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5 (월) '동네북' 된 임종석… 야당 계파전에 '노심초사'
대표적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운동권 출신인 친문(親문재인)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도 비난의 대상이 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민주당의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올까 당 지도부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 한동훈 이어 친명계·추미애까지 임종석 '저격'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86운동권인 임종석 전 실장이 지난 16·17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된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86운동권 프레임'을 들고 민주당과 임종석 전 실장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 운동권을 겨냥해 '경제를 망친 주범들'이라며 강도 놓게 비판하면서 "임종석, 윤희숙 중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냐"고 날을 세웠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역시 임종석 전 실장과 만찬가지로 이번 총선에서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여당의 공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문제는 민주당내 일각에서도 임 전 실장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친명(親이재명)계 원외 조직인 민주당혁신행동은 임종석 전 실장 출마 선언 직후 "윤석열을 발탁한 진실부터 밝히라"며 그의 총선 불출마를 촉구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1월 24일 자신의 SNS에 "윤석열·한동훈 커플이 저지른 난동질을 제동 걸지 못한 참담한 결과에 대해 책임감과 정치적 양심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임종석 전 실장을 저격했다.
◆ 여당에 빌미 제공 + 전략공천 출마… 당내 '부글부글'
임종석 전 실장이 이번 총선 출마를 계기로 말 그대로 '동네북'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임종석 전 실장이 민주당 내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된 데는 그의 출마가 국민의힘에게 공격의 빌미가 됐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운동권'은 결국 민주당 내에선 임종석 전 실장과 같은 친문계 86운동권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오는 4월 총선 승리를 위해선 친문계와 척을 져서는 안 된다. 그는 2월 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러 양산 평산마을까지 찾는다. 친문계는 현재 민주당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임종석 전 실장을 쉽게 내치지 못할 것을 알고 국민의힘이 '운동권 프레임'을 걸어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임종석 전 실장이 전략지역구인 중·성동갑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표적인 86 주자라 국민의힘이 프레임을 걸어 공격하기 딱 좋은 사람"이라며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한 대승적 결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임종석 전 실장이 전략공천 지역구로 설정된 중·성동갑을 선택한 점도 향후 민주당을 설득해야 할 숙제다. 당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지금 수도권 판세를 보면 '정권심판론'만 가지고는 중도층을 동조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동시에 수도권에 이미 민주당 현역 의원도 많고 나가고 싶어 하는 후보자들도 너무 많다"며 치열한 경쟁 상황을 설명했다.
◆ 임종석 측 "성동구는 험지… 문재인 정부 과(過)는 피할 생각 없어"
이러한 당내 상황을 의식한 듯 임종석 전 실장도 최근 자신의 SNS에 "우리는 민주당이다. 친문도 없고 친명도 없다"라며 "총선에 빨간 불이 들어와 깜박거리고 있다. 민심 앞에 두려워하고 절제하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단합하고 확장하고 정성을 다하자"라며 '원팀' 정신을 강조했다. 임종석 전 실장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성동구가 부동산 가격이 서울 상위 5위권에 드는 등 주거 환경이 변했고, 주민들의 분포도 많이 바뀌어서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험지라고 할 수 있다"며 임종석 전 실장의 지역 친화력과 성동에서의 재선 경험 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문제를 삼고 있는 부동산 정책, 조국 사태 등은 모두 임종석 전 실장이 청와대를 떠난 청와대 2기 때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며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던 공과(功過)에 대해 피해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실제 정부·여당을 비롯한 민주당 일각에서도 비판하는 부동산 정책과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 임기 이후에 터진 일이다.
◆ 민주당, 지지자만으론 못 이겨… "수도권서 지면 총선 패배"
당 지도부는 총선을 앞두고 행여 '막말' 등으로 공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이재명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잠잠했던 당내 계파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임종석 전 실장이 당내 친명계로부터 비난 세례를 받는 것과 반대로, 이재명 대표가 직접 복당을 제안했다고 알려진 이언주 전 의원은 당내 비명(非이재명)계이자 친문계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도 지도부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언주 전 의원은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당시 문재인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문재인 저격수'로도 불렸다. 당 지도부에 속한 또 다른 의원은 "지지자들만 보고 선거에서 이길 순 없다. 수도권에서 총선은 이겼지만 구청장 선거에서 진 지역도 많다"며 "현재 수도권 120석 가운데 100석이 민주당인데, 이번 총선에서 무조건 최소 10석은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에서 지면 총선 패배다"라고 계파 내홍에 경고장을 날렸다.
