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 인식에서 탐색하는 시적 변증법 --강경애 시집 『내가 나를 부를 때마다』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 회장) 1. 화자 ‘나’를 통한 존재의 간극(間隙) 현대시의 흐름은 그 시인의 정서 변화에서 시법의 전개의도를 가늠하게 하는데 대체로 그 시인이 살아온 궤적(軌跡)에서 생성하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인생적인 자성이나 삶의 지표를 인식하면서 지적인 인생론을 탐구하려는 의식의 흐름에서 새로운 시적 진실을 창조하는 정신적 고뇌를 확인하게 한다. 여기 상재하는 강경애의 시집 『』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부분이 이와같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분화(分化)하고 다시 합일(合一)하는 생의 과정에서 ‘나’라는 시적 화자를 통해서 존재를 확인하는 숭엄(崇嚴)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우선 다음과 같이 ‘나’를 찾는 일에서 출발하는 시적 상황의 전개를 목도하게 된다. - 무릉원의 천대서해에 나를 두고 떠나온 뒤로 꿈마다 골짜기 헤매고 다닌다(「골자기에 나를 두고 오다」 중에서) - 나는 하이에나와 양의 갈림길에서 길 찾으려 헤매고 있다.(「소리의 파장」 중에서) - 내가, 나를 버린 듯 허전하다.(「섬」 중에서) 이처럼 강경애 시인은 자신(‘나’)을 찾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그가 생을 영위해오면서 당면한 현실적인 고뇌에서 생성된 사유의 혼란에 대해서 지성적인 화해의 해법을 탐구하는 지향점으로 시적인 주제의 진실을 구명(究明)하려는 시법의 일환으로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는 ‘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가 이드(id)-인간 정신의 밑바닥에 있는 원시적, 동물적인 본능적 요소를 말하고 있어서 우리가 흔히 제시하는 오욕(五慾)의 실현을 인생목표로 설정하는 무리에 해당하는 심리적 반응이다. 그러나 자아(the ego)는 현실적인 상황과 이상(혹은 꿈)을 조율하는 심리상태로써 이드보다는 약간 인간적으로 전환된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자아(招自我)가 있다. 이는 이드와 자아를 넘어선 완전한 인간적인 윤리와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면서 도덕적인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세 부류의 인간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본능과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다양한 심리적인 변전(變轉)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불안과 우울로 노이로제나 히스테리 같은 병적 요소로 나타나서 요즘 사회적인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현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강경애 시인은 이미 실종되었거나 아직 인지하지 못한 ‘나’에 대한 의구심이 자아에서 탐색하는 시법으로 많은 작품에서 투영하고 있다. 파스칼이 그의 「팡세」에서 ‘누가 나를 이 세상에 두었는지, 이 세상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 무서울이 만큼 무지하다’는 말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강경애 시인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삶은 고뇌와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다 너무 모르는 그 어리석음에 놀랄 때가 많다 이름 석 자는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되어 애타게 불리는 것보다 허물이 있을 때 내게 불리는 일이 빈번하다 아는 일에서도 번번이 실수를 하고 여러 번 가 본 길도 헤매다가 끝내 시간을 놓치고 할 말도 제 순서를 잃고 오리무중이기가 십상이니 엉킨 실타래 다시 감아 놓듯 나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며 정신에 죽비를 친다 무슨 이름이어서 이름 임자에게 이다지도 구박덩이가 되는 것인지 하루에도 수 없이 불려지며 벌서고 후회하다가 애써 위로한다 내가 나를 부를 때마다 언제쯤 내개 와 꽃이 되려는가. --「내가 나를 부를 때마다」 전문 여기에서 그의 의식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다’에 집중된다. 