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랑과 憤怒
"흐흐흐...흙 속의 진주(眞珠)로군.
일개 시비들 속에이토록 아름다운 계집이 있었다니...흐흐흐..."
잔비(殘飛)는 총단 총순찰의 호위위사(護衛偉士) 사인(四人) 중 일인(一人)이었다.
가느다란 사목(蛇目)에 뺨에 길게 난 검흔(劍痕)과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는
전체적으로 강인하면서도 잔혹한 인상을 풍겼다.
지금 그의 면전(面前)에는 한 명의 청의소녀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헌데 청의소녀는 다름아닌 청화로 변신한 빙옥교가 아닌가?
바로 빙옥교가 잔비의 탐욕스런 눈길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잔비의 입에서 억양없는 음성이 차갑게 뱉아졌다.
"벗어라."
빙욕교는 전신을 가늘게 떨며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 바닥은 얼굴이 환희 비칠 정도로 매끄러워 동경(銅鏡)을 방불케 했다.
잔비의 억양없는 음성이 다시 토해졌다.
"나는 두 번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빙옥교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걸 느꼈다.
대체 이 돌연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그시간,
오송학은 내당 소속 단주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당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백발철기대였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자들인가?
어떤 자들이기에 총단의 도남강이 그토록 큰 반응을 일으킨 것일까?
그는 걸으며 자죽단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죽단주, 네가 보기에 백팔철기대는 어느 정도라 생각되는냐?"
자죽단주의 두 눈에 일순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일전에 당주께서 총단에 가셨을 동안 그들의 시범이 있었습니다."
"시범..?"
"그렇습니다. 본부(本府)에 의해 붙잡힌 본래의 탈혼도 칠백 이십 명 잔당들과의.."
"음..그들의 무공은 대단하다 들었는데.."
"물론입니다. 헌데, 백팔철기대 중 단 한명...
그 한명이 포위당한 상황에서 칠백 이십명의 잔당들과 맞서 싸웠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일방적인 도륙이었습니다."
"일방적?"
"그렇습니다. 백팔철기대 단 한 명이 칠백 이십 명을 불과 일각(一刻)만에..
그들 중 한 사람의 힘이 그럴진대
백팔 명이 동시에 움직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고금(古今)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미증유의 거력(巨力)을 발휘할 것입니다."
오송학은 내심 아연해지고 말았다.
일인(一人)이 단 일 각만에 칠백 이십 인을 상대했다니
실로 믿을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절대 놈들을 이곳에서 빠져 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절대..'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들은 내일 날이 밝는대로 이곳을 떠난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일말의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닌터..
'우선 내당을 들른 후 혈봉각주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오송학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빙옥교는 아랫 입술을 피가 나도록 꼭 깨물었다.
어찌해야 하나?
저 욕념(慾念)에 사로잡힌 자와 일전(一戰)을 불사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자신이 청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만다.
청화는 물론이고 내당의 모든 시비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오송학이 있다고는 하나
어찌 두 사람의 힘으로 탈혼도 전체의 힘과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아아..!'
욕념에 사로잡힌 자의 탐욕스런 눈은 이제 지척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망설이면 저 자는 두 번 말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그래..어쩔 수 없어.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피보다 진한 원한 뿐이야..
한 순간의 치욕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오송학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녀는 자신이 오송학을 미워해왔다고 믿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았던 그가 아닌가.
'바보처럼..내가 왜 그놈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거지?
그녀석은 내 몸따위는 어떻게 되든 아랑곳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시간,
오송학은 빙옥교를 부르기 위해 태사의에 앉아 손잡이 돌출부를 누르고 있었다.
이내 월동문이 열리고 시비차림의 청의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사옵니까?"
'음..?'
오송학의 두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청화는 어디 갔느냐?"
"내빈청(來賓廳)으로 들었사옵니다."
"내빈청으로..? 무슨 일로 그곳엘 갔느냐?"
청의시비의 얼구레 여린 홍조가 떠올랐다.
"총순찰의 호위위사 중 한 분이신 잔비님의 수청(守廳)을 들기 위해.."
"뭣이?"
