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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의 문화비평 -
팔작지붕의 유래와 진주조개 (1)
- 목차 -
1.진주(眞珠)는 비너스 여신의 '사리(舍利)'
2. 팔작지붕 형상은 'Pearl짝 지붕'에서 유래했을까?
3. '담이 크다'는 것은 당낭 안에 '사리(舍利)'가 크다는 것일까?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그 종교적 건축물이 이미 신화적이며 종교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옛날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는 그 집 자체의 모양이 신에게 제사하는 제당이기도 했다는 것에서 동아시아의 전통 가옥의 통일된 형식의 하나인 팔작집의 모양도 신화적인 면과 무관할 수 없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가옥 중에서 팔작지붕의 형상은 세계에서 가장 보기 드문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모양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중앙의 용마루에서 직각으로 내림마루가 내려오다가 지붕의 코너 자리인 대각선으로 추녀마루가 뻗어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신기한 선을 하고 있는 지붕형태이다.
진주 또는 크리스탈과 같은 구슬모양의 물건(the pearl or crystal-like bead-shaped objects)
삼국유사 신라의 원성대왕(元聖大王)편에 묘정(妙正) 스님이 거북으로부터 '사리'와 같은 '구슬'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묘정(妙正) 스님이 매양 금광정(金光井) 가에서 바리때를 씻는데 자라 한 마리가 우물 속에서 나타나 먹을 것을 자주 주자 입에서 조그만 구슬 하나를 토해 주었다. 그것을 허리띠 끝에 달고 다녔더니 주위 사람들은 물론 왕도 그를 가까이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당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도 당나라 황제(皇帝)도 그 신하들도 역시 묘정을 보자 매우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관상은 길(吉)한 상(相)이 아니어서 몸을 뒤져보니 허리띠 끝에 조그만 구슬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황제는 "나에게 여의주(如意珠) 네 개가 있던 것을 지난 해에 한 개를 잃었는데 이제 이 구슬을 보니 내가 잃은 그 구슬이다." 라고 말하면서 묘정이 그 구슬을 얻은 날을 말하자 그날이 황제가 구슬을 잃은 날과 같은 날이라 하여 그 구슬을 묘정으로부터 빼앗아버리고 묘정을 신라로 돌려보냈다. 그때로부터 묘정은 아무도 아끼거나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당나라 황제가 신라 사신의 '구슬'을 빼앗은 것인지 위협을 못이겨 스스로 갖다 바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묘정이 허리에 '방울'과 같은 주술의 기능으로 구슬을 달고 다녔다는 그 당시의 풍습을 볼 수 있다.
거북이 입에서 토해냈다는 것은 생각컨대 그 거북이가 진주자개조개 또는 가리비조개를 잡아먹고 그 안에서 야문 진주를 뱉어낸 것으로 필자는 해석한다. 거북과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다"는 의식은 이러한 진주조개를 먹다 진주를 뱉어낸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The occurrence of sarira is not restricted to ancient times, as well, many Buddhists have shown that sarira does not limit to humans or masters. (위키피디아 인용)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사리 개념이 처음 받아들인 것은 신라 진흥왕 10년(549년)의 일로 양나라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 그곳에서 부처의 사리를 가져오자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에나아가 맞이하게 했다.
거북이 조개를 잡아 먹다 야문 진주를 뱉어내는 장면에 대한 신비한 신앙은 아주 오래된 고대 신앙의 하나였던 것이다. 나중에 불가에서 화장할 때 거기에서 생기는 사리현상은 이러한 그 이전 신앙 풍습에 이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진주(眞珠)는 비너스 여신의 사리(舍利)
'Mother-Pearl'이라는 말은 진주의 어머니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천지신명은 여신이며 그 안에 진주알이 태어나는 것은 자궁 안에서 태아가 진주알처럼 점점 커져서 나중에 태양처럼 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태양과 태아 태반은 둥근 알이며 사리이며 진주이다. 탯줄은 오색 권구줄의 무지개인 것이다. 그래서 태반은 진주자개조개가 된다.
