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은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로,
한 번 저질러진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 말은 『사기(史記)』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은나라(상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하(夏)나라 마지막 임금인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강태공(강상)은 폭군이
다스리는 상나라의 운세가 다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많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새 나라 건국의 때를 기다립니다.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결국 때를
만나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상)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으로 제후국 제(齊)나라 첫 번째 왕이 되어 금의환향
하게 됩니다. 강태공의 나이 80세의 일입니다.
강태공이 젊은 시절 공부만 할 때, 생계는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아내는 수십 년 동안 공부만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들일을 나가면서 남편에게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둔 곡식을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왔습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죄다 떠내려가고 없습니다. 화가 난 아내가 남편에게
‘곡식을 왜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비가 오는 것을 몰랐다’고 대답합니다.
수십 년 쌓이고 쌓인 불만과 울분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강태공을 일컬어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의 사나이라고 합니다
. 가난하게 80세를 살고, 80세부터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조강지처와의 이혼까지가 ‘궁팔십’의 삶이었습니다.
제나라 초대 왕이 된 후부터 강태공의 ‘달팔십’의 삶이 펼쳐집니다.
화려하게 복귀하는 강태공의 행렬을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봅니다.
자기 남편입니다. 공부만 하던 남편이 왕이 되었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는 지난날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재결합하자고 합니다.
왕이 된 강태공은 물 한 바가지 떠오라고 합니다. 바닥에 쏟아붓습니다.
다시 담아 보라고 합니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강태공이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그렇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소. 한번 떠난
사람과는 다시 합칠 수 없소’라고 말합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뜻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말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강태공은 지략가로, 제나라 시조로 수천 년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강태공의 행위는 옳은 행위일까요? 아내의 행위는 그른 행위일까요?
자기를 위해 수십 년 헌신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왕이 된 후 억지로라도
찾아 그 고마움을 표시해야 마땅하거늘, 찾아온 아내에게 ‘엎질러진 물’
운운하며 내치는 행위는 왕이 아닌 범부(凡夫)로서도 못할 행위입니다.
물은 아내가 엎질렀지만, 물을 엎지르게 한 것은 강태공입니다.
지난날 가난했지만 자신이 공부하고 결국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제가(齊家)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제가(齊家)는 폄훼되고 그런
아내를 내치고 치국(治國)에 성공한 강태공이 추앙되는 현실은 어쩌면
복수불반분은 제가(齊家)를 치국(治國)보다 하찮게 여기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고사성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