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를 읽고
이번에는 마이클 샌델(하버드 대학교) 교수님의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려고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한 말 중에 “나는 항상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각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는지 글로 써볼 거다.
1. 누구를 살려야 할까? (전차 기관사의 딜레마)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는 승객을 태운 기차가 앞 선로의 일하는 5명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비상 철로에는 1명이 일하고 있었다. 내가 기관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 쪽으로 향할 것 같다. “앞에 이야기를 보면 한 사람보다 다섯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을 택한다는 ‘행복 극대화’라는 방법으로 보면 옳은 방법이다. 하지만 다섯 사람을 위해서 죄가 없는 한 사람을 희생한다는 방법은 너무 잔인한 방법이다.”라고 마이클 샌델 교수님은 말한다. 어느 목숨보다 다른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때 마이클 샌델 교수님은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 교수님은 많은 사람과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2. 미뇨네트호 생존기
1884년 여름에 길을 잃고 남태평양을 헤매는 ‘미뇨네트호’에는 선원 4명이 타고 있었고 순무 통조림이 있었고 물은 한 병도 없었다. 그렇게 8일이 지나고 음식은 바닥이 났다. 20일째 되던 날 어린 선원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어린 선원을 먹고 난 4일 뒤 구조되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선원들은 어린 선원을 죽여서 먹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제러미 벤담은 “한 사람이 고통받고 희생되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했다면 됐다.”라고 말했을 거다. 라고 추측한다. 왜냐면 ‘행복 극대화’를 믿었기 때문에다. 이런 사람들을 ‘공리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어서 다른 입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남은 선원들은 “어린 선원은 병이 들었고 고아여서 같이 슬퍼할 사람이 없다.”라고 변호했다. 내가 판사라면 쉽게 판결할 수 없겠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한 말 중에 “나는 항상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각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라고 말한 게 내 생각으로는 진짜로 맞는 것 같다. 인생에 한 번쯤은 이런 선택을 해야 한다. 나 말고 이 글을 듣고 있는 친구, 동생, 누나, 형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