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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강. 하나 통달 일체 통달
감사합니다.
대비주수행법회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다라니수행 133쪽이죠.
지난시간에 이어서 제 10분 뒷부분을 먼저 공부하고 11분으로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먼저 115쪽 중간쯤 함께 읽겠습니다.
그때에 관세음보살이 이 신주(神呪)를 설하고 나니 대지가 6종으로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보배로운 꽃이 분분히 비내렸다.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다 환희하시고 천마와 외도는 놀라고 두려워 떨었으며
일체 회중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도과(道果)를 증득하였으니,
혹은 수다원(須陀洹)과를 얻고, 혹은 사다함(斯陀含)과를 얻었으며,
혹은 아나함(阿那含)과를 얻었으며, 혹은 아라한(阿羅漢)과를 얻었으며,
혹은 환희지(歡喜地)에 이르고, 혹은 2지, 3지, 내지 제10법운지(法雲地)를 얻었으며
무량한 귀신과 여러 종류의 중생이 모두 보리심을 발하였다.
'그 때에 관세음보살이 이 신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설하고 나니
대지가 6종으로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보배로운 꽃이 분분히 비내렸다'.
관세음보살님이 이 대비주를 설하시니 대지가 6종으로 진동을 합니다.
또 하늘이 환희해서 보배로운 꽃이 분분히 비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비주 수행 할 때 하늘이 환희하고 대지가 호응합니다.
대지가 무엇이고 하늘이 무엇인가?
몸이 대지요 마음이 하늘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 너, 그, 그녀..나 따로 너 따로,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그 ‘나’ 는 아상이고 개체의식입니다.
따로 따로인 ‘나’ 구분되어 있는 ‘나’ 는 개체의식입니다.
그런데 이 아상 개체의식, 그 아상을 놓아버릴 때, 방하착할 때에,
전체의식인 우주심으로 거듭납니다.
우주심으로 거듭났을 때, 그 자리에서 본다면 우주가 바로 참나입니다.
우주심의 자리에서 볼 때는 이 우주가 바로 참나요, 모든 것은 하납니다, 동쳅니다.
여기에서 동체대비가 나오죠. 일체가 내 세포 구성원입니다.
우주심으로 바라볼 때는, 우주가 내 몸이고, 우주 안에 있는 온갖 생명들이 온갖 것들은 내 세포구성원이다.
그래서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동체대비죠. 한 몸으로 사랑하기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아상이 없는 분이니까 우주가 관세음보살님 몸이요, 우주심이 관세음 보살님의 마음입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이 대비주를 설하실 때 대지가 진동합니다.
우리가 대비주를 외울 때는 몸이 진동합니다, 생명력이 깨어나고.
우리가 대비주를 외울 때 왜곡된 몸 부위가 바로잡힙니다.
치유력이 활성화가 되고 뭉쳐져 있던 응어리가 풀립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이 대비주를 설하실 때
‘하늘이 환희해서 보배로운 꽃이 분분히 비내린다’,
이렇게 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비주를 외울 때는 우리 마음에 보배로운 꽃이 핍니다.
우리가 대비주를 외울 때 우리마음에 보배로운 꽃이 피어나는데,
그 보배로운 꽃은 감사의 꽃이고 자비의 꽃이고 지혜의 꽃이 피어납니다.
우리가 대비주를 외울 때 마음에 이렇게 꽃이,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활짝 펴서 꽃잎이 분분이 비가 내리게 되죠.
대비주 수행으로 우리 마음에서 핀 꽃은, 마음에서 핀 꽃은 현실에서도 피어납니다.
우리들이 주로 ‘유심소현' 이다, 마음에 있는 것은 현실로 나타난다, 이렇게 공부를 여러차례 했죠.
공이 색으로 나타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꽃이 피어납니다.
마음에서와 같이 현실에서도 꽃이 피어납니다.
대비주를 외우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피어나는 감사의 꽃 자비의 꽃 지혜의 꽃은
현실에서는 건강 풍요 아름다움 행복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다 환희하시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님 이 대비주를 설하실 때 환희하시고, 이런 말씀인데,
시방 모든 부처님의 서원이 뭡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서원은 ’일체 생명들의 행복‘입니다.
대비주 수행을 할 때에 우리는 지혜의 광명 자비의 광명이 드러나고 빛을 발합니다.
건강해지고 풍요로와지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한 삶이 구현됩니다.