오송학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청의시비는 그런 그의 행동을 예상치 못했던 듯 놀라며 주춤 물러섰다.
"다..당주님.."
오송학은 비로소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다시 태사의에 주저 앉았다.
'침착하자! 이곳은 마굴(魔窟)의 심장부가 아닌가?'
그는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녀 스스로 갔느냐"
"저 그것이.. 언제나처럼 잔비님께서 당주님을 뵙기 위해 오셨다가..
청화를 발견하시고는 내빈청으로 데려가셨사옵니다."
"알았다. 부용단주를 속히 들라 해라."
스르르..
빙옥교는 떨리는 손으로 옷고름을 풀렀다.
박속같이 흰 속살이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차가우면서도 퇴폐적인 미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예 철저해지고자 했음인가?
그녀는 이미 수치심을 잊은 듯 미소를 띈 얼굴로 잔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음..
잔비의 입에서 마른 신음이 흘러나왔다.
빙옥교는 이때 상의를 벗어 던지고 있었다.
현란한 어깨의 선이, 봉긋한 가슴의 부위가 드러나자
잔비는 그답지 않게 몸을 가늘게 떨었다.
사르르..
이번엔 치마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빙옥교는 흘러내린 치마로부터 앙증맞도록 조그만 두 발을 빼냈다.
이제는 엷디 엷은 나삼(羅衫)만을 걸친 상태..
황촉불 아래 여인의 눈부신 동체는 이미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송학은 부용단주가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나를 대신해 혈봉각주를 만나라. 만나서 막아야 한다고 전하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그렇게 전하기만 하면 되나요?"
"그렇다."
"그전에 우선 이걸 받으시지요."
그녀는 오송학에게 한 장의 쪽지를 건네주고는 몸을 돌렸다.
오송학은 멈칫하며 즉시 쪽지를 펼쳐 보았다.
<대사(大事)의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막대장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적었읍니다만
신호는 대의정천(大意正天)임을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오송학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들었다.
숨을 세력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른다.
허나 뜻은 분명 자신과 같다.
그리고 쪽지의 내용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탈혼도 내부 깊숙이까지 잠식해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계획은 오랜 시일을 두고 진행되어 왔을 것이며,
이제 바야흐로 도화선(導火線)에 불을 당기고자 하는 것이다.
오송학은 자신은 실로 우연치 않게 그들 틈에 끼었으나,
어쨌든 그는 이미 그들의 축(軸)이며,
탈혼도가 암흑마천의 세력 중 하나임이 밝혀진 이상
그들과 행동을 같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에 앞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자신의 여인,
이미 마음속으로도 확정지은 자신의 여인이
낯선 사내에게 당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와락!
잔비는 빙옥교가 치마를 벗자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던지
그녀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서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가슴으로 뻗치고 있었다.
빙옥교의 얼굴에 일순 갈등의 빛이 빠르게 스쳤다.
그녀는 갑자기 짤랑짤랑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 서두르시기는.."
그녀는 그의 몸을 살며시 밀쳤다.
"우선 옷부터 벗으셔야지요."
"그... 그렇군."
잔비는 그녀를 놓아주고 재빨리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을 벗으면서도 그의 시선을 빙옥교의 나삼 새로 드러난 몸의 굴곡을
세심히 쓸어보고 있었다.
이윽고 근육질의 건장한 구리빛 동체가 황촉불 아래 드러났다.
잘 정제된 몸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신엔 무수한 상흔(傷痕)이 거미줄처럼 엉겨 있었다.
빙옥교도 이제는 어쩔수없이 나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사르르...
엷디 엷은 나삼이 매미가 허물을 벗듯 여인의 교구를 벗어났다.
순간 드러나는 황홀하도록 눈부신 나신...
잔비는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놀라워.. 어찌 저토록 빼어난 몸매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절로 숨이 가빠왔다.
두 눈도 불게 충혈되었다.
이제는 한시도 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잔비는 와락 빙옥교의 몸을 끌어 안았다.
"오오.!"
오송학을 그야말로 빛살인 양 수목(樹木)과 바위 사이를 스쳐 날고 있었다
. 지금 그가 펼치고 있는 신법은 고금제일의 분광환영표(分光幻影飄)다.