초등 여교사 50%… "교단 떠나고 싶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준비한다고 그만둔 대학 동기가 있다. 올해 서울 한 대학 로스쿨에 입학한 것으로 들었다." 2018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A씨(28)의 말이다. A씨는 "동료 교사 중에는 약대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며 "교사 커뮤니트를 보면 이직 준비한다는 인증 글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A씨 주변 사례뿐만이 아니다. 교직 경력이 짧고, 여교사일수록 '교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여교사는 과반이 교단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2월 4일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3차 한국초등교원종단연구'에 따르면, '정년까지 교직에 재직할 것으로 예상하나'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초등교사는 2021년 62.5%에서 2022년 52.6%로 감소했다.
'정년까지 재직할 의향이 없다'는 교사가 1년 만에 37.5%에서 42.5%로 급증했다. 이번 연구는 초등교사 2803명을 대상으로 2021년과 2022년 실시한 1·2차 한국초등교원종단연구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교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5년 미만의 저경력, 여교사일수록 컸다. '정년까지 재직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여교사는 2021년 40.5%에서 2022년 50.1%로 급증했다. 1년 만에 9.6%포인트(p) 늘었다. 남교사는 30.3%에서 32.3%로 2%포인트 늘었다.
5년 미만 저경력 교사도 '정년까지 재직할 의향이 없다'는 교사가 39.7%에서 48.6%로, 8.9%포인트 늘었다. '10년 이상 15년 미만'의 중경력 교사는 39.2%만 '정년까지 재직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비율은 2021년 34.2%에서 5%포인트 늘었다. 젊은 여교사일수록 교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은 낮은 직무 만족도와 정서적 소진(Burnout·번아웃)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연구진은 조사 대상인 초등교사 2803명 중 후기 M세대(1989~1996년 출생)와 Z세대(1997년 이후 출생)를 MZ세대로 묶고, 그전에 출생한 교사를 기성세대로 분류한 뒤 응답을 분석했다.
직무 만족도 조사 결과 13개 문항 중 11개에서 MZ세대와 기성세대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MZ세대가 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교직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는 문항에 기성세대의 응답은 평균 4.28점(6점 만점)이었는데 비해 MZ세대는 3.93점에 그쳤다. 거꾸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을 후회한다'는 문항에 대한 응답은 MZ세대(3.13점)가 기성세대(2.87점)보다 높았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해도 교직을 택할 것'에 대한 응답 역시 MZ세대(3.29점)가 기성세대(3.42점)에 비해 낮았다.
MZ세대(4.89점)가 기성세대(4.76점)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문항은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유일했다. '보수 수준'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는 평균 2.31점이었는데 비해 MZ세대는 1.79점에 그쳤다. '직업의 안정성'에 대한 응답은 MZ세대(4.62점)와 기성세대(4.59점)의 평가가 거의 비슷했다. 정서적 소진 역시 12개 문항 가운데 11개 문항에서 MZ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면 피로감을 느낀다'는 문항에 대한 MZ세대의 응답은 평균 4.17점으로 기성세대(3.54점)보다 월등히 높았다.
'교사로서 좌절감을 느낀다'는 응답도 MZ세대(3.30점)가 기성세대(3.11점)가 많았다. '교사로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것 같다'는 응답 역시 MZ세대(2.70점)가 기성세대(2.39점)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 직무만족도가 낮은 저경력의 여교사가 교직 이탈 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생 생활지도 등에 따른 스트레스, 정서적 고갈(소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교직 이탈의 정책적 대응이 특히 20~30대 저경력 여교사의 직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함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경호하려다 53명 순직… 봉황새1호 작전의 진실
안 되면 되게 하라.' 대한민국 대표 특수부대인 '특전사'를 대표하는 구호로도 익숙하다. 그만큼 불가능한 임무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군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쓰일 때만 가치가 있다. 2023년 3월 9일 방송된 SBS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69회는 '수상한 비밀작전: C-123기 추락사건'편을 조명하며 무모한 명령을 지키려다가 희생당해야 했던 대한민국 군인들의 안타까운 일화를 조명했다.
1982년 2월 5일, 제주도 한라산에 위치한 어리목 관리소에서 근무하던 청원경찰 양송남 씨는 제주도청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긴급전화를 받는다. 다음날 새벽에 청와대 경호팀이 한라산 등반을 할 예정이니 안내를 하라는 지시였다. 며칠 동안 계속된 폭설로 기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등산을 하겠다는 게 의아했지만 양씨는 일단 상부의 지시에 따랐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약속장소에 나와있던 것은 청와대 직원이 아닌, 대규모의 군인과 경찰들이었다. 양송남 씨는 그제서야 일반적인 산행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섣불리 질문조차 하기 어려웠다.
