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H의 개인전에서
목련화
한전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친구 H가 개인전을 한다고 알려 왔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의 첫 개인전이라 꼭 참석해서 그녀를 축하하고, 그녀의 예술세계를 감상하고 싶었다.
서초구청 맞은편 골목 어디쯤 네비가 안내하는 곳으로 어렵게 전시관을 찿았다. 전시관은 꽤 넓었다. 몇몇 사람이 전시된 그림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고, 친구는 어떤 분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축하난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첫 작품부터 한 걸음 한걸음 벽면을 따라 걸려 있는 그림을 감상했다.
'잇다, 품다, 열다 - 초충도로부터'라는 전시 타이틀에 걸맞게 여기저기 이름 모를 들풀과 나비 등이 주된 소재였다. 들풀의 생김새가 사실적으로 그려지기 보다 추상적인 기법과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한 색채가 환상적이었다. 어떤 것은 담백한 초록, 어떤 것은 화사한 핑크로 우리가 고향에서 개울가에서나 길가에서 흔히 보았던 강아지풀이거나 달개비꽃, 민들레 등 흔하디 흔한 들풀이 그녀의 그림에 앉아 있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현대미술의 소재로 끌어와 작업하고 있다는 그녀의 작품은 우리들의 유년의 추억과 자연의 순수함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잠시 관람 중에 언젠가 두 딸아이를 데리고 오죽헌에 갔을 때의 시간을 회상했다. 그곳 전시관에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몇 작품 전시되어 있었는데 땅 위에 둥그렇게 자라고 있는 작은 수박 열매와 참외, 풀 끝의 나비와 벌이 담백한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색깔이 바랜 듯 바래지 않은 듯 수수한 자연의 빛을 담고 있는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천연한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기에 오죽헌의 작은 방에서 조선시대의 위대한 학자가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고 나도 신사임당의 지혜로움으로 두 딸 아이를 기르겠다는 소망도 한껏 키웠었던 어느 날이었다.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절반쯤 보았을 때 친구가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어떻게 귀한 시간을 내서 오셨어?” 친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이 아이들을 생산해 내느라고 애썼다. 너무 아름다워.” 나는 친구의 그림을 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친구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결혼과 육아로 오랫동안 붓을 놓았다가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오늘 시리즈물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새로운 시작이 진심으로 반갑고 대견했다.
친구는 나를 그림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내 그림은 자연을 향한 그리움에서 시작됐어. 고흥의 들과 냇가에서 늘 보았던 것들이야. 나의 작품은 단순히 과거 '초충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여백미, 섬세미와 같은 신사임당의 형식은 빌려왔지만 거기에 담고자 한 상징은 긴 세월의 건너뜀만큼이나 달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극적이지도 치명적이지도 않은, 아니 오히려 그 존재조차 잊고 사는 이 들풀들의 향기야말로 우리의 생명의 본성(nature)이라’고 말하며 ‘생명의 본성은 스스로에겐 희망으로, 타인에겐 격려가 되는 기운’이라며, “이 둘이 하나가 되어 ‘치유’란 이름으로 이해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래서 나의 초충도(草蟲圖)는 그 누가 그린 들풀보다 더 아름답기를 원한다.’는 것으로 전시회를 열게 된 소감을 말하는데 나는 감격했다. 우리들이 유년 시절 무심코 밟고 다녔을 길가의 질경이나 쑥부쟁이, 빈 들녘에서 자유롭게 흔들리던 억새나 갈대가 그림 속의 소재로 그녀의 예술세계에 들어와 있는 이유를 들으니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들은 만나서 대화를 하면 서로 이런 격려를 농담처럼 했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나에게 늘 ‘너랑 대화를 하면 너의 언어는 시가 된다’고 나를 추켜 세웠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너의 관점과 포착은 자연을 담은 그림이 된다’고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친구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상대적으로 내 키가 우쭐 자라는 듯한 기분을 오래도록 갖게 되었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서 직조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빛깔은 다르지만 자신의 세계를 다져가고 있는 우리들은 건강한 이 시대의 중년이라는 것이 뿌듯한 하루였다.
.........................................................................
서초구청 앞에까지 왔으면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입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이 먼 곳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다녀가셨습니까? 하기야 오늘 같은 날 연락이 왔더라도 꼼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 문집을 내는 후배의 원고가 급해서 읽어 보다가 하루해가 다 저물어버렸습니다.
접시꽃의 논평을 아침에 써놓고 뒷마무리만 남았었는데 그 글을 완성하여 올릴 틈도 내지 못해서 저녁에야 올렸으니까요.
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다닐 곳은 다녀야지요. 바쁘다고 일에만 코를 박고 있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두 친구의 대화가 매우 건강하고 지성적이며 세련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중년으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축하합니다. 서로가 걷는 길은 다르지만 이 나라의 지도층 국민으로서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든든하고 좋습니다. 결혼과 육아에 전념하다가 다시 일어나 10년의 노력 끝에 개인전을 열었으니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여 자랑하지는 않았는데도 친구를 알아볼 수 있겠네요.
시작부터 결미까지 글의 진행에 무리가 없는 구성입니다.
근래에는 학문도 예술도 여행까지도 극도의 세분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근래에 이르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그렇게 변해 왔지만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더욱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목련화의 친구 H처럼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초충도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다든지 일출과 해양에 관심을 쏟아 그려내기도 합니다. 식물이나 동물, 곤충만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삽화(Illustration)에 주력하는 사람도 있고 극도로 다양하게 세분화 되었습니다.
문학도 그렇습니다. 수필도 풍경만을 그림처럼 묘사해내는 수필가도 있고, 시처럼 운율을 넣어서 단편으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압축하여 풀기 어려운 암호처럼 쓰는 수필도 있습니다. 독자의 반응이야 어떻든 거기 좌우되지 않고 실험하듯이 방향을 모색하다가 더러는 돌아오기도 합니다.
1)“우리들은 만나서 대화를 하면 서로 이런 격려를 농담처럼 했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나에게 늘 ‘너랑 대화를 하면 너의 언어는 시가 된다’고 나를 추켜 세웠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2)‘너의 관점과 포착은 자연을 담은 그림이 된다’고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친구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상대적으로 내 키가 우쭐 자라는 듯한 기분을 오래도록 갖게 되었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서 직조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빛깔은 다르지만, 자신의 세계를 다져가고 있는 우리들은 건강한 이 시대의 중년이라는 것이 뿌듯한 하루였다.”
결말이 독자의 마음을 그야말로 뿌듯하게 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가까운 친구의 재능을 서로 칭찬하고 친구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광경이 아름답습니다. 세상에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은 참아도 가장 친한 친구의 발전은 오히려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기뻐하면서 발전할 것입니다.
밑줄을 그은 1)은 너무 유사한 문형의 반복이어서 수정하라고 그었습니다.
2)는 표현이 모호합니다. ‘너의 언어는 시가 된다’고 친구가 말했으면 거기에 운이 맞게 말을 만들어야 합니다. ‘너의 색채는 예술이 된다.’고 하든지 달리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목이 문학적이 아니고 보고문 형식입니다. 제목은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풀의 향기>라고 해도 됩니다.
첫댓글 아넵! 교수님!!!
제목을 뭐로 할 것인지 고민했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들풀의 향기>가 너무 좋습니다.
말씀하신 부분 수정해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