허나 지금의 그에겐 분광환영표가 고금제일의 신법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제기랄! 망아존자(忘我尊子)는 이따위 것을 신법이라고 만들었단 말인가?'
툭!
잔비의 억센 손에 의해 앞가리개가 뜯겨져 나갔다.
그러자 터질듯 팽팽한 빙옥교의 젖가슴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잔비는 상체를 다소 들며 충혈된 눈으로 그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차마 손을 대기가 아깝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가슴이다.
그는 지금껏 숱한 여인들을 겪어 봤으나
이토록 보는 이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빙옥교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나는 청화라는 시녀일 뿐이다! 복수...복수를 위해!'
그녀는 전신의 힘을 뺐다.
잔비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잔비의 충혈된 두 눈에 폭발적인 색욕(色慾)이 스쳤다.
이제 모든 것은 뜻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저 계집은 개게 자신의 몸을 내맡겼지 않은가?
"흐흣...극락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맛보여 주마!"
잔비의 입가에 욕정어린 웃음이 피어올랐다.
"나 잔비의 방중술(房中術)에 녹아나지 않은 계집은 지금까지 한명도 없었느니라."
마침내 그의 손이 채 손바닥만큼도 안될 고의를 잡는 순간이었다.
콰앙!
돌연 문이 박살날 듯 거칠게 열렸다.
잔비의 고개가 문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홱 돌려졌다.
상대를 알아본 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아무리 친구라고 아무 때나 들이닥쳐도 되는 것인가?"
문 앞에 선 오송학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을 빙옥교를 향해 날아가 꽂혀 있었다
. 다급한 기색이었던 그의 시선이 급격한 분노의 빛을 떠올린건 그때였다.
'이...이럴 수가..'
빙옥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일체의 반항의 기색도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네.. 네가..."
오송학은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순간 빙옥교의 눈이 흠칫 뜨여졌다.
귀가 없지 않는 한 어찌 오송학의 음성을 듣지 못하랴.
잔비의 입이 다시 짜증스럽게 열렸다.
"왜 그러나? 형당주, 나를 보려면 잠시 후에 보면 될 것이 아닌가? 어서 나가주게!"
오송학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은 텅 비어진 듯 싶었다.
아아...
이것이 아니었는데..
네게 준 내 마음 속의 정(情)이 이토록 하찮았단 말이냐?
너의 희생이...
너의 차가움이..
아니 너의 모든 것이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좋았거늘..
너는 복수라는 명분만을 내세워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짓밟아야 했단 말이냐?
크크ㅋ...
계집이여..
복수에 눈이 먼 미친 계집이여..
저벅... 저벅...
오송학은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를 말해주는듯 바닥엔 세 치 깊이의 족적(足跡)이 새겨지고 있었다.
잔비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오송학은 이내 그들 앞에 다가섰다.
그는 잔비를 거칠게 밀어내고 빙옥교를 내려다 보았다.
짝!
그의 손이 매섭게 그녀의 뺨을 후려갈긴건 그 직후였다.
빙옥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않은채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허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 정작 이순간 그녀는 분노대신 어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오송학은 괴소를 흘리며 잔비를 돌아 보았다.
"크ㅋ.."
잔비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형...형표(荊豹)... 자네 도대체 왜..."
"크ㅋ.."
오송학은 여전히 괴소를 흘리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잔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가 무러서면 물러서는 대로 오송학은 다가들고 있었다.
쿵!
잔비의 등이 벽에 부딪쳤다.
그때였다.
오송학의 우수가 번쩍 허공을 가른 것은,.
잔비는 안색이 대변해 급히 대항하려 했다.
허나 짓쳐드는 손속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것이었다.
푸욱!
"으윽! 자...자네..."
잔비는 오송학의 손이 자신의 아랫배에 파고듬을 느끼며 불신어린 신음성을 토했다.
비로서 그는 퍼뜩 깨달아지는게 있었다.
"과거의 형표라면...이렇게 빠를 수가 없거늘...이제보니 네 놈은 가짜.."
그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오송학이 그의 뱃속을 파고든 손으로 발공(發功)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잔비는 내장이 완전히 파열된채 뒤로 날아갔다.