이러한 어조는 그가 자신에 대한 정신적인 향방이 묘연(杳然)한 정황에서 전개하는 시적 현장은 다시 그가 ‘나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며 정신에 죽비를 친다’는 자애(自愛-self love)의 심적 간구(懇求)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보편적인 관념을 넘어서 정신 내면에서 무엇인가 명징한 의식으로 생의 구현점을 구축하여 숭고한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시적 사유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마지막 결론으로 적시한 ‘내가 나를 부를 때마다 / 언제쯤 내개 와 꽃이 되려는가.’에서 ‘나’를 탐색하는 존재의 감도(感度)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전생이 새였을, 아니 후생이 새가 되려는가-중략-나도 꿈속 언어의 해석가인가 / 경계가 모호한 행과 행을 바꾸며 / 새의 나라를 향해 오늘도 내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새들도 할 말은 한다」 중에서)’, ‘유체 이탈 놀음을, 혼의 드나듦을 선연히 눈앞에서 보는 나는 살았는가, 빈사 상태인가(「경계를 넘다」 중에서)’ 그리고 ‘누가 감히 나를 논하는가 / 나는 나고, 너는 너다 / 내 예술은 내 목숨, 누가 내 목숨을 탐하는가(「푸른 코트를 입은 자화상」 중에서)’는 등의 의문형 종결 어조에서 그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자신을 향한 집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나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검은 연기처럼 짙은 음영 속에 낯익은 누군가 거기 있었다 나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닮지 않은 듯 닮은 그녀는 집안의 나를 창밖에서 주시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뒤에서 들려오던 발자국 소리는 그녀 것이던가 뒤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던 내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마주 손잡으려 내가 몸 일으키니 순간 이동하는 타임머신처럼 모습을 감춰버렸구나 내 앞에 실체 없는 실루엣만 아른거릴 뿐 꿈이련가 환상이련가 나를 만나러 천 년 전의 내가 어둔 밤에 그렇게 왔다 갔다. --「도플갱어」 전문 강경애 시인은 ‘꿈이련가 환상이련가 / 나를 만나러 천 년 전의 내가 어둔 밤에 그렇게 왔다 갔다.’는 ‘도플갱어’와 서로 교감하게 된다. ‘나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닮지 않은 듯 닮은 그녀는 / 집안의 나를 창밖에서 주시하고 있었다’는 어조는 ‘꿈’과 ‘환상’이 가미된 ‘나’에게 또 다른 ‘그녀’(나)와 만나서 자신에 대한 자의식(自意識)과 자존(自尊)에 대한 성찰적인 형상화를 현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정서와 상상력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여류작가 보부와르가 말한 ‘내가 나로 인해서 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나 자신의 심저(心底)에서 이글거리는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들이 바로 시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시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고뇌의 상황들을 극복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잠언처럼 작품 「가면」에서 ‘세상의 아수라장 속에서 / 난 나를 버리지 못하고 / 억지 가면 쓰고 어설픈 생을 위한 / 진혼곡을 연주 하고 싶다.’