진주 목걸이가 여인들에게 특별한 보석이 되는 것은 신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다른 돌들로 된 보석과는 달리 조개라는 생명적 생태 현상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진주조개 안의 진주가 맺혀 커가는 것은 아기가 자궁 안에 맺혀 커가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진주가 진주조개의 알이면서도 정신적인 자식이라는 의미가 사리(舍利)라는 개념 속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진주는 조개의 몸의 물질과 외부의 물질이 섞여 만들어지는데 조개의 진신사리(眞身舍利)라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서 부처의 설법 상대를 흔히 '사리자(舍利子)'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신적인 '아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불가에서 다비식을 한 뒤에 '사리(舍利)'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진주자개조개 안에서 발견하는 '진주 사리'가 그 기원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와 그 대신들간의 대화에서도 나온다. 태조 이성계가 대신들에게 사리가 생기는 연유를 묻자 하륜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신을 수련하면 정기가 생기고 정기가 쌓이면 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조개에도 보주가 있고 뱀에게도 명월주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 그런 구슬이 생기겠습니까?”
고려시대 5백년 불교 역사 속에서도 이와같은 민간에서 냉철한 사리 개념에 대한 비판의식이 존재했다는 것을 바탕으로 억불숭유를 국시로 세웠던 조선왕조 개창자들의 사리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대화에서 동시에 조개의 진주가 사리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논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뱀의 명월주는 용의 여의주에 연관된 숭배의 배경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인 사리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도 종교적인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문화가 그때에도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대화를 하고도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의 죽음을 애통해 하여 왕후의 원찰인 흥천사에 불사리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한 진주조개 안의 여신의 진주 즉 '여의주'가 나중에 용의 여의주, 관음보살의 여의보주, 아미타불 이마의 보주로 전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라는 바의 모든 것을 이룬다는 '여의주'의 의미와 함께 나중에, 봉으로까지 확대되어 손오공의 여의봉, 만사형통의 도깨비 방망이로까지 연장되었다. 진주를 가지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민간의식은 이러한 만사 소원성취를 해주는 진주 구슬(wishing perl)의 종교화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구름과 같은 연화대를 타고 있는 관음보살상
푸른 물 위에 뜬 연꽃은 푸른 하늘에 뜬 구름 특히 연꽃의 자운(紫雲)의 의미를 지닌다.
사리와 더불어 연화대(아래뚜껑)에 앉은 불상의 이미지는 광배(윗뚜껑)와 함께 하나의 '진주자개조개'의 이미지를 가진다. 세조 10년(1464)에는 삼각산 장의사에서 사리가 분신할 때 백관이 경하했더니 이날 오색구름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보면 채운(彩雲) 신앙과 사리 신앙은 같은 세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상의 광배란 태양숭배시대의 일관신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필자가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특히 그 광배가 단순히 둥근 원이 아닌 영기문의 문양들을 새겨넣는 것은 구름과 더불어 특히 채운(彩雲)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아홉 소불이 새겨져 있는 洪川物傑里佛臺座 및光背
위의 홍천물걸리 광배에 새겨진 불꽃문양들은 고대 태양의 여신 숭배시대의 전통으로 말하자면 진주조개 안의 자개 문양 이미지인 것이다.
동양의 불교에서 연화대에 앉은 연화대에 앉은 관음보살상의 이미지는 진주자개조개 위에 서 있는비너스 여신과 그 이미지가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화대는 광배와 함께 하나의 '진주자개조개'의 입을 벌리고 그 안의 관음은 진주에서 깨어나온 보살이 비너스 여신인 것이다.
*진주조개 안에서 나오는 비너스 여신상
The Birth of Venus. 1482년
Alessandro Botticelli (Florentine, 1444/5-1510)
진주자개조개 안에서 파도의 거품에서 자란다는 비너스 여신의 순결성은
동정녀 마리아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
불상의 이마에 박힌 보주라는 것도 결국 일광신 숭배와 함께 태양숭배시대의 진주조개 안에서 나오는 구슬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슬 즉 여의주가 되는 태양을 숭배하는 것을 석가모니 부처로 변화시킨 것이 불교의 불상문화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승려가 열반에 들게 되어 화장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사리를 그러한 '여의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여겨 사리탑을 만들어 보존했다.