더 볼것도 없이 즉사였다.
오송학,
그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눈길로 빙옥교를 돌아 보았다.
빙옥교는 여전히 얼어붙은 듯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오송학은 그녀를 잠시 내려다 보다 거칠게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문을 향해 미친 듯이 몸을 날렸다.
빙옥교는 그가 사라지고 난 후에서야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얼마후 내당의 수하들은 난데없는 오송학의 명령을 받았다.
청화인지 뭔지 하는 그 계집을 오늘 밤새도록 거꾸로 매달아 놓아라! 그리고 술을 가져와라!
* * *
두 사람,
하나는 검고(黑), 하나는 붉다(赤).
검은 사람은 옥안(玉顔)의 미청년(美靑年)으로 다름 아닌 총단의 총순찰 도남강이었다.
그리고 붉은 쪽은 사악한 눈매를 지닌 육십대의 노인(老人)인데..
기이하게도 그의 옷차림새 뿐 아니라 다른 모든것이 붉은 빛 일색이었다.
안색과 피부빛은 몰론이고, 수염과 머리칼, 심지어는 눈동자까지 온통 타는 듯 붉었다.
"이 일은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외다."
"으음..부주의 말이 옳소."
도남강의 손끝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내심(內心)에 이는 노화(努火)의 발로인 듯..
혈의인의 몸에서 이는 핏빛 기운이 한 순간 미미한 파동을 일으켰다.
헌데 부주(府主)라고 했는가?
이곳 탈혼도에서 부주라 불리울 수 있는 오직 한명 탈혼부주(奪魂府主) 섭시명 뿐이다.
"송구하오. 내당당주 형표의 변심을 이제야 눈치채다니.."
"틀렸소. 그게 아니오."
"변심이 아니란 말이오.
부주께선 원래 형표가 잔비를 그처럼 잔혹하게 죽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순간 섭시명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들었다.
"그렇다면...잠입자(潛入者)...?"
"그렇소."
도남강의 입에서 확신에 찬 단호한 음성이 토해졌다.
섭시명은 불신의 표정으로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자신의 관할세력에 잠입자가 생기다니...
더구나 그러한 사실이 도남강에 의해 밝혀지다니...
분노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귓전으로 도남강의 음성이 무섭게 파고들었다.
"경동하지 말고 앉으시오."
섭시명은 일그러진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참으로...부끄럽소이다."
"잔비와 내당당주 형표는 총단에 있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소.
그런 그들이 일개 시비를 두고 목숨을 걸지는 않소."
도남강의 두 눈에 한 줄기 기광이 번득 스쳐 지났다.
"다시 말해 형표로 변장한 자는 분명 청화라는 시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소.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됨을 꺼리지 않고 잔비를 죽이지는 않았을 거요."
"그것으로 보아 탈혼도 전체에는 이미 그자의 세력이 알게 모르게
거미줄처럼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오."
"으음...!"
섭시명은 재차 나직한 신음성을 토했다.
도남강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일은 너무도 뻔한 것이다.
이 일에 어떤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마천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전율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 도남강이 두눈에 기이한 광채를 발하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의 정중앙에 내리꽂았다.
팍!
그것은 칠흑처럼 검은 삼각깃발이었다.
그 깃발을 본 탈혼부주의 핏빛 안색이 일순 백지장처럼 하얗게 돌변했다.
"암흑마번(暗黑魔幡)!"
오오...암흑마번이라 했는가?
혈살귀화(血殺鬼花)가 무림에서 암흑마천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암흑마번은 암흑마천의 제일의 신물(信物)로서
모든 제자들을 부릴수 있는 권능(權能)을 지니고 있었다.
탈혼부주,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기가 무섭게
지체없이 바닥에 오체(五體)를 투지(投地)했다.
"탈혼부주 섭시명(葉侍命), 삼가 암흑마번을 뵈옵니다!"
바닥에 세차게 부딪친 탈혼부주의 이마가 깨지며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나왔다.
도남강의 입술이 냉막하게 열렸다.
"총단 총순찰 도남강(陶南江)이 천주(天主)를 대신해서 섭시명에게 명을 내린다."