대비주 수행으로 일체의 생명들이 행복하게 되었으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환희하시는 거죠.
‘천마와 외도는 놀라고 두려워 떨었으며’ 이렇게 설해지고 있습니다.
천마와 외도가 무엇일까요? 천마와 외도는 아상입니다.
천마가 아상입니다. 아상이 천마예요.
외도는 아상을 위주로 삼고 하는 ‘주의’, ‘사상’, 이것이 외도입니다.
그렇다면 천마와 외도의 권속들은 뭘까요?
천마와 외도의 권속은 탐진치 삼독심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심이 몰고 다니는 것은 천마와 외도의 권속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탐진치 삼독심이 몰고 다니는 것은 번뇌 망상 입니다.
집착이요 분노요 어리석음입니다. 천마와 외도의 권속들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마음짐이 생겨나고 몸병이 생겨나고 환경에 재앙이 일어나고 삼악도가 펼쳐집니다.
팔만사천가지 번뇌 망상, 일체의 병고액난이 천마와 외도의 권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비주 수행으로 아상을 놓아버릴 때 천마가 사라져 버리죠.
천마 아상이 사라질 때에 거기에서 비롯되는 집착이니 분노니 어리석음이니
온갖 번뇌 망상들이 따라서 자취를 감추게 생겼고
또 이들이 몰고 다니던 마음짐이니 몸병이니 환경의 재앙이니
일체의 병고 액난들이 함께 사라지게 생겼으니까,
자기도 사라지고 자기의 권속들도 사라지게 생겼으니까,
천마와 외도가 놀라고 두려워 떨었으며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우리가 독송할 때에 천마와 외도가 실제로 놀라워 두려워 떱니다.
아상으로 비롯된 탐진치 삼독심으로 비롯된 모든 것들은 놀라워 두려워 떨어서,
어떨 때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는 것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몸병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는 분들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거나,
혹은 마음속의 갈등이 심한 분들은 갈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거나,
또 아상이 자리를 ,천마가 자리를 내주기 싫어하기 때문에
온갖 핑계를 대서 이런 자리에 안 올라고 하죠.
대비주수행을 멈출라고 아주 몸부림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마와 외도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지극하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계속해서 외울 때에
끝내 천마와 외도 그리고 천마와 외도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병고액난들은 물러서게 되어 있다.
일체 회중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도과를 증득하였으니
혹은 수타원과를 얻고 혹은 사다함과를 얻고
혹은 아라함과를 얻고 혹은 아라한과를 얻었으며
혹은 환희지에 이르고 혹은 2지 3지 내지 제10법운지를 얻었으며
무량한 귀신과 여러 종류의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발하였다.
소승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계위,
그리고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계위를 모두 성취한다는 대목입니다.
이 대비주수행은 수행을 처음 시작한 분부터 가지가지의 수행을 두루 섭렵한 분들까지
그 단계 단계 필요한 도과를 증득할 수 있는 수행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대비주 수행으로 어떤 분은 신심을 내어서 발심을 합니다.
이 대비주 수행으로 어떤 분은 과거의 업장을 소멸하고
또 어떤 분은 현세의 소원을 이루고 또 어떤 분은 깨달음을 얻고
결국 성불하게 되는 수행이 이 대비주 수행이다.
우리들이 대비주수행법회에 동참하셔서,
함께 더불어 수행할 때도, 어느 날은 마음짐을 벗습니다.
어느 날은 몸병이 낫습니다.
또 어느날은 참회가 일어나고 또 어느 때는 마음으로 부터 화해가 일어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주변이 편안해집니다. 일이 풀어집니다.
이렇게 그때 그 때에 자기단계에 맞는 가피가 일어나고 성취가 일어나는 것이 대비주 수행입니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내용은 대비주수행은 완전한 수행법이다 하는 내용입니다.
소승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수행계위 대승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수행계위를 다 성취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죠.
대비주 하나로 일체를 통달한다는 말씀입니다.
수행법을 그래서 바꿀 필요가 없죠.
우리들이 대비주수행을 하다보면
어떤 분들은 지루하기 때문에 다른 수행을 좀 재밌게 하는 것이 어떨까?
이런 마음이 일 때도 있습니다.
맨 날 같은 다라니를 반복해서 독송하면 좀 지루할 때가 있죠.
그래서 좀 안 지루한 것은 없을까?
이렇게 다른 수행법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지루해하는 것을 닦을 절호의 기회요.