여기에서 필자의 독특한 이미지 대조 방법을 동원하여 사리탑 즉 부도의 전형적인 형상은 진주조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불교의 부도(浮屠)는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등으로도 표현하지만, 그 기본 모양은 '진주(보주)'를 최상 지점에 모신 조개껍질을 합쳐놓은 이미지이다. 팔각 옥개석 기와 줄의 모양은 그대로 진주조개(Scallop Clam)의 줄무늬를 닮은 것이며 팔각이란 둥근 이미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부도의 형상은 석등의 형상에서도 같은 구조를 가진다. 진주조개 안의 반짝이는 진주 대신에 석등의 등불 빛을 대신하기 때문에 옥개석과 상대석 사이 중간은 둥글게 만들어 커다란 진주 즉 태양 형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둥근 부분은 때로 불상조각과 석등 등불 창문을 위하여 팔각으로 만들어 더욱 그래픽화된 부도도 만들지만, 그 본래는 둥근 공처럼 만들도록 되어 있다.
*불국사 사리탑(舍利塔) (寶物 제61호)
사리석탑 구조는 진주알과 그 조개의 위 아래를 덮은 모습이다.
*舍利塔 (寶物 제61호)
단청은 자개 채운 형상이라고 생각된다.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
태양숭배시대에서 석등 불빛은 진주(태양)이며 진주조개 껍질이
옥개석이다.
사리탑이나 석등에서 팔각지붕인 옥개석의 '옥개'는 그 음운과 이미지가 '자개조개 껍질'을 느끼게 한다. 보물 제61호인 불국사 사리탑이나 국보 제5호인 법주사 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교하고 잘 만들어진 사리탑과 석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모양은 팔각 옥개석 아래 둥근 '진주 구슬'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상대석과 함께 옥개석의 모양은 그대로 '진주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1998년 11월 성철 스님의 입적 후 5년이 되던 해에 사리탑을 설치하였는데 그 모양은 단 위에 두 개의 반구(半球)와 한 개의 구를 포개 놓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진주자개 조개' 모양의 구슬을 모신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둥근 '진주 구슬' 안에서 부처가 깨나온다는 이미지로 부조로 불상을 새겨서 마치 알에서 태어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슬'에서 태어나는 신화가 박혁거세신화와 김알지 신화 등에서 보여주는 난생신화가 한편으로는 진주조개에서 나오는 진주 구슬 신앙과 관련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난생신화를 필자는 '구슬신화'라고 칭해둔다.
이렇게 보면 사리탑은 진주탑이기도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전통 기와지붕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사리탑의 진주자개조개 껍질의 골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자 한다.
*신흥사 사리라 타워(부도)
사리탑의 기본형은 '조개껍질 사이의 진주'이다.
*진묵대사부도(震默大師浮屠) 전북
일반적인 부도 형상으로 알을 품은 진주조개 이미지이다.
기와골이 패인 팔각 옥개석과 상대석 사이에 있는 둥근 '진주알' 사라탑은 그 모양 자체가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이며 진주자개조개가 입을 벌리고 뱉어내는듯한 구슬 모양이다. 태양은 그래서 하늘에서 채운(彩雲)의 화려한 오색 단청을 만들어내고 바다 속에는 화려한 산호초와 같은 또 다른 오색 찬란한 채운(彩雲)을 만들어 낸다고 옛 사람들은 인식했을 수 있다. 그래서 천지지모는 하나의 거대한 진주자개조개의 모양으로 보았을 것이다.
2. 팔작지붕 형상은 'Pearl짝 지붕'에서 유래했을까
고대 종교적 이미지 배경에서 기와지붕은 진주를 품고 있는 진주자개조개 껍질을 닮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구체적인 유사성을 하나씩 제시해보이겠다. 서양에서 비너스 여신이 나온 조개로서 등장하는 가리비 조개의 모양은 그대로 여신이 사는 팔작기와지붕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필자가 주장하는 그 유사성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진주알을 품은 가리비 조개 껍질의 골은 기와골과 닮아 있다.
2) 가리비 조개 안의 자개 문양은 팔작지붕 안의 단청의 화려한 채운 이미지이다.