는 작은 여망을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2. ‘삶의 마침표’ 혹은 영혼과의 교감 강경애 시인이 ‘나’의 존재 인식에서 가장 심도(深度) 있게 천착하는 문제는 인생에 있어서 생사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산다는 것은 / 허공에 줄을 매달고 한발 한 발 내딛는 위험한 곡예 / 흥이 없이도 돌아가는 내 삶은 늘 처음 그곳이다 / 그는 놀이로 허공을 건너고 나는 가슴으로 외줄을 탄다(「외줄 타는 남자」 중에서)’는 시적 상황이나 어조는 먼저 삶(생)에 대한 긍정과 수용의 의식을 적시하고 있다. 옛말에 생사에 관한 문제는 자기 이전에 살았던 지혜 높은 사람들에게 그 해답을 묻는다 할지라도 모든 해답의 선택과 인지(認知)는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광수도 ‘생명과 죽음은 함께 매어놓은 빛 다른 노끈과 같다’는 말로 생사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한겨울 내내 숨죽이고 숨어 있다가 빳빳이 고개 들고 밀어 올리는 연두색 작은 풀잎처럼 참 생명이란 저 너머 세계로 건너뛰기도 하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공포이자 위안이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이랴 만물은 어느 것이나 음양을 품고 있어 좋고 나쁘고 되고 안 되고 기쁨과 슬픔마저 내보이며 절절하게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중략-- 절체절명의 마침내는 완성의 결정판으로 향하는 기다림이며 삶의 마침표이다. --「마침내」 중에서 그는 ‘마침내’ 생사의 해법을 찾아서 사유의 향방을 정리한다. 그가 ‘참 생명’에서 응시하는 것은 ‘생사여탈권’이라는 약간 무거운 지표를 향해서 사유를 정리하고 있다. 우리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은 어느 것이나 음양을 품고 있어 / 좋고 나쁘고 되고 안 되고 / 기쁨과 슬픔마저 내보이며 절절하게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는 상황에서는 이제 ‘절체절명의 마침내는 / 완성의 결정판으로 향하는 기다림이며 삶의 마침표’라는 에필로그를 적시하고 있다. 일찍이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삶은 실험이다. 많은 실험을 할수록 좋다’고 그의 수필집에서 말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죽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지만 그 주행에서 체험하는 당면문제들이 좋음, 나쁨, 됨, 안됨, 그리고 기쁨과 슬픔 등의 정감이 다양하게 동반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사에 대한 고뇌는 작품 「날다, 종이학」에서 ‘살아도 죽은 듯 사는 것보다 /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는 쿠마에 무녀처럼 / 죽었다가 재생하는 학들은 / 잊었던 그 아이가 내게 보내주는 기쁨의 날개 짓이다.’, 작품 「망각의 천사」에서 ‘만약 시간을 거슬러 다시 생을 선택할 수 있다 해도 / 어떤 삶이든 후회를 동반하는 것 / 어느 생이든 흐르고 흘러 우주의 끝에 다다르면 / 모두 하나의 작은 점이 아닐까.’ 그리고 작품 「생을 지피다」에서도 ‘몇 해를 더 살아야 잊히고 지워져 // 온전한 생을 살아낼까 // 이승은 서럽기만 하다.’라는 등의 어조는 생사에 대한 숙연한 이미지의 발현이어서 우리들 정감의 흡인을 유로하고 있다. 만취했는가 꿈과 현실사이를 오가며 시소를 타는 깊은 밤 어디선가 수런대는 소리 들리는 듯 마는 듯하며 적막을 흔든다 불현 듯 혼돈에 뒤채던 늪지에서 빠져 나와 귀 기울여 들어 봐도 알 수 없는 언어들 비밀탐지 하듯 거실로 나가니 소리는 멈추었으나 언뜻 느껴지는 사물들의 미세한 움직임 확증은 없으나 정황은 감지된다 어느 외진 공동묘지에서처럼 먼 길 떠난 영혼들이 어둠속으로 나와 밤을 타 노는 소리였던가 사물은 사물끼리, 동식물은 동식물끼리 끼리끼리 서로 통한다는 비언어의 교감이었는가 어둠은 소리를 잠재우고, 의문만 날개를 달고 빈 허공을 난다. --「만물에는 비밀이 있다」 전문 강경애 시인은 삶에서 취득한 다변적인 체험에서 생사의 문제에 심각한 의식의 요동을 감지했다면 여기에서는 영혼에 대한 문제와의 접맥을 시도하는 혼돈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꿈과 현실사이를 오가며 시소를 타는 깊은 밤’의 상황 설정에서 이미 예감할 수 있는 시혼(詩魂)이지만 모든 ‘만물에는 비밀이 있다’는 전제가 더욱 어둠과의 의문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는 다시 ‘어느 외진 공동묘지에서처럼 / 먼 길 떠난 영혼들이 어둠속으로 나와 / 밤을 타 노는 소리였던가’라는 영혼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 어둠의 이미지는 모든 것을 감추는 비밀의 현장이다. 