어떤 이유 때문에 내가 이 수행을 멈추고 다른 수행을 하겠다 라는 마음이 들 때,
그 어떤 이유가 바로 오랫동안 끈질기게 반복해서 따라다니고 있던 자기의 닦을 거리이다,
이렇게 알고, 그것을 닦을 때라고 아시면 된다 이 말입니다.
가지가지 핑계가 일어날 수 가 있어요.
그런데 그 가지가지 핑계는 대비주수행할 때 만나는 그 가지가지 핑계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나는 핑계거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럴 때에 다른 수행법으로 바꾸거나,
이 수행을 멈추지 말고 그것을 바로 알아서 그것을 닦을 때다 이렇게 아셔야 된다 이 말입니다.
대비주수행하나로 일체를 통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추가로 다른 수행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는 말씀이죠.
이 대비주수행으로 과거의 업장을 소멸하고,
현세의 소원을 이루고, 깨달음을 이루고 성불한다 하는 절대적인 신심으로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대비주수행만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이야기요,
이런 믿음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수행은 아닌가? 다른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한 가지 수행을 택해서 이 수행으로 나아갈 때는
이 수행만으로 내가 모든 수행계위를 성취할 수 있다 하는 절대적인 신심을 가지고 해야,
시비 분별 자기한정, 그것을 넘어설 수가 있는 수행을 할 수가 있는 거요.
다른 수행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참선을 한다거나 혹은 다른 경전독송을 한다거나 절수행을 한다거나 가지가지 수행이 많죠.
그런데 그 어떤 수행을 할 때라도 이 수행으로 내가 성불하겠다 라는 절대적인 신심으로 해야
작은 나를 넘어서 큰 나를 만납니다.
아상을 넘어서 참나를 만납니다.
이럴 때, 이럴 때에 깊이 내재되어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잠재력이 폭발이 되고
지혜와 자비 광명이 빛을 발하는 것이지,
조금 힘들다고 그만두고, 이것은 나 한테 안 맞는가보다 하고 바꿔버리고
이런 분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일을 할 때도 아마 그렇게 살았기 쉽습니다.
이 일 아니면 다른 일, 이거 아니면 다른 거 기웃거리고, 바로 그 때에 그것을 닦을 거리다.
대비주수행의 요령은 몇 번 설명을 드렸지만,
먼저 대비주를 지송하는 것, 하루에 49독 이상을 하겠다고 정한다거나 그 이상을 정하기도 하죠.
그 다음 두 번째는 오늘 할 일을 통해서 수행한다.
오늘 할 일을 통해서 어떻게 수행하는가? 일을 즐겁게 합니다.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능력을 향상해나간다.
그리고 그 일과 관련된 분들에게 이로움을 줘서 복을 지어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오늘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수행하는 방법은,
내가 만나는 이분이 본래불이다, 이렇게 대하는 것이죠.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양을 올립니다.
이렇게 간단하죠.
입으로는 부지런히 대비주를 지송하고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만났을 때 공양을 잘 올리는 것 이것이 대비주수행의 요령입니다.
대비주수행을 오랫동안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없다,
향상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럴까? 하는 분들이 가끔씩 있어요.
‘모죽’ 들어보셨습니까? 모죽.
대나무 이름,
이 모죽은 우리나라 또 중국 일본에 자생하기도 하고 또 심기도 하는 대나무입니다.
이 대나무 모죽의 키는 30미터 정도 된답니다.
그 대나무 숲에는 아주 청량한 바람이 불고 산책하기가 좋죠.
TV광고도 많이 찍죠, 그 모죽 숲에서.
그런데 이 모죽은 심고 나서 5년 동안은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죽순이 자라지를 않는다는 거죠.
성장을 멈춘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났을 때는 자라기 시작하는데,
쑥쑥 자라는데, 하루에 70센티씩 자라서, 불과 6주, 한 달 반이죠,
한달만에 삼십미터를 자란다는 거요.
자태가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고 위엄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모죽이.
그렇다면 이 모죽이 5년동안을 놀기만 했을까요?
뭘하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지냈을까요?
5년 동안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뿌리를 깊이 깊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30미터 높이의 키 그리고 화려하고 웅장한 그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그 힘을 감당하고 바람을 막기 위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뿌리를 내리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었던 것이죠.
뿌리의 길이만도 사방으로 합한 길이는 10리 정도 된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5년 동안이나 성장이 멈춘 듯 보이지만
그동안 땅 속 깊이 사방으로 합해서 10리나 되는 뿌리를 내리면서,
내실을 다지다가, 시절인연인 다가왔을 때, 때가 이르렀을 때, 준비가 되었을 때,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거요.
