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祭文) : 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이시백(李時白).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유계(兪棨).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 /윤원거(尹元擧) · 윤선거(尹宣擧)

[파워맨]

제문(祭文)

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 /이시백(李時白)

아, 내 나이 19세 때에 눈병을 심하게 앓아서 학업을 전폐(全廢)하였는데, 그런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므로 나 자신도 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최상(崔相 최명길(崔鳴吉))의 집에서 공을 만나보고는 공으로부터 외람되게 경개(傾蓋)의 허여를 받았는데, 그 뒤로 끊임없이 왕래하면서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경하며 우러러보는 마음이 실로 엄한 스승을 뵙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잇따라 장상(張相 장유(張維))과도 우리가 모두 도의(道義)의 교분을 맺었는데, 장상이 가장 어린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더니 최상이 또 그 뒤를 이어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가령 이와 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뒤에 세상을 떠난다면, 내가 반드시 공보다 앞서 죽어야 할 텐데 지금 공이 거꾸로 나보다 먼저 가신단 말입니까. 공을 위해 통곡하는 사람은 지금 나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뒤에 나를 위해서 통곡해 줄 사람은 그 누가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생각하노라니 더더욱 통곡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건대 공이 큰 덕을 지니고서 재상의 지위에 오르자 조야(朝野)가 기뻐하며 지극한 정치가 이루어지리라고 날마다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위를 얻고도 그 뜻을 펴지 못한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하늘이 그렇게 시킨 것인지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경술년(1610, 광해군 2)에 내가 병에 걸려서 고양(高陽)에 있을 적에 증세가 매우 위독해지자 공이 기조(騎曹 병조(兵曹))의 낭관으로 있으면서 추치(騶直)를 댁에 들이지 않고 그 돈으로 약물(藥物)을 사서 병문안을 하였는데 거의 50여 일 동안 하루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모두가 공이 베풀어 준 은혜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이 병들었을 적에 나는 달려가서 병문안을 하지도 못하였고, 공이 작고하였을 때 관곽(棺槨)을 붙들고 곡읍을 하지도 못하였으며, 공의 장례식 때에도 묘소에 나아가 애통한 심정을 극진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의 형세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지하에 내려가서 공을 뵐 면목이 없다는 두려움이 앞서기만 합니다.

계축년(1613, 광해군 5) 어간에 공과 평택(平澤)에서 만나 길가에 앉아서 한참 동안 얘기하였는데, 공이 이윽고 말하기를 “서궁(西宮)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 모후(母后) 없는 나라가 되었으니, 사군자(士君子)가 어떻게 조정에 설 수 있겠소이까. 나는 지금 신창(新昌)으로 피해 숨으려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 의리가 매우 바르고 곧으니 어찌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있겠소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공은 끝내 벼슬하지 않았고, 나 역시 끝내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그 한마디 말이 아직도 귀에 분명히 들리는 듯한데, 만약 의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중하지 않았거나 서로의 믿음이 독실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지난해 봄 호서(湖西)에서 와서 공을 바닷가 농장에서 뵈었을 적에 안모(顔貌)와 기부(肌膚)가 쇠하신 것이 예전과 퍽이나 달랐고, 작별하는 말씀 속에도 지극히 비창(悲愴)한 느낌이 있었는데, 공적인 일정상 기한이 있어 감히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그 일이 또 생각나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이 돌아가시고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산 아래 어떤 초가집에서 공을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 내가 온다는 말을 공이 듣고는 흔연히 나와 나를 맞아 주며 옛날 일을 다정하게 얘기도 하고, 나라를 위한 말씀을 하면서 곡진하게 교회(敎誨)하는 뜻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는 측창(惻愴)한 마음이 들어 새벽까지 통곡을 하였습니다. 서로 감응함이 지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꿈을 꿀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 공의 넷째 아들 내양(來陽)은 나의 사위가 되었고, 나의 장손 상주(相冑)는 또 공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이 네 명의 부처(夫妻)가 잇따라 모두 죽을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내양의 자녀는 모두 우리 집에서 기르고 있습니다만, 유독 상주의 경우는 후사가 없어 그의 동생 상윤(相胤)의 아들을 양자로 데려와서 후사로 삼으려 합니다. 이는 실로 공의 뜻이기도 하니 내가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아, 끝없는 나의 이 심정을 글로는 또 어떻게 모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슬프고 슬픈 나의 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런 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공의 두 자제가 모두 선인(善人)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있고, 공의 손자 9인도 모두 준수해서 공의 가업을 이을 수 있는 만큼, 공이 남긴 경사(慶事)가 백년토록 천년토록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공의 현려(玄廬 묘소)가 우리 집의 선영(先塋)과 가까워 한 고을에 함께 있으니, 타일에 서로 만나서 어울릴 날이 어찌 없겠습니까. 나는 그래서 슬픔을 거두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데 공은 이런 사실을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아, 슬픕니다.