빛과 어둠, 이원적인 현상은 원초적인 암흑과 빛이 서로 분열한 다음 신비로운 기원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어둠은 악과 저급한 삶의 원리를 암시함으로써 승화하지 않은 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한다. ‘영혼’과 ‘어둠’은 ‘서로 통한다는 비언어의 교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작품 「젖어들다」에서 ‘느닷없이 끌려가 저 먼 천공 / 그 어느 골짜기에 갇혀 있다가 / 습기 가득 품고 달려 와 / 후회뿐인 영혼을 젖어 들게 하는가 ’ 또는 ‘밤새 뜬 눈으로 날을 새던 바람이 / 그대 부여잡고 모습을 감추니 / 내 영혼만 마냥 젖은 채로 / 창가에 남아 하염없다.’라거나 작품 「은유를 그리다」에서도 ‘그가 캔버스에 담은 색채의 엇박자는 / 자유로움과 조화를 이루어 헝크러진 인간의 영혼에 평안을 줍니다.’라는 영혼과의 교감은 그가 인지한 ‘어둠은 소리를 잠재우고, 의문만 날개를 달고 빈 허공을’ 지금도 날고 있는 갈망의 인생에 다름 아닐 것이다. 3. 시야의 확대와 ‘길 잃은 영혼들’ 강경애 시인이 추구하는 또 다른 주제는 인생론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진실에의 탐구를 위한 시야의 확대이다. 거기에는 인간 칠정(七情)이 혼합된 정서가 복합적으로 내재되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우선 작품 「사막을 건너다」 중에서 ‘모진 모래바람 속에서도 수천 년을 버티어 온 상처투성이 스핑크스가 새삼 인간에게 퀴즈를 내고 있는 이 여름엔, 길 잃은 영혼들이 즐비하다.’는 생경한 시적상황은 그가 이러한 현장에서 갈구하는 시심들이 인간 본연의 진실을 현현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적응하고 잇는 것이다. 깊은 산 계곡마다 제 몸 태우며 열반에 드는 붉은 단풍들 그 절정의 극치를 바라보니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살아 온 내가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 않아 심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을 온전히 불살라 제 몸을 내어줄 그 누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나를 온전히 불살라 지옥에라도 뛰어들 그 누가 나에게 있었던가 이 가을 단풍보다 못한 서럽고 어정쩡한 지난 생을 반추한다. --「저리도 제 몸을 태우는데」 전문 그렇다. 그는 ‘붉은 단풍들 / 그 절정의 극치를 바라보’면서도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살아 온 / 내가 /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 않아 / 심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생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이는 ‘이 가을 단풍보다 못한 / 서럽고 어정쩡한 지난 생을 반추’하면서 내밀한 사유의 정감을 자성(自省)의 언어로 현현하고 있다. 그는 ‘제 몸을 태우며 열반에 드는 / 붉은 단풍’에서 창출하는 이미지가 바로 자신을 향한 인생적인 의문으로 형상화한다. ‘자신을 온전히 불살라 / 제 몸을 내어줄 그 누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 나를 온전히 불살라 지옥에라도 뛰어들 / 그 누가 나에게 있었던가’라는 어조로 자책을 하면서 ‘나’에 대한 회의(懷疑)를 표면화하고 있다. 