3) 팔작지붕의 내림마루와 추녀마루의 각진 모양은 가리비 조개의 날개부분과 일치한다.
4) 기와지붕의 용마루란 가리비 조개 안에 여의주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팔작기와 지붕 안에서 알과 같은 태아에서 태어나는 옥동자는 가리비 진주 조개 안에서
비너스 여신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신화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6) 진주와 같은 왕이 들락거리는 도성의 대문은 팔작지붕의 홍예문을 만든다.
7)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이란 말은 바다의 '진주조개껍질'과 관련된 큰 물고기로 비유했다.
8) '사리(舍利)'는 '날카로운 집'이라는 의미로 자개조개껍질과 같은 팔작집 의미가 있다.
9) 팔작지붕의 '팔작(八作)'은 가리비 조개 껍질의 둥근 두 짝의 껍질 이미지로
'펄짝(Pearl짝)' 즉 'Pearl Couple' 별명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전통 기와지붕은 그 골이 패인 기와장 부분만이 아니라 특히 기와집의 정수인 팔작지붕은 가리비 조개의 '날개부분'을 닮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래에서 가리비조개와 팔작지붕 기와 이미지를 대조해 보이겠다. 용마루에서 내려오는 내림마루와 거기에서 다시 굽어 대각선으로 뻗은 추녀마루의 모양은 그대로 가리비의 양날개 부분의 형상이 된다.
*팔작지붕
**'Pearl짝지붕' (팔작지붕)
팔작 기와지붕 유래에 가리비조개가 신화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리비 조개
*'팔작지붕' 가리비
여기에서 팔작지붕의 위에서 보면 가리비조개('밥조개'라고도 한다)의 위아래 양 껍질을 벌려놓은 모양이 된다. 그 안에 사람이 둥근 모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진주알의 신비한 종교적 이미지에 먼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팔작(八作)지붕의 '팔작'을 필자는 진주조개의 'Pearl'의 두 껍질 짝을 합쳐둔 '펄짝(couple of pearl)' 지붕이라고 별명을 부치고 있다.
신화적 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궁궐과 사찰의 단청(丹靑)은 무지개와 채운(彩雲)의 색채를 칠하는 것인데 팔작지붕이 진주조개의 겉껍질 지붕의 고랑을 닮아 있다면 그 안의 단청은 진주조개 안의 자개의 모양이라는 것에서도 더욱 처마 끝의 풍경(風磬)이 물고기라는데서 더욱 그 이미지는 사찰의 이전의 단청 이미지는 바다의 태양의 여신 신전을 느끼게 한다.
사찰이나 궁궐에 용이 새겨져 있는 것은 바다속을 의미하는만큼 단청은 바다의 진주조개의 자개 이미지이며 그 진주는 태양이었다가 임금이나 부처로 전이되었다.
*단청은 진주조개 가리비 안의 화려한 자개 '채운(彩雲)'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자개조개의 내부 자개.
채운(彩雲) 이미지의 단청(丹靑)과 같은 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자개조개 내부 자운(紫雲)의 구름이 서린 단청(丹靑) 이미지이다.
서양 고대 신화에서는 자개조개는 비너스 여신의 신전이었다.
* '자개 조개' 단청 자개 밑에 물고기 '풍경' 흔들리고 있다.
*송광사의 단청
'자개'만큼 화려하다.
팔작집은 중국을 비롯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도 보인다.
팔작집은 그 모양이 날아가는 모양이라기보다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진주를 품은 진주조개의 모양이 된다. 옥동자를 팔작집 안에서 낳는다는 것은 진주가 부화하는 이미지를 가진다.
그 진주는 옛날 사람들에게 밖으로 더 '큰 집'인 우주(宇宙)의 집에서는 태양이 된다. 태양이 집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고구려 시조 신화에서 유화부인의 알이 햇빛을 받아 부화하여 주몽이 태어나는 것은 집과 우주의 이중 '사리함'을 의미한다. 집에서 옥동자가 태어나려면 필히 햇빛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씨앗이 빛과 공기와 수분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래서 햇빛이 들오오는 문은 중요한 요소였다.