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 /유계(兪棨)

아, 세수(世數)가 내려오면서 풍기(風氣)가 천박해지고, 저사(狙詐)가 일어나면서 충신(忠信)이 희박해졌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을 지금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일찍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자(小子)는 얼마나 다행인지요. 쇠퇴한 말세에 태어나서 선생을 모시게 되고부터, 고인의 말을 듣고 고인의 행동을 보고는 도(道)에는 고금(古今)이 없고 시(時)에는 선후(先後)가 없으며 오직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어 지금 이후로는 고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고인의 행동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인을 이제는 참으로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아, 애통하기만 합니다.

선생의 자질은 순수하고 중정(中正)하여 광물(鑛物)이 섞이지 않은 혼금(渾金)이나 하자(瑕疵)가 없는 박옥(璞玉)처럼 불순(不純)한 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안이나 밖이나 한결같이 온량공검(溫良恭儉)하였으니, 이는 선생이 하늘로부터 원래 그렇게 품부받아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도는 성(誠)으로 근본을 세우고 인(仁)으로 외물을 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덕(仁德)이 간절하며 지극하였고, 그 마음이 널찍하게 커서 남을 포용하였으며, 언행이 충신(忠信)하고 독경(篤敬)하여 만맥(蠻貊)의 나라에서도 행할 수가 있었으니, 이는 선생이 자신을 그렇게 닦아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가정에서의 행실을 보건대 어버이를 애모하고 공경하며 좌우에서 봉양하면서, 마치 옥기(玉器)를 손에 쥐고 가득 찬 물건을 받들고 가는 것처럼 조심조심 경건한 자세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육순 · 칠순의 높은 나이와 육경(六卿) · 재상(宰相)의 귀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직접 수발을 들고 동복(僮僕)을 시키지 않았으며, 피눈물로 3년 동안 거상(居喪)을 하고 종신토록 어린아이처럼 어버이를 사모하였으니, 시서(詩書)에서 대효(大孝)로 일컬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보다 더할 수 있었겠습니까.

선생께서 행하신 조정에서의 거조를 보건대 앞으로 나아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뒤로 물러나서도 의리를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혼란한 시대를 당해서는 발걸음을 아름답게 하여〔賁趾〕 황야로 물러나 은둔했다가, 성명(聖明)의 시대를 만나서는 맨 먼저 휘정(彙征)에 응하여 임금의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하며 게으름을 부리는 일 없이 한결같이 진실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정에 진출한 때로부터 정승의 지위에 오른 50년 세월 동안 그 거조가 모두 똑같았으며, 만년에 강호(江湖)에 은퇴했을 적에도 나라를 위해 걱정함이 오히려 갑절이나 더 절실하였으니, 대개 선생처럼 출처(出處)를 바르게 한 경우는 당세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은 독실한 마음으로 경전을 연구하여 넓고 깊게 두루 회통(會通)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유(先儒)가 아직 드러내지 못하고 후현(後賢)이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을 논저에 밝혀서 사도(斯道)를 천명(闡明)하였습니다. 선생은 맑게 자신을 닦아 세상의 모범이 되었으며, 청렴하고 검소하게 질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고 의복도 온전하지 못하였는데, 고관의 반열에 올라 후한 녹봉을 받을 때에도 처음의 뜻을 바꾸지 않았으니 이는 빈한한 선비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서 혁혁하게 모두 드러난 선생의 지덕(至德) · 정학(正學)과 청풍(淸風) · 의행(懿行) 같은 것으로 말하면, 소자(小子)가 참으로 감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또 뭐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선생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것이 순수하고 마음을 세운 것이 진실하기 때문에 충효의 정신이 본성에서 우러나오고 행하는 일들이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였으므로, 선생의 덕성을 눈으로 보는 자마다 감화를 받고 선생의 풍도를 귀로 듣는 자마다 심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평소에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선생에 대해서는 충신(忠信)하다고 귀결을 짓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참소하고 아부하며 정인(正人)을 헐뜯는 무리 중에도 마음속으로는 더러 부끄러워하며 의기가 저상(沮喪)된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 세상에 이런 분이 어떻게 다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림(士林)은 태산(泰山)처럼 우러르며 의지하였고 창생(蒼生)은 치세(治世)의 교화를 펼쳐 주기를 앙망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말의 술을 바치면서 바야흐로 축수(祝壽)하고 있는 때에 진(秦)나라의 방아 소리가 그만 갑자기 멈추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시대의 운수가 불행해서 백성들이 복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까. 아, 비통합니다.