"명을 받자옵니다!"
"내일 해가 지기 전까지 탈혼부에 숨어든 적을 완전히 제거하고 다음 명을 기다려라!
백팔철기대의 이동은 그동안 보류한다."
"천명을 받드옵니다."
쿵!
섭시명은 다시 한 번 바닥에 이마를 세차게 찍은 후
신형을 일으킬 새도 없이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헌데 그가 문을 밀치려는 순간이다.
문이 밖으로부터 먼저 열리며 한 줄기 싸늘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부주께선 잠시만 머물러 주셨으면 합니다."
음성과 함께 유백색 경장(輕裝) 차림의 청백복면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혈봉각주 예사령이었다.
그녀는 엉거주춤 서 있는 탈혼부주의 앞을 지나
곧바로 총순찰 도남강의 맞은편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소녀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처리하시겠다는 건가요. 사사형?"
"아니... 마침 너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사형께선 이미 명을 하달하셨잖아요."
"이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형께선 예나 지금이나 너무 성급하세요."
"무슨 말이냐. 사매?"
"우선 암흑마번을 거두세요.
그래야 저도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음..."
도남강은 잠시 예사령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암흑마번을 뽑아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러자 예사령은 탈혼부주 섭시명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부주께서도 잠시 동석해 주셨으면 해요."
"예!"
삼인(三人)은 이내 품자(品字) 형으로 마주 앉았다.
예사령이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사사형, 정말 송구해요. 제 관할구역에서 이런 불민할 일이 생겨서...
하지만 저는 이미 예견했던 일이예요."
"이미 예견했다고...?"
"놀라실 것 없어요."
복면 새로 드러난 예사령의 두 봉목이 일순 서늘한 예광(銳光)을 발했다.
그녀를 본 후로부터 표정이 누그러들기 시작한 도남강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과연 오사매(五師妹)답다. 그렇다면 이미 복안(腹案)을 세워두었겠구나."
"복안이라 말씀하시니 부끄럽군요. 어려서부터 사사형의 속만 썩여온 저였어요."
"후훗..."
도남강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려냈다.
그로 인해 숨 막힐 듯 무섭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예사령은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말했다.
"내 말을 잘 들으세요.
그들은 지금 나 역시 그들이 바꿔진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음? 무슨 말이냐?"
도남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원래 그들은 일년 전 제가 이곳에 오는 순간, 저를 암습하고 저마저 바꿔치려 했어요.
하지만 사사형도 알다시피 제가 누군가요?"
예사령의 두 봉목이 한 차례 날카로운 예광을 발했다.
"저는 그때 무엇인가 흑막(黑幕)이 있음을 직감하고
그들의 계획을 거꾸로 이용하기 위해 그들의 수뇌부를 자처하고
지금까지 일년 동안 그들의 내부상황을 면밀히 파헤쳐 왔어요.
이제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오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예사령은 지금까지 거꾸로 가짜를 가장한채
반간계(反間計)를 쓰고 있었던 말인가!
섭시명의 얼굴에 놀람과 당혹으로 물들었다.
"각주... 그런 사실을 어찌 지금까지?"
"비밀은 여자의 정조(貞操)와 같은 것...
지킬 때 지키지 못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호호호.."
그녀는 말을 마치자 자못 유쾌하다는 듯 잘게 교소를 터뜨렸다.
섭시명은 그런 옛사령을 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도남강의 얼굴에 떠오른 만족의 미소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예사령이 품속에서 하나의 두루마리를 꺼내더니 탁자위에 펼쳐놓았다.
이거 그녀는 두루마리 위를 짚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내당당주 형표..
이자의 본명(本名)은 막천후(幕天侯), 탈혼부 잠입세력의 수좌(首座)예요."
"외당당주 와선강(臥宣岡)..
본명(本名)은 가대(佳待),
적의 외부세력과의 연락책을 맡고 있어요.
그리고 각당의 단주(壇主)급과 청동무사 중
본천의 인물을 가장한 무리들은 무려 일천에 달해요."
"와선강까지..!"
도남강은 신음같은 일성을 토해냈다.
