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차나무 열매
전남매일 한송주칼럼
곡우차
곡식이 살지기 시작하는 곡우(穀雨)가 지나면서 새 찻잎에도 한결 윤기가 돈다. 이때 따는 신차(新茶)의 향미가 제일이라 해서 차인들은 부랴부랴 채다를 서두른다.
나라 최대의 차밭이 있는 보성의 산등성이에는 벌써 찻잎 따는 아낙들이 새까맣게 덮였다.
내일 모레면 보성에서는 28번째 맞는 다향제(茶鄕祭)가 성대하게 베풀어진다. 보성에서는 지난 1984년부터 다향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차문화의 부흥을 선도하기 위해 새 찻잎이 나는 5월 초순에 갖가지 다채로운 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가장 역사가 깊고 격조가 있는 향토축제라 할 수 있다.
차 재배는 고려 이후로 우리 농촌에 널리 퍼져 그와 관련된 속담이며 민요도 많다. 이때 쯤이면 '저기 저 낭벼락에 찻잎 따는 저 처녀야, 아득한 산과 들에 야색이 깔렸는데...'하며 차따는 고달픔을 노래했다.
또 '초엽 따서 상전 주고, 중엽 따서 부모 주고, 말엽 따서 남편 주고, 늙은 잎은 차약(茶藥) 찧어 봉지봉지 담아두고 우리 아기 배아플 때 차약 먹여 병 고치리' 해서 차의 쓰임새를 낱낱이 이르기도 했다.
차는 우리 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품이어서 제사 지낼 때의 전다(奠茶), 혼인할 때의 다례(茶禮), 약혼할 때의 다정(茶訂), 부처 공양할 때의 헌다(獻茶) 등 용어도 다양했다.
가세가 피폐해 조상께 차도 못올릴 정도가 되었을 경우에 '찻독이 비었다'고 한 것도 차생활이 보편화 됐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근사한 차노래로 이런 것도 있다. 이름없는 이의 것인데 '내 집이 초당 삼간, 세사는 바히 없네/ 차 달이는 돌 탕관과 고기 잡는 낚대로다/ 뒷뫼에 절로 난 고사리 그뿐인가 하노라'
초의(草衣)선사 등의 노력으로 중흥기를 맞았던 한국의 차문화가 일본 침략 이후 맥이 끊기는가 했더니 80년대부터 차인들의 열성에 힘입어 다시 일어서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보성차연구소에서 우리 기술로 최초의 신품종을 육종하고 그에 이어 최근에는 자동판매기에서도 손쉽게 뽑아먹을 수 있는 과립형차를 개발해내 차문화의 부흥에 밝은 빛을 주고 있다.
30년 가까이 차축제를 열어 붐을 일으킨 보성향민들의 차사랑 마음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차의 대중화를 위해 정진한 차연구소 연구진의 노고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200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