소자가 소싯적에는 부형(父兄)의 뒤를 따라서 선생을 뵈었고, 만년에는 자제(子弟)의 대열 사이에 끼어 친히 화풍(和風)에 몸을 적시며 우러러 덕음(德音)을 듣게 되었는데, 선생 역시 소자를 한 번도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유액(誘掖)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소자가 몽매하고 우망(愚妄)하여 선생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나머지 사죄(死罪)에 저촉되어 세상에서 큰 치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행동하는 소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마치 우물 속으로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듯 측은하게 여기시어 번거롭게 장소(章疏)를 올려 누차 소자의 억울함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비록 소식(蘇軾)과 같은 혀로 말을 토해 내었다 할지라도 소자의 입장에서는 실로 곽령(郭令)의 은덕에 감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소자가 생각지도 못하게 살아 돌아와서 다시 문장(門牆)에 문후(問候)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의 신우(神宇)를 우러러 뵈오니 기력이 왕성하고 강녕(康寧)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자의 가냘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언제인가는 선생의 나머지 가르침을 끝내 받들고서 고루한 소자의 기질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고 기대하였는데, 그만 선생을 뵙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가서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옛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삼서(三書)는 궤 속에 있는데 선생은 구원(九原)에 계시어 다시 뵐 수 없게 되었으니, 유명(幽明) 간에 저버린 소자의 부끄러운 이 심정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아, 봉황이 떠나자 잡새들이 날아다니고, 교룡(蛟龍)이 사라지자 잔챙이가 물을 흐리고 있습니다. 소자처럼 갈 곳을 모르는 사람들은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우러른단 말입니까. 현인(賢人)이 사라져 나라가 장차 병들게 된 비통함이 공사(公私) 간에 갈마들며 밀려듭니다. 선생의 성대한 덕을 서술하지는 못하고 충정(衷情)이 먼저 북받친 나머지 가슴에 쌓인 회포를 모두 토로하지 못한 채 제사를 올리며 통곡할 따름입니다. 아, 슬픕니다.

포저 조익에 대한 제문 /윤원거(尹元擧) · 윤선거(尹宣擧)