우리들의 수행도 이와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은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닐까?
향상이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 이렇게 의심이 될 때도 있지만,
지성심으로 자비심으로 신심으로 수행하는 한은
우리내면의 뿌리가 깊고 깊이 내려지는 시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자, 다음은 다라니수행 133페이지 제 11분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때에 대범천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리하고 합장하면서 관세음보살님에게 말씀드렸다.
예, 대범천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범천왕은 ,대범왕, 범왕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욕계 색계 무색계 중에서 색계 초선천의 왕입니다.
바라문교에서 이 대범천왕이 천지만물을 창조한 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대목입니다.
“거룩하시옵니다.
대사이시여 제가 옛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무량한 부처님 회상에 참예하여 오는 동안 가지가지 다라니를 들었사오나
아직 이와 같은 광대무애한 대비다라니 신묘장구를 들은바가 없사옵니다.
대사이시여, 바라옵건데
저를 위하여 이 다라니의 상모(相貌)를 말씀하여주옵소서.
대중이 모두 함께 듣고자 하옵니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대비주의 이름이다, 지난시간에 공부한 내용이죠.
그리고 우리의 본성을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다시 복습을 한다면, 신은 대비주라고 할 때의 주(呪) ,이것이 신입니다.
법신 보신 화신 중에서는 법신에 해당되는 신입니다.
묘는 대비주할 때의 대비에 해당됩니다. 보신입니다.
또 장구는 450글자, 제목까지 합해서,
우리의 본성을 또 진리를, 대비주를 450글자로 나타낸 화신이다,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대다라니는 총지라고 했죠.
모든 뜻을 다 갖추고 있다, 모든 뜻을 다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다라니에 모든 뜻이 다 들어 있다, 모든 뜻을 다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다라니에 모든 뜻이 다 들어 있다.
여기선 상모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상모는, 글자 뜻으로 본다면, 모양, 생김새가 상모입니다.
대비주가 무엇입니까? 라고 할 때에, 그 무엇이 상모입니다.
또 본심이 무엇이냐? 본심이라고 한번 생각을 해봐도 좋습니다.
대비주 또 우리의 본성은 모양이 없습니다.
색깔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범천왕의 질문에 따라서
우리들이 의지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님이 상모를 설명하고 계시는 대목이죠.
그 다음 대목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범왕에게 말씀하였다.
“그대가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나에게 이와 같이 묻는구나.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듣거라.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간략히 말하리라 .
대자비심(大慈悲心) 이것이 다라니의 상모이며”
예, 대자비심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상모라는 말씀입니다.
자비심이 건강과 풍요와 아름다움과 행복을 창조합니다.
옛날 옛적에 간호원,
요즘 말로는, 간호원 두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요즘의 국립병원쯤 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라의 녹을 먹는 일이죠.
환자가 많거나 적거나간에 봉급은 똑 같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혹은 전염병이 돌 때는 환자가 수도 없이 밀려옵니다.
참 고생스럽겠죠.
그 두 명중에 한 명은 그 일이 참 싫었습니다. 마지못해서 일했습니다.
봉급을 받기 위해서 하기 싫었지만 했습니다.
같은 봉급을 받으면서 전쟁이 일어나서 전염병이 돌 때는 더 힘들고 더 싫겠죠.
환자들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망스럽습니다.
결국은 환자들이 몰려왔을 때에 그냥 나가버렸어요.
나온 목적은 돈을 많이 벌기위해서,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서 일을 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나와서는, 이 목적이 큰 돈을 버는 것이었는데, 마음대로 안됐어요.
큰 돈을 벌겠다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이분은 환자들을 피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기 싫어하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았죠.
오직 돈만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또 한 명은 자비심으로 일했습니다.
환자들을 자비심으로 대하고 일을 즐겁게 하고 환자들이 회복되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었습니다.
환자들의 쾌유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끊임없이 능력개발을 했었죠.
이분은 하루하루가 복이 쌓이는 삶이죠.
이렇게 살다가 행복하게 환자를 돌보다가 그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환자들을 사랑했고
또 그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한평생을 자비행을 실천하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싫어하면서 돈을 목적으로 환자들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고 나와서
돈 버는 목적으로 살다가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고 죽었던 그 분은
이번 생에서의 목적이 요양원을 잘 지어가지고 큰돈을 한번 벌어봤으면 하는 것이 꿈이래요.