섭시명은 기가 막힌듯 아예 할말을 잊은 표정이었다.
예사령은 봉목을 차갑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자, 부주께선 이들을 오늘 밤 안에 처치하세요.
기문당(奇門堂)과 백팔철기대(百八鐵騎隊)엔 아직 그들의 세력이 잠입해 들지 못했으니
그들을 이용하면 될 거예요.
물론 반발이 심할 것이고...절대 가짜가 아니라고 할테지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웃음기 머금은 눈으로 도남강을 응시했다.
무서운 반간계를 발휘한 여인답지 않게 그윽한 모습이다.
도남강은 감동어린 표정으로 예사령의 섬섬옥수를 덥석 감싸 쥐었다.
"사매, 너 정말.. 어려서부터 우리 사형들을 놀라게 하더니.."
"호호호...사형은 항상 제 손을 잡고 싶을 때마다 이러시는군요.
남자답게 제가 좋으면 좋다고 말하세요."
"허헛.."
도남강은 흡족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사매 예사령을 좋아하는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총명함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그녀가 아닌가.
도남강은 이내 섭시명을 향해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탈혼부주는 오늘밤 안으로 기문당 소속 오백 인원과
부주 직속의 사사혈기단(死死血旗團)을 동원해 적들을 남김없이 척살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섭시명은 성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사령이 빠르게 말을 받았다.
"내당당주를 위장한 자는 내가 처리하게겠어요.
그를 사로잡아 이 기회에 감히 본천에 정면 도전한 무리들을 일망타진해 버리고 말겠어요."
* * *
제기랄..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나의 정체를 눈치채고 덮쳐올 그들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싸우는 거다.
크ㅋ..
저 미친 계집 때문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경솔함 때문인가?
그러나, 나는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사랑하는 여자가 더럽혀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 계집의 행동은 어떠했던가?
최소한 자신의 몸만은 지키려 했어야 하지 않은가?
그 계집을 향한 나의 사랑은 한낱 유치한 감정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빌어먹을 계집애..
망할 계집애..
오송학은 술에 취했다.
아픈 마음 만큼이나 엉망으로 취했다.
엉망으로 취한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검(劍)을 찔러온다고 느꼈다.
몽롱한 시야 속으로 자욱한 검광(劍光)이 암울하게 쏘아져 들어왔다.
크ㅋ.. 오너라!
오송학은 무의식적으로 품 속의 혈혼검(血魂劍)을 뽑아 내밀었다.
파- 악!
"크아악!"
그 취중(醉中)에도 혈혼이란 놈은 검광(劍光) 사이를 뚫고
, 그놈의 가슴에서 피를 빨았다.
이번엔 왼쪽이다.
파파팟!
검광에 앞서 죽음의 검풍(劍風)이 밀어닥쳤다.
크ㅋ..
웃기지 마라!
내가 아무리 취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론 안돼!
슈파악!
"크-악!"
처절한 단말마와 함께 또다시 피분수가 솟구쳤다.
몽롱한 취중에서도 혈혼은 상대의 목을 정확히 노렸다.
허나 놈들의 공격이 본격화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번-쩍!
촤-아-아!
우당탕! 쨍그랑...
술병이 날고, 술상이 통째로 엎어져 날았다.
그러나 오송학은 여전히 본래의 자리에 앉은 채 가공할 혈광(血光)을 흩뿌려내고 있었다.
"크아악!"
"으-악!"
이때 한 인물이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빙옥교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빙옥교는 혈도를 제압당해서 조금도 반항할수 없는 상태다.
오송학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그의 신형이 빙옥교를 향해 폭사되고 있는 검광 속으로 번쩍 날아들었다.
순간,
파파파팟!
오송학의 전신에서 서너 줄기의 피분수가 일시에 뿜어져 나왔다.
쿠당탕!
그는 빙옥교를 품에 안은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치명적인 중상(重傷)이었다.
그는 품속에 안긴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옥교...너를 사랑했었다."
순간 빙옥교의 교구가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떨렸다.
오송학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일체의 표현도 내색도 않던 사랑..
그 사랑이 한 인간을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놈을 혈봉각으로 옮겨라!"