아, 우리 선생이 후학(後學)을 버리시자 사림(士林) 군자들 모두가 슬피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도가 망했으니 그 누가 다시 일으킬 것인가.” 하고, 원근(遠近)의 사람들도 모두 애도하고 한탄하며 서로 고하기를 “인인(仁人)의 현덕(賢德)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시경》에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내실 적에, 누구나 하늘의 원리가 그 속에 깃들어 있게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양심을 가지게 되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라고 하였습니다. 선생이 이미 이러한 도를 지닌 위에 또 이러한 덕까지 지니셨고 보면, 하늘로부터 똑같이 양심을 품부받은 생민(生民)들 중에 그 누가 마음속으로 참으로 열복(悅服)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라 할지라도 감히 선생에게 인(仁)을 귀결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더군다나 사림 군자에 속하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후학인 소자(小子)가 지식은 사람을 알아보기에 부족하고 언어는 인품을 표현하기에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고인(古人)을 통해서 들은 말을 가지고 헤아려 본다면 황면재(黃勉齋)가 “진실한 마음 바탕 위의 각고(刻苦)의 공부”라고 한 말이 바로 선생에게 해당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선생은 선천적으로 천지의 강대(剛大)한 기운을 타고난 위에 후천적으로 산악(山嶽)의 후중(厚重)한 기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독경(篤敬)의 행실이 천성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승(師承)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호학(好學)의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영채(英彩)를 드날리며 어렵지 않게 청운(靑雲)에 오른 뒤에는 작록(爵祿)을 마음속에 두지 않고 개연(慨然)히 구도(求道)의 뜻을 품었습니다. 회암(晦庵 주희)이 마음으로 전한 비결(秘訣)을 간편(簡編)을 보는 사이에 터득하고는, 마침내 부지런히 힘쓰면서 고인(古人)을 반드시 배울 수 있고 삼대(三代)를 반드시 본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위로 수사(洙泗 공자)의 언어로부터 아래로 염락(濂洛 성리학)의 서적에 이르기까지 깊이 사색하고 힘껏 탐구하여 은미한 뜻을 드러내고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의문이 생기면 반드시 변론하고 계합(契合)하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써 두었는데, 이것이 기록되어 선생의 문자가 되고 이것이 엮이어 선생의 간질(簡帙)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종류별로 모아 인덕을 베풀고 부문별로 분류하여 학설을 이루면서, 사람들의 시비(是非) 따위는 돌아보지 않고 오직 고인의 서업(緖業)을 이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미나리 맛을 혼자 음미하기 아까워 우리 임금님에게 바치기까지 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 부자(朱夫子 주희)의 여의(餘意)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도를 가지고 후생(後生)들을 깨우쳤는데, 공부를 해 나간 것이 오로지 박실(朴實)한 대목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보고 느껴 흥기하는 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두 비관박돈(鄙寬薄敦)의 효과를 거두게 하였으니, 그러고 보면 선생의 학문과 같은 경우야말로 법문(法門)의 진정한 맥락을 얻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부모를 잘 섬기고 형장(兄長)을 잘 섬기는 것이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孝悌也者 其爲仁之本歟〕”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 이 도리를 극진히 행한 자는 과거 역사에서 찾아보아도 그다지 많지 않은데, 선생은 불궤(不匱)의 효성을 바치면서 군자의 즐거움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버이를 깊이 애모(愛慕)하고 용모를 유순하게 하는 데 억지로 애쓸 필요도 없었고 열심히 시중을 들면서 남을 대신 시키는 일이 없었으며, 빈궁해도 걱정하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부귀해도 공경하는 자세를 바꾼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버이 상을 당해서는 불훼(不毁)의 나이를 넘어섰건만 상례(喪禮)를 극진히 하며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토록 애통해하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정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모두 증삼(曾參)과 이련(二連)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것인데, 선생은 능히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서 사당에 참배하는 일을 혹한이나 혹서에도 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작고하기 며칠 전에도 혼자의 힘으로 의대(衣帶)를 갖추고는 사당 문 밖에서 부축을 받고 배알하기까지 하였으니, 정성과 성실로 일관하며 종신토록 어린아이처럼 어버이를 지극히 사모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이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선생이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사람들을 대하자, 사람들도 한결같이 충신(忠信)한 자세를 보이면서 허위의 언사를 입 밖으로 내놓은 적이 없었고,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태도를 차마 몸으로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맹자가 “대인이란 갓난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아마도 선생에게 해당되리라고 여겨집니다. 문공(文公)이 백공(伯恭)을 찬(贊)하여 말하기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미루어 적용하면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였고, 그렇게 하고 남은 것을 가지고도 풍속의 모범이 되고 세상에 전해지기에 충분하였다.〔推其有 足以尊主而庇民 出其餘 足以範俗而垂世〕”라고 하였습니다. 내면에 온축(蘊蓄)된 덕행이 이와 같다고 한다면 외면으로 드러나는 사업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대간(大奸)이 현인을 해쳐 이륜(彛倫)이 땅에 떨어지고 모후(母后)가 유폐되어 인류가 거의 멸절되었을 때에 선생이 하나의 소(疏)를 올려 간사함을 물리치고는 몇 년 동안이나 문을 닫아걸고 거두어 속에 감춘 채, 견묘(畎畝) 사이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노친을 봉양하였을 뿐 다시는 한 발자국도 한수(漢水)를 건너오지 않았습니다. 삼강(三綱)의 중책을 거의 10년 넘게 선생의 한 몸으로 감당하였으니, 엄동설한에 송백(松柏)이 홀로 우뚝 서 있다고 하는 말이 바로 선생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성주(聖主)가 중흥(中興)을 이루어 유술(儒術)을 임용하였으니, 영달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 선비로서는 뭔가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형통하는 운세를 되돌리기 어려워서 세상의 도의가 무너진 나머지 당론(黨論)이 고질적으로 굳어지면서 현사(賢邪)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송나라가 장강(長江) 남쪽으로 건너갈 적에 호 강후(胡康侯 호안국(胡安國))가 탄식을 발한 이유이기도 한데 선생이 만난 시운은 이보다 더 심한 점이 있었으니, 그러고 보면 선생이 어떻게 사도(斯道)를 보위할 책임을 짊어지고서 뒤집힌 세상의 물결을 막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금상(今上 효종)이 즉위한 초기에 덕망이 높은 원로(元老)를 의지함에 따라 마려(馬呂)가 함께 보필하니 사람들 모두가 태평 시대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불길한 징조가 갖가지로 나타나고 삿된 설들이 또 일어나서, 이를 막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행해지지 않고 이를 저지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밝아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생이 전후로 소장을 올려 해와 별처럼 분명하게 변론하였는데, 덕 있는 현인을 높이고 숭상하면서 음사(淫辭)를 추방하고 사설(邪說)을 배격하는 일에 있는 힘을 모두 기울였습니다. 이 때문에 상의 뜻을 어기고 군소배(群小輩)의 미움을 받은 나머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황야(荒野)에 몸을 숨기게 되었어도 그런 처지를 또한 돌아볼 겨를이 없었으니, “내가 어찌 변론하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다.〔予豈好辨哉 予不得已也〕”라는 맹자의 이 말이 실로 선생의 마음을 대변한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선생은 확 트인 큰 도량과 간절하게 깊은 인덕을 소유한 까닭에 관대하고 여유 있게 포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미(幾微)를 보고서 개석(介石)처럼 결단할 때에는 분육(賁育)도 그 뜻을 뺏을 수 없었고, 분심(憤心)을 발하여 공정하게 처리할 때에는 사소한 잘못도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개 의리(義利)를 분명하게 분간하고 사정(邪正)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오직 하나의 옳을 시(是) 자가 있는 것만 알았을 뿐 그 밖의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칠 때는 그치고 행할 때는 행하며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미워할 줄 아는 그런 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인척의 두터운 인연도 있고 세교(世交)의 우호 관계도 있는 덕분에 기심(紀諶)의 사이에서 종유(從遊)한 것이 지금 어언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단지 태산(泰山)이 높은 줄만 알았지 우러러 뵐 줄은 몰랐고, 훈훈한 화기(和氣)를 쐴 줄만 알았지 질정(質正)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선생이 물러나 강호(江湖)에 계실 적에 다시 책상 아래에 나아가 뵐 수 있었는데, 그때 선생은 누항(陋巷)의 비좁은 방에서 서가(書架) 하나에 책을 쌓아 두고 엄연(儼然)히 옷깃을 바로 매만지고서 꼿꼿이 앉아 종일토록 글을 읽고 계셨습니다.