그래서 그 요양원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샀습니다.
근데 땅을 사 놓고 보니까 이리저리 걸려 있는 문제들이 많아요.
요양원을 지을 수도 없고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생겨서 그것을 팔았습니다.
팔고 나서는 새로운 장소에 새 땅을 사가지고 준비를 했는데
그것도 문제가 생겨가지고 지금 수 년 동안 고생만 실컷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비심으로 일을 사랑하고 환자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그 간호원은
이번 생에서는 ,젊을 시절에 이번 생에서도 간호원을 했어요.
시집을 잘 갔는데 아주 일이 술술 잘 풀려요.
집 주변의 땅을 자꾸 사게 돼요. 다른 사람은 살수도 없는 땅이야, 자기집 주변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이렇게 땅을 자꾸 사게 되어서 큰돈을 벌게 됐고, 아주 편안하게 잘 살고 있어요.
이렇게 살면서 또 자비행을 끊임없이 실천을 하면서 삽니다.
주변의 칭송을 받고 주변사람들도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줍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실제로 진행되는 일이예요.
그래서 누구는 똑 같은 국립병원에서 똑 같이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누구는 이번생에서 이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모습으로 살고,
또 누구는 뜻은 높은데 그 뜻을 펼칠 수가 없게 되고 고생만 실컷 하게 되는가.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비심’이죠, 자비심.
자기 일을 사랑하고 그 일과 관련된 분들에게 자비심으로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산 분들은,
그 삶 자체가 행복하고 또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도 이렇게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리는 그런 과보를 받게 되더라 하는 얘기요.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상모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대자비심입니다.
대자비심은 사랑이죠, 사랑, 사랑인데, 자비가 사랑인데,
'자'자 앞에도 '대'자를 붙이고 '비'자 앞에도 '대'자를 붙여,
대자대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옳고 그름 또 좋고 싫고 이렇게 나누어가지고.
옳은 것은 사랑하고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에고 사랑입니다. 중생사랑입니다.
그런데 대자비심은 옳고 그름 호호(好好) 불호(不好)를 다 포함애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대자비심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참마음이 본래로 대자비심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거요.
신묘장구대다라니수행으로 우리 본 마음을 회복하게 될 때에는 이렇게 산다는 거요.
사랑밖에 몰라요. 왜냐하면 내 마음이 사랑 밖에 없습니다. 사랑만 실천합니다.
미움이니 화니, 탐진치 삼독심으로 일어나는 온갖 그 어두운 먹구름은 참마음이 아니라는 거요.
신묘장구대다라니로 우리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그냥 나라는 분별 너라는 분별, 이 나누는 분별이죠.
옳고 그르고 잘났고 못났고 등등 온갖 분별들을 다 놓아버리게 되면 그냥 텅 비어버립니다.
안 팍이 텅비어 버리고 나와 남이 텅 비어 버리고 이렇게 텅 비어버려서 공이 되었을 때, 진공이죠.
텅 비어서 그냥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없는 곳이 없이 가득하게 영원히 있는 것이,
이게 대비주의 상모인데,
첫 번째로 대자비심 이라는 거요, 대자비심.
텅 빈 가운데 변하지 않고 영원한 그 본심, 그것이 대자비심 이라는 거요.
그래서 진실은 사랑만이 진실입니다. 사랑만이.
사랑 아닌 것은 전부 다 지나가는 먹구름에 불과하다,
전부다 허상에서 나온 허상에 불과합니다.
사랑만이 진실이다. 사랑만 남겨놓고 그래서 다 버려야 합니다.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랑마저 버릴 때 대자비심이 드러나는 거요.
Only love is real. 사랑만이 진실이다.
real은 여기서 ‘참’ ‘진짜’ ‘정말’ 이런 뜻입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겪었던 일 가운데 사람과 사람사이 있었던 일 가운데
미움이니 서운함이니 섭섭함이니 이런 것들은 전부 다 버립니다.
대비주 지송하다보면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텅 비어 버렸을 때 사랑이 뚜렷해진다.
임사체험이라는 용어가 있죠.
임사체험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안 죽었으니까 살아났겠죠?
죽은 것 같았는데 살아났어. 임사체험입니다.
임사체험을 한분들을 만나서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해서 논문을 발표한 분이 있는데,
에이먼드에이무디 라는 분입니다.