양송남 씨는 한라산 등반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 군경과 함께 산으로 올랐다. 이들의 진짜 정체는 청와대 경호팀이 아니라, 한라산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 현장을 찾으러 온 수색대였다. 언론에는 아직 이 사실이 보도되지 않아 국민들은 비행기 사고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대원들은 한라산 수색 7시간 만에 중턱인 해발 1060미터 탐라계곡 개미목 부근에서 마침내 추락한 비행기를 찾아냈다. 충격적이게도 해당 기체는 뒤집힌 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양쪽 날개와 프로펠러는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들로 가득했다.
추락한 비행기는 군용기인 C-123으로 1960~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주로 활용되었던 전술수송기였다. 해당 기체는 한라산 일대를 비행하다가 능선 어디인가를 들이받고 골짜기로 추락하면서 여러 차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됐다. 비행기 사고의 특성상 시신들의 상태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양송남 씨는 "온전한 시신이 거의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에 너무 막막하더라"고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사망자는 무려 53명, 생존자는 전무했고 희생자 전원은 모두 군인이었다. 수색대원들도 어제까지 동고동락하던 전우들의 비극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현장 지휘관인 최 소령은 무거운 분위기의 대원들을 독려하며 시신을 수습할 것을 지시했고, 유일한 민간인 목격자인 양송남 씨를 따로 불러 "오늘 목격한 일은 무덤까지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휴대폰도 SNS도 없었기에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일들도 많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당시 <제주신문> 사진부장으로 근무하던 언론인 서재철 씨는 텔레타이프(수신신호가 인쇄문자로 기록되는 자동기기, 당시 연합통신 등에서 속보를 알리는 데 사용)를 통하여 '군용기 추락'이라는 짧은 속보를 접했다.
또한 이튿날 제주공항으로 취재를 나갔다가 고위급 인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에 '한라산'이 언급된 것을 엿들었다. 당시는 군당국조차 추락지점을 확실하게 파악 못 하던 시점이었지만, 서재철 기자는 언론인의 직감으로 정보들을 취합하여 군용기가 제주 한라산에 추락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취재에 나섰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2년 당시는 언론도 통제가 일상이었다. 회사는 위험한 취재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했지만 서재철 기자는 기자 정신으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재철 기자는 단독으로 산에 올라 추락한 군용기를 발견했고, 일대를 통제하던 군인들을 따돌리고 현장을 촬영하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회사로 돌아온 서재철 기자는 당시 언론사마다 배치되어 있던 정권 측 주재원들에게 발각되어 결국 촬영 필름을 압수당했다. 서재철 기자는 위기의 순간에 그나마 기지를 발휘하여 필름 한 통을 몰려 빼돌려놓았다. 서재철 기자는 "만약에 그래도 무언가를 남겨둬야 할 것 아닌가. 언젠가는 쓰겠지 생각은 했지만, 언제 쓰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고 회상하며 미래를 기약했다.
물론 당시에도 이 사고가 내내 비밀에 부쳐진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 뒤 신문과 TV 등 주요 언론에서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면서 '대침투작전 훈련 중 이상기류로 군용기 추락으로 전원 순직'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는 국방부의 발표 전문을 그대로 옮긴 내용에 불과했고 취재 내용이나 촬영된 사진은 전무했다. 정작 정부와 군당국은 희생자의 유족들에게는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도 순직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사망한 대원들의 정체는, 바로 대테러부대인 특전사 707특임대대 47명, 그리고 공군 대원 6명이었다. 유족들은 특수훈련도 견뎌낸 베테랑 정예요원들이 사고로 허무하게 몰살 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더구나 사고 당시가 훈련중이라고 했음에도 정작 군용기 내에서 필수적인 낙하산 장비도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족들은 특전사령부를 찾아가 "무슨 훈련을 어떻게 받았길래 대원들이 다 사망했나?"라며 추궁했지만 군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 하고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반복됐다.
