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가 상주에 계실 때 왕의 간절함이 담긴 전갈을 받았다. 어떻게든 빨리 오셔서 금강삼매경을 해설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필사본을 받아본 성사는 대번에 그 경이 지향하는 큰 뜻을 통찰했다. 이 경전은 대소승의 모든 경전을 한 권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단히 광탕曠蕩하고 심오해서 마음이 호한하고 두뇌가 명석한 자가 아니면 도저히 손댈 수 없는 최상의 경전이 된다고 간파했다.
그러면서 이 내용은 합해서 말하면 一味觀行이 요체가 되고 열어서 말하면 十重法門이 종지가 된다고 하였다.
일미관행은 일심의 세계에 들어가는 관법과 수행인 定慧를 말하고 십중법문은 백행이 만족하고 만덕이 원만해지도록 하는 열 단계의 중요한 법문이다는 것이다.
성사는 암소 한 마리를 구했다. 소는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다. 상징적으로 본각과 시각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암소는 그 사이에 나타난 불각을 의미한다.
두 뿔에다 벼루를 놓으면 두 각이 하나로 卽合하고 벌리면 중생세계가 무량하게 펼쳐진다는 의미로 이 절묘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거기에 벼루의 거치대를 만들어 서라벌에 도착할 때까지 성사는 걸림없고 막힘없이 해설서를 써내려갔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쨌거나 소달구지 위에서 5권을 썼다고 송고승전에 나온다.
이 경전을 풀이하고자 성사는 화엄경과 유마경 부인경 영락경 아함경 등 11부류의 대소승 경전을 28번이나 인용하셨고 기신론 대지도론 중변론 보승론 등 대소승 논소 12종류를 24번이나 끌어오셨다.
그야말로 암소 등에서 대소승 경전과 논소 전체를 총망라하여 이 경전을 풀이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서라벌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궁궐로 들어가 강설을 하려고 하는데 암소 등 위에서 애써 집필해 놓은 5권짜리 해설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성사는 이 사실을 급히 왕궁에 알리고 법회를 3일간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 잃어버린 그것을 혹시나 찾을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일수와 만약에 찾지 못한다면 다시 써야 하는 보충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틀을 기다렸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만에 다시 급하게 써야만 했다. 그것이 현재 남아 있는 3권짜리 略疏약소다.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에 나타난 무극의 보물인 금강삼매경론인 것이다.
그분이 모든 스님들을 제치고 법상에 올라가 금강삼매경을 설하는데 대한 불만으로 그 잔당들이 그렇게 황당한 짓거리를 저질렀으니 정말 정말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그렇게 시켰는지 몰라도 그분을 시기하고 질투한 속 좁은 기득권 세력들의 무지한 행동으로 모든 중생들이 큰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시간에 쫓기면서 급히 쓴 3권도 이렇게 훌륭한 논서였는데 소달구지 위에서 쓴 5권짜리가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대단했을까를 생각하니 아쉽고 아깝기만 해 분통이 솟구치는 심정이다.
ㅡ계속ㅡ
출처: 대승기신론 해동소 혈맥기 5_공파스님 역해_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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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강삼매경을 어떤 학자들은 가짜 경전이라고 하는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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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난당한 해설서 5권. 역시 기득권 세력은 무섭습니다.^^
그것을 이틀 기다리다가 3권을 하루 만에 쓰셨다니.
인용된 대소승경전과 논소도 장난아니게 많은데....
컴퓨터도 없던 시대에 말입니다.
생이지지 무사자통 이라 하시더니. 진짜로 언빌리버블!
나에게 친숙한 원효성사의 일화는 해골물, 파계승, 요석공주,설총뿐. 누더기 옷 속에 자신을 감춘 현자, 大安대사가 알아 본 원효성사는 과연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저술을 남기셨을까?
중국도 자존심 접고 극찬한 원효성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_()_
어? 오타확인 하다가 발견^^
원효성사가 원본 아니고 필사본을 받아 해석을 하셨나요?
왜 경전원본 아니고 필사본?
신라는 국교가 불교라서 경전해석 시스템이 달랐나요?
놀라운 내용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화가 납니다.ㅠ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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