 고려해야하며 목회와 연관된 신학분야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크게 두가지 주제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교회 이론에 관한 것이다. 목회는 교회의 실천 행동에 관계함으로써 신학은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며(조직신학) 교회는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얻게 되었는가(역사신학), 성서적 전통은 어떤 방향을 지시하였으며 무엇을 가져왔는가 라는 문제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된다.특히 신학의 다른 분야들은 전반적인 과제를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기 때문에 목회의 근거와 동일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며, 진리라는 것이 진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을 때에 비로서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해명해 준다. 또한 현대인들에게 의미있는 방법으로 기독교신앙에 대해 증언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신학은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계시 기록에서 그의 말씀을 주석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교회의 삶이 여러 세기를 거쳐 내려오면서 세계 속에 어떻게 투영되는가의 과정을 살피며, 특히 기독교 신앙이 교회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언어 안에서 표현되어온 방법을 취급하고 있다.그리고 성서 신학은 성경에 나타난 계시를 중심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라는 해석상의 문제를 다루는데, 성서가 뜻하는 내용을 의미있는 말씀으로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과 연관되어져 있다.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된 진리가 증언으로 선포되고 그것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이 담고 있는 진리는 하나님 자신이 항상 새롭게 말씀하신다는 실천적 진리(praktische Wahrheit)를 전제로 하고 있다. 목회는 실천신학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각 개인에게 전달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는 인간의 선포와 청종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을 문제시 하는 것이 곧 목회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제 남은 하나의 주제는 설교에 관한 것이다. 설교는 여러 가지 신학분야들이 취급하는 수많은 기능들을 내포하는 분야로서 무엇보다도 성경적 전통을 상황과 결부시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주석적 학문들의 결과에 따라 해석한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설교는 목회학의 기본적인 중심이 되며 실천신학의 본질적인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설교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복잡한 행위이며 우리가 계속적으로 책임성 있게 증언해야할 궁극적 과제이다. 이상의 두 가지 증언에 있어서 교회 이론은 조직신학과의 대결이 필요하며 실제적인 설교문제에 있어서는 주석과의 대결이 강조된다. 요컨데 실천신학은 이론신학이 정리해준 개념들을 단순히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과정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되돌려 줌으로써 둘 사이에는 불가분리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신학과 목회 사이에는 새로운 접촉점이 설정될 것이다. 신학에 근거한 질서있는 목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타당성 있는 목회이며 그 근거와 형태는 우리가 꾸준히 해결해 나가야만 될 문제이다. 모름지기 목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적인 경건을 압도하여 유일한 가치를 지니는 목회 그리고 인간이 언제나 그것을 청종하게 되는 목회가 되어져야만 한다. 그때에 신학은 목회실천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6. 결론한국교회는 아직도 실천신학이나 목회를 학문으로 인식하는 일에 생소하며 또한 교회 목회의 실천에 논리나 신학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일이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비신학적 목회현실을 극복하고 신학적 목회를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목회의 이론적 정립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목회자는 신학적, 학문적 비판 정신을 가지고 목회 현장에서 실천 신학의 이론에 기초하여 문제에 직면하고 그 정당성을 찾든지 아니면 그 실천 방법을 부단히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한다.무엇보다도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목회의 성공 기준이 교회 확장이나 교인 증가수에 두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것을 전달해야 하는 참된 목회의 사명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는데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온갖 이단 사상들이나 거짓 교훈들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적절히 먹이지 못한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적인 목회에는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적인 공식이 규범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목회의 경험들로부터 인출된 유비(analogie)를 사용해서 "목회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목회는 관계성(Verhaeltnis)에서 비롯된 일종의 경험적 실천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람직한 목회를 위해 단지 이론적인 신학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천의 장에서 올바르게 수행될 수 있도록 부단한 신학적 반성과 목회적 방법을 수행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신학적 기반 없이 개인의 비신학적인 욕구충족에 역점을 두어온 목회형태를 지양함과 동시에 건전한 신학에 근거한 목회가 실천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확실한 신학 위에 고백되어지기를 바란다.<註>(1) 피터 와그너(김선도 역), 「교회 성장을 위한 지도력」(서울: 광림, 1989), p.61(2) "Ende des Wachstums?...... Die Protestantischen Kirchen Sudkoreas in der Krise," Zeitschrift fur Mission 21/2 (1995) pp.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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