그와 같은 그의 시정(詩情)에는 인생적인 회의가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데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중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사랑해서 결혼하고 병들어 죽고 다시 태어나는 /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을 드러낸 그들은 /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고 있다’는 어느 조각공원에 엉켜있는 인간 군상들에게서 느끼는 ‘욕망과 투쟁의 극치’의 그 처연함에서 다시 새겨보는 인생의 영위행태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다변적인 양상이 ‘세월’과 더불어 상기(想起)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강경애 시인은 이러한 존재론적인 인식에서 진지하게 탐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실존하는 현존재에는 항상 ‘나’라는 것이 속해 있고 이 존재에 응답해서 담론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탐닉(耽溺)하는 자신에의 성찰이 철학적 개념의 가치관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성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그의 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적시하면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저 이 가볍고 어둔 세상을 / 표정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무겁지만 너무 가벼움」 중에서)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 웃는 모습이 다른 건 / 어지러운 세상 미리 내다보고 / 때맞춰 웃는 얼굴로 살라는 / 무언의 가르침인가「웃는 부처」 중에서) --오늘도 / 긴 하루 접으며 다음 생을 기약한다. (「테이블에 대해」 중에서) --외진 곳으로 내몰았던 나날들을 / 이제 침묵 속으로 묶어 버리고 / 고삐가 풀린 말을 타고 / 새가 비상하듯 높고 날쌔게 달려야겠다(「말 달리자」 중에서) 이 밖에도 그는 많은 여행(아르바트 거리, 아시안 티크 야시장, 홍콩 등)을 통해서 접맥한 생활양상이나 명작 영화관람(‘패터슨’, ‘내 사랑’ 등등)에서 감응하는 시적 정감이 그에게는 생사 또는 성찰의 다변적인 심리적 현상으로 부각하고 있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4. 자연서정과 관조미의 시적 지향 우리 시인들은 대체로 자연과 전원의 서정에서 안온한 정감을 창출하면서 관조미학의 실현을 시적인 주제로 승화하는 경향에 익숙해져 있다. 서정적 취향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의미가 주조(主調)를 이루지만 현대의 서정시들은 독특한 음향으로 색다른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흡인시키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강경애 시인도 이러한 서정적 정감에서 ‘내 생각을 뒤덮는 눈은 무겁다 / 사물은 크고 작고 간에 의미가 달라지지 않듯이 / 완전함과 불완전함도 결국 다를 것이 없다 / 충만과 공허 역시 다름없기에 / 나는 말과 글의 틈새에서 진리를 찾는다(「눈오는 아침에」 중에서)’는 사유의 흐름은 ‘눈오는 아침’에서 감응하는 이미지가 다채롭게 적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연 서정에는 항상 시간성이 동행하게 된다. 사계절의 변화와 주야(晝夜), 조석(朝夕) 등등의 시간에 따라 생성하는 이미지는 다양하며 무궁무진하다. 플라픈의 말대로 시간은 미래영겁의 환영(幻影)인지도 모른다. 롱펠로도 시간은 영혼의 생명이라고 까지 중시하고 있다. 저 먼 산에서 울어 대는가 환청으로 들려오는 소쩍새 우는 소리 간밤에도 들리던 그 목소리는 내가 잠에서 깬 새벽에도 점점 더 가까이, 더 멀리 들려온다 그는 왜 저토록 밤낮을 울며 다니는가 고개 돌려 그를 찾으려 하나 절규하듯 그리움만 풀어 놓고 가버린다 이 여름은 유난히 큰 소쩍새 울음을 삼키며 마린 블루의 물감이 확 쏟아진 듯 저 멀리 푸르게 퍼져 나간다. --「소쩍다 소쩍다」 전문 강경애 시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쩍새 울음’을 듣고 있다. 그가 이러한 청각적인 이미지(혹은 환청)에 심취하는 것은 그 ‘소쩍새 우는 소리’에서는 ‘절규하듯 그리움만 풀어 놓고 가버’리는 아쉬움이 내재되어 있다. 그의 시점(視點-point of view)은 그가 적시하는 상황에 대해서 정신적인 시각이 바로 시간성(간밤, 새벽, 밤낮, 여름 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구가하는 서정에는 자연과 시간(혹은 세월)이 동류의 지향점으로 공감을 확대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서정시는 시인의 정서를 물길어 올리듯 펼쳐 드러내는 정감이 넘친다. 