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출, 지금까지는 질주했지만 앞으로는 ‘글쎄’
최대 시장 미국에서 판매둔화 이미 시작
최대 시장 미국에서 판매둔화 이미 시작
여타 시장에선 중국차와 경쟁 어려울 듯
최근 수년간 한국의 수출을 지탱하고 이끌어왔던 자동차 수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각종 통계는 이미 자동차 수출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자동차 판매둔화가 현실이 됐다.
미국 대선 결과도 변수로 떠올랐다. 여타 시장에선 중국산 전기차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등 해외시장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수출이 여전히 호조라는 ‘통계 착시’ = 7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6월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동차 수출은 약 368억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가량 늘었다.
현대자동차는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인 43만1344대를 팔았다.
이런 통계만 보면 자동차 수출은 ‘호조’다. 하지만 이를 월간 통계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서 금액기준 월간 자동차 수출 추이를 보면 올해 1월(62억1044만 달러, 24.7% 증가)까지는 지난해(31.1%)의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2월(51억5264만 달러, -7.9%)과 3월(61억6942만 달러, -5.0%)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4월(67억8797만 달러, 10.3%), 5월(64억8855만 달러, 4.8%)에 다시 증가했으나 6월(62억 달러, -0.4%)엔 마이너스 증가율로 돌아섰다.
산자부는 6월의 감소 전환에 대해 이 기간 조업일수가 전년보다 1.5일 감소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업일수를 감안하면 수출이 소폭 늘었으니 수출이 호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자동차 수출은 단순 통계상으론 ‘증가’이지만 월간 기준으로 보면 ‘추세적인 둔화’다.
반기 기준으로 봐도 올 상반기 증가율 3.3%는 지난해 상반기 자동차 수출 증가율 46.5%에 비해 증가세가 크게 꺾인 것이다.
물량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 수출의 위기가 더 뚜렷해진다.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KGM)에 따르면 물량기준 수출 지표인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올 상반기 해외판매 실적은 344만936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를 월간기준으로 보면 1월 51만154대(6.2% 증가), 2월 50만5921대(0.8%), 3월 61만2134대(-2%), 4월 55만2197대(5.0%), 6월 71만3196대(-3.9%)다.
▲기아 전기차 EV9. [기아 미국판매법인 제공] |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제공] |
●최대 시장 미국으로의 수출 ‘빨간불’ = 특히 한국 자동차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 미국에서 수출 경고등이 켜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올 상반기 미국에서 전기차, 하이브리드 모델을 합산해 모두 15만5702대를 팔았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증가한 것으로, 반기 기준으로 최대 판매 수치다.
하지만 6월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다르다. 현대차는 6월 중 미국 시장에서 7만3250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기아는 6만5929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6.5% 감소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6월 중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이 미국 딜러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지난달 사이버 공격을 받은 탓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영향이 일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미국시장에 수출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많은 전문가가 하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이 판매둔화를 겪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는 이미 지난 2분기 미국의 신차·트럭 판매량이 416만 대로 전년 동기(411만 대) 대비 1%가량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분기 판매 증가율 5%보다 크게 낮다. 이미 자동차 판매둔화가 시작된 것이다.
콕스오토모티브는 이어 미국 대통령 선거와 금리 등으로 인해 올해 하반기 미국 자동차 판매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콕스는 올해 상반기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하반기엔 판매가 둔화돼 2024년 계절 조정 연 환산 판매 대수(SAAR)를 1570만대로 예상했다. 전년 대비 1.3% 증가한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조너선 스모크 콕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반적으로 앞으로 몇 달 동안 약간의 약세를 예상한다”며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판매)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붕괴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바네사 톤 콕스 수석 관리자는 “소비자들이 앞으로 금리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믿거나, 대선 이후 경제가 개선되거나 악화될 것이라 믿는다면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나친 대미 의존도… “트럼프 당선 땐 타격” =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국책연구기관 경고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미 대선에 따른 한국 자동차산업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대미 자동차산업 수출 의존도는 올 1~4월 기준 47.3%로, 지난해(41.9%)보다 5.4%p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완성차로 한정하면 의존도는 50.6%로, 미국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다.
특히 전기차 수출 증가율은 2019~2023년 연평균 56.2%이었는데, 같은 기간 대미 전기차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88%에 달했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한국 자동차산업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연구원은 만일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대미 자동차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봤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지난해 기준 289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 자동차산업 보호 명분으로 보편적 관세 대상 국가에 한국을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면 수출 물량이 현지 생산물량으로 대체되면서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연구원은 조 바이든 현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한 쪽으로 전략을 집중하는 것은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자동차 수출 시장을 미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중동, 동유럽 등 다양한 시장으로 분산시켜 특정 시장 종속에 따른 불안정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계 자동차와 경쟁 가능할까 = 한국 자동차 수출이 미국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다변화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중국 자동차가 가격, 품질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단기적 물량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2030년에 이르면 중국 브랜드의 전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3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올해는 21%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 자동차 성장의 상당 부분이 해외시장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중국 이외 지역에서의 자동차 판매량이 올해 300만 대에서 2030년엔 3배 증가한 9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중국을 제외한 해외시장 점유율도 올해 3%에서 13%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간 국가별로는 러시아(33%→69%)를 비롯해 중남미(7%→28%), 중동·아프리카(8%→39%), 동남아시아(3%→31%)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점유율이 급증할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대중 전기차 관세 인상 방침을 밝힌 유럽에서도 시장 점유율이 6%에서 12%로 2배 늘어날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중국산 전기차에 100% 폭탄 관세를 부과한 미국 등 북미 지역(1%→3%)과 한국·일본(0%→1%) 시장에서는 성장이 저조할 것이란 진단이다.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 자동차 산업 성장의 동력으로 생산 비용 우위, 공장 현지화 전략, 소비자 욕구에 부합하는 디자인 및 첨단 기술을 꼽았다.
특히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 개발 기간이 기존 업계(40개월)의 절반(20개월)밖에 걸리지 않는 것을 차별점으로 강조했다.
알릭스파트너스의 자동차 및 산업 부문 글로벌 공동 책임자인 마크 웨이크필드는 “중국은 신차 출시 속도를 높이고 구매 비용을 낮추면서 업계의 새로운 파괴자로 등극했다”고 진단했다.
출처 : 주간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