이분의 말입니다.
‘임사체험을 하고 살아난 사람들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을 배우는 일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이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것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랑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랑이 진실이다 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고 사랑을 주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귀한 일이다 이 말입니다. 그
리고 사랑 아닌 것은 가지고 있으면은 이로운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을 다, 사랑만 남겨놓고,미움이니 원망이니 다 놓아버렸을 때
자기한테도 이로운 일이고 다른 분한테도 이로운 길입니다.
그리고 데이빗샤피로 라는 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그러니까 임종하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듣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뭐라구요?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한다는 거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분 한테 여러분들이 사랑합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죠.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거요.
상대방이 죽기 직전에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할라고 맨 날 아껴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죽음 직전에 있는 분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말이 뭐라구요?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가장 하고 싶어 한다는 거요.
여러분들이 꼭 눌러 참았다가
죽을 때가 돼서 사랑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라고
두고 두고 아껴두는 분 있죠.
그런데 사실 그 때 가서는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 해야 될까요? 지금 하십시오.
지금 멀리 떨어져 있는 분이 있다면 문자를 날리면 돼요,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상모중에 첫 번째가 대자비심입니다.
우리들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 것이 우리들의 수행인데
이 대비주를 지송할 수록 사랑이 자꾸 회복이 되어갑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데, 처음에는요,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내가 이 대비주수행을 잘 해서,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수행을 잘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알고,
부지런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는데도
그 사람 생각이 날 때마다 오히려 미운 짓한 것만 자꾸 생각이 납니다, 초기에는.
그래서 생각하기를,
내가 대비주수행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 될 때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미운 짓을 한 그 기억이
내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깊이 자리 잡고 있고 또 숨어 있기도 한 것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울 때 그것이 떠오르는 거요, 드러나는 거요.
이렇게 드러났을 때에 계속 대비주를 지송하면
그 미웠던 기억들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그냥 없다 이 말이요.
다 놓아버리게 된다 이말이요.
그 어떤 기억들이 잡념의 형태로 생각이 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오직 신묘장구대다라니만 또렷하게 지송을 해나갈 때에
그 기억들조차도 까맣게 없어져버립니다.
큰 일 났다, 이제 그죠?
오늘 대비주수행을 열심히 해서 옛날 만났던 사람들 얼굴도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 나한테 서운하게 했던 거, 돈 빌리고 안 갚았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렇게 될 거 같죠. 그
런데 그 번뇌망상에 찌들어 있던 그 기억덩어리들이 다 사라지고 맑혀지고 닦여지고 했을 때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또렷하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요.
다 놓아버렸을 때, 이럴 때,
산은 산대로 몰은 물대로 바로 보이는거요.
이게 정견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끊임없이 지송했을 때 이렇게 되는 거요.
있는 그대로를 바로 보는데,
있는 그대로 바로 보니까,
우리 한명 한명 본심이 뭐라구요? 대자비심이더라 이 말입니다.
겉모습이 어떻게 보이고 어떤 거친 모습으로 나한테 대하고
또 나한테 실제로 피해를 끼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아상 때문에 그 사람의 두려움 때문에,
뭔가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모습을 보였을 뿐이지,
그 사람의 본심은 사랑이다 대자비심이다 이것이 바로 보는 그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상모가 대자비심이기 때문에
우리들 마음속에서 미움이 일어나고 번뇌망상이 일어날 때는
이것을 그냥 흘러가는 먹구름에 불과하다 거기에 끄달려서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죠.
대자비심으로 대비주수행을 하라.
예, 다음시간부터 나머지 상모를 공부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대자비심이 진리입니다.
대자비심으로 살 때 건강과 풍요와 아름다움과 행복,
우리본래의 삶의 모습이 현실에서 현실에서 구현이 됩니다.
지성심 자비심 신심으로 수행을 잘 해가십시다.
대비주는 언제나 최상의 길을 여십니다.
함께 정진하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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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장보살님 정말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와 외도의 권속을 번뇌망상으로 가르침 주시는 스님의 법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_()_
저도 TV법문을 통해 천마, 외도 법문을 들으며 전율이 일어났었어요.
이렇게 녹취법문을 통해 다시 공부할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금장보살님..._()_
감사합니다.
늦게라도 한번더체크할수있게되어 머리숙여감사드립니다..
다리는좀낳아지셨나 궁금합니다..
조심하시구요~담에뵐게요^^
스님법문 다시 읽을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