서정시는 주관적 정서나 내적 세계를 발현하면서 객관적 세계를 모두 자아 속에 흡수하여 내면화하거나 융합을 추구한다. 그래서 주관과 객관의 일치, 자아로의 회귀 등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늙은 둥치에 수두 물집처럼 솟아난 매화는 살포시 고개들어 길목 담장 안에서 눈인사 보내고, 푸른 관복 차림의 청정한 대나무들 일렬종횡대로 늘어서서 양산보 대신 우리를 맞이한다. 속세를 버리고 달빛 은은히 스며드는 제월당에서 시문을 읊조리며 정암을 기리던 그는 버선발로 댓돌 디디며 웃음이 그득하다 풍류가 넘치던 광풍각엔 겨울 속에서 자란 봄이 머뭇대며 마른 뜨락에 내려앉는다. --「소쇄원의 봄」 전문 여기에서는 한 공간개념에서 시간을 대입하는 서정성을 읽게 한다. ‘소쇄원’이라는 공간은 자연 소재의 중심에 ‘봄’이라는 시간을 동행함으로써 이미지는 다채롭게 발양되고 있다. 이 ‘소쇄원’에서는 ‘달빛 은은히 스며드는 제월당’과 ‘풍류가 넘치던 광풍각’(이상 공간)에서 전개하는 시적 정황은 다시 ‘길목 담장’이나 ‘댓돌’, ‘마른 뜨락’ 등의 공간을 가미(加味)하여 시적 효과를 배가하는 시법으로 시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이 공간에서 ‘매화’와 ‘대나무’를 설정하고 ‘정암(조광조)’와 ‘양산보(조광조의 은사)’라는 역사적인 인물과 동시에 작품을 완성하여 ‘소쇄원’이란 이미지를 확대하여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이처럼 착목 착(着目)한 공간개념에 시점을 맞추는 작품에는 「사인암의 가을」 「부석사에서」 「안개바다」 등에서 서정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으며 시간개념으로는 「눈 내린 새벽」 「비 그친 뒤」 「폭염」 「초승달」 「입춘대길」 「매미」 등에서는 안정된 그의 정서와 사유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강경애 시인의 서정시에서 묵과(黙過)할 수 없는 소재와 테마가 있다. 그것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만유(萬有)의 자연의 현상이다. 시간성에 따라서 변화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시법이다. 그는 작품 「능소화 연가」에서 ‘처음으로 마음속 불을 지피던 사랑에 / 눈멀었던 그녀는 / 긴긴밤 등허리 눕히고 연분 맺고 / 느닷없이 뒤돌아선 그를 / 단 한번이라도 그를 눈에 담으려고 / 긴 덩굴손을 뻗쳐 담장에 올라 / 주홍빛 얼굴을 쳐들었다 // 뜬 눈으로 지새는 밤들이 / 긴 한을 내뿜고 / 지친 훈기를 걷어 들이자 / 그녀는 서럽게 날개 꺾고 / 피 토하다 끝내 고개 접었다.’는 어조는 ‘능소화’라는 꽃말이나 꽃전설이 내재된 이미지가 순박하게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길가 그 집 담장 안에 / 흐드러지게 핀 목련 /떨고 있는 너의 실루엣 뒤로 / 아프게 흩날린다(「목련, 목련이던」 중에서)’, ‘그 틈에 움츠렸던 나뭇가지들 // 잔설을 털고 // 연두색 봄 옷 갈아입을 채비 중인데 // 나는 마음만 푸르게 한달음이다. (「연둣빛, 푸르다」 중에서)’, ‘지난 봄, 상심할 정도로 가지를 비워내며 마구 휘날리던 벚꽃처럼(「창밖을 내다보다 우연히 만난」 중에서)’ 등에서 친자연적인 감성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강경애의 시집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나’를 통한 존재를 확인하고 생사문제에서 영혼과의 교감한다. 여기에는 성찰이라는 대전제가 요구되지만 다양한 현실인 이를 고뇌의 늪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그는 서정적인 순수를 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언제나 기다림이라는 처절한 신념이 궁극적으로 심중에서 굳건한 시적인 지주(支柱)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매양 올 때마다 마음을 뒤집어 놓지만 / 잊을 수도,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그를 / 보내고 또 기다린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 기다리는 그는 / 희망이고 절망이고 생명인 한 편의 시다.’라는 그의 진정한 내면의식을 명징하게 들려주는 순정의 메시지가 바로 ‘기다림=시(詩)’라는 점에 유념하게 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