군의 무성의한 대응에 분노한 유족들은 급기야 돌발적으로 사령부 상황실의 유리를 깨고 안으로 쳐들어가 관련 서류를 수색하다가 한 장의 메모를 발견한다. 특전사령관이 707대대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훈련명칭을 '동계특별훈련'으로 변경하고 장병들에게도 고지하라고 지시하는 수상한 내용이었다. 왜 그들은 굳이 훈련명을 바꿔가면서까지 내용을 숨기려고 했던 것일까. 과연 순직한 대원들의 진짜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들의 진짜 작전명은 바로 '봉황새 1호작전'이었다. 봉황은 청와대의 상징이고 이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로 당시 제주공항 활주로 준공식과 연두순시를 위하여 제주도를 찾을 예정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 작전이 순직한 대원들의 진짜 임무였던 것. 정부나 국방부의 발표와 달리 애초에 '대침투작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가져올 후폭풍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고 직전인 1982년 2월 5일 당시, 일선 부대에서는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이륙하기 어렵다고 몇 차례나 건의했고 베테랑 조종사들도 무리한 비행을 모두 반대했지만, 상부에서는 이를 끝끝내 묵살했다고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부대의 구호처럼, 특전사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봉황새 1호작전의 최종결정권자이자 책임자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바로 전두환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은 본인을 경호하려다가 순직한 대원들의 사고 현장에서 "이번 사고는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냐.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는 충격적이고도 뻔뻔한 발언을 남겼다. 전두환의 최측근인 경호실장인 장세동은 평소 '심기경호'를 강조하며 보스인 전두환의 권위와 심기까지 세심하게 챙길 것을 강조했다. 전시상황도 아니었고 고작 연례행사에 불과한 연두순시를 위하여 전두환 정권이 무리해가며 봉황새 1호작전을 강행한 진짜 이유였다.
비극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것은 그저 임무에 충실하려다가 아깝게 순직한 이재훈 준위를 비롯한 53명의 707특임대대와 공군 대원들, 그리고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남겨진 유족들이었다. 유족들은 군당국의 삼엄한 현장 제속에 진행된 영결식에서조차 먼 발치에서 고인의 유골함을 바라만 봐야 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비행기 사고가 대중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갈 무렵, 서재철 기자와 유족들은 정권의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몰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유족들은 놀랍게도 그곳에서 아직 수습되지 못한 순직대원들의 유해를 대거 찾아냈다. 이재훈 준위의 누나 이재수씨 등 유족들은 사고로 훼손된 시신 일부가 군화나 베레모 안에서 발견된 참혹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전두환 정권은 사고 당시 눈에 띄는 유해 일부만 대충 수습하는 시늉을 하고 남겨진 유해 다수를 현장에 그대로 은폐-방치했던 것. 유족들은 결국 스스로 사고 현장을 뒤져서 고인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고 정성껏 화장하여 묘지 위에 뿌려줬다. 국가가 당연히 해줬어야 할 일을 유족들이 대신한 것이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통제와 감시로 이 사건은 당시만 해도 국민 대다수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88년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운동으로 몰락하면서 유족회를 결성한 유족들은 단체행동에 나서서 봉황새 1호작전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가 차원의 시신 수습을 요구했다. 그리고 서재철 기자는 그동안 고이 감춰둔 비행기 사고 현장의 유일한 자료인 필름을 공개했다. 하지만 5회에 걸친 탄원서 제출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1989년에는 유족들이 전두환과 주영복 전 국방부장관, 이희근 전 공군참모총장들을 '권력남용에 의한 미필적 살인'혐의로 고발했다. 3년 만인 1992년 12월에야 나온 수사결과는 살인은 무혐의, 직권남용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며 끝내 책임자 처벌은 아무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전두환 정권의 관련자들로부터 어떤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 했다. 전두환은 2021년 사망할 때까지도 해당 사고에 대하여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고 한다.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박희도는 2018년 인터뷰에서 당시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수많은 청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도 그들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한라산 중턱 개미목 부근에는 원점비와 사고 당시 순직한 대원들을 기리는 충혼비가 건립되어 있다. 사고가 기억이 안 난다던 박희도는 정작 충혼비에 추모문구까지 적은 바 있다.
본래 충혼비에는 대원들이 대침투작전 중 순직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2015년에야 대통령 경호작전 중 순직했다고 내용을 수정했다. 대원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충혼비에서 정작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문구 한 줄을 수정하는 데만 무려 33년이 걸린 것이다. 그나마 유족들, 서재철 기자, 양송남씨 등 수많은 사람들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있었기에 뒤늦게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봉황새 1호작전은 대한민국 건국이래 전시를 제외하고 평시 작전 중 천안함 피격사건을 제치고 가장 많은 대원들이 순직한 비극적인 사고였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군인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대상은 오직 국가와 국민일 뿐 개인이나 권력자가 아니다. 53명 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그날의 아픈 기억을 다시 되새겨야 할 이유다.
명륜 LH 2차 101동에서 본 백운산......
단구동 & 치악재.......
치악남릉......
눈 내린 치악산 조망......
행구동......
향로봉......
삼성으로......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