생각컨대 팔작집(八作家)이란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지붕의 용마루에서 내림머리가 사방으로 펴지고 거기에서 다시 대각선으로 추녀머리가 뻗어가는 것을 팔방으로 여긴 것에서 비롯한 말로 보인다. 분명 그 이전에는 태양이 들어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팔작집에 대하여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팔작집을 이리모야즈쿠리(入母屋造)라고 하여 八 보다 入을 강조하고 있다. 분명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을 의식한 말로 보인다.
일본의 오래된 신사나 신궁의 입구 처마가 둥근 아치형으로 된 이른바 카라하후(唐破風) 처마가 되어 있는 양식은 태양의 신이 들어오도록 하는 모양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라하후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칠지도가 소장되어 있는 신궁인만큼 나라현(奈良県)에 있는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의 카라하후(唐破風)인 것을 보면 카라하후(唐破風)의 전통은 한반도에서 건너갔을 개연성이 높다. '카라하후(唐破風)'란 한반도에서 건너간 '카라하후(韓破風)'를 일본인들이 중국 영향으로 보려 개자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닛코도죠신궁(日光東照宮陽明門) 요메이몬(陽明門)의 카라하후(唐破風)
사방에서 '진주알' 태양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아치들이 사방으로 만들어져 있다.
팔작지붕의 정면 중앙에 세우는 아치형의 카라하후(唐破風)는 해돋는 동방으로 나 있는 채광창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닛코(日光)에 있는 도죠신궁(東照宮陽明門)의 카라하후(唐破風)가 있는 정문의 이름이 태양빛의 문이라는 요메이몬(陽明門)이라고 부르는데서도 알 수 있다.
팔작집의 양 옆으로 구성된 삼각형의 치도리하후(千鳥破風)와 짝을 이룬다. 때로는 카라하후(唐破風)기 가방으로 배치되기도 하지만, 카라하후(唐破風) 위에 치도리하후(千鳥破風)를 올리기도 한다.
카라하후(唐破風)와 치도리하후(千鳥破風)
일본에서 카라하후(唐破風 からはふ)는 신사나 신궁의 입구에 있지만 그것은 엣날 신라의 신국(神國) 신앙의 잔재인 미코시(神輿)에 더욱 깊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미코시(神輿)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상여의 일종으로 신을 모시고 다니는 가마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고건축의 박공(박공)의 하나였을 카라하후(唐破風)가 사라졌지만, 그것은 우리의 전통 상여(喪輿)에 남아 있는 돔식 지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고대 신정일치 시대의 임금이 타는 36명이 메는 여(輿)는 신이 타는 신여(神輿 미코시)와 같은 태양의 아들(天子, 또는 천손강림)로 인식한데서 그러한 아치형 카라하후(唐破風)가 신궁에도 상여 신여에도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미코시(神輿)에 보이는 카라하후(唐破風)와 치도리하후(千鳥破風)
그러나 우리나라의 팔작지붕에서 결코 아치형의 하후(破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성문의 홍예문에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태양숭배시대는 불교 5백년과 유교 5백년에서 약화되면서 태양 자체인 천(ㆍ)보다 천자(天子)의 자(子) 자체가 강조되어 황제나 군주가 태양처름 드나든 대궐의 사대문이 홍예문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한 도읍지의 성문은 진주와 같은 왕을 품고 있는 가리비 조개 형상이다. 그래서 팔작지붕을 하고 그 아래에는 진주가 빠져나가는 구멍처럼 무지개 아치 홍예문(虹霓門)이 있다. 홍예문 안에는 화려한 자개문양과 같은 채운(彩雲) 이미지의 단청이 있다. 주로 용을 단청으로 그리는 것은 진주 즉 여의주가 암시되어 있는 가리비 조개 안의 자개 채운 문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단청은 신화적으로 자개문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홍예문은 숭례문과 낙산사 홍예문이었는데 두 곳 모두 지난 몇년 사이 화마로 잃어버렸다는 것은 신화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의 의미를 잃은 것과 같은 것이다. 홍예문과 더불어 범종이 있는 팔작집 단청의 화려한 모습은 진주를 품은 진주조개의 화려한 자개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산불 전의 낙산사 홍예문(虹霓門)
진주조개(Scallop-Shell)의 진주가 빠져나온 구멍처럼 보이는 홍예문.