지위는 상공(上公)까지 올랐는데도 스스로 높게 여기지 않으시고 연세는 대질(大耋 칠순의 고령)에 이르렀는데도 스스로 한가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늙어 가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날마다 부지런히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을 그제야 선생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한가히 거하실 적에도 홀로 심재(心齋)의 경지를 지키면서, 밝은 대낮에는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고요한 밤중에는 촛불을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정력(精力)이 더욱 증진하는 가운데 총명(聰明)도 감퇴하지 않았으니, 정 숙자(程叔子)가 70대에도 젊었을 때보다 근력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오직 생을 잊고 욕정을 따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입니다.

아, 선생은 저희들을 불초(不肖)하다 여기지 않으시고서 정의(精義)의 학문으로 인도하시고, 증사(曾思)의 난의(難疑)에 대한 요결(要訣)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몸소 글을 보내 은근하고 간절하게 권면하고 경계하셨으므로 두 번 절하고 공경히 받들어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에 마음이 상하고 병든 나머지 스스로 겨를을 낼 수가 없었는데, 초생(焦生)의 발걸음이 하남(河南)에 이르기도 전에 단목(端木)의 탄식이 갑자기 아침에 부르는 노래를 듣고 터져 나왔습니다.

하늘이 사문(斯文)을 없애려 하여 철인(哲人)이 이제 시들고 말았으니, 어디에서 덕(德)을 볼 것이며 누구에게 질의(質疑)를 한단 말입니까. 세도(世道)는 쇠미하기만 한데, 현인(賢人)이 이제 사라졌으니 나라가 장차 병들게 되었습니다. 존엄한 사도(師道)를 다시는 볼 수 없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다시는 얻을 수 없게 되었으니, 군자는 의지할 곳을 잃고 소인은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차츰차츰 홍수(洪水)와 맹수(猛獸)의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구제할 사람이 이제는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희들이 애통해하는 것은 단지 오당(吾黨)을 위해서만 애통해하는 것이 아니요, 실로 나라를 위해 애통해하고 사림(士林)을 위해 애통해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어찌 저희들만 사적으로 애통해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이 도를 함께하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한없는 슬픔과 다함이 없는 비통함을 느낄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아,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