오송학이 쓰러지자 그동안 이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예사령이 차갑게 외쳤다.
순간 빙옥교가 오송학을 막아서며 부르짖었다.
"멈춰! 누구도 이 사람을 건드리지 못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오송학의 검을 부여잡고
섬광처럼 앞으로 돌진하며 닥치는대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번쩍!
파츠츠츳!
"아아악!"
"크악!"
눈 깜짝할 새에 세 명의 목숨이 황천으로 날아갔다.
빙옥교의 공세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것은 자신의 안위를 전혀 돌보지 않는 공격일변도의 초식이었다.
"아아악!"
"끄윽!"
다시 네 명의 인물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예사령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장내에 한 인물이 유령처럼 날아들더니
빙옥교를 향해 노도같은 일장을 쳐내었다.
바로 도남강이었다.
그의 공격은 너무나 빠르고 가공스러워서 빙옥교는 눈으로 보면서도 피해낼수가 없었다.
퍼펑!
빙옥교는 실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사력을 다해 일어났지만
울컥 한모금의 선혈을 토해내고 말았다.
도남강은 뱁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그녀를 향해 접근했다.
그때 예사령의 짤막한 외침이 그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사형,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야 해요!"
도남강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빙옥교는 이미 치명적인 중상을 입어 서있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녀는 시야조차 흐릿해져서 바로 앞에 있는 도남강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두 발의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실날같은 의식은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녀는 자신이 시비 청화의 모습에서 본래의 진면목으로 돌아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못했다.
단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옥교... 너를 사랑했었다.
온통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오송학의 그 한 마디,
문득 그녀의 눈가에 영롱한 이슬이 ㅁ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것은 영혼의 흐느낌이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그녀의 빙심(氷心)과는 달리 몹시도 뜨거웠다.
나도..나도 당신을 사랑했었어..
털썩....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힘없이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허나 도남강과 예사령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엇다.
"사형께선 어서 백팔철기대를 동원해 놈들을 제거하세요."
"알았다."
도남강은 이내 장내에서 유령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예사령은 천천히 빙옥교에게 다가서더니 기이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 * *
우르르릉!
번쩍!
"크아악!"
"으악-!"
사경(四更)이 넘어서 오경(五更)을 향해 치달리는 암흑의 심야(深夜)..
터져 오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동공마저 산산이 파열시킬 듯한 무시무시한 섬광(閃光)들이..
죽음을 부르는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절한 비명소리들과 함께...
탈혼도는 졸지에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으로 변했다.
"무슨 일이냐!"
탈혼도 외당당주 와선강은 잠결에 비명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미처 옷을 갈아 입을 새도 없이 잠옷 차림으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늘 대기하고 있던 그의 수하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는 그리 오래지 않아 이미 시체로 변해 나뒹구는
산하 십이단주(十二壇主)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갑도록 시퍼렇게 날이 선 한 자루의 검(劍)이었다.
그 검을 들고 있는 자가 탈혼부주 섭시명임을 알아보았을때,
번쩍!
섬광(閃光)이 작렬하며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으헉!"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그는 차가운 검날이 관통한 가슴을 부여잡고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부...부주...왜..이런 짓을?"
섭시명의 붉은 얼굴에 음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흐흐흐...어찌 네가 나를 부주라 부른단 말인가?"
"으윽...무...무슨...말...?"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잘 가거라!"
섭시명은 냉혹한 일성과 함께 와선강의 심장에 박힌 검을 뽑았다.
"크윽... 이...이럴 수가..."
어두운 암천(暗天)으로 시뻘건 피분수가 뻗쳐 올랐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와선강은 썩은 고목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우두두두두...
탈혼도 전체를 일시에 짓뭉개 버릴 듯 날뛰는 백 여덟의 인마(人馬)는
말그대로 죽음의 폭풍이었다.
이 백 여덟 명의 철갑인(鐵甲人)들은 눈앞에 보이는 상대는 무조건 베어넘겼다.
어느 누구도 그 앞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고오오오...
차차차창!
"으아악!"
"아악!"
무적의 살인군단(殺人軍團)!
밤은 잔인하게도 여명(黎明)을 거부한 채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