*화재로 타버린 숭례문 홍예문
*서울 숭례문 홍예문 단청
*불국사 범종각
범종은 태양숭배시대의 진주이자 태양 이미지의 계승이다.
필자의 앞선 글들에서 주장한 바대로 비너스 여신이 태어난 가리비 진주조개(scallop clam shell)의 껍질 모양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왕관처럼 고대 태양의 여신의 왕관에 영향을 주었다. 전통 정자관(程子冠)의 삐죽삐죽한 형상은 진주조개의 뻗은 골과 닮아 있고 머리에 쓰는 부분은 그러한 진주조개의 날개부분의 꺾인 부분이 될 수 있다. 팔작지붕 아래 정자관을 쓰고 있는 선비의 모습은 신화적으로 가리비 안에서 진주가 앉아 있는 모습이 된다.
*정자관. 가리비 조개를 닮아 있다.
사람의 머리는 '진주'가 된다.
*가리비 조개
팔작지붕 아래 사람이 사리라고 한다면 비약이라 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리에는 육신사리(肉身舍利, Full Body Sariras)도 있다. 인신전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사리 즉 산스크리터어로 'Sarira'의 뜻은 본래 사람의 몸(body)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것을 한자로 번역할 때 설리라(設利羅) 또는 실리라(室利羅)로도 번역하다가 사리라(舍利羅)로도 사용했다. 결국 사리의 광의적인 뜻은 보관용 시신을 의미하여 신골(身骨), 유신(有身), 영골(靈骨) 등을 의미했다.
'Sariras(舍利)'는 'Ringsel'이라고도 하는데 육신사리의 경우 미이라도 하나의 사리(The mummification of deceased spiritual masters)가 되었다. 중국의 사리탑들 가운데는 이러한 육신사리를 안치한 사리탑들이 있다.
*중국의 육신사리탑 (sarira tower)
In some parts of China, disciples would bury the Gone inside
a dirt mound and a miniature tower known as
a Sarira Tower or Sarira Pagoda is built is built on top of the mound.
http://philosophy.dude.googlepages.com/sariras.html
즉 사리란 죽은 자의 남은 신체를 보관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집트의 캐노픽 단지(Canopic Jar)라든가 우리 민족의 전통 시신 염장 풍습에서 머리털과 발톱을 담는 오낭 주머니들도 일종의 '사리함'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좌공(坐缸)이라는 의식으로 커다란 옹기 안에 육신사리가 된 미이라를 안치한 다음 두껑을 덮는다. 그 모양은 그대로 사리를 안치한 부도의 모습이 된다. 이렇게 안치된 좌공 부도는 3년에서 6년간 그대로 둔다.
*타이완의 좌공. 육신사리 부도 The Long Sit(坐缸)
따라서 사리란 보관용 시신의 총체적인 뜻으로 볼 때 구슬 모양의 경우는 진주자개조개의 진주신앙에 영향을 따로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팔작지붕 안에 팔작지붕과 같은 정자모를 쓰고 앉은 선비 정신이란 '기와지붕 안의 사리(舍利)'같은 느낌이 든다. 사리(舍利)의 '利'가 이롭다는 뜻 외에도 칼 도(刀) 변이 들어가는 글자이듯이 '날카롭다'는 뜻이 있다. '舍利'는 팔작지붕이 진주자개조개처럼 날선 집 즉 舍利('날카로운 기와집)이라는 뜻이 된다.
진주가 나오는 진주조개 안의 날카로운 자개를 사용하여 자개공예 가구를 사용한 전통 팔작지붕 안에 살아온 안방마님과 가리비조개 지붕 안에 또 다른 가리비조개 모양의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앉아 있는 선비는 살아 있는 지붕 안의 살아 있는 '사리(舍利)'의 인생살이를 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리(舍利)의 산스크리트어인 'Sarira'가 본래 몸(body)의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삶은 그렇게 팔작지붕 아래에서 '사리라'는 삶이 아닐까.
- 다음장에서 계속 -
(06/02/00 오두)
오두의 꿈꾸는 풍경http://blog.chosun.com/namsanodu/3988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